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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월간 <한국소설>에 발표했던 단편입니다.
운전면허증
운전면허 2차 관문인 기능시험 대기소.
“1006번 주한주님 대기해주세요.”
스피커에서 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지극히 실무적인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뻑뻑 빨아대던 나는 가방을 든 채 노란색이 칠해진 일 평방미터도 채 안 되는 보도블록 위에 서서 얼굴을 이층 통제실로 돌려보였다. 왜 이렇게 떨리는가. 기도도 했건만, 비록 담배를 피우며 한 불경스런 태도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침착하게 평소 하던 대로만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담배를 끄면서는 아멘, 아멘, 아멘을 외쳐댔다. 그러나 가슴은 여전히 콩닥거리고 불안한 마음은 떠나지 않았다.
“주한주님, 7호차 승차하세요.”
내가 따려고 하는 면허는 2종 오토(자동). 십년 전에 땄을 때는 1종 스틱(수동)이었다. 그러나 오토만을 운전하고 다녔기에 또 앞으로도 1종 스틱에 해당되는 차를 몰 가능성이 전무 했으므로 빨리 딸 속셈으로 2종 오토를 신청한 것이다. 학과시험 점수는 1종을 보기에도 충분한 78점이었다.
거의 십년을 운전하고 다녔는데도 막상 시험이라니까 이렇게 떨리는가. 나는 시동이 걸려 있는 7번 노란색 악센트 승용차에 올라탔다. 가방을 조수석에 내려놓고 먼저 안전띠를 맨 다음 왼쪽 백미러를 뒷바퀴가 보이도록 고정시켰다. 그리고 의자를 조금 앞으로 당겨 양손으로 운전대를 바로잡고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점검은 끝났다. 그런 와중에 나는 끊임없이 주를 찾았다. 주일인데도 가끔씩 바쁘다는 핑계로 그분을 뵙지 못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면서 이런 순간에야 찾게 되는 파렴치라니, 소가 웃을 일이지만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7호차 주한주님 준비되셨습니까? 준비가 다 되었으면 창밖으로 손을 들어 주세요.”
나는 시킨 대로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아직도 가슴은 뛰고.
“출발하십시오.”
그래, 출발이다. 나는 먼저 핸드 브레이크를 풀었다. 이제 P에 있는 기어를 D로 옮기면 차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침착하게 기어를 앞으로 당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어가 움직이질 않았다. 20초가 지나면 감점이고 30초가 지나면 실격이다. 이상하다, 이상해. 어째서 기어가 내려오지 않는가 말이다. 아니 그럼 시동이 걸려있지 않은 게 아닌가? 나는 재빨리 키를 돌렸다. 요란한 소리만 날 뿐, 시동은 분명히 걸려있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이 뜻밖의 상황에 나는 허둥댔다. 기어를 잡은 오른손에 힘을 주어 당겨보았다. 그래도 기어는 꿈쩍을 않고 P에만 악착같이 머물러 있었다. 가속페달 밟아보았다. 붕붕 소리만 났다. 오, 맙소사. 뭐가 잘못되었는가?
“7호차 주한주님, 출발 실격입니다. 차에서 내려오십시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전혀 예상치 못한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꿈인가? 출발도 못하다니. 아니야, 분명 이 차에 문제가 있는 거야. 나는 차에서 내려 다가오는 진행요원에게 다짜고짜 항의했다.
“아니, 어떻게 기어가 꼼짝을 안하는 거요?”
“연습 좀 더하고 오세요. 출발도 못하면서 무슨 시험을 보겠다고.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움직여야지요.”
이럴 수가! 나의 황당한 표정에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맞섰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다니. 가장 기본이 되고 초보적인 것,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기어를 움직이려 하다니. 맞다, 맞아. 나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어.
참으로 기가 막혔다. 출근하기 위해 집에서 나와 차에 오르면 먼저 안전띠를 매고 무의식중에도 발은 벌써 브레이크를 밟아 시동을 건 다음 기어를 움직였다. 언제나 발은 브레이크에 자동으로 가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습관이 이 중요한 순간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아니 이 시험이라는 제도 앞에 동물적인 감각마저 마비가 될 정도로 나는 소심한 인간이었던가. 망연자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통제실로 가 응시원서를 받았다. 고개를 들기도 민망하여 스피커 음성의 주인인 여자 통제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해요, 점검이 덜 됐던가요?”
이건 실무적인 음성이 아니다. 안타깝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대답을 대신하곤 후다닥 돌아서 참담한 심정으로 하늘을 보며 걸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우중충, 내 심정처럼.
면허시험장 본관으로 가서 응시원서에 만 원짜리와 삼천 원짜리 인지를 사서 붙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먼젓번 인지 삼천 원짜리가 거꾸로 붙어 있지 않은가. 거기에 바로 불합격이라는 빨간 도장이 찍혀있고. 맞아, 이것 때문이야. 수입인지 하나 똑바로 붙이지 못했으니 출발마저 못하게 된 거야. 이랬으니 마가 낄 수밖에. 나는 기능시험 실패를 인지 탓으로 돌리며 한 가닥 위안을 삼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개의 인지를 꼼꼼하게 풀을 발라 톱날까지 이가 맞게 똑바로 붙이고 이층으로 올라가 내일 모레 오전 열한 시로 날짜와 시간을 정해 접수했다. 접수를 받는 여직원의 얼굴 보기도 부끄러웠다.
