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조종석 아래쪽에서 보면 한마디로 괴이하게 생겼다. 마술거울을 통하여 길쭉하게 늘려놓은 문어대가리 같다고나 할까. 괴기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문어 말이다.
허름한 현실로 돌아온 심정은 어떤 것일까
프랑크푸르트에서 찾으려 한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난 그 여인을 잊지 못한다 -현재 시각 8시 25분. 푸쉬 백(push-back) 시작. 기수는 남쪽이다.
기장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토잉(toeing·견인) 트럭의 바퀴가 서서히 돌아간다. 어른 키만 한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은 가히 위압적이다. 쒜애-. 이어 굉음을 울리며 커다란 팬이 지상의 모든 것을 빨아삼킬 듯 돌아가기 시작한다. 기름 냄새가 물씬 풍겨오고 엔진 뒤로 흙먼지가 회오리치며 허공으로 흩어진다.
-출발 준비 완료. 모든 지상 장비 철수하라.
조종석 기장의 엄지손가락이 공중을 향해 번쩍 추켜올려진다. 작게 잡아도 백수십 톤이 넘는 항공기가 신기하리만치 가볍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정비사, 유도사 등 지상직원들은 항공기를 향해 손을 흔든다. 항공기 유리창으로도 나풀나풀 움직여지는 승객들의 하얀 손바닥이 비쳐진다. 잘 있으라는 소리다. 그들이 서로를 알 리 없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떠나고 떠나보내는 인연만으로도 그들 이별의 손짓은 뜨겁다. 이제 오래지 않아 저 항공기는 활주로를 사뿐히 이륙할 것이다. 이 땅에 삶의 무게를 훌훌 내려놓고 모험과 희망으로 가득 찬 하늘로 한 마리 새처럼 훨쩍 뛰어오를 것이다.
1976년 김해공항은 수영에서 이곳으로 이전해왔다. 김해공항은 그것이 내려앉은 공간의 그 평평한 넓이부터 경이로운 느낌을 준다. 좁은 국토에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이만치 탁 트인 평지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아득하다 해도 좋을 벌판의 끝으로 불모산 신어산 돗대산이 나즈막이 엎드려 있다. 자칫 목가적이라고 감탄을 할 만한 풍경이긴 한데, 항공사 직원의 입장에선 다르다. 날씨가 나쁘고 남풍이 부는 날에는 비행기가 활주로 북단을 돌아 내려야 하는데 이때 주변의 산들은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2002년 한 외국항공기의 돗대산 추락사건이 좋은 예이다. 구름 안개 혹은 비로 가득 찬 하늘을 시속 300km 이상의 속력으로 날며 하강하고 있는 항공기에서 지상의 산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암초나 다름없다. 그래서 기상조건이 나쁜 날, 이곳 지형에 익숙지 않은 외국항공기들은 아예 인천공항 등지로 회항을 하기 일쑤다. 최근 잠잠해지기는 했으나, 동남권 공항 입지 문제로 시끄러운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논리나 지역 간의 이해관계로 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이며 생명이 달려있는 엄정한 문제다.
공항청사 건물은 화사한 느낌을 준다. 아니 화사하다는 말은 적절치 못하다. 쿨하다. 간결하면서도 첨단 현대문명의 정교함과 날카로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국제선과 국내선 여객 청사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고가도로가 날아갈듯 뻗어있고 그 곁을 경전철 선로가 하늘로 가는 열차인양 스쳐간다. 온갖 색깔로 반짝이는 자동차들로 가득 찬 주차장 너머엔 비행접시를 띄워놓은 듯한 조형탑이 떠 있다. 철골과 유리창으로만 된 국제선 청사는 커다란 식물원 같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사파이어가, 온갖 종류의 보석들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높직한 천장이며 조명등, 갖가지 광고판에서 여행의 긴장감이 묻어난다. 떠난다. 당신도 떠나고 나도 떠난다, 그것들은 그렇게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공항은 그대로 현대판 노아의 방주다. 연간 1천700여 만 명의 승객들이 거쳐가는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 단위 사회가 필요한 모든 설비와 기능이 다 갖추어져 있다. 교통부 세관 법무부 등 정부의 온갖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는가 하면 은행도 병원도 핫도그 가게도 슈샤인 센터도 있다. 취항 항공사가 20개가 넘고 이곳을 이륙한 항공기가 일본 중국의 주요도시는 물론 동남아 미국 독일 러시아 등 각지로 뻗어나간다.
'마음의 설렘이 시작되는 곳'. 국제선 여객청사 외벽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문구다. 그렇다. 공항에선 모든 것이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김해공항이라고 해서 김해시 쪽으로 한참을 들어갔는데 공항은커녕 버스터미널이 나오고 시장이 나오고 해서 혼났다는 이야기.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간밤 잠을 못 잤다는 이야기. 소주팩 열 개를 챙겼는데 더 가져올 걸 그랬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폭죽처럼 피어오른다. 모든 것들이 즐거움과 경탄의 이유가 된다.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즐겁다. 이것이 공항을 한마디로 나타내는 말이지 싶다. 그 설렘과 환희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공항을 거쳐 나갔다.
