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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파트너
김 광 욱
1
홍나리 형사.
그 여자는 용감하고 유능한 형사였다. 여자 같지 않은 여자였다. 그 여자의 몸 어디에서도 여자의 뉘앙스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말은 여자답지 않다는 말과는 다르다는 걸 이해해 주기 바란다. 얼굴이 못 생겼다는 뜻도 아니다. 그 여자의 표정, 언어, 하는 행동이 남자를 쏙 빼닮아서 남자인 나도 그 여자를 이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 여자는 내가 만난 여자 가운데 가장 멋없고 쌀쌀한 여자였다. 그리고 내가 만난 여자 가운데 그 여자만큼 내 기억에 인상이 짙게 남은 여자도 없었다. 우리는 늘 함께 움직이는 로보트였다. 그 여자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으로 가고 그 여자가 밥 먹으면 나도 먹고 그 여자가 잠자면 나도 잤다. 우리를 조종하는 사람은 과장이었다.
나는 아직 신참이었다. 그 여자는 고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늦게야 경찰에 입문했고 그 여자는 스물 세 살 때부터 경찰관이 됐으니 십 년 베테랑 형사이다. 과장이 나를 그 여자와 묶어 준 것은 나밖에 그 여자와 동행할 사람이 없어서였다. 모든 남자 형사들이 그 여자를 싫어했다. 깐깐하고 세심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밝히고 따지는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예를 들어 그 여자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그 반찬과 밥이 어디에서 나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를 주인에게 일일이 캐묻고, 만약에 외국산이 하나라도 섞여 있으면 밥값을 내지 않고 나와 버리며, 그 주인이 거짓말을 했다 싶으면 다른 손님들 보는 앞에서 그 밥상을 엎어 버린다. 그 여자는 국산품 애호가였다.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철저한 완벽주의자였다. 그 여자는 실수나 과오는 용서해도 거짓말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 여자와 함께 걸으면 몸에서 찬바람이 돋고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불안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싸우고 소동을 피우기 때문에 그 여자와 함께 있기가 거북할 때가 많다. 그 여자의 직업이 형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날마다 경찰에 연행되고 취조 받느라고 바빴을 게다. 그 여자의 깐깐한 성격을 묘사하느라고 좀 과장된 표현을 썼는데, 그 여자는 내가 과장한 것보다 더 심한 편이었다.
하찮은 것에도 시비를 잘 걸고 일단 시비가 붙으면 지려고 하지 않으며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싹싹 빌 때까지 끝장을 보고야 만다. 동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 여자의 성미를 건들어서 이익볼 게 하나도 없다.
나는 홍 형사의 비위를 건들지 않으려고 그 여자가 하는 짓, 하는 행동이 모두 옳다고 칭찬해 줘야 했다. 그리고 사실 그 여자의 생각에 잘못은 없었다. 홍 형사는 부당한 것, 부패한 것, 악한 것들을 보면 참지 않는 형사였다. 그러니까 그 여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사회가 그 여자를 남자 같은 여자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차가운 돌 같은 그 여자를 좋아하는 형사가 없어서 홍나리는 항상 내 차지였다. 아니면 내가 그 여자의 차지라고 해도 좋다. 여자 형사들 속에서도 그 여자는 외톨이였다. 구내식당에서 밥 먹을 때도 혼자 외떨어진 곳에 앉아서 먹고 옆에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홍나리의 주위는 늘 썰렁한 느낌을 주었다. 썰렁하다는 건 외롭다는 뜻이다. 그녀 자신이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었다.
사실은 남자 형사들이 홍나리를 싫어한다기보다 그녀가 그 누구와도 어울리기를 싫어했다. 고독을 즐기는 형사였다. 고독을 좋아하니까 어떤 사건을 맡으면 거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자를 잡는 건 고독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 누구도 도와 주지 않고 어둠과 공기만이 형사의 친구가 될 때 그는 외톨이처럼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명을 건 고독과의 전쟁이었다. 흉악한 범인을 잡는다는 건.
