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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서울 아시안게임 금·은메달(한국신기록 수립, 체육훈장 백마장 수훈), 1987 북경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동메달을 획득하며 조국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이후 육군 부사관학교 화기학 교관 및 기록물 관리관(육군 준위 만기 전역, 보국훈장 광복장 수훈)을 역임하며 명예로운 군인의 길을 완수했습니다.
🌲 첫 번째 발자국: 유명산 산골 소년, 거친 대지를 디디다
지금은 사계절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가 되었지만, 제가 자라던 시절의 경기도 가평 유명산 자락은 버스 한 대 들어오지 않는 하늘 아래 첫 동네였습니다. 장날이라도 한번 가려면 30리 산길을 묵묵히 걸어 나와야 했던 깊고 깊은 산골 ‘깡촌’이었지요.
흙먼지 날리는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온몸으로 체득한 자연의 끈기와 우직함은 훗날 총성 가득한 사격장과 삭풍이 몰아치는 군 생활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제 삶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 두 번째 발자국: 흔들림 없는 시선, 과녁을 꿰뚫은 신화
군에 입대한 후 출전한 참모총장기 전국 군인 사격대회는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대대와 연대, 사단과 군단 대표를 거치며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아 1979년 마침내 치열한 선발전을 뚫고 태릉상무훈련소에 교육생으로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상무의 사격선수로 총구를 잡기 시작해 1984년 첫 한국신기록을 시작으로 3번의 한국신기록을 갱신하였는데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생애 최초의 개인 최고 기록으로 금·은메달을 획득하였고 1987년 북경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세계 11개국 20여 차례 국제대회를 누비며 획득한 두 박스 분량의 메달과 훈장은 조국을 향한 긍지와 청춘의 땀방울 그 자체였습니다.
이후 30대 초반에 준위로 진급하여 육군 부사관학교 화기학 교관으로서 K-2 소총, K-3 기관총, K-201 유탄발사기 교육 및 영관 장교 사격술 지도를 담당하였습니다. 수많은 후배 장교와 부사관을 양성하면서도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사격장과 실탄을 관리·지휘하며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던 기억은 제 군 생활 34년의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 1989년 칠레 산티아고 제44회 세계군인사격선수권대회 | 2017년 평창 제3회 World Mulimpia - 피지 국가대표팀과 함께 |
✝️ 세 번째 발자국: 고요한 심장, 기도로 채운 내면의 평정
찰나의 순간에 승패가 갈리는 사격은 고도의 심리전입니다. 처음 큰 무대에 섰을 때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온몸이 떨려 쓰디쓴 실패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흔들리는 저를 붙잡아준 것은 군 생활 중 접하게 된 독실한 신앙이었습니다. 기도 속에서 마주한 내면의 평온은 격발의 순간 손끝의 떨림을 멈추게 해 주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가슴에 품고, 저는 언제나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개척적인 생각을 갖자’는 다짐으로 과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 네 번째 발자국: 청량리 3천원짜리 기타, 다시 피어난 선율
사춘기 시절, 아버지께 용돈을 받아 청량리 악기 골목에서 당시 가장 비쌌던 3,000원짜리(보통 1,500원) 기타를 품에 안게 되고 기타 교본으로 독학하면서 혼자 코드를 짚어가며 밤을 지새우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비록 긴 군 생활과 혹독한 선수 생활로 인해 긴 세월 기타를 내려놓아야 했지만, 가슴 속에 묻어둔 음악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전역 후 철도건널목 지킴이로 봉사하던 어느 날, 길을 건너다니며 인사를 나누던 현재 부지휘자와의 운명 같은 만남을 통해 동대문아버지합창단 창단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25년 7회 합창단 정기연주회에서 쎄시봉 연곡 출연을 계기로 멈추었던 손가락이 다시 기타 줄을 튕기고, 굳게 닫혔던 목청이 열리며 제 삶의 무대는 사격장에서 하모니의 공간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더 큰 행운은 지금의 음악 리더님을 만나 파파스텔라 중창단 창단에 함께한 것입니다. 훌륭한 리더와 다재다능한 동료들을 만나 함께 호흡하고 즐기면서 오랫동안 손 놓았던 기타를 본격적으로 잡고 음악 연주를 하는 즐거움도 추가되었습니다.
