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 2001.10.26(금)
08:00구례 터미널-08:40성삼재-09:05노고단산장-09:25KBS송전탑-09:40문수대-10:00삼거리-10:20질매재-10:40피아골산장-11:05구계포교-11:10삼홍소-11:35직전마을-11:55연곡사
오늘은 지리산행을 어렵사리 잡았다. 과사무실 동료들에게 가을 소풍으로 지리산 피아골을 가자고 며칠을 꼬드겼으나 광주에서 지리산 피아골이 멀다는 이유로 내장산으로 결정하고 말았다. 아쉬우나 어쩔 수 없는 일. 지금쯤 지리산 피아골 단풍이 막바지로 절정을 이루고 있을 텐데. 애절한 역사의 질곡을 간직한 피아골의 단풍과 화사한 내장산의 단풍을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점심을 내장산에서 먹을 정도로 동료들과 약속 시각을 정하고 홀로 지리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오전 내에 지리산행을 마치고 정읍으로 이동하여 일행들을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무척이나 벅찰 것만 같아 마음이 다소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벼르던 피아골의 산행을 안 할 수 없고. 고심 끝에 간결한 코스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성삼재에서 출발하면 피아골까지 4시간 정도면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거야. 터미널에서 6시 성삼재행 버스를 타면 오후 점심때쯤 내장산에 갈 수 있겠지?
하지만 밤늦게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에 맞춰놓은 자명종 소리도 듣지 못하고 퍼질러 늦잠을 자다가 6시에 일어나고 말았다. 낭패다. 딜레마에 빠져 한참을 고민하다가 꾸려놓은 배낭을 들쳐메고 무조건 차에 올랐다. 짙은 안갯속의 고속도로와 섬진강변의 국도를 따라 구례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7시 30분. 기사식당에서 서둘러 된장찌개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성삼재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십여 명이 넘는 산님들의 들뜬 모습이 보인다. 굽이굽이 붉은 빛의 지리산 자락을 돌고 돌아 버스는 40여 분 만에 성삼재에 도착하니, 넓은 주차장은 이미 많은 산님이 타고 온 차들에 점령되어 있었다. 아직도 이른 시간이건만 산님들이 노고단을 향하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고 있다. 하이힐의 여자, 구두의 남자. 어린 꼬마 산님들까지 많은 인파가 출렁이고 있다. 너무 밋밋한 코스라 성삼재에서 종석대로 오르려 했으나. 워낙 시간이 촉박하여 자신이 없다.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부지런히 산장 쪽으로 치고 올라간다. 뒤를 돌아보니 고리봉과 만복대가 억새 능선을 자랑하면서 손짓하며 부르는 듯하다. 노고단산장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성삼재에서 이곳까지 불과 25분 소요. 엄청나게 빨리 걸었네. 노고단 고개를 오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남쪽 길로 KBS 방송송신탑이 있는 큰길을 따라 문수대 방향으로 걷는다. 물론 노고단 고개에서도 KBS 방향으로 갈 수도 있으나 구태여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체력과 시간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 오늘의 벙개 산행에 시간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야봉을 바라볼 수 없으니 서운하기도 하다. 널찍한 신작로 길을 따라 걸으며 종석대를 바라보니 삼삼하다. 우측 아래로는 화엄사계곡이 포근하게 다가와 있고. 구례평야와 꿈틀대는 은빛 섬진강이 보인다. 이곳 일원은 여름철 원추리로 유명한 곳인데 철 지난 지금 앙상한 잔가지의 나무와 풀 죽은 초지로 되어 그 여름날의 화려한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고 을씨년스럽다. 정면으로는 돌탑이 있는 노고단 정상이 한층 더 가까워졌다. 실로 노고단 정상에 오른 지 얼마던가. 벌써 10여 년이 되었다. 통제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KBS 방송송신탑이 있는 건물의 우측으로 돌아 문수대로 향한다. 문수대는 노고단 아래 깎아지르는 듯한 벼랑 밑에 있는 바위로서 영험한 곳인데 그곳에 문수암이란 허름한 암자가 있다. 일단 그곳을 문수대라 부른다. 국립 관리공단 직원들이 그곳 가는 길을 통제하고자 길가의 리본을 모두 수거해 버려 길을 찾는데 다소 헷갈림은 있으나 방향을 잡고 곧 뚜렷하게 난 길을 찾아 따라 내려가니 오솔길이 졸졸 이어진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형제봉 능선과 왕시루봉 능선이 길게 뻗었고 그사이의 문수리 계곡도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왕시루봉이 삿갓 모양으로 근사하고 옅은 구름에 쌓여 신비스럽고 멋지게 보인다.
