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절규〉는 단순히 심리의 반영일까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를 미술교과서에서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흉측하다!’였습니다. 한마디로 꿈에 나올까 무서웠습니다. 노란색과 원색 대비를 이루면서 더 강렬하게 보이는 붉은 하늘을 배경으 로 세 사람이 다리 위에 서 있습니다. 맨 앞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사람이 있는데, 눈과 입이 커다랗게 벌어 져 있지만 그 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처럼 무서운 절규에 빠졌을까요.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절규>
많은 사람이 불행했던 뭉크의 일생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이 그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라 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무서운 붉은 하늘은 실제 있었던 자연현상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화산폭발입니다.
1883년 8월 27일,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 섬에서 대규모 화산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폭발음은 5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들릴 정도로 강력했고, 폭발로 뿜어져 나온 마그마와 화산암 같은 분출물이 80킬로미터 상공으 로 튀어 올랐습니다. 인근 해안에 46미터의 지진해일이 일었고, 이로 인해 3만6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화산재는 이듬해인 1884년 초까지 전 지구로 퍼져 대낮에도 미국과 유럽의 하늘을 노을처럼 붉게 물들였습니 다. 화산재가 파장이 짧은 파란빛을 사방으로 산란시키고, 파장이 긴 붉은빛을 그대로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그 붉은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뉴욕 주 소방대원들이 실제 불로 착각하고 출동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인도네시아의 섬에서 일어난 화산폭발이 북미와 북유럽의 날씨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니,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 워드 로렌츠가 1961년에 ‘나비효과’라는 용어를 명명하기 전에 이미 그런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뭉크는 같은 주제로 그린 스케치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나는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댔다.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이다. 암청색 피오르드와 도시 위로 피가 불길처럼 날름거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해서 길을 갔고, 나는 두려움에 떨며 홀로 뒤쳐졌다. 나는 대자연으로부터 엄청난 절규가 끝없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 뭉크 글만 보면 뭉크는 심각한 불안증세를 보이는 우울증 환자입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습니다. 예술가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은 불안을 더 크게 부풀렸고, 그 결과 〈절규〉와 같은 그림이 탄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미국의 천문학자 도널드 올슨이 뭉크가 살았던 노르웨이 오슬로를 샅샅이 뒤져 그림 속 남자가 비스듬 히 서 있는 배경과 똑같은 협만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뭉크가 〈절규〉의 초기 스케치를 했을 무렵을 전후로 그곳의 천문학적 기록을 조사했습니다.
당시 오슬로의 하늘과 자연은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 섬에서 발생한 화산폭발의 여파로 실제로 이상현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뭉크는 이때의 강렬한 경험을 스케치해두었다가 정확히 10년 후 캔버스에 옮겼고, 절 규는 그렇게 1893년에 탄생했습니다. 도널드 올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뭉크의 〈절규〉는 내면의 절규라기 보다 대자연의 절규를 보고 이처럼 경악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혹은 도사리고 있던 내면의 절규가 대자연의 절규로 인해 극대화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각주
유선경 집필자 소개 1970년 전북 부안 출생,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2011년부터 매일 아침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글로..펼쳐보기
문득, 묻다: 세 번째 이야기 과학, 신화, 예술 분야의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 전개로 독자들의 지적 갈증을 채워준다. 책에는 길 위에서, 혹은 집에서, 그리고 하늘과 풍경을 바라보면서 문득 궁금해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자세히보기 저자유선경 | 출판사지식너머
[빠다킹(조명연)신부님 글 중에서]
아픔을 맞이했을 때...
노르웨이의 한 화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열세 살에는 자신을 어머니처럼 돌봐주었던 누나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뿐인 여동생도 몇 년 뒤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계속된 가족의 불행은 그를 신경쇠약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석양이 붉게 물든 하늘을 보다가 마치 자연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느낌을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며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이 사람은 에드바르 뭉크이며, 그의 작품이 바로 ‘절규’입니다.
아픔을 딛고 삶을 새롭게 보려는 그의 노력이 이런 명작을 그릴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아픔을 맞이했을 때 다르게 보는 사람만이 아픔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아픔 자체에 매립되는 사람은 슬픔과 절망 외에 그 어떤 것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풀밭 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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