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츨라프와 토마스의 경우
우리 땅을 최초로 밟은 선교사는 독일 목사 카를 귀츨라프(1803~1851)다. 그는 1826년에 네덜란드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인도네시아 자와섬으로 갔다. 그후 방콕에 머물며 성경을 태국어로 번역하였다. 그후 중국 대륙에서 선교 활동 할때는 중국식 복장과 변발을 하였다. 그는 1832년 2월에 동인도회사 소속 로드 애머스트(Lord Amherst)호에 탑승하였다. 이 배는 광저우(广州) 이북의 무역 확장을 위한다는 구실뿐만 아니라 중국 연안 항구를 톺으며 지형을 측량, 제도하고 정치와 경제와 군사 정보를 수집하여 영국으로 보내는 또 다른 목적을 지녔다. 귀츨라프는 이 배의 통역관이었다. 이 배는 7월 22일에 우리 당 서해안 고대도에 기항하였다. 귀츨라프는 조선 정부에 통상 서한을 보내고 한 달여를 머물렀다. 이때 주기도문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감자 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정부로부터 교역이 거절되자 복음 접촉도 더 이상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일본 입국도 시도하였으나 쇄국정책을 펴던 에도 막부의 거절로 실현하지 못했다. 일본 표류민의 도움을 받아 요한복음과 요한 1~3서를 일본어로 번역하였다. 귀츨라프는 중국 최초의 선교사 모리슨(1782~1834)이 번역한 중국어 성경(1832)을 개정하였다. 1844년에는 홍콩에서 중국 전도자를 양성하여 내륙으로 파송하는 중국전도회를 조직하였다. 이는 허드슨 테일러의 내지선교회(1865)의 모태가 되었다. 그러나 아편전쟁(1839~1842) 때에는 영국군이 점령한 지역의 민정관으로 일했고,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1842) 체결에 참여하였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악마의 배도 탈 수 있다는 강렬한 전도 열정의 선교사다.
다음으로 이 땅을 찾은 선교사는 1866년 8월 영국인 로버트 제메인 토마스(1840~1866)다. 중국 산동성 지푸(烟台) 해관에서 통역관으로 있던 토마스는 피난 온 조선의 천주교 신자를 통해 조선 선교의지가 싹텄다. 결국 1866년에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갔다. 이때 지푸를 중심으로 사역하던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알렉산더 윌리엄슨이 한문 성경과 선교 물자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대동강을 통해 평양에 이른 제너럴셔먼호는 평양 주민과의 마찰로 배는 불타고 토마스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모두 죽었다. 배에 실렸던 중국어 성경도 불타고 말았다.
귀츨라프와 토마스의 선교시도가 성공하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그들의 선교방법을 무조건 긍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우월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를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제국주의의 배에 통역과 길 안내자로 승선하였다. 특히 귀츨라프가 탄 배는 동인도회사에 속하였는데 동인도회사는 아시아에 식민지를 만들고 중국에서 아편전쟁을 일으키는 등 악명이 높았다. 귀츨라프와 토마스의 선교 동기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복음 전도 의도는 순수했고, 열정은 뜨거웠다. 그렇나 그들의 선교 접근 방법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 확장과정에 앞장선 꼴이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서세동점(西勢東漸) 과정에서 제시된 복음은 강자의 복음일 뿐이다. 그런 복음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억울함과 슬픔을 위로하는 복음이 될 수 없다. 굴욕감을 주는 복음은 그 마음을 정복할 수 없다. 나사렛 예수의 복음은 힘에 의지하지 않는다.
조선에 대한 선교사들의 관심과 열정은 고마운 일이다. 특히 강대국의 엘리트 젊은이가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길이 있음에도 당시 세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백성을 선교의 주제로 삼고 헌신했다는 사실은 지극히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선교사는 시대를 뛰어넘는 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시대정신에 함몰되어 복음을 전한다면 복음의 효력은 반감되며 심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말기 이 땅을 호시탐탐하던 서구열강의 힘을 선교의 도구로 이용하려던 시도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귀츨라프와 토마스의 선교시도를 무력화시킨 것은 당시 조선 정부나 평양감사 박규수가 아니라 하나님은 아니실까 생각해 본다. 선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기 위함이 아닐까? ‘무지하고 폐쇄된 나라를 개방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의무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선교사들의 노력을 하나님이 물거품으로 만드셨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힘에 의존하는 선교를 지향하는 이들은 지금도 여전하다. 돈의 힘과 정치력으로 이루어지는 선교는 성공하더라도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힘에 밀려 항구를 개방하고, 상인과 군인과 더불어 복음을 수용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인고의 긴 시간을 겪었다. 강자의 길잡이로 이 땅을 찾았던 선교사들의 시도를 무력화시킨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 땅의 백성을 위한 복음전도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것은 만주를 통한 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