2
그 여자의 고집은 과장도 터치하지 못했다. 일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을 던져서 범인을 잡는 그 여자를 미워할 상관은 없었다. 과장이 위험한 사건, 어려운 사건을 홍나리에게 떠맡기는 이유는 그녀만이 일을 잘 처리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임무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과장 말에 고분고분 순종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큰 사건이 터지면 홍나리는 몸을 사리지 않고 자청해서 담당했다. 그녀가 현재 맡아서 수사 중인 사건이 살인 사건만도 두 개였다.
경찰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 사건이 종결되기도 전에 다른 사건을 이중, 삼중으로 담당하는 게 보통이었다. 모두 살인, 강간, 특수 절도 같은 강력사건들이었다. 범인을 혼자 잡을 수 없으니까 두세 명씩 파트너가 필요한데, 홍나리 형사는 나와 함께 일해야 손발이 잘 맞는다고 했다. 과장도 그걸 인정했다.
홍나리는 진수일과 붙어 있어야 제대로 일을 한다 라고 은연중에 동료들 사이에 소문이 나 있었다. 그것은 질투가 아니고 현실이었다. 어쩌다 파트너가 바뀌어 다른 남자 형사와 붙여 주면 홍나리의 심술이 작용했다. 그 남자 형사와 싸우느라고 시간을 허송했다. 그럴 바에 처음부터 진수일과 묶어 주는 게 속편했다. 홍나리가 진수일을 원하는 이유는 그녀 말에 하인처럼 복종하기 때문이었다. 하인처럼 복종하는 게 나에겐 속편했다.
나는 홍나리의 성격에 길들여져서 그 여자와 일할 때 신이 났다. 사건은 신명이 나야 처리할 의욕이 생긴다. 살인 사건이 재미 있어서가 아니라 내 몸을 바쳐 일할 의욕이 생기는 사건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들면 일을 해도 소변을 참을 때처럼 좌불안석이었다.
용기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두 개의 용기가 하나로 합쳐지면 용광로처럼 뜨거워질 수가 있다. 나는 홍나리의 가슴 속에 숨겨진 용광로를 나만이 체득하고 있다. 생명을 아끼지 않고 범인과 용감히 대적하는 걸 볼 때. 나는 그 여자에게서 애국심과 겨레 사랑과 인간애를 배운다. 외국산 식품을 사절하고 국산품을 끔찍히 아끼는 게 바로 그 예이다. 괴짜 성격에 모두가 싫어하는 이기주의자이고 독선주의자인 홍나리를 가장 인간다운 형사라고 믿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개나리, 밥 먹었으면 우리 근무처로 가 볼까?”
과장의 지시를 받고 구내식당에서 곰탕으로 배를 채우고 나올 때 홍나리 형사가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그녀는 식후에 화장실에 가는 버릇이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 꼭 대변을 본다. 그녀의 옷에선 화장실 냄새가 약간 풍겼다. 나는 화장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홍나리가 나오는 걸 기다리다가 그녀를 보자 슬며시 대변이 마려웠다. 내게도 그 버릇이 전이됐나 보다.
대변이 심하게 마렵지는 않아서 참아 보기로 했다. 그녀와 나는 얼마 전에 사람을 죽인 조직 폭력배 ‘신흥파’의 아지트를 찾고 있었다. 그 동안의 수사 경과를 보고하려고 과장실에 들러 긴 훈계를 들었다. 그 조직 폭력배를 소탕하지 않으면 과장이 죽어도 눈을 못 감으니까 경찰의 명예를 걸고 꼭 왕초(두목과 간부)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이었다.
3
과장은 조직 폭력배를 가장 미워했다. 과장은 형사 시절에 조직 폭력배의 손에 사랑하는 동료의 생명을 잃은 사람이었다. 과장은 홍나리와 나에게, 두목을 붙잡으면 일계급 특진시켜 준다고 약속했다. 특진은 차후 일이고 과장의 원수를 갚는 일이 우리의 임무였다. 그러나 쥐새끼처럼 은신처를 옮겨 다니는 폭력배들을 붙잡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홍나리와 나는 주차장에 있는 그녀의 승용차로 들어가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의논했다. 승용차 안이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그녀도 나도 담배 골초였다. 폭력배들이 잘 다닌다는 유흥가의 주점들을 샅샅이 뒤지는 수밖에 없었다. 방, 창고, 지하실, 보일러실, 옥상까지 뒤져야 한다. 쥐새끼들을 잡으려면.
