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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비전 인카운터 2 ( 죄 ) in 5777
고 목사님
인카운터의 이야기의 접근이 좀 다르다는 것을 느낄지 모르겠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벧엘의 인카운터를 많이 하셨다. 사닥다리는 많이 경험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닥다리를 또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나안에 가서 살려면, 부지런히 나가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앞으로 달려가도 시간이 매우 모자라다. 저는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이 급박성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동기가 유발될 것이다. 비전이 여러분을 끌어준다. Vision propels us. 영어에는 없는 말이지만, 비전이 들어간 사람은, 비전이 나를 끌어준다. 그래서 이 비전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 징징거리고, 앉아서, 이것은 이러고, 저것은 저렇고 할 시간이 없다. 이래서 변명을 만들고 있다면, 이것 자체가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에게, 그래서 나보고 어떡하라고? 한 마디 한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데, 어떡하라고? So What? 이다. 친절한 것을 별로 기대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 시간에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 말씀을 어떻게 읽으시는가? 지금 사도바울 선생님이 디모데전서를 쓰던 때가 어떤 때인지 상상해보시기 바란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사역을 하셨고, 이분의 삶의 궤적에서는 상당한 고난도 받으셨고, 상당한 사역의 열매도 맺을 시점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그 다음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다라고 말한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시는가? 저는 이것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복음주의적 관점을 가진 분들은, 이 말씀을 해석하기가 정말 힘들다. 하나님이 우리를 굉장히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그 사랑을 다 알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하나님의 사랑을 다 아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주된 요인이 있다면, 그게 죄라는 것이다. 죄는 우리를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 죄는 우리를 눈 멀게 한다. 죄는 우리를 아무것도 못하게 묶어버린다. 눈이 멀어있고, 성장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죄 때문이다. 병드는 이유가 죄이다. 아파 죽겠는데, 너 죄 있다고 하면, 굉장히 버겁다.
우리 중에도 조금 아픈 분들이 있다. 너 회개했어? 쿠웨이트에서는 이런 험악한 꼴을 본다. 아파 죽겠는데 말이다. 그래서 아프다 뭐다 하지 않고, 애드빌 먹고 조용히 해결하려고 한다. 그거 먹고 다니다보면 언제 아팠다싶게 진짜 낫는다. 저도 한 번씩 아프다. 아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픈 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 시대에는 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안 한다.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사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전도할 때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얼른 넘어간다. 죄인인거 알어? 걱정하지마, 죄 용서하셨다고 하면서, 죄에 대한 것들을 각성해주기 보다는, 구원의 기쁨, 은혜만 말하려고 한다. 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시간이 지극히 적다는 것이다. 죄가 뭔지 모른다.
그래서 복음주의적인 입장이라고 계속 말한다. 내가 죄를 엄청나게 지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가 다 사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죄 모두 용서받았다. 할렐루야. 너는 예수님만 영접하면, 죄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다. 이제 영접하겠니? 라고 말하면, 정말 복음이다. 그러면 내가 예수만 믿으면 모든 죄가 해결되? 그럼.. 토라를 아시는 분들은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어떤 분들에게 이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분이 돌아가셨는데, 장례 주도하시는 분들이 이분은 하나님 나라에 가셨다고 선포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아한 것이다. 이분이 죽기 전까지 죄된 삶, 동성애자로 사셨는데, 이 목사님은 천국을 선포하신 것이다. 혼동이 온다. 죄를 지어도 천국에 간다는등의 생각을 한다. 아무 문제가 없구나란 생각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죽으신 분이 13살 때 전도를 듣고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이분의 죄가 다 사해진 것을 제가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게 맞는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제가 그랬기 때문에, 복음주의적인 입장에서는 죄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길게 하고 파는 것보다,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서, 사람들에게 사탕을 주려는 경향이 실제로 있다. 저도 그랬다. 그렇다고 죄의 문제가 끝나는가? 물론 아니다. 조금 아는 분이 내가 용서받은 사실이 분명해서, 구원받은 사실로 살고 있는데, 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죄인인가 아닌가하는 엄청난 혼돈 가운데 빠지는 것이다
죄에 대한 인지를 제대로 못하게되면, 혼돈 가운데 빠져버리고 만다. 회개 한 번 해서 예수 영접했으면 끝난다.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 영접했으면 됐어. 너는 의인이야. 정말?
사도바울이 지금 현재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죄인이 사역하는 것이고, 죄인이 선교사이다. 죄인이 하나님 일 할 수 있는가? 엄청난 혼돈 가운데 빠질 수 밖에 없다.
죄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말하기 전에 괴수라는 말을 먼저 보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한다. 괴수라는 말은 프로토스라는 헬라어인데, 프로토스는 히브리어로 하면 로쉬, 머리라는 뜻이다. 죄인 중에 내가 머리다, 원조다, 장자다. 장자라는 것이다. 머리라는 것이다. 최초, 원조이다. 그것을 현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완숙한 경지에 도달한 이 위대한 사도가 인지하고 있는 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먼저라고 한다. 내가 먼저. 이게 프로토스, 괴수라는 말과 똑같은 것이다. 하나는 먼저라고, 하나는 괴수라고 번역이 되어있다. 그분이 태초에, 처음부터,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다. 후에 주를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셨다
구원이란 것은,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오래참음 : 마크로디미아 = 벧후3:15
- 이게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지금 죄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 마크로디미아가 구원이 된 것이다.