이 공항에서 30년 세월을 보낸 내게 한 사람 잊히지 않는 이가 있다. 이야기는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6년 6월. 공항 대합실 텔레비전마다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초록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경기장이 화면 가득히 펼쳐지고 그 위엔 톰 쿠르즈, 디카프리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닮은 선수들이 뛰고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땀과 열기, 관중석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함성 속에서 스릴과 서스펜스로 점철된 한 편의 서사시가, 트로이 전쟁, 트라팔가 해전, 적벽대전 같이 격렬한, 그러나 잔인하지 않는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 때 한 젊은 여인이 눈에 띄었다. 긴 머리에 흰색 미니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기내 휴대용 검정색 가방을 끌고 탑승수속 카운터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태평양 한가운데 작은 섬과 금빛 햇살을 반짝이는 해변을 떠올리게 하였고 몸매는 신화와 일상을 가르는 마법의 선 같았다. 경쾌함, 정갈함, 고결함-그런 이미지들이 그녀의 몸짓에서 풀풀 풍겨져 나왔다. 미인이었다. 그녀는 내게 비행기표를 내밀었다.
"최종 목적지가 프랑크푸르트네요. 유학 가시는 건가요?"
"항공권에서 목적지를 확인한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비상한 외모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답변 또한 예상을 뛰어 넘었다.
"아저씨가 무슨 상관예요? 표만 팔면 됐지."
"목적지를 정확히 알아야 수속을 하거든요."
"프랑크푸르트 가요. 포돌스키라고 아세요? 그 사람 만나러 가요."
탑승수속을 마치고, 탑승권과 여권을 거머쥔 그녀는 몸을 휙 돌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폭탄이었다. 그녀는 곧장 출국수속장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패션쇼의 런웨이를 거니는 듯한 그녀의 모습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3층 인터넷 센터에서 스타벅스 앞에서 자주 눈에 띄었다.
그녀가 탄 비행기가 에머럴드색 남쪽 하늘로 사라진 지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이른 시각, 내 사무실에는 긴급한 전문이 날아왔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항로의 경유지 방콕공항에서였다.
'성명 이영란(가명). 27세. 여자. 방콕 공항에 도착한 후 여권과 비행기표를 찢고 고함을 지르는 등 이상 증세를 보여 인근 정신병원에 긴급 후송됨. 지금 입원 가료 중이나 언어 소통상의 문제로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는 사항임. 한국의 보호자들에게 연락하여 환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 긴급 회신바람.'
이영란. 나는 그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그리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이름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름다운 폭탄, 그녀였다.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프랑크푸르트로 포돌스키를 만나러 간다던 묘령의 여인. 한데 병원이라니. 그것도 의사소통이 치료의 절대적인 수단인 정신병원이라니.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국제 미아'라는 단어였다.
나는 그녀의 집을 찾아 나섰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 구불구불 이어진 담벼락과 처마를 맞대고 서 있는 허름한 집들. 금방이라도 삭아 내릴 듯한 지붕과 찌그러진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문짝들. 내가 들고 간 주소에는 보석을 조합해 만든 것 같은 그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헤맨 지 한 시간 여 만에 그녀의 아버지를 만날 수가 있었다. 작고 깡마른 몸매, 선해 보이기 그지없는 눈빛, 평생 누구에게 피해를 준 일이 없을 것 같은 그가 한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아가 정신이 좀 성칠 못해요. 각중에 무슨 바람이 났는지, 텔레비전 월드컵 보면서 가심에 한이 맺힌 것맹쿠로 해외여행 해외여행 캐싸더니만… 아이고 참, 낭팰세."
나는 그에게 당장 태국으로 건너갈 것을 권했다. 한데 문제는 그 집안에는 여권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해외여행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세상에 그녀는 살고 있었다. 그녀가 혼자 여권을 마련하고 비행기표를 샀다는 사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부랴부랴 여권을 마련했다. 보통 일주일은 걸리는 기간을 사정 이야기를 들은 공무원들의 배려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경비를 빚을 내 마련한 그는 방콕으로 황망히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영란 씨는 아버지와 함께 돌아왔다.
자크 아탈리라는 프랑스 경제학자가 쓴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태초의 인류는 여행자였다. 인류의 여러 종들 가운데 살아남은 종들은 유랑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 종들이었다. 그들은 이동하면서 할 수 있는 사냥과 채취 기술을 진보시켰으며,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화들과 제식들을 존속시켰다. 인간은 여행을 통해 태어난다. 인간의 몸은 정신과 마찬가지로 노마디즘에 의해 형성된다.'
백번 옳은 말이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신을 찾아간다는 노마디즘. 그 노마디즘의 특질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물이 공항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공항엔 떠나는 이의 설렘만 있는 게 아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한도 슬픔도 서려 있다. 가난하고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던 한 여인의 세계를 향한 동경이,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하여 떠나고자 하는 열망이 무참히 스러지던 곳.
그래서 나는 김해공항을 잊지 못한다. 그 여인을 잊지 못한다. 여행을 포기하고 아미동 자신의 허름한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녀가 찾고자했던 꿈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김 헌 일 소설가
◇약력=1986년 부산문화방송 신인문학상,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2005년 부산소설문학상 수상. 현재 부산소설가협회 회장. 중편소설집 '회색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