능선 사면 길을 따라 걷다가 곧 너덜 길의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조심조심 내려가다 만난 곳은 문수대. 과연 깎아내린 듯한 기암괴석을 병풍으로 삼아 아름다운 형상이다. 노고단 산장시절 함태식 선생님이 산장의 별관으로 탐을 냈던 문수암. 문수암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작은 돌성 벽의 문을 이루고 있었다. 인적없는 문수암은 얼마 전 들렀던 묘향암과 비슷한 분위기. 수도하는 스님은 안 계시는지 기척이 없다. 절벽 밑으로 아주 약하게 흐르는 맑은 물줄기를 바가지에 담아 목을 적신다. 잠시 머물며 사진 1장도 담는다. 왕시루봉 하산 길 질매재를 향하여 길을 떠난다.
오늘의 초점은 피아골. 작년보다는 약간 늦게 산행을 하여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쯤 피아골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이미 주능선과 이곳 주변은 옷을 벗은 많은 나목이 즐비하였으며 등로와 산자락에는 떨어진 낙엽들과 앙상한 나뭇가지들로 지리산은 서서히 일찍 찾아오는 겨울을 맞이하는 느낌이었으며 단풍은 아예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돼지령으로 오르는 삼거리를 만난다. 이곳에는 문수대로 사람들의 출입을 막느라 나무로 길을 교묘히 위장해 놓았다. 직진 길을 위를 올려다보니 노고단이 바로 지척에 보인다. 내림 길은 왕시루봉 능선의 시작점이다. 동쪽을 바라보니 삼도봉과 토끼봉이 매우 가깝게 보이며 토끼봉은 반야봉과 비슷한 모습으로 웅장한 모습이다. 그리고 아래로는 피아골의 깊은 계곡이 굽이굽이 내리뻗어있다. 질매재를 향하는 길은 조릿대 숲길로 손쉽게 이어진다. 나무숲 사이로 힐끔힐끔 토끼봉을 감춘 불무장등 능선을 바라보며 이윽고 질매재에 도착한다. 내리막길 직진은 왕시루봉 방향이고 우측은 문수골로, 좌측은 피아골 방향이다. 피아골 산장 쪽 지계곡에서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니 불그죽죽한 단풍들이 드디어 현란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경관과는 확연히 다름을 곧 느낀다. 지난 추웠던 겨울. 문수리에서 문바우등을 따라 이곳을 거쳐 돼지령에 올라 노고단 산장에서 1박을 하였다. 그때는 녹지 않은 많은 눈으로 덮여 러셀로 산행길에 어려움이 많았었다.
질매재에서 피아골 산장까지는 0.7km로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km 정도이며 오름 길은 1시간 가까이 걸리니, 내림 길도 40여 분은 잡아야 한다. 경사가 가파르고 너덜 길이며 매우 험준하다. 이곳부터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환상적인 피아골의 단풍이 이어진다. 너무 아름다워 정신이 혼미해지고 아뜩해진다. 역시 지리산 10경의 피아골의 단풍이다. 빠른 걸음으로 20여 분 치고 내려가 피아골 산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사람들이 별로 없어 차분한 휴식을 즐긴다. 유명한 음수대에서는 오늘도 두 줄기의 약수가 펑펑 쏟아진다. 중년의 아낙이 산장을 지킨다. 혹시 함태식 선생님 며느님이 아니냐고 물으니 친척이라고 한다.
