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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140주년 특별전에서
影園 김 인 희
미술사를 바꾼 세기의 예술가 피카소, 그의 신화 속으로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피카소 (1881 - 1973)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피카소(1881-1973)는 1907년 파리 몽마르트의 작업실 바토라부아르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제작한다.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이 작품은 르네상스이래 서양미술 400년의 전통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며 회화 역사의 대혁명을 일으킨 걸작으로 기록되었다. 20세기 미술은 피카소에 의해 시작되었고 피카소의 세기였으며 피카소를 위한 시대였다. 이번 전시는 세기의 천재 예술가 피카소의 삶과 예술을 총망라하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시이다. 예술가가 꿈꿀 수 있는 모는 가능성에 도전한 전무후무한 피카소의 신화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아비뇽의 처녀들 (캔버스에 유화, 1907, 243.9*233.7cm)
프랑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 걸작 110점 국내 최초 단독 전시
“나에게 미술관을 달라, 나는 그 안을 가득 채울 것이다”
프랑스 파리 소재의 국립피카소미술관은 단일 작가 미술관으로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미술관이다. 피카소 사망 후 유족에게 부과된 막대한 상속세를 대신해서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작품 등을 모아 1985년 문을 연 피카소미술관은 5천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다. 또한 피카소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화, 조각, 판화, 데생, 도자기, 자료 등 방대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프랑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의 소장품 110여 점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피카소 예술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이다. 이번 전시는 유화, 판화, 조각, 도자기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대기 별로 관람할 수 있다.
70년 만의 역사적인 한국 방문 “한국에서의 학살(1951)”
“그림은 단지 집안을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 전쟁 6개월이 지난 1951년 1월에 피카소는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ee)”을 완성한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파리에서 열린 살롱 전에 이 작품을 공개하였다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예술을 통해 고발한 이 작품은 “게르니카”(1937)와 “시체안치소”(1944-1945)와 더불어 피카소의 반전 예술 3대 걸작이다. 작품 발표 70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 기념비적인 이 작품은 한국이라는 말이 작품 제목에 들어갔다는 특별함 외에도 피카소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과 인류애를 엿볼 수 있는 반전화의 최고 대표작이다.
연대기적 테마 구성 –Exhibition Composition-
Ⅰ.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혁명의 시대 –Form Barcelona to Paris, Era of Revoution
Ⅱ. 질서로의 회복,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 –Return to Order, Classicism and Surrealism
Ⅲ. 볼라르 연작 –Suite Vollard
Ⅳ. 새로운 도전, 도자기 작업 –New Perspective, Ceramics
Ⅴ. 피카소와 여인 -Picasso and Women
Ⅵ. 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War and Peace, around “Massacre en Coree”
Ⅶ. 마지막 열정 – Last Passion
Ⅰ.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혁명의 시대 –Form Barcelona to Paris, Era of Revoution
파라렐로의 콘서트 카페 (목판에 유화, 1901, 36*48cm)
담배 파이프, 유리잔과 트럼프 카드 (캔버스에 유화 ,1918, 38*46cm)
콧수염이 있는 남자 (캔버스에 유화, 1914, 65.5*46.6cm)
Ⅱ. 질서로의 회복,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 –Return to Order, Classicism and Surrealism
주앙레팽의 풍경 (캔버스에 유화 1920. 52*70cm)
편지 읽기 (캔버스에 유화, 1921, 184*105cm)
피에로 복장의 폴 (캔버스에 유화, 1925, 130*97cm)
Ⅲ. 볼라르 연작 –Suite Vollard
볼라르 초상Ⅱ (동판, 1937, 49.7*38.7cm)
잠든 미노타우로스를 지켜보고있는 여신 차림의 마리 테레즈
마리 테레즈를 표현한 조각상과 세 송이의 꽃이 담긴 꽃병이 있는 조각가의 두상
Ⅳ. 새로운 도전, 도자기 작업 –New Perspective, Ceramics
부엉이가 있는 원형 꽃병 (적토, 1957. 깊이30cm 지름 35cm)
알을 품은 비둘기 (백토, 1953. 14*25*21)
여인의 두상이 있는 석판 (백토, 1952, 55.5*32.5*1cm)
Ⅴ. 피카소와 여인 -Picasso and Women
마리테레즈의 초상 (캔버스에 유화, 1937, 100*81cm)
창문 앞에 앉아있는 여인 (캔버스에 유화, 파스텔, 1937, 130*97.3cm)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 (캔버스에 유화, 1937, 81*60cm)
Ⅵ. 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War and Peace, around “Massacre en Coree”
한국에서의 학살 (합판에 유화, 1951, 110*210cm)
게르니카 (캔버스에 유화, 1937, 776*349cm)
테이블 위의 해골, 성게와 램프 (합판에 유화, 1945, 81*100cm)
염소 (혼합재료 1950. 120.5*144cm)
Ⅶ. 마지막 열정 – Last Passion
칸느 해안 (캔버스에 유화 1958. 130*195cm)
보브나르크의 식탁 (캔버스에 유화, 1959, 195*280cm)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함석, 1961, 128*60*35cm)
<관람 후기>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에 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엄마와 딸은 코로나-19의 눈치를 보면서 움츠리고 기다렸다. 독서실에 자신을 가두고 책과 씨름하던 딸의 시험이 끝났을 때 코로나-19는 눈치코치 없이 더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하루는 딸이 한숨을 쉬면서 푸념했다. 우리 집 거실이 푹 꺼질 듯한 한숨이었다. 피카소 전시회 마감이 임박했다는 것이었다. 딸의 안타까워하는 처연한 모습에 밤잠을 설치고 서울행을 강행했다. 모녀는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차창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소리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엄마와 딸이다.