벧후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내가 죄가 없어서 구원이 아니라, 그분이 오래 참아주셨기에 내가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죄가 없어지고, 의인이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어느수준의 죄 가운데 있으나, 그분이 참아주시는 것이다. 그분이 오래 참으시기에, 내가 멸망하지 않고 그분의 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죄에 대한 인지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죄는 있고 없고, 용서받고 안 받고, 우리는 죄를 용서받는 시스템 안에 있다. 그런데, 그 죄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죄를 용서받을 수가 없다.
지금 죄인이신가? 어느만큼? 만약에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해졌고, 죄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하면서 화를 내고 나간 분이 있다. 저 고 목사는 말이야. 그런 신학이 있다. 한 번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죄라는 것은 너에게 있지도 않아. 그래서 저희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들으면 머리아프고 이상하다는 것이다. 저를 좋아하던 사람이 죄, 의 이야기하고, 부족함을 이야기하고, 비전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의의 길을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피곤하다는 것이다
제가 가면 성도가 반은 준다. 멀쩡히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1. 죄에 대한 인지
요일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여러분이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 하나님의 말씀은 없는 것이다. 사실 멤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죄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서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없애시고 용서하셨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있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바로 사도 요한이다.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내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나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과거에 대한 이야기고, 엄청난 기만이 숨겨져있다. 이 죄의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죄를 죄로 인지하지 못하게 마취시켜버린다. 죄를 죄로 인지하면 아프다. 통증이 축복이다라는 말이 있다. 왜냐면, 통증이 없으면 좋을 것 같으나, 통증을 못 느끼는 사람을 문둥병자라고 한다.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고, 통증을 통증으로 느끼
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 그러면 어떡하느냐?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자백이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이것을 좀 실습할 것이다. 나의 죄를 자백하려면, 무엇이 죄인지를 Recognize, 인지해야 한다. 죄는 용서받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얼마나 인지했는가이다. 사도바울은 죄를 인지하는 것이다. 사도임에도, 그 많은 사역을 하고, 그 많은 열매를 맺었어도 죄를 인지하는 것이다. 죄를 인지하는 차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죄를 용서받는 시스템 안에 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적용하는 시스템 안에 살고 있다. 그런데 죄는 단회적으로, 주님의 보혈이 나를 용서했기에, 나는 죄를 짓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내가 어느 순간 시시때때로 짓는 죄를 인지할 때마다, 매일..!
우리는 매일 죄를 짓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로 이 말씀이 있는 것이다.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분이 신실하시고, 의로우시면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그때마다 깨끗하게 해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죄는 죄의 용서함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인지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죄에 대해서 해방되는 것은, 내 삶에 있는 죄에 대해서 인지하는 만큼 의로워지는 것이다. 인카운터 하면서 죄에 대한 것을 써보라고 하면, 어떤 분은 한두 줄 쓰고 만다. 어떤 분은 또 다른 종이 없냐고 하면서 막 쓰신다.
결혼한지 32주년이 되서 넘어갔니만 선교사가 되어서, 사역을 열심히 해서 티격태격할 때가 있었다. 제가 남자니까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고 하면서 가서 사과한다. 그러면, 쉽게 상상하면, 그래 여보, 우리가 허물이 있지 하면서 넘어갈 줄 알았는데, 등을 돌린다. 뭘 잘못하신 건데요? 뭐에 대해서 말하는 건데요? 제가 이야기하면,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다시 가라고 빠꾸맞는다. 저 사모님께서 원하시는 그 죄, 그 허물을 찾을 때까지 저는 빠꾸맞아야 한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자고 된다. 그런데 그냥 넘어가서 용서하면, 몇일 지나면 그 죄를 또 저지른다.
제가 소리를 질렀다. 그게 Offend 되었다면, 제가 소리지른 것을 모른다. 제가 습관적으로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는 다른 것, 다른 허물도 많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죄란 용서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인지하고, 그 문제를 자백하고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그만큼 죄에 대해서 자유로워진다. 이것을 뭉뚱거리거나, 그냥 죄인이 아니고, 보혈로 의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죄에 대해서 자유롭게 될 수 없고, 똑같은 일을 30-40년,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또 먹으면서 사는 것이다.
2, 토라에서의 죄의 언급
1) חָטאָה 하타 : 죄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의 본질을 한 번 생각해보자. ט 테트 : 선, 지혜
= 뱀 ח 헤트 : 생명
= 울타리 하타, 죄는 뱀(ט)을 울타리(ח)로 싸고 있다. 내가 뱀을 울타리로 싸고 있으면, 그게 죄라는 것이다. 그런데 뱀을 울타리로 싼 것을 알면, 죄를 죄로 인지하면, 그것이 바로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선한 지혜(ט)이다.
결국 하타가 생명을 주는지, 죄로 멸망하는지는, 죄를 인지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사실 죄가 생명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바로 내가 그 죄를 인지할 때 말이다.
초자연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제가 죄를 인지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이 언어로, 이것을 알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진리를 아느냐? 진리가 뭐에요? 했을 때 그 목소리가 가르쳐준 것이 죄를 죄라고 인지하게 한 것이다
네가 죄인이야..! 처음에 그 소리를 들을 때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내가 그래도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 의사인데, 나 같이만 일하라고 해봐. 네가 죄인이야..! 그런 충격적인 계시를 받을 때, 아주 감정적인 충격을 받아서 거의 쓰러질 뻔 했다. 이게 89년도 2월에 일어난 일이다.
