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몇몇 사람들로부터 이 카페의 두 개의 글을 지목, 기자가 쓴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물론, 지목한 글들은 익명이다. 그들은 글의 내용과 수준 등을 토대로 그들만의 접근방식을 통해 추리해 낸 모양이다. 그리고 호기심과 일정부분, 의심의 눈초리를 담아 바라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이어 문제의 익명 글이 기자가 쓴 것이 아니라는 맹서를 확정짓는 부분에서는 씁쓸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기자보다는 여러 모로 월등한 사람들이다. 그저 입바른 소리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비단 이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문제의 글을 찬찬히 보면 자칫, 비판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글쓴이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어떤 폭로성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우려했고, 여러 것들을 종합해 기자를 의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자 부화가 치민다. 이들은 기자를 그 정도로 평가한 것이다.
문제의 글을 그 전날 한번 훓어 보고 의도와 관계없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다. 그리고 이후 다시 읽어보고 직업군만 분류해보았다.
글 분석, 혹은 글쓰기 요령 등 부족하지만 할 말이 많다. 따로 떼어 이야기 하고 싶을 정도다.
우선 은근히 치밀어 오른 부화는 이렇다.
왜 익명으로 비아냥한 것이 기자일 것이라 의심하느냐 하는 것이다.
왜 내가 이 카페에서 익명으로 모두를, 때로는 한 사람을 정조준해서 비판했다 생각했는지 참 화가 난다. 그들이 지켜 본 나는, 어둠 속에 숨어 나를 감추고 누군가를 맹비난하는 그저 그런 무책임한, 한 사람으로 치부한 것. 그 이상도 아니다.
내가 언제 교회를 향해, 갱신위를 향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뿜어내는 것 보았는가?
교만의 극치다. 아니, 분노의 배설 그 이상도 아니다.
이곳에서 쏟아내는 익명성 댓글로 인해 기자도 같은 ‘류’로 평가했다고 밖에 해석이 불가하다.
때가 되면 잠잠해 질 것이요, 약자의 하소연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이제는 도가 지나쳐 모든 사람들을 같이 직립보행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갱신위 발, 괴편지 사건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많은 이들이 제보를 해 주었다.
제보 중에는 어떤 한 사람을 범인으로 단정적으로 지목하고 몰았다.
이 의견은 기자와 정면 배치됐다.
기자보고 순진하다고까지 했다.
당시 기자의 추리는 이러했다.
▲글의 수준으로 보아 문교부 혜택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동원, ▲여러 사람이 정보를 취합, 최소한 한 사람이 정리 했을 것. 또, ▲강남, 서초, 일산 등지에서 동 시간대, 무차별적 우편발송으로 인해 혼자는 불가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또, ▲정확하게 많은 이들의 주소지 등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좀 더 높은 곳을 의심했다.
당시, 말하지 않은 부분은 이러하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종이의 질이 약간의 색이 가미된, 백모로 보았다. 이는 사무실 등에서 쓰는 일반 A4 용지의 하얀 재질과는 약간 다르다. 작은 인쇄소, 혹 옵셋이라고 하는 인쇄기에 소량의 인쇄물을 제작할 때 주로 쓰여지는 재질이다. 또, 앞뒤로 글이 수놓아져 있어, 총 두 장이며 4편으로 구성되었다.
아직까지 앞 뒤 프린트가 일반 프린트 기기로 가능한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복사기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했을 것에 대해서는 판단이 어렵다.
그리했다면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지만, 전혀 아니다 판단도 무리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놓칠 수 도 있는 한 가지 부분도 흘려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뒷 부분, 이른바 ‘백모지’, ‘앞뒤 인쇄’를 통해 인쇄소에서 했다고 단정하지 않느냐?
물론, 그리 했을 것에 많은 무게를 두지만 완전히 단정 할 수 없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기자가 도대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괴편지와 관련, 틀림없이 범인은 누구라고 단정 지은 분들이 있다.
자신들의 ‘촉’을 절대적으로 신임하여 범인을 강제 구인하고 몰았다.
그리고 이번 어떤 글의 작자가 기자일 것이라는 추정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위 괴편지와 이번 글들을 통해 범인을 추정하던 이들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는 사실을 아는 모든 이들이 잘 아는 바다.
반대로 기자가 추리하던 방식은 일정부분 정확했다.
이도 사실을 아는 이들이 증명한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냐?
무지함을 한번쯤은 크게 말하려 함이다.
글에 대한 분석도, 무엇을 말하려 함인지 내막도 모르면서 무조건 한 인간에 대한 분노와 어떤 멍에를 가지고 범인은 반드시 그다 하는 그 무모한 무지함과 교만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그리고 이 카페에서 댓글들로 비아냥하다 보니 모두가 그러할 것이라는 단정도 결국은 자화상 아닌가? 댓글의 비아냥으로 인해 퇴색되어 버린 순수한 외침과 건강한 싸움은 없어졌다.
그저 진영논리에 빠져, 우후죽순 몰리는 우매한 평신도들만 난무할 뿐이다.
기자가 언제, 누구를 정조준하여 혹은 지도부를 논하거나 할 때 익명으로 비아냥했는가, 답해보라.
기자는 실명을 원칙으로 한다. 내 글은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글로 인한 명예훼손, 혹은 정기간행물에 위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 수 많은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살아왔다. 같은 테두리 안에 놓고 판단했다 생각하니 지나 온 시간들이 허탈하다.
이 공간에서 도가 지나치게 비아냥하는 댓글들에 대해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동의하지 않는다.
할 말이 있으면 실명으로 한다. 이 카페던, 사랑넷을 보던 하라.
쓴소리를 하던, 주장을 하던, 아니면 읍소를 해도 마찬가지이고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야부지게 나갈 때도 모두 실명이다.
익명의 비아냥에 같은 부류로 판단하지 마라. 불쾌하다.
그리고 전문가도 아니면서 글에 대한 판단을 섣불리 하지 마라.
글 밥만 22해를 먹는 기자도 때로는 확정적으로 범인을 구인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도 교만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들부터 돌아보라.
물론,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첫댓글 글 내용과 동감함
여러 사람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도 공감하는 글을 소망합니다.
편면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자기 감정의 거울에 비춰 상한 감정에 공격의 독약을 발라 독화살을 마구 쏘아 댄다면 진정 거듭난 성도라고 할 수있을까요?
칼의 노래가 딱 ~
자기는 죽지 많고 너만 죽으라고 하니 ....
순신이 죽지 않고 살아 민중의 영웅이 됐다면
아 ! 역사의 끔찍함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