아지트라고 명시된 장소가 따로 없으니까 왕초를 한 놈이라도 붙잡아야 그 근거지를 알 수 있었다. 근거지란 그들의 영업 장소, 유흥점을 말한다. 조직 폭력배들은 폭력을 밑천으로 술 팔고 성 매매를 하여 치부하는 위장 기업가들이었다. 그들의 상대는 약자였다. 홍나리는 강도 절도보다도 그런 치들을 더 미워했다. 조직폭력의 배후엔 반드시 그들을 비호하는 정부의 끄나풀이 있었다. 그 관리들과 싸우는 것도 조폭과의 전쟁만큼이나 힘겨운 싸움이었다.
“네 짐작엔 어디에 아지트가 있을 것 같니?”
“강남 유흥가를 뒤집시다.”
“그거야 나도 알지만, 강남이 웬만히 넓은 바닥이어야지. 여기도 술집 저기도 색시집, 가는 곳마다 먹고 춤추는 굿이니, 그 새끼들이 하루 이틀에 찾아지겠어?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유흥가도 많아. 그곳도 우리 목표야. 불법 매음굴.”
“이 서울 안에 범인들이 있을 테니까 하느님을 믿고 찾아 봅시다.”
“기도할 줄 알아?”
“학교 다닐 때 교회에 좀 다녀서 주기도문 정도는 알고 있어요. 선배님은 기도할 줄 몰라요?”
“나는 교회가 뭔지도 몰라. 정말 이럴 땐 기도하는 법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어. 우릴 도와 줄 사람이 하느님밖에 더 있니?”
“하느님 빽을 믿고 뛰어 봅시다.”
“그러자.”
“차에 기름은 넣었어요?”
“빌어먹을 놈의 차가 기름만 처먹고 굼벵이야 굼벵이! 에이, 돈 있으면 차 좀 바꿨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 차보다는 신삥이요. 내 차는 기름만 처먹고 제멋대로 서 버린다니까요. 남 부끄럽게. 정비소에 맡겨 놨는데 수리비가 많아서 못 찾고 있어요. 월급이 나와야 차를 찾겠는데……”
내가 말하는 사이에 홍나리는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거리로 차를 달리고 있었다. 내 별명은 개나리였다. 원래는 꺽다리였는데 그녀가 고쳐서 그렇게 불러 주었다. 체구가 삐쩍 마르고 개나리처럼 가냘프기 때문에 붙인 별명일 게다.
나는 그 여자에게서 개별적으로 사격술과 무술을 지도 받았다. 특별히 도장에 가서 무술을 배운 게 아니고 시간 나면 틈틈이 아무 데서나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합기도 4단이었다. 2, 3미터 높이에 있는 벽돌을 발로 차서 깨뜨릴 만큼 발차기의 명수였다. 사격은 사격장으로 끌고 가서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안경을 끼고 있으면서도 나보다 시력이 좋아서 백발백중이었다. 사격술엔 시력보다도 정신집중이 필요하단 걸 그녀에게서 배웠다. 총 끝에 시선을 모으고 무아지경에서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나는 형사가 되어 홍나리에게서 무아지경의 사격법을 터득했다. 적을 미워해서는 안 되며 맞춰서 죽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홍나리는 한 번도 범인을 죽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권총에 맞은 범인은 대부분 경상이었다. 정확히 겨냥하고 급소 아닌 부분을 쏘아 맞추기 때문이었다.
홍나리가 무술의 달인이라고 해도 검도 실력은 나를 따를 수 없었다. 합기도와 사격술을 가르쳐 준 보답으로 나는 그녀에게 검도를 가르쳐 줬는데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어찌나 힘이 센지 힘에 있어서는 남자인 나도 두 손을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상부상조하면서 사이 좋게 지냈다.