죄를 죄로 인지할 때, 그때부터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죄를 인지할 때, 하나님께서 생명을 더하시는 지혜, 선하심이 시작되서, Divine Life, 신성의 삶을 살게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을 것이다. 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재앙이다. 이것이 과녁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죄가 허물이라는 말이 있다.
2) פֶשָע 페샤 : 허물, 패역
창31: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פֶשָע 페샤,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관점(ע)이 파괴되버린다. 관점이 파괴되는 것이 열려버린다(פ).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도, 허물, 이 패역의 죄를 하게되면, 하나님을 보는 관점, 모든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부서져버린다. 그런데 자기가 허물이 있다고, 패역하다는 것을 깨닫게되면, 이제는 다시 형상에 대한 관점, 비전(ע)이 열린다. 허물이 우리로 하여금 비전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나에게 어떤 허물이 있는지 꺠달을 수 있다면, 형상에 대한 비전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를 이룰 때, 형상을 이루는 비전에 대한 시각이 열리게 되어있다. 이게 안되서 비전이 안 열리는 것이다. 내가 무엇이 패역인지, 허물인지 모르는 것이다. 제가 그랬다. 전도만 다 해놓으면 되는 줄 알았다. 제가 복음 전도자였다. 알만 까놓는 것이다.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이다. 이게 패역이다.
가끔 목사님하고 이야기한 것이, 복음주의자, 이건 아니다. 페샤, 허물이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허물이 굉장히 많다. 오랫동안 믿어서 내가 이런 선교도, 이런 사역에도, 문서 사역에도, 찬양 사역에도 참여했는데, 정작 자기 안에 허물이 있다고는 상상조차 못한다. 저는 제가 허물이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했다.
가서 전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는데, 예수님을 전하면 눈물이 흘리면서 영접하고, 그 이야기하면 온 교회가 우는데 말이다. 그게 다 허물이라는 말이다. 다 선한 일인가? 허물이다. 그것을 허물로 깨달을 때, 형상에 대한 비전이 열린다. 이 감이 오시는가? 이게 허물이다.
시36:1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 악인의 죄라고 번역되어있다. 허물, Transgress, 페샤이다.
저는 지금 안 믿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메세지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은 상관이 없다. 하나님을 믿는데, 열심히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과 상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가라는 이야기이다. 라아 그돌라이다
강*혜 자매가 열심히 믿으려고 했고, 청년부에서 인정받은 사람이다. 열심히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허물이 많고, 죄인인지 깨달을 때 비전이 열리는 것이다. 내가 잘해왔다고 생각한 이것이 얼마나 허물이 많고, 패역한 사람인가 깨달을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눈은 밝게 열릴 것이다. 이 죄에 대한 인지 능력이 있기 떄문이다.
그 이외에 범죄가 있다
3) אָשֶם 아쉠 : 범죄, Gulit
= 유죄를 인정하는 것
죄책감을 넘어서, 죄를 지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창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 죄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다.
4) עָוֹן 아본 : 과오, 죄악, 불의
창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베냐민의 주머니에서 잔이 발견되었을 떄 유다가 한 말이다. 이런 단어들이 죄의 면면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1,2 두 가지가 가장 핵심이다.
숨겨진 죄, 과오가 들어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죄가 그냥 사람들 사이가 아니라, 대상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모든 죄는 하나님과 관계가 있고, 모든 범죄는 하나님께 짓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사람에게 짓는 것이라면, 그렇게 심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 죄에 대한 인지 능력이 없을 때, 우리는 변화가 없다.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욕이다. 저주이다. 우리는 똑같은 것이 저주받은 것이다. 작년의 모습과 올해의 모습이 똑같으면, 나는 저주받은 자이다. 많이 변하셨는가? 잊어버리면 안된다. 작년하고 똑같으면 절대 안된다. 그래서 형제, 자매들을 안 크면 달달 볶아서 크게 한다. 볶으면 큰다. 저 형제 많이 컸네? 그 이야기는 무척 당했다는 이야기다.
죄에 대한 기준을 한 번 생각해보자. 죄를 짓는 Demention이 있다.
3. 죄를 짓는 Demention
1) 도덕 차원
우리는 도덕을 기준으로 이런 것들을 말할 수 있다. 허물이 있고, 거짓말, 간음, 살인, 도둑질, 이런 것들이 도덕의 차원에서의 죄이다. 이것이 죄의 인지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들이 도덕을 많이 이야기한다. 도덕적으로만 옳아도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도덕은 양심이랑 관계가 있는데, 이것이 나라, 문화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서구 세계에서는 살인은 말도 못하는 아주 나쁜 죄이다. 살인하면 안된다. 그런데 무슬림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죽일 수 있지. 어떻게 이슬람에서 개종할 수 있어? 그러면 죽여, 그게 명예야.
도덕 규범의 한계가, 양심의 죄의 한계가 바로 여기이다. 다르다.
한국에서 사시니까, 한국, 미국,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멘탈이지만, 이슬람 사회는 완전히 다르다. 자동차만 운전해도 오른쪽으로 운전, 왼쪽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있다. 한국에서 운전하는 사람이 오른쪽으로 운전하면 금방 수갑차서 들어간다
그래서 죄를 인지하는 차원이 도덕 차원만 가지고는 안된다. 모든 문화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다 하나님과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2) 말씀 차원
= 토라, 십계명
안식일에 대한 규정, 예수님도 안식일에 대한 규정을 인지해서 그것을 어기면 죄다로 아셨다
마12: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우리가 이야기하는 영의 토라의 차원은 아직 아니다.