아내에게는, 회사 직원들에겐? 뭐라고 해야 할까. 뭣 때문에 떨어졌다고 변명해야 되나. 출발을 못했다고?
한심한 일이었다. 출발, 그래 내 인생은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대학 입학 시 나는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의 조언은 그렇지 않았다. 또한 뼈가 저리고 써(혀)가 빠지도록 농사일에 매달리는 부모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중동의 건설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그래서 인문계였는데도 줏대도 없이 내게 아무 매력도 없던 건축과를 선택했다. 취직하기 좋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이십년, 건설현장에서만 살았다. 그럭저럭 남에게 뒤쳐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마음 한 구석에선 삶의 회의가 일고 하루하루 만족감을 잃어가면서 뭐라 꼭 찍어낼 수 없는 응어리가 맺혀지고 있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 인생이 결코 백 퍼센트 만족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 응어리를 키울 수는 없지 않는가.
연말이었다. 초, 중, 고, 대학 동창 망년회를 비롯하여 각종 술자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졌다. 나는 그런 날이면 아예 차를 두고 출근했다. 그렇잖아도 언론에서는 음주 운전의 폐해를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전봇대나 가로수를 들이받아 즉사를 하지 않나, 인도로 돌진하여 지나가는 행인을 덮치질 않나, 저수지에 빠져 익사하고, 심지어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나 몰라라 운전대에 엎어져 자는 장면이 TV에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누가 있든지 말든지 술 처먹고 운전하는 그런 쓸개 빠진 놈들은 죽을 때까지 운전면허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며 역설하던 나였다. 저만 망가지면 됐지 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느냐 말이야, 개망나니새끼들.
그날은 예정된 술자리가 없었다. 나는 연일 술로 인하여 녹초가 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간도 생각 좀 해줘야지, 그럼. 나는 행여 누가 또 술 마시자고 할까봐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으로 직행하여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장 이사가 차 앞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내가 창을 내리고 무슨 일입니까, 하는 표정으로 의아해하자 그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오늘 별일 없지요?”
“그렇습니다만.”
“나하고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없을까요?”
“무슨 말씀이신데요?”
“그동안 우리 조금 소원하지 않았던가?”
그래 소원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이사님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아냐 아니야, 주 부장. 내가 잘못 생각했었어. 내가 공과 사를 구분치 못했던 거야. 하도 처남이 어렵다기에. 결과적으로 주 부장이 나를 살린 셈이야. 그놈 아는 벌써 나가자빠졌잖아.”
나는 18층 오피스텔 공사를 책임지는 현장소장이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장 이사는 페인트 공사를 자신의 처남이 할 수 있도록 넌지시 압력을 행사했고. 그러나 나는 입찰의 원칙을 지켜 다른 업체를 선정했다.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내 직권이었다. 그러자 장 이사는 그까짓 페인트칠 아무나 하면 어떠냐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우리 일 아니냐고, 어떻게 나를 이렇게 무시할 수가 있냐며 알게 모르게 괜한 억지를 부리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려 눈에 불을 켰다. 그런데 내가 선정한 업체는 모두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훌륭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러나 내가 맡고 있던 곳보다 작은 현장 두 곳은 장 이사 처남이 맡았던가보다. 결국 그곳의 결과가 좋지를 못했다. 건축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깔끔한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나는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내 현장은 분양도 모두 끝났으나 다른 두 곳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어디 조용한데 가서 간단하게 술 한 잔 하고 가지. 내가 그냥 넘어가기가 개운치가 않아서 그러니 어때요? 장 부장님.”
그가 설령 상사가 아닐지라도 그렇게까지 나오는데 그 호의를 뿌리칠 정도로 나는 야멸차지 못하다.
“그러시다면 제가 사겠습니다.”
그랬다. 우린 회사 근처 횟집에서 일 차를 하고 즐겁게 아주 즐겁게 룸살롱에서 이 차를 했다. 내가 낸다는 술값도 장 이사가 부담했다. 그는 많이 흔들거렸다. 나도 또한 마찬가지. 그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기 전에 내게 대리 운전사를 부르든지 차를 그대로 두고 택시를 타고가라며 다정하게 내 어깨를 잡아 흔들며 귀가를 걱정했다. 그러나 그가 사라지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내 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술이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을까? 술이 내게 똥배짱을 안겨주었을까? 아니, 회사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이 킬로미터 남짓 한 도로에서 그날까지 단 한 번의 음주단속이 있었거나 음주측정을 받아본 사실이 없었다는 게 내가 안심하고 운전대를 잡은 가장 큰 이유였다. 아니, 또 한 가지 이유는 내 파트너였던 미스 홍이라는 아가씨가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 살고 있다며 영업시간도 얼추 끝나가는 상황이라 같이 가기로 귓속말을 나눈 상태였기에.