4
가끔 여자의 몸이 그리울 때는 홍나리의 체취에서 여성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으나 그 느낌은 일 분도 가지 않았다. 나는 ‘느낌’을 지우려고 노력했고 그 여자도 그런 냄새를 풍기려고 하지 않았다. 근무할 때는 일심동체가 되어야 하지만 그 시간에서 벗어나면 그녀는 그녀의 생활이 있고 나는 내 취향이 있었다.
여러분께서 대략 짐작하셨겠지만 그녀는 독신이었다. 남자한테 채이고 나서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정도밖에 내가 그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녀는 자기 생활 얘기를 남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나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정도밖에 그녀에게 알려 준 게 없었다. 서로 묻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기도할 줄 아냐고 물은 것도 처음이었다. 그녀는 내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번 사건에는 자신이 없어 보였다. 범인들의 조직이 너무 크고 관의 입김이 컸다. 벌써부터 그 사건을 하찮은 아이들 장난으로 덮어 버리고 넘어가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과장에게 범인들을 검거하지 마라는 압력이 내려왔다고 하며 과장은 화를 삭이지 못했다.
그런 범인들은 검거해도 금방 풀려날 테니 애써서 잡을 필요가 없다. 그 사건이 매스컴에 크게 보도됐는데도 특별 수사반을 설치하지 않고 두 형사에게 맡겨 축소 수사한 걸 보면 당국의 수사 의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다가 매스컴에서 축소 수사했다고 비아냥대면 형사를 한두 명 늘려 수사하는 시늉만 내다가 또 매스컴이 잠잠해지면 인력타령을 하며 미제사건으로 묻힐 것이다.
과장의 수사 의지는 단호했다. 꼭 두목을 체포하여 피해자의 한을 풀어 주고 과장의 소원도 풀어 드려야겠다. 나는 항상 그랬듯이, 크리스천도 아니면서 하느님에 대한 기도를 담배 연기로 표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직 폭력배들 때문에 울고, 죽습니다. 우리 두 사람 힘은 작지만 악과 싸우려는 정의감에 불타고 있습니다. 그 살인범들을 꼭 붙잡게 해 주십시오. 죽음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노심초사하는 홍나리 형사가 가엾지 않습니까? 하느님, 홍나리 형사는 정말 충성스런 형사입니다. 그 옆에 붙어 있는 저는 액세서리죠. 끔찍한 살인 사건 하나가 조폭들의 연례 행사 같은 헤프닝으로 끝나지 않게 도와 주십시오. 조폭들은 지금 낄낄거리며 다음 범행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그걸 막아야 합니다. 하느님 꼭 도와 주십시오. 도와 주셔야 합니다.
날카로운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내 핸드폰이 호주머니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전화를 받았다. 과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건을 제쳐 두고 살인 사건 현장으로 가 보라는 지시였다. 또 살인이 났다고 한다. 까닭 모를 분노가 끓어올랐다. 과장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미안하네. 옆에 홍나리 있지? 홍나리와 자네밖에 갈 사람이 없어서 그래. 형사가 부족하다는 걸 자네도 알잖은가? 조폭 사건은 뒤로 미뤄 두게. 살인범을 빨리 잡아야 돼! 멀리 도망치기 전에……”
그러면서 과장은 우리들을 믿는다고 했다. 과장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끔찍한 사건이 터지면 홍나리와 나를 불렀다. 좋게 말하면 과장이 홍나리 형사와 나의 실력을 믿는다는 의미이고, 나쁘게 말하면 우리가 가장 만만하기 때문이었다. 까다롭고 궂은 사건은 홍나리와 내 차지. 얻어먹을 것 없고 목숨이 위태한 사건들. 홍나리 형사와 나는 불평하지 않고 사건 현장으로 차를 돌렸다.
