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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침노하십니까? / 2026년 2월 15일 주일 예배
본문 / 마태복음 11:2-19
요즘 '왕과 사는 남자' 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에서 비운의 왕으로 불리는 단종에 관한 영화입니다. 단종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삼촌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세조는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빼앗아 버립니다. 세조의 악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조카이며 왕이었던 단종의 시신에 손을 대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고 어명을 내린 것입니다.
단종의 시신은 차디찬 강에 버려졌습니다. 그때 단종을 모시고 있던 영월의 하급관리였던 엄흥도가 일어납니다. 그는 말합니다. '옳은 일을 하고도 화를 당한다면 그 벌을 달게 받겠다' 그리고는 즉시 달려가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하고 곡하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조의 광기와 살기가 광풍처럼 부는 공포의 시대입니다. 어린 조카도 죽이는 사람입니다. 시신에 손을 대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그 두려움에 감히 누구 하나 나설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차디찬 강물에 버려진 시신을 보며 불쌍하고 안타까워 마음을 조렸지만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나섰는지 말입니다. 상상히 됩니까? 자기만 화를 당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멸문지화를 당하는 겁니다. 저는 엄흥도에게서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사한 아리마대 요셉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 당돌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였습니다.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도망갔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당돌하게 사람들이 두려워 외면하는 주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감싸 정성스럽게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역사는 엄흥도를 의인으로 기록합니다.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합니다. 과연 세조와 엄흥도 중에 누가 세상을 침노한 사람일까요? 무자비한 칼로 왕위를 침노하여 역사에 크게 이름을 남긴 세조입니까? 그 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옳은 일을 행한 작은 하급관리였던 엄흥도입니까?
과연 예수님을 죽인 빌라도와 유대인들이 침노한 것일까요? 빌라도는 예수님께 나에게는 죽이고 살린 권세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힘 없이 죽임을 당하신 주님과 그 시신을 수습한 아리마대 요셉이 침노한 것일까요? 왜 예수님은 처참하게 십자가에 죽으시며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까요? 다 이룬 사람이 승리한 것이 아닙니까? 침노한 사람이 승리의 면류관과 전리품을 챙기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 침노한 것입니까?
타락한 이 세상은 즉 인간의 역사는 침노의 역사입니다. 침략하여 노략질하는 것입니다. 빼앗는 역사가 아닙니까? 전쟁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타락한 인간의 역사의 큰 흐름인 침노를 하나님 나라를 향해 사용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타락한 인생들은 오로지 세상을 침노하기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세상에 미친 자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오직 육신을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탐심이 본성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의 잠시 남아 있는 생존의 동력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인생의 실존을 잠시 잊게 해주는 강력한 진통의 효과를 내는 마취제입니다. 죄인들의 눈을 덮고 있는 어둠의 비늘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영적인 맹인들의 삶이 타락하여 썩어질 세상을 죽어라 침노하고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도 카나다도 그린란드도 대만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가장 큰 땅을 갖고 있는 나라가 말입니다. 그것은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 즉 트럼프과 푸틴과 시진핑만의 침노가 아닙니다. 타락한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삶에서 침노하여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타락한 육체의 정욕과 탐심으로 죽어라 세상을 침노하여 무엇을 빼앗고 소유하였습니까? 세상을 떠들썩하게 침노했던 사람들과 그 제국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더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기기 위해 침노한 그 결과 무엇일까요? 세계를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은 죽을 때 자기 손을 관 밖으로 내놓으라고 했답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빈 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그야말로 왕위 쟁탈전입니다. 왕위를 빼앗기 위한 침노의 역사가 얼마나 치열합니까? 가관도 아닙니다. 속임과 배신이 난무하고 죽이고 죽는 살육의 역사입니다. 시므리는 여러 사람을 죽이고 왕이 된지 칠일 만에 빼앗기고 맙니다. 조선왕조에서는 왕이 된후 삼일만에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육신을 위해 세상을 침노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침노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타락한 죄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육신을 위해 세상을 침노한 그 결과는 사망 즉 영원한 고통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시편 49장에서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세상을 침노하는 자들에게 증언합니다.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에 되리로다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를 따라 내겨가지 못함이로다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육신을 위해 육신대로 살며 세상을 침노한 그 결과는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는 저주입니다. 영원한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불나방이 되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로 달려갑니다. 세상을 침노하기 위해. 심판과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입니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그 고통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썩어질 육신과 잠시 보이는 세상에 목숨을 건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를 침노하고 있습니까? 지금 나는 무엇을 침노하고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십니까? 세상을 침노하십니까? 어디 입니까?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동시에 침노하십니까? 불가능할 짓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누구일까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미국의 트럼프는 건물이나 도로나 터널에 자기 이름을 붙이거나 바꿀 것을 강요한다고 합니다. 자기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예산도 지원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의 교만과 어리석음과 망령됨이 하늘을 찌르지 않습니까? 그렇게 어거지로 붙인 이름이 얼마나 갈까요?