나는 차에서 기다렸다, 그녀를. 매력이 철철 넘쳐서 한입에 덥석 깨물어 먹고 싶어 오히려 장 이사가 고맙게 여겨지던. 집에 데려다주면 여기까지 오셨는데 차라도? 아니면 집에 좋은 술이 있는데 딱 한 잔만 더하고 가세요, 하는 기대? 남자라면 거의 다 지니고 있는 늑대심보가 더욱이 술이 거나한 상태에서 발동되었던 것일까. 미스 홍은 미인이면 다 모였다는 룸살롱에서도 내게 아주 특별한 매력이 느껴지는 여자였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사이다 같이 뒤끝이 깔끔한, 비린내가 날 정도로 너무 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절정기를 지나지도 않은 삼십대 초반의, 아늑하여 너무나 아늑하여 속으로 스며들 것만 같은 그런 여자. 언제나 속으로는 아내 아닌 다른 여자, 젊고 아리따운 여자를 품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겉으로 나는 고상했다. 그러나 아내를 배반하는 그런 배짱, 오늘 하루만? 그래 나도 솔직해지자. 감쪽같이 하는 것인데 뭘. 미스 홍과 같은 여인을 언제 품을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은 분명 내게 행운이 따르리. 내가 음주운전을 하게 된 결정적 사유는 솔직히 말해서 아마 후자 쪽에 가까웠으리라.
나는 운전할 때마다 아내가 옆에 타고 있으면 내 운전솜씨는 예술이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곤 했다. 여태껏 접촉사고 한번 없이, 양보도 웃으면서 해줄 줄 알며, 문화시민답게 교통법규도 아주 잘 지키고 탑승자를 놀라게 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차를 굴러가게 하는 솜씨야말로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일 킬로미터쯤 왔을까. 옛날엔 논바닥이었던 곳. 지금은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금싸라기 땅. 삼십여 년 전, 형이 공고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취직했던 곳이 내가 사는 부천이었다. 섬진강변의 아버진 그 당시 천수답이나 다름없던 골짝 논을 팔고 마을에서 가깝고 물길이 좋아 농사짓기 수월한 서낭모퉁이 논을 물색하던 참이었는데 형이 취직하고 첫 명절이 돼서 흑백텔레비전을 사들고 와서는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 서낭모퉁이 땅값이나 부천 땅값이나 똑같으니까 부천에다 사지 그러세요? 분명히 몇 년 안 있으면 땅값이 엄청 오를 것 같던데요.”
서낭모퉁이에 있는 상답이 오천 원, 부천에 있는 논도 오천 원. 땅은 시골 땅이나 도시 땅이나 똑같은 땅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아버진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넋 빠진 소리허고 자빠졌네. 내가 거기까지 가서 농살 짓겄냐, 니놈이 거그서 농살 짓겄냐? 갈쳐 놓은 게 꼭 어먼 소리만 통통허고 있네.”
아버지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결국 아버진 그렇게 소원하시던 서낭모퉁이에다 논 오천 평을 장만했다. 형의 말은 아버지에겐 미친놈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 뒤로 십년 쯤 지났을까. 공고 졸업장의 한계를 절감한 형은 악착스레 공부를 하여 대학을 다니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런 형이 부천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것을 보고 자신의 선견지명이 못내 아쉬웠던지 아버질 통박했다.
“아버지, 서낭모퉁이 논 오천 평을 다 팔아도 이젠 부천 땅 백 평도 못 살 걸요? 그때 제 말씀을 들었으면…….”
“어림 택도 없는 소리 허고 자빠졌네.”
형은 말을 끝내지도 못했다. 아버진 형을 보고 혀를 차며 그전이나 마찬가지로 참말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그들 공부는 뭘로 했냐. 글고 나 이날 이때껏 살면시롬 갑자기 떼부자 돼갖고 사람 제대로 된 거 보덜 못했다. 자식들 반거충이 만들기 딱 십상이지.”
나는 아버질 이해할 것도 같고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넋 빠진 소리와 어림 택도 없는 소리를 할 때의 단호한 표정만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 시골 땅값이 이만 원이라던가? 여긴 칠백만 원을 호가하는데. 일억 대 삼백오십억. 아니지 신도시가 들어서서 그러니까 삼십 프로만 잡는다 해도 일억 대 백억. 백 대 일. 삼십 년의 세월은 이 엄청난 모순을 만들어냈다. 땅도 상놈과 양반과 같이 똑같은 땅이 아니게 된 꼬라지.
새벽 세 시가 가까운 시간에 차들은 빠른 속도로 잘도 달렸다. 나는 소방서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 미스 홍은 내 오른쪽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미스 홍, 나도 졸부가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빨간 불빛을 내는 막대기가 앞에 가고 있던 차를 가로 막았다. 아차! 이 시간에? ‘역시나’가 ‘혹시나’로 바뀌는 좀체 일어날 수 없는 순간임을 소름이 돋도록 느끼고 있을 때 앞차는 잠시 멈췄다가 가버리고 내 차 앞으로 그 빨간 막대기를 흔들며 경찰이 다가왔다. 이럴 수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경찰 한 명은 차를 막고 또 한 명이 차 옆으로 다가 와 거수경례를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창을 내렸다. 찬바람과 함께 음주측정기가 내 얼굴에 바싹 내밀어졌다. 그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내빼버릴까? 내 지갑에 지금 얼마가 있지? 이럴 때 경찰 고위직에 있는 선배가 도움이 될까? 절대로 불지 말고 전화를 하라 했었던 것 같은데?
“빨리 협조해 주십시오.”
그는 단호했다.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미스 홍은 어머, 어떻게 해요를 연발하고. 에라, 모르겠다, 까짓것 될 대로 돼라, 하는 심정으로 힘껏 불었다. 경찰은 측정기를 보더니 대번에 빈정거렸다.
