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채소가 심장마비를 줄일 수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권위있는 과학 잡지인 '뉴 사이언티스트'에 실려 있다. 영국의 존 패터슨 연구진은 채소 수프의 화학 성분을 분석하여, 유기농 수프에는 일반 수프보다 살리실산이 6배나 더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게 심장 질환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스피린의 혈액 내 작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소량의 아스피린을 매일 복용하면 혈전 생성 가능성을 줄여 심장마비 예방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의사들은 50세 이상이면 매일 어린이 아스피린(81밀리그램)을 복용하는 걸 권장하기도 한다. 화학적으로 아스피린은 아세틸살리실산이며, 체내에서 분해되어 살리실산을 생성하는데, 이 성분이 바로 생리적 효과를 일으키는 물질이다. 따라서 음식 속 살리실산 함량은 의학 연구자들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채소에 왜 살리실산이 들어 있을까? 식물이 인간의 심장병을 예방하려고 진화했을리는 없는데 말이다. 식물은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등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도록 진화했다. 살리실산은 식물 호르몬으로 작용하며, 침입자와 싸우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자를 활성화한다. 농약이나 살균제 없이 자란 유기농 채소는 더 많은 살리실산을 생성할 수밖에 없는데, 패터슨의 연구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유기농 채소 수프가 심장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믿기 전에 관련 수치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다. 유기농 채소수프에는 그램당 평균 120 나노그램의 살리실산이 들어 있고, 일반 수프에는 20 나노그램이 들어 있다. 즉, 유기농 수프 한 그릇, 약 400그램에는 약 0.06밀리그램의 살리실산이, 일반 수프에는 0.01밀리그램이 들어 있어서 6배 차이가 난다. 어린이 아스피린 한 알은 81밀리그램으로, 유기농 수프에 들어 있는 살리실산보다 천 배 이상 많다. 채소 수프에서 드러난 이 정도의 차이는 무의미하며, 이런 이유로 유기농 수프를 선택하는 건 어쩌면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면 식품 속 살리실산 함량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확실하진 않지만,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 500cc에는 약 30밀리그램의 살리실산이 들어 있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토마토나 살구처럼 살리실산이 많다고 알려진 식품도 1회 섭취량 속에는 많아야 몇 밀리그램 수준이다. 살리실산을 충분히 섭취하려면 아주 많은 양의 과일과 채소를 먹어야한다. 물론, 심장병 예방 외에도 다양한 건강상의 이점이 있다.
대장암은 서구에서 흔하지만 인도 농촌에서는 드물다. 왜 그럴까? 관절염 때문에 아스피린을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서구인들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아스피린은 대장암 예방 효과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복용하라고 권장되지는 않지만, 한 연구에서는 대장암 환자가 하루 325밀리그램의 아스피린을 복용했을 때 재발 위험이 줄어들었으며, 31개월 동안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 10명 중 1명은 재발을 피할 수 있었다. 엄청난 수치는 아니지만 의미 있는 결과이며, 아스피린의 항염 효과가 대장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품 속 살리실산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인도 농촌 주민들의 혈청을 분석해 보면 서구인보다 살리실산 수치가 높다. 특히 채식주의자일수록 그 차이는 더 크다.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불교 승려들의 경우, 혈중 살리실산 수치가 어린이 아스피린을 매일 복용하는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게다가 인도 농촌에서 재배된 작물은 농약이나 제초제 없이 자라기 때문에 서구에서 재배된 작물보다 살리실산 함량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인도 요리에는 다양한 향신료가 사용되며 이들 중 일부는 살리실산이 풍부하다. 커민, 강황, 칠리 파우더, 파프리카는 살리실산의 훌륭한 공급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살리실산이 체내에 잘 흡수된다는 것이다. 살리실산이 풍부한 매운 음식을 먹은 후 채혈한 결과, 혈중 살리실산 수치가 즉시 상승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모든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채소를 더 많이 먹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리실산이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며, 대부분의 영양 문제와 마찬가지로 주의할 점이 있다. 살리실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극소수는 천식, 피부 발진, 부종 등을 겪을 수 있다. 채소를 많이 넣은 쇠고기 국에 썬 파프리카를 얹고 강황가루도 살짝 뿌려 먹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