저도 하나님의 말씀, 십계명, 이것을 중심으로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범하면 그것이 다 죄다. 라고 죄를 규정하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꼼짝 못하고 인정한다. 심지어 무슬림들도 토라, 십계명을 다 인정한다. 그러면 토라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떡하는가? 역시 여기도 한계가 있다
3) 아들의 말씀, 아들과의 관계
죄를 인지하는 그 다음 차원은,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 아들과의 관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행한다고 굳게 믿고, 도덕적으로도 바르게 토라의 규정된 모든 것들을 잘 지키고 있는 동안에, 자신은 절대 죄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아실 것이다. 자기들은 완전히 구별되어있다. 그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십계명과 토라의 말씀을 다 지키면서, 나는 제대로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 사람에게, 거기에 유죄판결을 내리신 것이다. 아들과의 관계, 아들의 말씀. 그러면서 그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15: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이게 다 아들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아들의 말씀을 기준으로 죄를 인지하는 것이다. 아들의 말씀을 믿고, 아들의 말씀을 듣고, 아들의 말씀을 행하는 것, 이것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여전히 죄가 있다는 것이다. 동의하시는가? 핑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를 믿는 것을 가지고 의의 길을 간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아들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아들에 대한 순종을 기준으로 죄를 규정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4) 성령 기준
그래놓고 아들께서 성령과의 관계를 말씀하신다. 이것은 또 헷갈린다
막3: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다. 굉장히 위험한 말이다. 성령 주의자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막 들이댄다. 성령을 모독한다는 것을 가지고, 소위 은사주의자들은 내가 성령에 취해서 예언했는데, 이 목사님이 안 받으면, 이 목사님을 정죄한다. 성령주의자, 은사주의자들이 말이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이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무시하고 있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당신이 목사면 뭐해, 선교사면 뭐해, 하면서 정죄하는 것이다. 그 정죄하는 순간, 그분들이 하나님이 세운 리더의 꼭대기에 올라앉는 것이다. 그분들을 정죄하지 않고, 기분이 좋을 때는 칭찬한다. 그래서 목사님이 늘 잘 속는다
그 권사님이 이런 말 했다고 하면서, 이런 목사님 같은 분이 없다고 한다. 예언하는 권사님이, 성도들 앞에서 칭찬한다. 이분들은 진정한 말씀을 전하시고, 잘 들으셔야 한다고 한다. 이런 권사님 나타나면, 그 권사님 조심하라고 이야기한다. 칭찬할 때가 있는 반면, 자기 말 안 들으면, 반대의 때가 오는 것이다. 몇달 뒤에 떠났다. 사실 이 성령님의 사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들의 이야기이다.
은사주의자들의 무기가 이것이다. 그래서 비전이 없으면, 어떤 현상적인 것, 자기들이 추구하는 어떤 것, 이런 것도 자기 중심이다. 내가 은사 받아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 받아서, 내가 당신에게 나눠주는데 안 받아? 말씀을 모르시는가? 성령을 모독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어떤 분은 과감하게 와서 이야기하지만, 어떤 분은 다른데 가서 이야기한다
요16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는 아들을 믿지 않는 것, 아들이 어떤 분이라고 제대로 계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들은 누가 계시하는가? 성령님은 반드시 아들을 계시하신다. 잘 아실 것이다. 영의 토라를 아시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토라, 말씀은 아들을 계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성령님이 오셔서 아들을 믿지 아니하고, 아들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아들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신다
죄를 인지하는 차원에 이와같이 4차원이 있기 때문에, 누가 죄를 안 지었다고 말을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 어느 차원에선가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죄를 지었느냐가 아니라, 죄를 범하는 자가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4. 누가 죄를 지었는가?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이런 차원에서, 이런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죄에 대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많이 가지시고, 죄에 대한 예민함을 새롭게 깨달으시기 바란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예민함을 깨닫고, 죄에 대한 계시를 확실히 알 수만 있다면, 그 죄를 날마다 자백하고 버리는 그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장한다. 반드시 거룩함을 이룰 수 있고, 어느 순간 허물을 깨달아서 페샤에 도달하면 형상의 비전이 열리게 되어있다.
그 반대는 죄의 문제로 어딘가에 걸려있기 때문에 비전이 열리질 않는 것이다. 이것을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면, 비전이 열리지 않는 것은 죄다라고 하는 것이다. 아주 극단 비전론자다. 형상의 비전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이것이 아들과의 관계, 아들의 말씀, 성령의 역사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어딜 가면 뭐가 있고, 누가 언제 결혼하고, 누가 돈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말씀, 아들의 형상에 대한 해석, 그것을 의로 알고, 그 길을 따르라고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죄의 종이 문제이다. 죄를 짓게 되면 죄의 종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이 죄에 대해서 정말 예민해져야 한다. 죄에 대해서 정말 예민해져야 한다.
저는 예수님만 잘 쫓으면 정말 죄가 없는 길로 알았다. 막 열심히 주님을 쫓았는데, 엉뚱한 함정에 빠졌다. 보르, 구덩이에 빠져서 헤어나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하나님이 위로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금식하면서, 수치스러운 생각 가운데, 주님, 이게 뭡니까? 그랬을 때 가르쳐주신 것이, 너의 자기 중심성이라고 한다. 너 지금 네가 살려고 하지 않느냐?