“만취시군요? 차 옆으로 대세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나는 차에서 내려 물었다.
“얼마나 나왔습니까?”
“0.134요.”
경찰차가 요란스럽게도 우리 앞에 번개처럼 나타났다. 미스 홍은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다가 엉겁결에 경찰차에 같이 탔다. 경찰서에서 난생 처음 조서란 걸 꾸미고 면허증 반납, 면허취소, 취소기간 일 년, 한 달은 다닐 수 있는 임시면허증명서 발급. 나는 일 년 동안, 아니 다시 면허를 딸 때까지 차를 몰 수 없는 무면허가 돼버린 것이다. 나의 자멸이었다.
술이 다 깨버렸다. 운전솜씨가 예술은커녕 주정이 돼버렸고 음주운전을 누구보다도 더 비웃던 나는 영락없이 내 얼굴에 침을 뱉은 쓸개 빠진 놈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자업자득이란 말을 확실하게 체험하여 허탈해진 나를 미스 홍은 경찰서 앞에 대기해 있던 빈 택시에 태우고 운전면허증과 바꾼 내 기대에 부응하듯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선 혹시나 기대해마지 않았던 ‘시팔이스걸’의 상대가 되어주었고, 나락에 떨어져 심난해 하던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었다. 그러나 벌건 아침이 되자 지끈지끈한 머리만 현실로 남았다. 그리고 한 달 후, 벌금 백오십만 원정 고지서가 날아와 그제야 면허가 취소된 게 아내에게 들통 나버렸고 다그치는 아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지 못했다.
나는 다시 기능시험장에 들어갔다. 번호도 좋았다. 1004, 천사. 그래 하늘이 내려준 번호다. 하긴 처음 면허를 딸 때도 두 번 만에 합격했었지. 이번에도 두 번 만에 합격하란 게 틀림없다. 나는 코스를 유심히 살피고 그때그때 내가 대처해야할 일을 꼼꼼하게 되새김질하며 오늘은 틀림없이 합격하리라 자신했다.
<올라가자마자 안전띠를 맨다. 그리고 출발과 동시에 왼쪽 방향지시등을 켜고 삐-소리가 나면 끄고, 바로 나오는 횡단보도에선 정지선 일 미터 이내에 앞 범퍼가 닿게 멈추고는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센 다음 출발한다. 오르막에선 검지구역 내에 정지하는데 뒷바퀴가 정지선을 정확히 넘었는지 백미러로 확인하고 또다시 3초라 생각되는 다섯까지 센 다음 출발하여 굴절로 들어서서 앞차가 없는 쪽을 택한다. 만약 두 곳 모두 차가 다 빠져나가지 않았으면 기다리고. 그 다음은 교차로다. 거기에서 주의할 점은 신호등을 잘보고 정지선을 잘 지켜 정지했다가 녹색신호 시에 통과. 곡선도 굴절이나 마찬가지로 검지선을 유의한다. 검지선 접촉 시마다 5점 감점이다. 다시 교차로를 통과하여 방향전환을 하게 되는데 뒷바퀴 모두 확인선을 동시에 접촉 확인 후 교차로 오 미터 전방에서 좌회전 방향지시등을 미리 켠다. 이때도 신호등을 잘 봐야 한다. 신호위반은 10점 감점이다. 이제 철길 건널목이 나오면 일시 정지하여 다섯까지 또 센 다음 출발한다. 그리고 시속 20Km 구간에서는 1초 이상 그 속도를 유지하면 되고 평행주차코스에서는 전진하였다가 후진하여 앞바퀴와 뒷바퀴가 동시에 확인선을 접촉해야 한다. 접촉이 확인됐으면 다이아몬드 지점에서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고 우회전하여 종료지점으로 가는데 출발과 반대로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고 정지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방향지시등이 꺼질 염려가 있으므로 종료지점까지 손으로 잡고 가서 끄라는 것.>
그제 출발을 실패하고 난 후부터 소가 잠을 자면서도 되새김질 하느라 입을 놀리듯 나는 기능시험장코스를 수도 없이 머릿속에서 돌고 또 돌았다. 그래도 시간이 다가오자 첫 번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물고 버스 승강장처럼 생긴 대기소에서 서성거리며 하나님을 찾았다.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출발은 순조로웠다. 횡단보도도, 오르막길도, 굴절도, 교차로 통과도, 곡선도, 방향전환도, 철길건널목통과도 순조로웠다. 감점 하나 생기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이제 시속20Km 구간.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그리고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고 커브를 돌려는 순간이었다.
돌발! 돌발! 하는 소리와 함께 조수석 앞에 있던 빨간불이 돌기 시작했다.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하나도 없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 그렇구나. 이게 바로 돌발이라는 것이로구나. 그래 2초 이내에 서고 비상등을 켜야 한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나는 곧바로 서지도 못하고 비상등도 한참만에야 켰다. 그러나 한번 잘못되었는가 싶어지자 나는 계속 허둥대고 말았다. 해제신호가 떨어져야 비상등을 끄고 출발해야 되건마는 가속페달을 밟게 되고 이게 아니다싶어 엉거주춤 브레이크를 밟고. 하여튼 엉망이 돼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
“천사(1004)번 주한주님 불합격. 1004(천사)번 주한주님 불합격입니다.”