주님은 권능과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제어하고 고무되어 돌아온 제자들에게 그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하늘의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일도 세상의 일도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고 돌아온 자들에게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는 자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온 인생의 목적과 삶의 방향은 분명합니다. 정해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 나라가 침노를 당하겠습니까? 과연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침노할 수 있습니까? 그 나라의 영원한 영광과 안식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스가랴 4장 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나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는 절대로 결단코 하나님 나라를 침노할 수 없습니다. 한 발자국도 말입니다. 나의 열심과 행위와 의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신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이루셨습니다. 불가능하고 소망 없는 죄인들을 위해 나의 죄를 십자가에서 자신이 짊어지고 대속하셔서 죄로 막혔던 담을 허무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자들은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은)주님과 함께 주님으로 이름으로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그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침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로 올 자가 없다!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침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누가 천국을 침노하겠습니까? 오직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 믿음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증언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자들입니다. 어떻게요? 은혜로 믿음으로 말씀으로 순종으로!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받들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십자가의 용사들입니다.
십자가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그 모습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육신으로는 힘 없는 모습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고난을 당하는 그때에 천국을 침노하고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과연 나는 천국을 침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받은 사랑하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십자가의 은혜와 그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하시기를 정말 원하고 기뻐하시는데 말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를 원하시는데 말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바라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시편에서 뭐라고 증언합니까?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보시며 나를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신즉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다 치우쳐 육신을 위해 썩어질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며 세상을 침노하기에 바쁜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 뒤로 버린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던 자들이 포도원을 세로 받았지만 소출을 바치지 않고 주인의 종들과 아들마저 죽인 악한 농부들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그때도 노아와 롯의 때와 같을 것이다. 두렵고 안타깝지 않습니까? 성도들은 그저 육신을 위해 세상을 침노하기에 골몰하는 것입니다. 교활한 마귀의 미혹에 빠진 것입니다. 세상을 침노하기 위해 주님마저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와 헌금과 봉사를 이용합니다.
인생이 정말 어리석지 않습니까? 은혜를 받았지만 육체의 정욕과 탐심은 그대로입니다. 십자가의 싸움이 없는 겁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느니라! 내가 날마다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그 은혜와 믿음이 없으니 성령으로 시작하였지만 육신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먼저 되었지만 나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삶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함께 섬기며,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영적 간음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바알 사이를 오가며 머뭇거린 것처럼 말입니다. 신앙의 중간지대에서 적당한 믿음으로 회색 옷을 입고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이도저도 아닌 미지근한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종교인이 된 것이 아닙니까?
이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에서 천국을 침노하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 자주 듣는 찬송 중에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렇게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는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천국을 침노하는 믿음은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하는 자아죽음의 좁은 길입니다. 고통의 길입니다. 즉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는 순교자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은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그 길을 가십니까? 잘 안 되고 수시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그 길만을 가기를 원하십니까?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증언합니다.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는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의 복 받으려면 이 길만을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왜 믿음의 선진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인내하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천국을 침노하였을까요?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믿음 때문에 말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던 선진들의 그 뜨거운 믿음을 증언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비밀을 안 것입니다. 천국을 본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계시해 주신, 이 세상에 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나타난 천국의 비밀을, 그 진리를 확실하게 안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이지만 그러나 그 안에 감추어진 놀라운 능력과 미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 진리가 세상에 대해 자유하게 한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련 없이 버리게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쟁기를 잡아도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고 보지 못하는 증거가 된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어정쩡하지 않습니다. 어지간하고 적당하지 없습니다. 믿음은 분명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의심을 이깁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와 복음을 위해 죽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세상을 침노하려 했던 솔로몬이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주님은 천국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즉시 돌아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진리 그 복음 안에 감추어진 천국의 비밀을 발견한 성도들은 십자가에 다 팔아 버리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을 다 못을 박아버리는 것입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는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천하를 얻고 목숨을 잃으면 무엇하겠습니까? 잠시 세상을 침노하여도 하나님의 나라에 침노를 당할 때에는 영원한 고통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증언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고 맙니다. 인생은 잠시 피었다가 지는 풀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무합니다. 바람이 불면 그 있던 흔적도 없어 집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에 다 녹아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은 영원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자도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를 무엇을 침노해야 겠습니까? 부자 청년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재물을 버리고 천국을 침노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재물을 의지한 어리석은 부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은 30냥에 주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게하시와 아간과 고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갑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로 가야 합니다. 그 은혜를 의지하며 마음을 찢고 회개해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세상을 침노하는 길에서 천국을 침노하는 자로 돌아서야 합니다. 이제는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가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12장에서 증언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잠언 31장에서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도의 삶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죽기까지 침노하는 것임을 깨닫고 오직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천국을 침노하여 그 영생과 영광을 빼앗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