코로나-19가 모습을 바꾸면서 업그레이드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주저할 수만은 없었다. 모녀는 바이러스 차단 치수가 가장 높은 KF-94 마스크를 두 개씩 챙겼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여 전시회를 관람하고 철저히 손을 씻고 부여로 오는 버스에 탑승하기 전에 마스크를 새것으로 교체 착용했다. 손 소독제를 이동할 때마다 철저하게 사용했다.
예술의 전당 전시회장에 도착하여 딸은 인터넷으로 예매한 티켓을 발권하고 엄마는 오디오를 대여했다. 모녀의 철칙이다. 전시회장에 입장한 후에는 오디오를 착용하고 각자 관람한다. 어쩌다 같은 작품 앞에서 만나더라도 눈인사만 나누고 철저하게 타인처럼 작품 감상에 몰입한다.
전시회 관람이 끝난 후 도록을 구매하는 것도 모녀가 정한 법이다. 전시회 작품을 감상할 때 오디오를 대여해서 철저하게 감상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되는 것을 아쉬워했다. 하여 모녀는 작품에 관한 도록을 두 권 산다. 전시회에 함께 가지 못한 동생을 배려하는 누나의 마음이다. 동생을 생각하는 누나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했다. 누나에게 도록을 건네받고 탄성을 지를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나와서 이태리 요리 전문 식당에 들어갔다. 서울 전시회에 올 때마다 들르는 모녀가 정한 단골 식당이다. 단골이라지만 일 년에 고작 두 번 오는 곳이다. 스파게티와 피자를 주문하고 그때부터 모녀는 작품에 대한 감동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소곤소곤 속삭이듯 대화를 했다.
모녀는 피카소가 입체파 화가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조각, 판화, 데생, 도자기, 자료 등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는 것에 똑같이 감동했다. 딸은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에 인상 깊었다고 역설했다. 유명한 화가 피카소의 작품에서 우리나라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고 말하는 딸의 감동은 작품 앞에서 말하듯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엄마는 피카소의 여인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전시회 벽에 ‘평생 동안 나는 사랑만 했다. 사랑 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라는 피카소의 말을 메모했다가 딸에게 보여주면서 피카소의 작품의 전환점에 항상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는 것을 역설했다. 사랑이 위대하다고 말했더니 딸이 피식 웃으면서 엄마가 예술가의 사랑에 대해 관대해졌다고 말했다.
남부터미널에서 부여행 버스표를 사고 잠깐의 여백이 있었다. 딸이 도넛 가게를 보더니 대형 상점에 입점하는 상품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카드를 내주면서 먹고 싶은 만큼 사라고 했다. 딸은 점심 식사 후 얼마 되지 않았으나 집에 가져가겠다고 하고는 도넛을 샀다. 딸이 조심스럽게 “엄마, 도넛 옆에 고로케도 사면 안될까요? 고로케를 저렇게 많이 만들어 진열했는데 손님이 없어요. 주인 할아버지 속상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카드를 가지고 고로케 가게로 뛰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헤실 웃었다. 우리 秀珍이 착하게 잘 컸다!
엄마는 딸의 미래, 딸은 엄마의 과거
예술의 전당
피카소 전시회 관람후
피카소 전시회 관람 후
피카소에 감동한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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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피카소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 보다 두 모녀의 정다움이 더욱 부럽습니다.
따님 잘 키웠군요~^^
어쩜 마음씨도 그렇게 고운지...
그 딸이 누구 닮았을까요?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했는데. . .
그래도 좋습니다.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