제가 미국에서 너무 힘드니까, 어떻게 의사로서 살아야 할 것 같으니까,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 제가 미국 의사 면허 2달만에 합격한 사람이다. 자랑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니다. 도대체 뭐인가? 그 때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이, 너가 아간이라는 것이다. 이 충격 받아보셨는가? 호세아인줄 알았는데 고멜이다라고 다*드 목사님이 말씀하셨는데, 너무 똑같다. 여호수아인줄 알았더니 아간이다. 의기양양해서, 내가 정복자고, 선교사고,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평신도 신분으로 큰 교회에서 간증하고, 뭐가 된 줄 알았다. 되긴 뭐가 되는가? 아간이고, 고멜이고, 그런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에 도달할 때, 허물이 뭔지 깨달아졌을 때, 페샤, 형상의 비전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5. 어떤 방법으로 죄를 짓는가?
- 네 가지 길이 있다.
1) 현저한 죄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하는데,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의 일이다.
갈5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다. 아주 잘 보인다. 그런데 사실 잘 안 보이는 것도 많다. 바울 선생이 이야기 하셨지만, 안 보이는 것도 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더러운 것이 그렇게 확 보이는가? Unclean thing이 확 보이는가? 이것을 알려면, Clean thing, 깨끗한 것이 뭔지 잘 알아야 한다.
왜 여러분에게 영화보지 말라고 하는지 아는가? 그게 더러운 것이다. 더러운 것을 돈 내고 보는 것이다. 왜 더러운가? 거기서 이야기하는 것이 다 이런 것이다. 원수맺는 것, 분냄, 당 짓는 것, 등이다. 사랑 이야기? 영화 허락하는 것은 딱 하나 밖에 없다. Passion of christ, 그것만 잘 가지고 있으라.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시기심 없는가? 많다. 솔직히 말해보라. 분내지 않으신 분 있는가? Out burst, 뚜껑열리는 것이다. 당 짓는 것, 걔들하고 놀지 말고, 이리와, 내가 맛있는거 사줄께. 분열, 투기, 술취함, 방탕, 그와 같은 것들이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리스트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신가? 그러길 바란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 리스트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을 스스로 좀 체크하라. 죄로 규명하는 것이다. 죄는 죄로 규명해야, 그 죄가 나에게서 떠난다. 죄를 죄로 규명하지 않으면, 안 떠난다.
나는 Classic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CD를 버릴 수 없다? 영화 좋아하는데, 어떻게 버려? 떠날까, 안 떠날까? 안 떠난다. 임*평 선교사, Radical한 사람들은 그날로 부숴버린다. 남에게 주는 것도 죄이다. 남에게 주지 말라. 끝내버리라. 집에가서 할 일이 많다.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이다
점점 더 Radical하게, 극단적으로 하나님께 집중하지 아니하면, 허용 범위가 있기에, 그 열린 영역으로 끊임없이 죄와 연결되는 영역이 생긴다. 문을 확실히 닫아야 한다. 완전히 자유롭지 않도록,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이 부분은, 눈에 보이는 육신의 것들을 완전히 정리할 것이라고 해라
2) 행해야 할 것을 행하지 않는 죄
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행하지 않는 죄라고 하면, 이 죄 중에 제일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려고 한다. 각오를 좀 하시기 바란다. 어떤 죄가 행하지 않는 죄인가?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것이다
a. 불완전한 용서의 관계
그 첫 번째가 용서는 용서인데, 불완전한 용서이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 안다. 저는 용서하겠습니다 하는데, 온전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마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음으로부터, 중심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아버지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중심으로부터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 뭔지 아는가? 용서하는 척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성들의 눈물을 잘 안 믿는다. 강*혜 자매가 제 앞에서 울다가 혼난 적이 있다. 소리를 버럭 질러버린다. 그런 감정적인 눈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울 수 있는 순간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주실 때 뿐이다. 제발 감정적으로 울지 말라. 감정적으로 우는 것은 오늘 끝이다. 그러나 우리는 울 땐 울어야 한다.
온전하게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과 단 둘이 있을 때, 다른 모든 보호막이 없이, One to one confrontation, 일대일 대면했을 때, 정말 내가 마음으로 그 사람을 섬길 수 있느냐, 그 사람과 온전한 샬롬의 관계에 있느냐 할 때, 이것이 완전한 용서가 되어진 것이다. 누가 옆에 있을 땐 상관없다. 교회 안에서 형제님, 자매님 용서한 것은 상관없다. 그런데 단 둘이 있을 때도, 내가 이분을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느냐가 진정한 용서라는 것이다. 여럿이 있을 때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나이스 한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누구 안녕~ 허그 하고 사랑하자고 하면, 사랑한다고 한다. 둘이 나가서 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됐다고 한다. 그건 용서가 아니다.
창세기에서 아버지 야곱이 죽은 뒤에 형들이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아는가? 그 사람과 단 둘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한다면 그 가운데 용서는 불완전한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그런 관계에 있다면, 숙제는 완전한 용서에 도달하게 하라는 것이다.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은혜가 되는게 아니다. 벌떡 일어나서, 마음먹고, 그 앞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무슨 수치를 당하더라도, 화평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b. 불완전한 순종 / 회개
두 번째는 불완전한 순종이고 불완전한 회개이다.