오, 하나님 맙소사. 천사도 별 수 없었다.
그런데 돌발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모를까,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도 나는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시험에 앞서 여자 통제관도 특별히 강조한 사항이었다. 그녀는 수백, 수천 번도 더 반복했을 그 말을 녹음기가 되풀이하듯 한 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떨어질까 봐 진정으로 안타까운 듯 말했다.
“언제 어디서 돌발신호가 떨어질지 모릅니다. 초보자들은 여기에서 곧잘 당황하기 마련인데 빨리 달리는 것도 아니고 서행하는 상태에서 브레이크 밟는 거야 조금만 신경 쓰면 아주 간단한 거죠. 시간은 아주 충분합니다. 빨리 가려고 하지 마세요. 브레이크 밟고 비상등 켜고 해제신호가 떨어지면 비상등을 끄고 출발하면 됩니다. 단, 각 코스 구간에서는 절대로 돌발신호가 떨어지질 않습니다. 침착하게 대처하셔서 꼭 합격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눈이 빠지고 귀에 박히도록 두 번을 새겨들었다.
속리산에서 신혼여행을 즐기고 나서 아버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려고 전주에서 택시를 타고 시골로 가던 길이었다. 승용차가 많지 않았던 시절, 시골에 갈 때면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버스를 이용했지만 특별한 날이라고 택시를 이용한 것이다. 나이에 비해 빨리한 결혼도 아니지만 형보다 먼저 결혼을 한지라 처음 맞는 며느리를 부모님은 무척 흡족해 하였다. 아버진 당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손자를 데리고 다닐 때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시골에 갈 때마다 형과 나를 타박했는데.
“너그들이 넘덜보다 배우질 못했냐, 인물이 떨어지냐, 그렇다고 직장이 없냐. 도대체가 뭔 이유여. 고르는 거시여, 안 하는 거시여, 못 허는 거시여? 뼈 빠지게 갈쳐 논 게로 아직도 이 모냥여?”
두 누나들에게 손자 셋에 손녀 하나가 있건마는 그것들은 한 다리 건너라며 마냥 형과 나의 결혼을 재촉했으니 그 귀하디귀한 며느리가 그 얼마나 기다려지랴. 그렇게 귀한 존재였기에 버스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편안하게 모시려 택시를 탔던 것인데.
아스팔트로 된 전주 남원 간 국도를 벗어나고부터는 비포장 자갈길이었다. 우리가 타고 가는 택시 앞에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느릿느릿 가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그 먼지가 곤혹스럽고 뒤따라가기가 답답했던지 클랙슨을 눌러 빵빵거리며 버스를 앞지르려 몇 번을 시도했건만 버스는 능청스럽게도 도로 중앙을 차지하고 가면서 양보할 기미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이윽고 어느 마을 앞에 이르렀다. 내릴 손님이 있었던지 그때서야 버스는 우측 가장자리에 차를 세웠다. 택시기사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핸들을 약간 좌측으로 꺾어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막 버스 앞을 지나가려는 찰나, 한 노인이 버스 앞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돌발 상황이었다. 노인은 버스 앞을 가로질러 가는지라 걸음을 빨리 했을 것이고 택시기사는 버스 뒤꽁무니를 벗어나기 위해 속력을 내던 참인데, 퍽 하더니 철퍼덕, 앞 유리는 쏟아져 내리고 아내의 자지러지는 비명,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택시기사의 브레이크도 노인의 잰걸음도 작동되지 않고 멈추질 못했으니. 노인이 범퍼에 부딪쳐 붕 떠올라 앞 유리에 쳐 박혔다가 땅으로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의 충격과 전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눈 깜짝할 찰나, 천당에서 지옥으로. 택시기사는 쉽게 내리지 못하고 운전대를 손으로 내리치며 머리를 짓찧어 대는데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도 가슴이 너무 떨려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차에서 내려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바싹 웅크린 채 움직이질 않았다. 머리에 피가 흘러 먼지에 쌓인 길을 적시고 온몸이 부르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뒤늦게 차에서 내린 택시기사는 버스기사를 향해 완전히 울상이 되어 삿대질을 해댔다.
“야이새꺄! 내린 사람을 앞으로 지나가게 허면 어떡해?”
“내가 그걸 알았간디? 출발하려고 본께 앞으로 지나가는디 말릴 새가 어딨어?”
버스기사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던지 그대로 내빼버렸다.
“안 오고 싶덩그만, 올해만 넘기면 개인택시 몰 수 있는디.”
그는 한탄했다. 아예 소리 내어 울먹이며 꼼짝도 안하는 노인을 번쩍 안아 우리가 앉았던 뒷좌석에 싣고는 우리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차를 돌려서 오던 길로 내달렸다. 미안하다는 말도 어떻게 가라는 말도 없이. 바랄 수도 없는 우리였지만. 그 정신에 우리가 눈에 보일 리 없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을 것이므로. 아,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내가 보기에 노인은 벌써 죽은 성 싶었다. 설령 지금 당장 숨이 넘어가진 않았을지라도 살아나긴 힘들 것 같은 나이였다.
