나에게 어려서 고아가 된 손자 구환(九煥)이 있는데, 공주(公州)의 권 판서(權判書) 가문에 장가들어 그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규범을 익힐 수 있었다. 판서는 우뚝하게 세상에 이름난 대부로서 가문을 크게 드러내고 온갖 법도가 정연하였다. 공을 똑 닮은 아들 형징(泂徵) 씨는 종통을 이어 법도를 지키고 유훈(遺訓)을 어기지 않아 집안을 보전하기에 꼭 알맞은 사람이었는데, 을해년(1755, 영조31) 겨울 11월 26일에 공주의 무수동(無愁洞)에서 고종(考終)하였다. 그는 갑술년(1694, 숙종20) 봄 2월 6일에 태어났으니 향년 62세이다. 그의 조부 현감공(縣監公)의 묘 오른쪽 등성이 축좌(丑坐)의 언덕에 부장하였다.
지금 그의 적손 상희(尙憙)가 묘갈을 청하려고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보여 주었다. 삼가 살펴보건대, 공의 자는 원지(遠之)로, 안동(安東)의 세가이다. 본성은 김(金)인데, 고려 태조 때 태사(太師) 행(幸)이 기미에 밝고 권도(權道)에 통달했다 하여 권씨 성을 내려 주었다. 충선왕(忠宣王) 때 재상 후(煦)가 왕실에 입적되어 왕씨가 되었는데, 성조에 들어와서 부윤 숙(肅)이 원래의 성을 회복하였다. 대대로 벌열(閥閱)한 집안이었으니, 역사책을 상고해 보면 알 수 있다.
고조의 휘는 득기(得己)로 장원급제하여 예부 좌랑을 지냈으며, 호는 만회(晩悔)이다. 증조의 휘는 시(諰)로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지냈다. 세상에서 탄옹(炭翁) 선생이라 부르며, 경술(經術)로 조정에 나왔다. 고조와 증조 모두 서원에서 제향하고 있다. 조부의 휘는 유(惟)로 현감을 지냈으니, 이분이 판서공의 선고이다. 판서공의 휘는 이진(以鎭)으로 바른 도리로 임금을 섬겼으며 명성과 행적이 당세에 드러났다. 《수만헌집(收漫軒集)》이 집안에 보관되어 있다. 정부인(貞夫人)은 선원 이씨(璿源李氏)로 처사(處士) 익하(翊夏)의 따님이니, 세종(世宗)의 별자(別子) 의창군(義昌君) 이강(李玒)의 후손이다.
공은 연산(連山)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법도 있는 가르침을 받았다. 자상하고 효성스러우며 우애 있고 공손한 성품이 일상의 언어와 행동으로 드러났으며, 비루하고 천박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으니, 한번 보면 그가 중후한 장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안을 다스리거나 남을 대할 적에는 기쁘고 흡족하게 해 주려고 마음을 썼다. 종가(宗家)에 제전(祭田)이 부족하면 장토(莊土)를 떼어서 주었으며, 가난한 친족에게 공의 선전(羨田)을 경작하게 하고 그에 대한 도조(賭租)를 받지 않았다. 궁한 이는 반드시 구휼하고 죽은 이에게는 반드시 부의하니, 이웃 사람들도 믿고 따랐다.
전배(前配)는 나주 정씨(羅州丁氏)로 승지 도복(道復)의 딸이요, 참의 시윤(時潤)의 손녀요, 교리 언벽(彦璧)의 증손녀이다. 공보다 39년 앞선 병신년(1716, 숙종42)에 별세하였다. 후배(後配)는 양천 허씨(陽川許氏)로 통덕랑 삽(鈒)의 딸이요, 정랑 전(堟)의 손녀요, 서윤을 지내고 찬성에 증직된 륜(崘)의 증손녀이다. 역시 공보다 25년 앞선 경술년(1730, 영조6)에 별세하였다. 두 부인은 모두 사대부가의 덕행이 있어 칭술할 만한 것이 많다.
정씨의 묘는 공의 묘에서 한 등성이 건너 임좌(壬坐)의 언덕에 있다. 허씨의 묘는 진잠현(鎭岑縣) 지동(池洞)에 있으니, 바로 선비인 정부인(貞夫人)의 묘 오른쪽 임좌의 언덕으로, 공의 묘와는 20리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다.
공은 3남 2녀를 두었으니, 큰아들은 세억(世檍)으로 전 부인 소생이고, 둘째 아들은 세식(世栻), 셋째 아들은 세구(世構)로 후 부인 소생이다. 세억은 부사 이익형(李益炯)의 딸에게 장가들어 3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상희(尙熹), 상점(尙點), 상형(尙衡)이고, 큰딸은 이구환(李九煥)에게 시집갔고, 딸 하나는 아직 출가하지 않았다. 세식은 승지 최종주(崔宗周)의 딸에게 장가들어 3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상성(尙煋), 상규(尙煃)이고, 나머지는 어리다. 세구는 참판 남태회(南泰會)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 2녀를 두었는데 어리다. 또 측실 소생으로 아들 세집(世集)과 세휘(世彙)가 있다.
명은 다음과 같다.
선은 반드시 기초가 있어야 하니 / 善必肇基
충성과 믿음으로 다져야 한다네 / 忠信以築
가통을 이어 온 유래가 있으니 / 厥有由來
이를 일러 세덕이라 한다네 / 是曰世德
그 흐름이 길게 이어졌으니 / 其流也長
그 보답이 어긋나지 않았다네 / 其報不忒
[주-D001] 상희(尙憙) : 묘갈명 뒷부분에는 ‘尙熹’로 되어 있다. 《해좌집(海左集)》 권24 〈호조판서시공민권공신도비명(戶曹判書諡恭敏權公神道碑銘)〉과 《번암집(樊巖集)》 권42 〈자헌대부호조판서권공시장(資憲大夫戶曹判書權公諡狀)〉에는 ‘尙熺’로 되어 있다.[주-D002] 선전(羨田) : 장부에 수록되지 않은 은닉전(隱匿田)을 말한다. 송(宋)나라 임훈(林勳)이 올린 《본정서(本政書)》에 언급되었는데, 《성호사설(星湖僿說)》 권7 〈인사문(人事門) 본정서〉에서 자세히 논하였다.[주-D003] 상희(尙熹) : 묘갈명 앞부분에는 ‘尙憙’로 되어 있다. 《해좌집(海左集)》 권24 〈호조판서시공민권공신도비명(戶曹判書諡恭敏權公神道碑銘)〉과 《번암집(樊巖集)》 권42 〈자헌대부호조판서권공시장(資憲大夫戶曹判書權公諡狀)〉에는 ‘尙熺’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