회개하고 순종하긴 한다. 그런데 완전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불완전한 순종은 순종이 아니라, 불순종이다. 사람들은 불완전한 순종은 순종이라고 여긴다. 이만큼 했고, 나머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불순종이다.
우리는 사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사울이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고 했을 때 불순종했다. 자기 생각이 들어갔을 때 불순종한 것인데,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회개하라고 했을 때, 이 사람이 회개하는 태도를 보라.
삼상15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나의 핑계가 들어있다. 용서를 구하고, 회개할 때는 단서를 달아서는 안된다. 그게 불완전한 회개라는 것이다. 회개는 회개로 끝나야 한다. 어딜 가서 용서를 구한다고 할 때, 근데 너는... 이라고 하면 스톱시킨다. 회개합니다 주님, 그런데.. 스톱..! 더 이상 이야기하면 안된다.
사람들은 불완전한 순종을 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있다. 그래서 불완전한 순종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불완전한 회개를 한다. 사울이 그 케이스이다. 우리는 순종하고 회개하는 것을 어떡하면 완전하게 할까? 이것을 찾아내야 한다. 이게 오늘 밤의 숙제이다.
마지막 집회 때는 탐임에 대한 관점이 굉장히 우리에게 올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이게 너무나 중요하게 다가온다. 대충해서는 안된다. 대충하는 것 때문에, 대충 성장해서, 대충 흉내내다가, 열매도 대충 맺어서 다 떨어져 버린다. 대충 맺으니까 당연히 열매가 없다. 모든 것이 불완전하다
사람이 어떻게 완전하냐고 한다. 그러니까 토라가 있고, 리더가 있고, 디테일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누가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는가? 지금 자기가 명령하고 있다. 너는 내 죄를 사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지금 회개하고 있으니까, 나를 용서하라고 사울 같이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내가 이렇게 용서를 구하잖아. 대충 넘어라. 나를 용서하라는 말이야. 알겠어? 지금 예수님보고 말이다.
이 때 사무엘이 뭐라고 하는가?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너 지금 회개의 모양만 취하고 있잖아. 네 마음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지, 네가 정말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거야? 회개의 모양만 취하면 왕권이 취소된다. 부분적인 순종, 불순종, 부분적인 회개는 모든 권세를 잃어버리게 한다.
새겨들으시길 바란다. 왜 나에게 권세가 없어? 다 부분적인 것이다. 온전하지가 못한 것이다. 사무엘이 가려고 붙잡으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겉옷자락 조금, 하나님의 종을 찢는다. 사람들이 얼마나 대충하려고 하는지 아는가? 다 자기 생각 집어넣어서, 이것을 Modification, Manupulation이라고 한다. Modify, 수정. Manupulation, 조작 작업이 몸에 배있다. 토라 맨날 배우고, 돌아가서는 맨날 조작하고 수정해서, 절대 버전을 자기 기준으로 만들어서 조작하고 수정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끌고가서 결정된 것을 다 뒤집는다.
전형적인 것이 눈물, 호소, 상황, 상황은 다 있다. 사울의 이야기가 그렇다.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을 잘 배워야 한다.
불완전한 순종과 회개는 정말 온전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경계해야 한다. 동의하시는가? 완전하게 순종하고, 완전하게 회개하자.
c. 염소의 행위
마25장에 나온 양과 염소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주님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여기에 여섯 가지가 있다
마25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각각 상황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넘어가겠다. 음식 주지 않는 것, 물 주지 않는 것, 옷 주지 않은 것, 병 든 것, 옥에 갇힌 것, 이 사람들에게 뭐 했냐? 바빴습니다. 토라공부하느라 말입니다.
이거 물어보신다. 마25장에 3가지 이야기 중에, 지난 번에 다섯 처녀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그것이 절대 기준, 쉐멘이다. 그리고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람들을 측정하고 진단하지만, 그 측정하고 진단한 것은 그 사람에게 치유를 주고, 그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이어져야지, 측정과 진단으로 끝나면 그게 비윤리적 의료행위가 되는 것이다. 응급실에 다 죽어가는 환자가 왔는데, 진단해보고, 맹장이 복막염이 된다고 돌아가시겠네 하면서 가버린다. 늦게 와서 한 시간 있으면 죽을 것이라고 하고 가버린다
제가 제일 경계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염소의 행위가 말도 못하게 많다. 비전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굶주린 자, 병든 자, 나그네 된 자, 돌보질 않는다. 너무 바쁘다. 레위인과 제사장같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가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예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일 없다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너랑 일없다. 나랑 관계가 없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양으로 불림을 받아야 한다. 왜 사도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했는지 아는가? 이것을 알고 있으면, 긴장이 되어서, 단 하루도 내 주변에 나타난 사람들을 그냥 둘 수가 없다
쿠웨이트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 중 많이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나타난다. 그래서 즉시, 이분이 지극히 작은 형제 중 한 사람이 아닌지 잘 보도록 해라.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그들 중에 정말로 있다
d. 열매가 없는 것
열매가 없는 것은 정말 무섭다.