🎼 다섯 번째 발자국: 파파스텔라, 튀지 않고 스며드는 하모니의 지혜
중창과 합창의 본질은 사격과 닮아 있으면서도 또 다릅니다. 사격이 나 자신과의 싸움 끝에 10점 만점의 한 점을 뚫는 고독한 집중이라면, 중창은 나의 소리를 한 옥타브 낮추어 옆 사람의 소리에 녹아드는 [비움의 미학]입니다.
내가 잘났다고 목소리를 높여 앞으로 튀어나가면 하모니는 깨지고 맙니다. 나이와 경력을 내세우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직책과 리더의 이끎을 존중하며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겸손함이 있을 때 비로소 음악도, 조직도 오래도록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파파스텔라가 이토록 끈끈하고 유쾌하게 이어져 올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서로를 향해 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여 준 단원들의 성숙함 덕분입니다.
🕺 여섯번째 발자국: 멈추지 않는 열정, 오늘이 가장 젊은 날
건널목에서 시민들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주는 사회 봉사의 생활, 남양주시 사격연맹을 이끄는 베테랑의 책임감, 나의 하루는 쉴 틈 없이 건강한 에너지로 채워져 있습니다. 일과 후와 주말이면 500여평 텃밭을 일구며 흙의 정직함을 배우고, 손주들의 재롱 속에서 따뜻한 행복을 누립니다.
동료 단원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을 최선으로 채워갑시다. 튀지 않고 서로를 품어주며, 멋진 리더와 함꼐 오래도록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모니를 만들어 갑시다. 파파스텔라 파이팅!
🖋️ [편집후기] 과녁을 응시하던 매서운 눈빛 속, 가장 따뜻한 품을 지닌 거인을 만나다
편집자가 합창단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건네던 남홍우선생님은 단정한 외모에 꼭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매 속에서도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합창 연습 때 가끔 백구두를 신고 주름 빳빳한 댄서복을 입고 등장하시는 이 멋쟁이는 넘치는 카리스마 속에 부드러운 심성과 예술적 감성을 함께 지니고 계십니다. 파파스텔라 솔로 발표곡으로 기타 연주와 함께 ‘찔레꽃’을 열창하는 모습에서 향토적인 안온한 정서와 순수한 마음의 음악적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텃밭 재배해서 이제 막 딴 것들을 단원들에게 뜨끈뜨근하게 먹이겠다고 새벽부터 옥수수를 쪄셔 가져오시는 따뜻하고 부지런한 마음의 소유자이십니다.
남홍우님의 이력서를 읽으면서 삶의 궤적을 마주하는 시간은 한편의 웅장한 대서사시를 읽는 듯한 전율의 연속이었습니다.
'10점 만점의 과녁을 꿰뚫기 위해 심장 박동조차 숨죽여야 했던 국가대표 사격선수 시절의 치열함, 34년 군 복무 동안 후배들을 길러내며 단 한건의 사고도 허락하지 않았던 교관으로서의 카리스마, 모병관 문서심사관 기록물관리관(영구문서 이관 시 전군 최우수표창)으로서의 철저함, 그 엄격하고 강단 있는 삶의 이면에는 시골 소년의 소박한 감성과, 신앙 안에서 빚어낸 깊은 겸손과 비움의 철학이 오롯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내가 잘났다고 튀어나오지 말고, 한 옥타브씩 소리를 낮추어 서로에게 묻어가야 오래간다"
선생님의 말씀은 단순한 음악적 조언을 넘어, 거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어른이 우리에게 건네는 인생의 가장 지혜로운 나침반입니다.
🎶 남홍우형님은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우리 중창팀의 최고참 맏형입니다.
토요일 휴일 아침, 오늘도 멀리 남양주 진접에서부터 달려오시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십니다.
언제나 성실과 긍정의 힘으로 총구 대신 기타를 잡고, 과녁 대신 동료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그의 넉넉한 품이 있기에
우리 '파파스텔라'의 하늘은 언제나 흔들림 없이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첫댓글
내용 중 일부(국가대표 감독 부분)가 잘못된 정보가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참고하세요. 구글에서 검색한 결과도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