5
카페 안에 들어가니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실내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그 위에 여자가 누워 있었다. 사건 현장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우리가 앰뷸런스보다 먼저 도착했다. 마담은 칼에 찔려 처참하게 살해되어 있었다. 병원으로 옮기나 마나일 것 같았다. 마담 임애숙은 우리가 쫓고 있는 또 다른 범인, 소매치기 두목 박태진의 첩이었다.
임애숙이 경찰에 소매치기단의 범행을 밀고했을 때 밀고자를 보호해 줘야 한다고 과장에게 건의한 사람이 홍나리 형사였다. 과장은 상부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묵살되었다. 경찰이 밀고자를 보호하지 않아서 일어난 살인이었다. 홍나리와 나는 그렇게 추정했다.
카페는 크지 않고 후미진 곳에 있어서 손님도 많지 않았다. 실내 장식에 예술적으로 신경 쓴 흔적이 있었다. 애숙은 고상한 취미를 가진 정상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직접 경찰서에 가서 남편의 범행을 고발했다. 마담은 태진의 첩이 된 걸 후회했다.
애숙은 남편의 범행을 알고 그와 연을 끊었다고 했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 여자였다. 죽기엔 너무 이른 스물 여덟 살. 홍 형사와 나는 마담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범인의 잔인성에 치를 떨었다. 죽여도 너무 처참하게 죽였다.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이 칼에 찔려 있었다.
한쪽에서 떨고 있는 종업원 아가씨에게 사건 경위를 물어 보았다.
“입구 장식을 바꿀까 의논하고 있는데 두 남자가 들어와서 마담 언니를 끌고 나가려고 했어요. 언니가 반항하니까 중절모자 쓴 키 큰 남자가 칼로 마구 찔렀어요. 뚱뚱한 남자는 구경하며 웃고 있었어요. 흑흑……”
중절모자 쓴 키 큰 사내가 두목 박태진이었다. 땅딸막한 뚱보는 부두목 문어입이었다. 우리가 찾는 소매치기단의 주범들이다. 박태진은 애숙이 그들의 범행을 밀고한 데 대한 보복으로 그녀를 살해했다. 그것도 백주에 잔인한 방법으로.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달려오고 구경꾼들이 웅성거렸다. 순경들에게 현장을 보존해 달라고 부탁하고 홍나리의 승용차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우리가 쫓는 범인은 박태진과 문어입이다. 박태진에 대해서는 조사해 둔 게 있었다. 홍나리와 나는 그 곳으로 달렸다. 얼마 전까지 우리가 그를 잡기 위해 잠복 근무했던 곳이었다.
낮이라 나이트클럽의 문은 잠겨 있었다. 나이트클럽은 오후 여섯 시가 돼야 문을 연다. 야간에만 영업을 하고 사장도 직원도 밤이 돼야 만날 수 있었다. 홍나리와 나는 나이트클럽 가까운 길가에 승용차를 세워 놓고 여섯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점심은 자장면을 사 먹고 저녁밥은 일이 끝나고 나서 먹기로 했다. 우리가 만날 사람은 나이트클럽의 사장 노영례 씨이다. 그 여자가 박태진의 본처였다.
박태진에게는 많은 여자가 있다고 했다. 우리가 검거한 부하들의 말에 따르면 박태진에게는 첩들이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부하들도 몰래 비밀리에 만나기 때문에 첩들의 거처를 알 수가 없었고 본처의 집을 알아내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부하들은 출소한 후에 보복이 두려워서 두목의 사생활에 대해서 함구했다. 한 부하를 달래서 알아낸 곳이 이 나이트클럽이었다. 영동 유흥가에 있는 이 나이트클럽은 등기부상 박태진과 노영례의 공동 소유로 되어 있었다. 그가 노영례의 법률상 남편이란 증거였다. 시민의 지갑을 소매치기한 돈으로 일군 재산이었다.