요15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주님 안에 들어가라. 좀 내 안에 들어와보라. 똑같은 개념으로 주님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의 생각, 마음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그래서 토라가 필요한 것이다. 토라는 아들의 마음을 다 가르쳐준다. 창세기에서 아들의 마음, 길, 생각을 깨닫기 바란다. 출애굽기에 계신 아들을 보시고 아들 안에 들어가야 한다.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열매가 없으면 버린다고 한다. 불에 던져 사른다고 한다
그래서 요15장을 다 암송하라는 것이다. 열 처녀 비유를 이야기했다
마25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이제 기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그 때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했기에, 많은 것을 재방송하지는 않겠다. 그 사람들이 혼인 잔치날을 알고, 불을 가지고, 기다림을 가지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렇게 되어버린다. 한 달란트 비유 아시는가?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한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던지 무지하던지 어찌하던지 묻어둔 결과가 어찌된지 아는가?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 무익한 종은 열매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바깥 어두운데로 나가라.
주님의 말씀 가운데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빨리, 쉽게쉽게 넘어갈 수 있는가? 우리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에 참여하고, 복음을 전하고, 심지어 제자삼는 비전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인정하는, 주님이 인정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까지 이 길을 가야하는 것이다.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할 때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굉장히 심각하게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목사들에게만 하셨는가? 목사들만 제자인가? 여러분들도 제자 아닌가? 그러면 목사가 열매를 맺으면, 여러분들도 열매를 맺어야 한다. 붙어있어야 한다
행하지 않는 죄는 이러한 네 가지이다. 일단 흔하게 잡히는 것들 4개를 잡아냈다. 단순한 문제가 절대 아니다. 항상 디테일로 더 들어가야 한다. 여러분이 정말 제자가 되고 싶다면, 명품 제자가 되어야 한다. 명품 제자는 항상 디테일하다. 왜 독일차, 어떠어떠한 것이 비싸냐? 명품이기 때문이다. 조작해보면 다르다. 제가 어떤 차를 좀 운전해봤다. 그랬더니 다르더라. 명품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명품 제자가 되어야 한다. 명품 제자가 되려면,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 이게 디테일이다.
이것은 장난도 아니고, 쉬운 일도 아니다. 정말 힘들다. 그냥 그게 공짜로 됐겠는가? 그냥 자기 좋아서 하는 일 하시겠는가? 그게 아니다. 여러분들은 나는 아직 어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리다고 말을 못 알아듣진 않는다. 알아들으니까 이제 이 길을 가야한다.
오늘 밤 숙제가, 이 다음 세션의 십자가도 있지만, 오늘 밤에 이것을 다 리스트업 해보라. 그 안에서 하타, 페샤, 이 두 가지만이라도, 이것이 나에게 생명을 주는 선을 이루게하고, 형상의 비전이 열리게하는 열매를 맺게 해야한다. 죄를 죄로 인정할 때, 죄로 깨닫고, 그것을 확실히 규명해서 내 삶에서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때 이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3) 말로 짓는 죄
비평, 불평, 저주의 말
약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 온전하지 못한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 선한 말이 뭔가? 선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다.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 나와야 한다. 동의하시는가? 그래서 항상 긴장해야 한다. 순식간에 어떤 말들이 그냥 튀어나온다. 불평하는 말이다. 아이씨 진짜... 등이다. 서로서로 지켜드려야 한다.
민11: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원망 자체가 악한 말이다. 우리가 원망할 때마다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어떤 말들, 어떤 상황이라도 말이다.
4) 마음의 태도와 의도로 짓는 죄
마음먹는 것, 간음하지 말라.
마5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시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이 죄를 경계하시면서, 죄의 결과를 간략하게 보도록 하겠다
6. 죄의 결과
1) 우리 마음에 죄책감을 남긴다. 그러면, 우리를 쇠퇴하게 한다.
죄책감 -> 쇠퇴
- 이것은 하나의 단계가 있다. 죄를 지으면, 양심이 죄책감을 가져다주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이 쇠퇴해버린다
겔33:10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허물과 죄, 페샤와 하타가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서 쇠퇴하게 한다. 마카크, 썩는다는 이야기이다. 썩어버린다. 죄가 해결되지 않고, 죄책감이 내 안에 있으면, 내가 썩는다.
죄책감을 해결하지 않으면 사람이 썩어버린다. 대충 넘어가려고하면 썩어버린다. 그래서 대충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사람이 쇠퇴해져서 비실비실해져서, 뭘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영이 썩어내려간다고 한다. 그런거 느껴보셨는가? 영이 맑은 사람이 있고, 영에서 썩은내가 나는 사람이 있다. 영이 예민하면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쇠퇴가 된다. 하나님 앞에 하타, 페샤, 죄와 허물이 있으면 사람은 쇠퇴해지는 것이다.
2) 우리의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킨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다.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다.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말은 갖다 붙이는데, 알고보면 목사님 설교 들은거 옮기는 거고, 자기 안에 참신한 스토리가 없다. 목사님꺼 서머리는 좋지만, 계속해서 자기 안의 스토리가 나와야 한다
강*혜 자매가 다 자기가 메세지 만들어낸 것이다. 라아 그돌라, 톨라, 이거 멋있다. 한 번 해봐라. 하나님과 관계를 분리시키는, 하나님의 메세지가 흐르는 것이 안되고, 쇠퇴하다가 끊어져버리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가 안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흐물흐물하다가 끊어진다. LTG가 흐물흐물하다가 끊어지는 것이다. LTG끊어지는 것은 다 죄와 허물이다. 한쪽이 타브의 길을 걸으면, 그 관계는 끊어질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이 지나면, 육체적 질병까지 온다. 혼과 육의 질병이다.