만약 우리가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탔더라면 노인에게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고, 택시기사도 꿈에 그리던 개인택시 면허를 받았을 텐데, 무슨 폼을 잡겠다고 택시를 탔단 말인가. 우리가 죄인이었다. 아니, 내가 죄인이었다. 어쩌면 버스기사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법적으로야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게 뒤에서 앞질러가자고 빵빵거렸는데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으니, 양심이 있다면 며칠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만약, 내가 돌발 상황을 늦게 감지했다손 치자. 그래도 그대로 멈추고, 비상등을 뒤늦게 켰을지언정 그 뒤 상황 대처만 제대로 했더라면 감점이 10점이라 합격하는데 지장이 없는 점수건만 나는 왜 해제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가속페달을 밟고 브레이크를 밟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됐을까. 천사 주한주 불합격. 만약이 무슨 소용이랴, 나는 또 떨어지고 말았는데. 하나님이 내려주신 천사도 수십 번의 되새김질도 십년 운전 경력만 믿고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덤벼든 내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누굴 탓하랴. 술 마시고 운전한 내가 죄인이고 그까짓 거, 하며 얕본 내 잘못인 걸.
기능시험장이 정말 쳐다보기도 싫었다. 나는 재빨리 빠져나와서 다시 인지를 사서 붙이고 시험일을 내일로 정하여 원서를 접수시켰다.
면허시험장 정문 앞에는 각 운전학원에서 찍어낸 명함을 나눠주는 아줌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한 장도 받지 않았다. 나 같은 운전경력자에겐 넋 빠진 짓이고 턱도 없는 짓거리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들이 주는 대로 모두 덥석덥석 받아 챙겼다. 한 아줌마에게 물었다.
“기능 얼마요?”
“시간 당 이만오천 원인데요, 타시게?”
그녀는 내 소매를 끌었다.
“아뇨, 됐습니다.”
돌발만 신경 쓰면 되지 않는가. 뭐 하러 돈을 들여? 오기도 생겼다. 양복저고리에 넣어 둔 핸드폰이 나를 놀렸다. 아내다.
“오늘은 붙으셨겠지?”
지금쯤 끝났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럼.”
나의 큰 대답이 내게도 공허하게 들렸다. 뻔뻔스럽게도 그렇게 밖에 대답할 수 없는 나. 십년 전, 운전경력이 있을 리 없는 첫 번째 면허시험에선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두 번 만에 합격했었다. 시험제도가 그때와는 판이해져서 첫 번째 떨어진 건 나름대로 변명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네, 라고 비웃던 아내에게 당차지 못하고 새가슴처럼 소심한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일은 또 회사에 무슨 핑계를 대고 빠져 나온다? 두 번이나 연거푸 떨어진 걸 안다면 그 무슨 망신인가. 그래도 김 과장의 말이 생각나 약간 위안이 됐다.
“부장님, 이십 년을 했어도 다섯 번이나 떨어진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이 그러는데 두세 번은 약과래요. 열 번을 떨어진 사람도 있다는데요?”
아내의 몰이해를 나는 이해할 수가 있다. 다섯 번, 열 번 떨어진 그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다. 내일은 붙을 것이라 어떻게 장담하랴. 자꾸 자신이 없어지는데. 그렇다고 안 딸 수도 없지 않은가. 지난 일 년 동안 얼마나 불편했던가. 간혹 차를 가지고 시내를 돌아다닐 때면 안전띠는 기본이고 교통법규를 아주 철저하게 지켜야만 했다. 경찰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면허증 좀 봅시다, 라는 소리만 듣지 않으면 되었으니까. 그래도 경찰 제복만 보면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가슴이 콩콩거리고 덜컹 내려앉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하긴 왜 잘못이 없어, 무면허로 운전하니 잘못이지. 그러니 이참에 꼭 따야만 한다. 명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지난 일 년 동안의 스트레스로 인해 내 수명은 아마도 그 기간만큼 짧아졌을 것이다.
시험장 대기실에만 서면 왜 이렇게 떨리는가. 이제 세 번째다. 그래 마음 편하게 먹자. 떨어지면 또 보면 되고, 또 떨어지면 또 보고, 그러다 언젠가는 되겠지. 맘을 느긋하게 먹자, 느긋하게. 뭘 걱정인가, 주한주. 그래도 떨린다. 나는 그 떨림을 없애기 위해 큰소리로 외치며 차에 올랐다.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은혜? 모든 코스를 무난하게 돌았다. 돌발 상황도 침착하게 넘어갔다. 이제 합격은 무난하다. 다시는 이렇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아니, 아예 술을 끊어버리자. 아내도 아이들도 그렇게 싫어하는 술을 끊어버리자, 이번 기회에.
나는 감점이 하나도 없다고 자신했다. 마지막 평행주차. 확인선에 접촉하지 않고 반 주차만 하고 가도 10점 감점만 된다. 나보다 먼저 시험을 본 앞 번호에서 그런 사람들을 나는 몇 번 봤다. 합격이 80점이니까, 100점 합격이나 80점 합격이나 합격은 똑같은 합격이다. 만점을 맞았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차를 앞으로 쭉 뺏다가 후진 기어를 넣고 신속하게 핸들을 우로 꺾어 후진하여 대충 주차시키는 척만 하고 우회전하여 우측 방향지시등을 켠 채 종료지점에 도착하여 핸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기어를 P에 맞췄다. 끝났다. 지긋지긋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설마 평행주차 말고 다른 데서 감점이 있으랴?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1009번 주한주님 불합격, 불합격입니다.”