캔맥주를 청해 목젖을 적시며 함태식 선생님의 안부를 묻는다. 몸이 불편하셔서 구례의 병원에 다니러 조금 전에 길을 나섰다 한다. 일주일 전에는 피아골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어 사진작가들이 엄청나게 다녀갔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피아골도 절정이다. 단풍철인 요즘은 산장에서 제법 많은 산님들이 다녀간다고 한다. 지리산의 산장 중에서 가장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이 바로 피아골 산장이 아닌가. 그래서 한때 함태식 선생님도 캔맥주 하나 팔리지 않는다고 푸념하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단풍으로 인해 제철을 만난 요즘이야말로 피아골의 축제 기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빨치산 이태의 수기 '남부군'에 '피아골 축제' 얘기가 실려 있다.
'그날 밤 피아골에서는 춤의 축제가 벌어졌다. 풀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둘레를 돌며 <카추샤의 노래>와 박수에 맞춰 남녀 대원들이 러시아식 포크댄스를 추며 흥을 돋우었다. 피어오르는 불빛을 받아 더욱 괴이하게 보이는 몰골들의 남녀가 발을 굴러가며 춤을 추는 광경은 소름이 끼치도록 야성적이면서도 흥겨웠다. 이 축제를 주도한 한 여성에 대한 글도 함께 실려 있지 않았던가! 최문희라는 문화지도원이 각색 연출한 <엉터리 곡성군수>라는 코미디 촌극도 공연되었다. 문화지도원 최문희는 동작이 활달하고 격정적인 인상의 20대 여인이었다. 평양에서는 오페라 <카르멘>의 카르멘 역을 맡았던 유명한 오페라 가수이며 공훈 배우였다고 한다. 그녀는 등사판으로 <50곡 집> <20곡 집> 등 가사집을 만들어 대원들에게 배부하고 문화공작대원으로 틈틈이 노래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기억력 좋은 이 여인으로부터 주로 러시아 것을 번역한 군가와 가요를 수십 가지 배웠다.'
(최초의 빨치산 수기 이태의 '남부군')
이곳 피아골 산장 자리는 너무 유명한 곳이다.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군경과의 전투 후 동무들의 가슴에 주렁주렁 인민 훈장을 달아주고 싶다면서 상훈 수여식을 마친 곳이다. 그러나 그 후 피아골은 파르티잔의 활동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특히 피아골 산장은 무수히 많은 인골을 파내고 지은 곳이다. 산장을 짓기 전 과거 청춘남녀가 이곳에 텐트를 치려고 땅을 파냈다가 인골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애인도 남겨둔 채 남자가 기겁하고 출행랑을 놓았다는 일화도 있다고도 한다. 바윗덩어리가 유난히 많았던 피아골이고 보면 평탄한 이곳에 산장을 짓기가 쉬웠고 암반이 적은 이곳에 시체를 파묻기 좋았으니 어찌하랴.
산장을 떠나 직전마을로 하산을 한다. 산님들은 연이어 산장 방향으로 오르고 있다. 평일이기는 하지만 금요일이라 학생들의 소풍날로 중고등학생들이 산장까지 꾸준히 오르며 단체 산님들의 산행 또한 계속이 이어진다. 구계포교 아래 드넓은 암반 위로 흐르는 계류와 단풍이 하모니를 이루어 피아골은 또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든다. 오호라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다. 피아골은 다시 한번 불붙는다. 만산홍엽이다. 재잘거리는 중고등학생들의 오름을 피해 성큼성큼 직전마을에 닿는다.
직전마을에서 바라보니 주능의 돼지령이 주름이 잡힌 피아골 틈새로 까마득하다. 연곡사부터 직전마을까지의 도로 옆에는 평일임에도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 지리산의 단풍은 곧 피아골이라는 항등식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바쁜 나는 이곳에서 부산에서 오신 산님의 도움으로 구례터미널까지 차를 얻어타고 나갈 수가 있었다. 덕분에 곧 구례터미널 앞에 주차한 애마를 타고 정읍의 내장산으로 쉽게 갈 수 있었다. 피아골의 단풍과 내장산의 단풍을 하루에 만끽한 그야말로 희한한 하루였다.
첫댓글 멋짐! 대단하심 어찌 산행후기가 소설책 한페이지를 읽은것 같아요
지리산 아흔아홉골을 누비고 다녔던 지난닐의 산행후기를 회상하면
아련 하겠습니다 워낙 소상하게 쓰셔서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