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홍성원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완성한 인간이 모두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개성진리체’와 ‘신인일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과 세계를 창조하셨을까요?
그리고 「본연세계」가 그리려는 이상세계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질서일까요?
완성일까요?
평화일까요?
행복일까요?
아니면 사랑일까요?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본연세계」를 읽은 한 분이 이런 취지의 의견을 주셨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여러 현실적인 문제와 경계, 권리, 갈등을 어떻게 다룰지가 많이 보이는데, 정작 하나님과 참사랑, 행복이 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가왔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지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문제를 논리적으로 정리해도, 그것만으로 본연세계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리강론은 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말하는가
「원리강론」은 창조목적을 설명하면서 아주 분명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혼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대상이 있고, 관계가 있고, 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이 생깁니다.
그래서 창조목적은 인간 개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 전체와 연결됩니다.
삼대축복 역시 그런 관계가 완성되어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는 구조로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본연세계를 생각할 때도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효율적인 세계인가?”
보다
“하나님과 인간이 정말 기뻐할 수 있는 세계인가?”
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기쁨’은 단순히 즐거운 기분일까
여기서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쁨’을 단순히 불편함이 없고 즐거운 일이 많은 상태로만 이해하면, 원리가 말하는 창조목적은 상당히 좁아집니다.
힘든 일이 전혀 없는 것, 원하는 것을 모두 얻는 것, 쾌락이 최대가 되는 것이 곧 창조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원리문헌에서의 기쁨은 사랑하는 대상과 올바른 관계를 이루는 데서 오는 기쁨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심정과 참사랑
「원리본체론」에서는 이 부분을 더 직접적으로 심정과 연결해서 설명합니다.
심정을 참사랑의 뿌리로 설명하고, 하나님의 창조도 심정을 동기로 해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랑하고 싶고, 사랑의 대상과 함께 기뻐하고 싶은 하나님의 내적인 동기에서 창조가 시작되었다
는 그림입니다.
그렇게 보면
기쁨과 사랑은 서로 경쟁하는 두 가지 목표가 아닙니다.
사랑이 이루어질 때 생기는 기쁨,
그리고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랑
처럼 서로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연세계」의 중심도 결국 관계 없는 완벽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제도가 완벽하고,
모든 기술이 발달하고,
모든 갈등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깊이 사랑하고 기뻐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정말 본연세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화·자유·권리 같은 것은 주변적인 문제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사랑이 중심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도 중요합니다.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상대의 개성을 지워버린다면,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거부할 자유를 없앤다면,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해도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정말 참사랑인지 다시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연세계」에서 자유, 책임, 경계, 권리 같은 문제를 많이 다룬 것은 사랑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이 현실에서 사람을 지워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다만 저 역시 지금 돌아보면, 그 안전장치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정작
“왜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가?”
라는 가장 앞의 질문,
즉 하나님·심정·참사랑·기쁨이 충분히 앞에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본연세계」를 다듬으면서 다시 살펴보려는 부분입니다.
본연세계는 ‘문제가 없는 세계’일까
저는 이제 이렇게 묻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연세계는 단순히
문제가 없는 세계
라기보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참사랑을 중심으로 살아 움직이며, 그 관계에서 기쁨이 계속 새롭게 생겨나는 세계
가 아닐까.
그 안에서도 사람은 배우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어려운 선택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활동의 중심이 상대를 이기거나 지배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관계를 더 온전하게 만드는 것
이라면 그 모습은 지금의 세계와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아직 더 생각해보고 싶은 질문
그래도 저는 아직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닫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쁨’, ‘심정’, ‘참사랑’, ‘삼대축복’, ‘창조목적’이 서로 정확히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그리고 그것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과학·교육·기술의 문제까지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는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본연세계의 중심은 관리나 통제가 아니라 사랑이어야 하고,
그 사랑은 실제 관계 속에서 기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모든 제도와 원칙은 그 중심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현실에서 왜곡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기쁨, 심정, 참사랑, 삼대축복, 가정, 하나님과의 일체…
그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심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또 「본연세계」를 읽으셨을 때 하나님과 참사랑이 충분히 중심에 보였는지, 아니면 현실적인 문제와 설명들이 더 앞에 보였는지도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홍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