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군 일광면 칠암리 사람들은 요즘 바빠졌다. 정월 대보름(3월 5일)부터 6일간 치르는 풍어제 준비 때문이다. 풍어제 기간 음식준비를 위해 부녀회(45명)를 조별로 짜고 책임자와 사전 식단준비도 해야 하고, 마을 청년회와는 윷놀이 운영 의논을 해야 하며 당집 앞 굿당설치와 굿식구들의 숙소도 갖추어야 한다.
칠암의 지명은 마을 앞 바닷속 바위가 옻칠한 것처럼 검었다는 '옻바위'(漆巖)에서 유래하였다. 그 후 어느 시기 '거멍돌·뻘돌·군수돌·청수돌·넓돌·뽕곳돌·송곳돌' 등 7개의 검정바위를 지칭하는 한자어 '칠암(七岩)'으로 바뀌었다.
기장군 6개 어촌마을
풍어 기원 대규모 굿판
번갈아가며 별신굿 벌여
무녀와 재비 마을 누비고
흥겨운 가락 거대한 춤판
신·자연·인간 모두 화합
칠암리의 풍어제는 오래전부터 행해 오던 마을의 전형적인 풍어제였던 것을, 근래에 기장군청에서 이천 공수 두호 대변 학리 칠암 6개 마을에 매년 번갈아 예산 일부를 지원하게 되면서 5년 걸러 풍어제(별신굿)를 지내게 되었다. 풍어제란 동해안별신굿(중요무형문화재 제82-가호)의 또 다른 말로, 동해안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어촌마을에서 자신들의 수호신을 모시고, 마을의 평화와 안녕, 풍요(풍어)와 다산을 빌기 위해 무당들을 청해다가 벌이는 대규모 굿을 이른다.
칠암리의 별신굿은 1968년의 마을기록에 준거하여 무당을 청하는데, 굿에 따른 절차와 경비 등 굿과 관련한 모든 사항은 양중(남자 무당)과 계약한다. 별신굿 날짜가 다가오면 마을회의에서 생기복덕하고 집안에 우환이 없는 원로 중에서 제주(祭主)를 선정한다. 제주는 목욕재계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1개월가량의 금기를 지킨다. 마을회관 곁 할매제당 앞에 포장을 넓게 쳐서 굿당을 만들고 굿당 밖에는 만국기로 장식하며 용등과 반야용선 등을 높이 단다.
별신굿이 시작되는 3월 5일 목요일 아침 무당들은 신대와 16선단의 만장기를 거느리고 제주 변종호(76) 씨 집으로 간다. 무녀들은 무복(巫服)을 갖추어 입고, 재비(양중)들은 꽹과리와 징·장구를 울리면서 이동한다. 제주 집에서 부정을 물린 후, 마을공동샘(돌샘)과 할매제당·장승박이 등을 차례로 돈다. 신대에 신이 내리면 들고 굿당으로 돌아와 신대를 굿당 입구에다 묶어 놓는다. 본격적인 별신굿은 이렇게 마을 수호신을 신당에서 굿당으로 모셔온 후부터 시작하여 굿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계속된다.
칠암 별신굿에 참여하는 무녀와 양중은 28명 내외로 6일간 스물네 개의 굿거리를 구연한다. 무녀는 여자무당으로 세습무 집안의 딸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굿판으로 다니는 동안 자연스레 사설과 노래와 춤을 익히고, 더러는 부모에게서 특별히 전수받기도 한다. 재비는 세습무 집안의 남자들로서 동해안별신굿에서는 양중, 화랭이라 부르며 악기연주와 굿일을 도운다.
각거리의 마지막 부분에는 으레 사설구연을 끝낸 무녀가 창부타령이나 청춘가 등을 불러 좌중 흥을 돋우는데, 굿 구경 온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녀의 노래와 함께 춤을 춘다. 신명 넘치는 꽹과리와 장구 반주 속에서 굿당 안은 금방 거대한 춤판으로 변한다. 그리고 장난기와 건강한 웃음으로 넘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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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별신굿에서 용왕굿거리를 구연하는 무당 김동언 씨. |
동해안별신굿은 신성한 제의이자 성대한 마을공동의 축제(잔치)이기도 하다. 굿의 바탕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정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해(和解)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굿판에서는 신과 인간이 화합하고 인간과 인간이 화합한다. 결과적으로는 신과 자연과 인간이 모두 함께 화합하는 셈이다.
지난해의 어려움일랑 털어내고 을미년 마을의 안녕과 평화는 물론 풍어를 빌어 보는 신명나는 굿판이 될 터이다. 칠암리 박용주 이장 애쓰시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