나는 통제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소릴 꽥 질렀다.
“어째서 불합격입니까?”
여자 통제관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전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 대신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켰다.
“가서 보세요.”
그래, 보자. 1009. 주한주. 횡단보도 정지선 침범 -5. 과속 -5. 평행주차 -10. 종료 시 방향지시등 끄지 않음 -5. 총점75. 불합격.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적나라하게 나와 있는 내 기능시험의 모든 것. 자신만만, 합격을 자신하고 반 주차만 했었는데 그동안 컴퓨터는 내 모든 걸 관찰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가. 미처 모르고 지나친 건 어쩔 수 없다지만 항상 하는 대로 주차만 했어도 합격했을 것을. 처참한 기분이었다. 나 같은 바보가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오늘날까지 살아왔을까. 지겹다. 정말 지겨웠다.
나는 본관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어제 받은 명함들을 쭉 훑어봤다. 합격보장 1종, 2종 35만 원. 면허 취소자 20만 원. 차라리 이십만 원 주고 학원에서 면허를 딸까? 이렇게 가슴 졸이며 속 끓이느니 그게 낫지 않을까?
나는 영어회화만은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해외 근무만 해도 오 년을 했다. 나는 종종 서울에 볼일이 있을 때면 서울의 지리도 어둡거니와 교통체증에 질려 승용차보다는 전철을 이용한다. 종로3가에 사람을 만나러 가던 날 전철 안이 비교적 한가한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좌석에 앉아가고 서있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내 옆에는 백인 청년이 서서 다이제스트란 책을 보고 있었다. 영등포를 지날 때였던가. 그 백인 청년이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내 팔을 살짝 건드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찌끔 며찌?”
그런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내가 아는 영어에 그런 단어는 없었다.
“홧(뭐라고)?”
“찌끔 며찌니?”
나는 당황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홧 디드 유 세이(뭐라고 말한 거야)?”
그는 이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찌-끔-며-찌-냐?”
알아들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 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선 환장하겠네, 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이다. 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그의 말을 알아듣길 포기했다.
“아이 돈 노우(몰라 자식아,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투리를 여기서 쓰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하는 말을 지켜보고 있던 일곱 여덟 살이나 됐을까하는 계집아이가 큰소리로 말했다.
“열 시 삼십오 분이에요.”
그러면서 그 계집아이는 나를 보며 웃었다.
“지금 몇 시냐고 물었잖아요.”
황당한 일이었다. 그 백인 청년은 우리말로 물어왔는데 나는 으레 그가 영어로 말할 것이라 지레짐작을 하고 있었으니. 솔직히 그가 대화를 청했을 때 순간적으로 기쁘기까지 했었다.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유창한 영어로 말대답을 해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에. 그런데 이 무슨 창핀가, 우리말도 못 알아듣다니. 아,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나는 다음 역에서 황급히 내리고 말았다.
아니다. 악마의 주먹이라 불리는 카라스키야에게 네 번이나 쓰러져 다신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홍수환은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그 누구의 상상을 불허한 젖 먹던 힘을 발휘하여 상대를 몰아붙이는 놀라운 투혼 끝에 결정적 한방으로 사진오기의 신화를 일궈내지 않았던가. 못난 놈 같으니. 수모를 당할 만큼 당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이겨내지 못하고 약은 수에 현혹되려 하다니.
나는 다시 인지를 붙이고 또 내일로 시험 일자를 잡았다. 이제 종료 지점까지 완전히 한 바퀴를 다 돌아봤지 않은가. 그리고 어디 어디에서 감점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래 해보는 거다. 내가 나를 스스로 우습게 만들지도 말고 여기지도 말자. 많이 산 인생은 아니지만 내가 나에게 졌을 때 결과는 언제나 비참했었다. 생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내게 일어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맞서지 못하고 몸을 사리면 행운은 언제나 비켜가기 마련이었고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찾아왔었다. 비겁하게 살지 말자.
기도도, 천사도, 간절한 외침도 지금까지 소용이 없었지만 나는 또다시 기도하고 외쳤다. 네 번째. 역시 떨리는 건 말릴 재간이 없다. 그러나 떨어질 만큼 떨어진 탓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소가 뜯어먹은 것을 야금야금 되새김질 하듯 침착하게 돌았다. 사진오기가 되려면 한 번 더 떨어져야 한다. 그렇게 부담감도 덜었다. 그렇다고 굳이 떨어지려 노력할 필요는 당연히 없고. 드디어 종료 지점을 넘었다. 우측 방향지시등을 끄고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처럼 기어를 P에 놓고 핸드 브레이크를 잡아당겼다. 등엔 땀이 촉촉이 배어 있었다. 담담했다. 그때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아내를 처음 보았다. 아! 그때의 첫인상에서 머리끝이 다 솟구치고. 전율이라는 것, 환희라는 것, 그런 낱말의 뜻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으니. 그 순간 나는 직감으로 이 여자가 바로 이십팔 년 동안 찾아 헤매던 내 여자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미모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아름답고 착한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보였기에 그 첫 만남을 주신 신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그녀와 당연한 인연 만들기에 아주 집요했다. 그리고 끈질겼다. 결국 그녀는 내 여자, 아내가 되었다. 그 기쁨이라니, 그 감격이라니, 어떻게 형용할 수 있으랴.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걸 꼽으라면 단연코 아내와 만남이 아닐까. 꿀처럼 달았던 사랑과 내일의 벅찬 꿈. 참으로 행복했지만, 우리에겐 단연코 없으리라 믿었던 곡절도 많았고 시련도 따랐다.