홍나리와 나는 노영례와 직접 대면하진 않았지만 먼발치서 보니 양귀비 뺨치는 미모에 비서들을 대동하고 다니며 귀부인 행세를 했다. 사실 고관들을 상대하니 귀부인인 셈이었다. 오늘 만나서 그 여자의 속을 까벌려 봐야겠다. 다섯 시가 되니 직원들이 출근하고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6
사장의 까만 승용차가 나이트클럽 앞에서 멎고 노영례와 두 비서가 내렸다. 그들이 나이트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홍나리 형사와 나도 뒤따라갔다. 입구에서 부하들이 우리를 제지했다. 형사 신분증을 보여 줘도 고자세로 나왔다. 형사들이 화투의 껍데기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직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업 시간이 돼야 손님 출입이 허용됩니다.”
“왜 그러죠?”
“정리와 준비 시간이니까요.”
“우리가 만나려는 건 사장이오. 사장에게 긴히 물어 볼 말이 있어서 왔소. 켕기는 것 없으면 이렇게 막을 필요가 없지 않소?”
내가 따지자 문지기가 부장이란 사람을 모셔 오더니 점잖게 안 된다고 했다. 부장은 한 술 더 떠서 경찰관도 영업에는 터치할 수 없다고 큰소리쳤다. 우리가 단속을 나온 줄 아는 모양이었다. 홍나리는 내가 직원들과 다투는 걸 멀리서 구경만 했다. 그녀는 여간해서는 화내지 않고 화가 나도 무표정했다. 부하들은 교육을 단단히 받은 듯 경찰을 철저히 배격했다.
“우리 업소를 수색하려면 영장을 보여 주슈.”
레슬링 선수같이 생긴 부장이 압수수색 영장을 보여 달라고 오만방정을 떨었다. 사장을 만나러 왔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홍나리 형사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부장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부장이 꽥꽥거렸다. 홍나리에게 주먹을 날리려고 했지만 두 팔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다른 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가 예의를 지키면 너도 예의를 지켜야지. 이 무식한 놈아!”
한 직원이 홍나리에게 덤벼들었다. 홍나리는 긴 발로 직원의 가슴을 밀어 버렸다. 홍나리와 나는 버둥거리는 부장을 벽으로 확 밀어뜨렸다. 쿵! 소리와 함께 부장은 큰댓자로 넘어졌다. 화장실에 갔던 여사장이 나오다가 쿵 소리에 놀라 밖을 내다보았다. 여사장은 우리를 보고 모래 씹는 표정을 지었다.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우리 애들이 귀한 분들을 몰라보고 무례하게 굴어 죄송합니다.”
여사장은 홍나리와 나를 정중히 자기 사무실로 안내했다. 손수 차를 끓여 내오고 자기 업소의 준법 정신을 자랑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직원들에게 개점 폐점 시간을 엄수하라고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그랬다고 사과했다. 홍나리와 나는 여사장이 주는 차를 마시지 않고 수숫대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앉아서 여사장의 아양을 받아 줄 시간도 없었다. 여사장은 속으로 우리 같은 피라미를 같잖게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왜 당신을 찾아왔는지 알 테지요?”
홍나리 형사가 먼저 운을 뗐다. 홍나리는 아무리 지체가 높은 사람도 용의자나 그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존칭을 사용하지 않고 당신이라고 불렀다. 당신은 홍나리에게 최대의 존대어였다.
“왜 저를 찾아오셨는지 모르겠는데요.”
“당신의 남편이란 사람, 경찰의 수배를 받는 몸이란 걸 아시죠?”
“예, 잘 압니다.”
“순순히 남편이 있는 곳을 말씀해 주세요. 서로 시간도 아끼고 사이 좋게 헤어집시다.”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진 지 오래 됐어요.”
“거짓말.”
“아니, 정말이예요.”
노영례는 표정 하나 흩트리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담배 연기를 날리며 문 앞에 서 있는 비서에게 나가라고 눈짓했다. 비서는 굽실거리고 밖으로 나갔다. 노영례는 형사들에게 자신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심어 주려고 애썼다. 그 순간 나는 이 노영례란 인간을 어떤 부류로 해석할지 혼란스러워졌다. 그 여자는 미인이고 악의가 없어 보인다. 아직 속을 까 뒤집어 보진 않았지만 박태진처럼 흉악한 심장을 가진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