3) 혼과 육의 질병
저는 의사이기에, Psycho-somatic syndrome, 정신세계의 문제로 인해서 병이 오는 것을 잘 안다. 두통, 소화불량이다. 잘 아실 것이다. 거의 80% 이상이 정신세계의 문제이다. 샬롬이 없어서 그렇다. 이렇게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영향을 받아서 끊어지면, 이런저런 질병들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이 관계의 문제에 의해서 쇠퇴가 되면 면역력이 약해져서 감기도 잘 걸리고, 암도 잘 걸린다. 그것을 이겨내면 샬롬이 오고, 병이 낫는 것이다
인카운터하고 제일 흔하게 낫는 병이 천식, 관절염이다. 완전히 자유로우시기 바란다. 면역학적인 질환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면 다 떠나간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이 길을 다시 돌아가면, 그 병이 다시 오는 것이다.
4) 마음이 굳어짐 / 고집 / 감각없는 자
마음이 굳어져서, 무슨 말을 해도 안 듣는 것이다.
엡4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무슨 말을 해도 은혜가 없다. 꺠닫지도 못한다. 아무리 사람들이 은혜받고, 눈물 흘려도 깨닫지도 못한다. 저는 왜 못 깨달을까요? 이런 말 하지 말아라. 저는 주님으로부터 관계가 멀어져버렸다는 이야기이다. 고집스러운 것이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말이다. 다 거기서 유다의 영이 나온다. 생명이 안 자란다. 뿌리가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굳어지고, 완고해지고, 하나님의 생명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5) 영원한 심판과 영적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죄에 대한 것을 깨달으면서, 자기가 썩어지는 것인데, 놔두면 분리되버리고, 병이 들고 감각이 없어진다. 교회에 안 나온다는 것이 아니다. 십일조도 잘 하고, 성경도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마음의 일이다.
드디어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결론으로 나누도록 하겠다
7.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문제는 자백이다. 우리는 반드시 용서받게 되어있는데, 인지 능력이 없어서, 죄를 죄로 인지하지 못해서, 규정하지 못해서, 알아보지 못해서 놔두면 이 길을 간다는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이런 길을 갔기 때문에, 용서라고 하지만 대충 하고, 순종이라고 하지만 대충 하고, 회개라고 하지만 대충 하고, 마음으로 온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대충 하게되면,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이다.
온전한 길만이, 온전한 순종만이, 온전한 회개만이, 온전한 용서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회복시켜주시는 것이다. 오늘 밤에 할 수 있는 만큼 온전하게 하라. 혹시 여러분들 안에 이런 문제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있다면, 죄책감이 느껴진다면, 더 이상 썩지 않게 하라. 용기를 내라. 해야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외과의사가 다리를 자르자고 하면 잘라야지 어떡해야 하겠는가? 안 자르면 온 몸이 썩어서 죽어버린다. 주님이 눈이 범죄케하거든 눈을 뽑아버리라고 하신다
시32
1 [다윗의 마스길]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허물, 페샤
죄, 하타
-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내 죄악을 사하였나이다.
오늘 밤에 이 때인 줄 믿어지시는가? 이 때이다. 주를 만날 기회를 얻는 이 때가 오늘 밤이다. 믿으시기 바란다. 주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죄를 죄로 알고, 죄를 죄로 인지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다.
하타, 페샤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죄를 죄로 인지해서 그 죄를 버리기로 작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오늘 밤에 옮기는 것이다
* 기도
주님께서 힘을 주실 것이다. 주님 나에게 힘을 주소서. 오늘 내가 죄를 죄로 인정하고 새로운 날을 시작하겠습니다.
하타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다. 나의 허물, 페샤는 형상의 비전이 열리게 하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내가 죄를 죄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오늘 주를 만날 기회인 이 때에, 또 넘어갈지 모른다. 주님 오늘 우리가 새로운 마음으로 주를 만날 기회를 얻게 하소서.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복을 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힘든 일이 있고, 오랫동안 살아온 그 습관적인 스타일 때문에, 이것을 돌이키기가 너무 힘들다고 할지라도, 주님 우리가 오늘 이 때에, 이 죄에 대한 문제를 온전히 다루어,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용서의 시스템, 용서의 집을 만들어주셨기에, 우리의 자백을 기다리고 계신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자백의 은혜를 입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오늘 밤에 온전한 관계, 샬롬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완전한 용서, 완전한 순종, 완전한 회개, 죄를 죄로 인정하며, 죄를 인지하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눈이 열려야 합니다. 사실은 열리지도 않았는데, 열리는 것처럼 하는 것도 이제는 피곤합니다. 내 안에 죄책감이 있을 때, 쇠퇴하지 않고, 이제 멈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회복의 길을 시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 앞에서 회복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대한 사도바울께서 그 많은 일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씀한 것이, 내가 죄인 중의 괴수인 것, 로쉬, 죄인의 대가리인 것을 깨닫고, 아들의 길을 따르며, 아들의 형상을 이루는데, 새로운 소망, 용기, 믿음, 지혜, 지식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얻게하여 주소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사오니, 우리가 오늘부터 죄를 버리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죄는 어떤 모양이던지, 모두 끝내버릴 것입니다. 어떤 모양이던지 내 안의 죄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할 것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인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자백할 것입니다. 관계를 회복할 것입니다. 쇠퇴한 길에서 돌아서서 강건하게 될 것입니다. 소망을 새롭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이 길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시고, 친히 길이 되어주셔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해주신 주 되신 아들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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