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최 재 학
세상에는 별별 일이 다 있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후지산과 온천으로 유명한 시즈오카 에서 2층 별장이 우리 돈으로 10원에 부동산 시장에 나왔다며 세계적인 빅뉴스로 등장했다. TV에 비친 문제의 별장은 대지도 넓고 바다도 한눈에 보여 아름다운 경치를 품고 있는 별장이다.
소유인은 세금과 관리비가 부담되어 공짜로 내놓았다 한다. 그러나 매수하고 싶은 사람들 역시 관리비와 세금 때문에 선 듯 나서지 않는다니 우리상식으로는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일본은 빈집이 (2013년) 820만 채가 넘는다 하며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가격의 폭등으로 망국론까지 나돌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면서 일본을 닮아간다는데도 어인 일인지 주택이 부족하다며 부동산가격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른다. 농촌의 집은 텅텅 비어 있고 도심의 주택재벌들은 수백 채씩 독식하기 때문이란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주택부자 10명의 소유주택이 5천 채도 넘는다니 나라가 온전한 것이 이상한 일이다.
고향을 떠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비록 고향을 떠나 왔으나 자주 다니다 보니 차라리 고향에 별장(?)한 채 소유하면 어떨까? 하여 고향집 근처 바닷가에 허름한 빌라 한 채를 구했다.
어린 시절 악동들과 몰려다니던 바닷가에 지어진 빌라 2동에 16세대가 거주한다. 그 빌라 3층을 사들였다. 빌라주위는 할아버지께서 염전을 하시고 과수원을 일구셔서 한참 수확을 보려는데 병환으로 끝내 마무리 성공을 못하셨던 곳이기에 조금은 한스러운 위치에 있는 빌라다.
아침 일찍 3층 거실의 흔들의자에 반쯤 누워 창밖을 내다보면 멀리 가까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 햇살에 고깃배들이 바쁘게 어장으로 향하는 모습도, 한낮이 되면 갈매기가 지붕 위를 배회하면서 끼룩끼룩 아기울음을 토하며 먹이를 달라 보챈다.
서해 바다에 황혼이 물들기 시작하면 고기잡이를 마친 어선이 황급히 포구로 돌아오는 정겨운 모습도 보인다. 사리 대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손전등을 밝히고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조개를 잡는 것도 별장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등댓불이 깜박깜박 비취는 모습은 유년시절부터 동경하던 무릉도원이다.
비좁은 빌라일망정 한 살림이니 가구는 물론 가전제품도 모두 새로 장만하였다. 대전에서 넘쳐나는 책들도 옮겨 서재를 꾸미며 대단한 명작이라도 쏟아낼 것처럼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애지중지했던 그 별장은 점점 귀찮은 존재로 전락했다. 여름 휴가철이면 가끔 친구들도 함께 쉬던 그곳이 해가 갈수록 뜸해지기 시작했고 가족들도 찾지 않았다. 나 자신도 거주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주 찾지도 않으니, 더구나 관리인도 없어 말썽이 잦았다.
어느 해인가 설날 새벽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빌라 거실의 수도가 동파되어 아래층까지 한강수라 한다. 다행히 아래층도 우리같이 별장으로 사용하니 빈집이었다. 허둥지둥 2 시간이 넘게 달려가니 계단을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가 현관까지 물바다다.
여름철에 베란다를 사워 장으로 사용하려고 연결한 호수가 동파한 것이다. 거실은 문턱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발목이 잡길 정도로 흥건하다. 거실도 방도 바닥에 놓인 물건은 모두 버려야 했다. 아래층 집도 마찬가지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별장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무나 별장 흉내 낼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아래층 집 천장이며 벽이며 도배를 해주고 바닥에 있던 시트며 이불도 보상했다.
낡은 집에 거주하지도 않으니 해마다 이것저것 말이다. 점점 정이 떨어지니 고향에 가도 빌라는 돌이보지도 않는다. 정이 멀어지니 팔아야 하겠다는 생각뿐인데 제값을 받기는 영 글렀다. 그렇게 꿈의 별장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결국은 매물 신세 1년 만에 손해를 감수하고 가까스로 팔아치우니 차라리 홀가분했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놀이 문화가 대세를 이루니 전국 방방곡곡 유원지나 바닷가는 빈틈없이 펜션이 들어섰다. 더구나 주5일제 근무라니 아이들 등쌀에 어딘가는 가야 한다.
내 고향 태안도 년 중 1천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주민들은 농토를 팔고 또 빛을 내어 너도나도 펜션을 지었다. 어려운 농사를 짓지 않고 편하게 살아보려는 계산이나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모두 펜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여름철만 빤짝이고 대부분은 그냥 훑고 지나가거나 이집 저집 살펴보기만 한다. 그러니 여름철이면 도로는 온통 주자장이 되어 몸살을 앓는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신축하는 펜션들이 고가의 최신 시설로 관광객을 유인하니 자연히 기존 펜션도 시설을 보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결국은 그들끼리 경쟁으로 서로가 출혈일 수밖에 없으며 점점 넘쳐나는 펜션 등 숙박시설은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가 넘는다 하는데, 신축아파트의 경쟁률은상상을 넘는다. 더구나 인구가 줄어들어 지금도 빈집이 120만 채가 넘는다하니 도대체 갈팡질팡이다. 하지만 오늘도 관광지는 아랑곳없이 펜션을 짓는다. 7채까지 소유가 가능하니 앞으로 일본을 닮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래 봤자 위치 좋은 곳에 크고 반듯하게 지은 시설 좋은 곳만 관광객이 몰려올 뿐 대부분은 현상유지도 급급하다는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젊은 시절 바닷가 산언덕에 새하얀 집을 짓고 작은 채전을 가꾸는 목가적인 꿈을 꾸었다. 그리고 퇴직을 하면 반드시 실현하리라 다짐했었다.
바다가 보이는 서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때로는 친구들과 낚시질한 생선회를 안주로 소주 한잔 걸친다면 무릉도원이 될 것이라 했다. 그 꿈이 뜻대로 되지 않아 겨우 허름한 빌라를 구했었는데, 한낮 일장춘몽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