지금 나는 그런 감격적인 기분을 맛보는 것이다.
나와 똑같은 입장에서 시험을 보던 이가 그랬다.
“이렇게 지겹게 땄으면서도 술 마시게 되면 또 운전대를 잡게 된다던데요?”
나는 웃었다, 코로.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쓸개가 빠진 놈들이죠.”
아무튼 큰소리는 치고 볼 일이다. 며칠 후에 본 도로주행은 정말 십 년 운전경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행위예술, 그 자체였다. 다시 갖게 된 운전면허증. 의미가 각별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기억하시겠어요? 홍애란이에요.”
“?”
선뜻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운전면허 취소당하시던 날이라고 말씀을 꼭 드려야 기억이 나실까요?”
미스 홍. 난 그 뒤로 그 술집에 한 번도 가지 않았거니와 그녀를 만난 적도 없기에 전화로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참으로 뜻밖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애란이었나? 그녀와 천국에 있던 시간을 잊은 건 결코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그녀와 다시 천국에 가고픈 맘이 꿀떡같다고 해야 옳다. 만만치 않은 술값이 문제였다. 반가웠다. 명함을 주었던가? 일 년이나 지났는데.
“잊다니요? 주제를 알고 살았을 뿐이오.”
“주제라니요? 주 부장님께서 너무 몸 사리신다?”
그녀의 목소리가 꼬이자 아름다운 몸도 같이 꼬이는 게 보였다.
“잘 있었어요?”
“너무 하셨어요. 저는 몸도 마음도 다 아낌없이 바쳤는데. 일편단심 주 부장님께서 이제나 오실까 저제나 오실까 목이 빠져 아예 기린이 되고 말았어요.”
솔직히 미안했다. 쓰면 뱉고 달면 삼켜서.
“사슴이 기린으로?”
술집 이름이 꽃사슴이었다.
“그래요. 저 독립했어요. 아주빌딩 지하 기린성이라고. 주 부장님이 처음이에요.”
남자로서 내가 처음인지 손님 중에 전화하는 게 처음인지 헷갈렸다. 어쨌든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다. 안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해몽이 너무 좋았다.
“축하해요. 이젠 어엿한 사장님이시네?”
“주 부장님은 제게 특별한 손님이 되실 거예요. 오실 거죠?”
“술을 좋아하니까. 행운을 빌어요.”
그녀가 듣기론 간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가지 않을 작정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으랴. 그녀는 기다릴 것이다. 한 사람의 손님으로.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날 남자로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젠 닳고 닳았다는 기분과 예전의 특별한 느낌 사이에서 그녀를 만난다면 나는 아마도 후자를 선택하며 그녀를 대하리라. 나의 에고로. 그게 자연스러우리.
내가 다시는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쉽게 얘길 하지만 감히 손에 장을 지질 것이라 장담까진 못하겠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반듯하게 맨 넥타이가 때론 저절로 풀리기도 하고 내 손으로 직접 느슨하게 풀어놓기도 하다가 다시 조여 매기를 반복하듯 어찌 인생길을 눈만 부라리고 갈 수 있으랴.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으리. 때론 구덩인 줄 알면서 스스로 빠지기도 하는데.
단, 내 나이 마흔일곱.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마도 적을 것이다. 삶의 회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늘어나는 물음표, 커져가는 응어리. 이런 것들로부터, 이런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나의 과거도 아름다울 수 있기에. 이제는 막을 내려야 한다.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제1막을. 회의도, 물음표도, 응어리도 내가 키우고 자초한 것이 아닌가. 칼로 무 자르듯 떨쳐낼 수는 없는 일. 같이 갈 수밖에. 아우르며. 친구로.
그랬을 때, 나머지 내 삶은, 제2막은, 내가 내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회의가 긍정이 되며 물음표가 감탄사로 바뀌는 역사가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그러면 맺힌 응어리도 술술 풀어지리라. 그래야만 내 인생의 막바지, 종료 지점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지.
하지만, 노력은 하겠지만, 삶이란 게 노력한 대로, 희망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안다. 거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는지도 모르지.
-끝-(102매)
첫댓글 글 재미있게 있었습니다. 이글을 읽으며 예전일이 생각나 혼자 웃어 봅니다.
친구와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글쎄 운전석 문을 꼭 닫지 않고 출발....
지켜보던 난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들을리 만무...결국 모퉁이를 돌며 문이 확~불합격...
그렇게 시험보기전 그 과정을 꿈속에서도 읊고 또 읊어 훤히 알고 있었거늘 실전에서는 떨리고 당황되는...
그 과정은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하겠죠?
정식으로 운전학원에서 배우지 않고 예전 운전학원에서 퇴사한 할아버지께 야메로 배웠었는데 2000년도 이야기네요.
합격하면 통닭이나 한마리 사 달라 하셨는데 그것도 못 사드리고...지금 살아 계신지도 궁금하네
만취운전하다 걸린 거, 운전면허 다시 딴 거, 등은 체험입니다만 다른 건 픽션입니다. 다시 딸 때 정말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