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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집념으로 남종문인화가의 외길을 걸어 온 소천 김천두
詩·書·畵 3절을 겸비한 우리나라 한국화 최고의 지성으로 우뚝 선 巨木
남종문인화가인 소천 김천두 선생은 전라도 장흥군 관산읍 평촌리에서 태어나 조부(祖父) 김익수(金益洙)의 예술적인 감성에 영향을 받았으며, 늘 <유천재(柳川齋)>라 부르던 서재에 다초 위복량, 이월초, 소산 주복문 등 한학자와 서예가, 화가들이 많이 드나들어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고 자라 오히려 회화라는 것이 그에게는 특별한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유천재 시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읽었으며 먹물을 한 대야 갈아 놓고 먹물이 다 떨어져 그칠 때 까지 지칠 줄 모르고 글씨를 썼으며 용맹정진 하여 소천은 필묵을 보면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았다.
소천의 글씨는 단정하고 힘이 있으며 부드러운 가운데 필획이 자연스럽게 운영되고 있다.
소천은 현대 서예에서는 기초를 등한시 하여 나타난 현상이 처음부터 너무 빨리 변화를 구하려고 했지만 진정한 변화의 의미를 몰라서 매우 기괴하고 난해한 서체의 세계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소천은 예를 들어 말하시기를, “시도 이백의 시를 보면 일반인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하며 일반인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기만이 아는 매우 기괴하고 이해 할 수 없는 시는 시도 아니다. 시는 여러 사람이 공감 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한다”고 하였다.
소천은 시와 문장을 그리고 학문에도 깊어 법고창신(法古創新)한 조용한 사군자(士君子)적 고고한 정신으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서예는 오랜 역사를 가진 풍부하고도 다양한 우리의 전통예술이다. 실용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로 서법 예술로 승화되어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그 변천과정으로 우리 주변에 일상생활과 연관하여 여러 분야와 결합하여 다양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주변에서 인격 수양은 물론, 침착성과 인내심 그리고 강인함을 기르려고 서예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과연 서예가 우리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이 있기에 사람들은 심신의 수련을 위해서 서예를 선택한다.
서예란 검정의 묵색을 이용하여 지면에 선과 점으로 표현하는 예술로서 문자의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삼는 조형적 추상적 예술이다. 그래서 서구 단색파 글자 추상화에 영향을 미쳤다. 서예는 점과 선·획(劃)의 태세(態勢)·장단(長短), 필압(筆壓)의 강약(强弱)·경중(輕重), 운필의 지속(持續)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진다. 서예는 그 미(美)라는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기가 어려우며 다른 예술과는 달리 그 미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또는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의 마음과 눈에만 보일 뿐 문외한의 눈에 는 한갖 먹선에 지나지 않는 이른바 글씨일 뿐이다.
글씨는 마음의 그림 이다.글씨는 그것을 쓴 사람의 인품과 같다. 이는 쓴 사람의 심성이나 심리 상태가 잘 나타나는 글씨를 특징을 말해 준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서화동근(書畵同根)’이라 한다.
“소천의 그림은 시(詩)·서(書)·화(畵)가 삼박자를 이룬다. 시를 이해하고 음미하면서 작업하기에 그림의 분위기 또한 그런 정취에 녹아든다. 전형적인 남화풍의 산수이면서도 그윽한 깊이를 느끼게 하는 것은 문인으로서의 격조를 견지하기 때문이리라.” (신항섭 미술평론가)
得粮바다에 해 오르니 水波는 푸르고照蘇의 석양볕은 서운이 붉구나
日昇得粮水波綠 落照蘇山瑞雲紅
화백은 작품 ‘天冠山’에서 자작시 ‘등천관산유람(登天冠山遊覽)’을 노래하고 있는데 산에서 바라본 득량만의 서정을 읊은 시 중 일부다. 화백은 “가을엔 억새밭이 은빛 물결을 출렁이고 천불, 천탑과 기암괴석 사이로 다도해가 한 폭의 수묵산수화를 펼쳐 보이며 겨울엔 동백꽃이 추운 한겨울을 잊게 한다”고 회상했다.
유천재 한시(위)/천년노송(아래)(김천두 작품)
마음이 그려져야 고상한 그림 부분, 부분이 실경이면서도 그러나 전체적으로 공상적인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는 화백의 화법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필선(筆線)이다. 서법(書法)의 기본 획을 사물 묘사의 방법으로 전용하고 있는데 점선 따위로 초목이나 산천의 모든 사물을 묘파해 냄으로써 사물에서 매우 박진감 있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는 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가장 개성적인 산수화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글씨의 조각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그림이 되고 있다. 덩어리를 깨면 글씨의 파편, 그 파편을 모으면 그림이 된다.” (박용숙 미술평론가)
또 작품은 화제(畵題)를 담는다. 고시도 인용하지만 자작시도 적지 않다. “한국화는 고상해야 한다. 손으로 그린 것 같지만 마음이 그려져야 그러한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작가와 대화에서)
리인위미(里仁爲美)라 했던가. 어진 마음이 깃든 곳이면 그 거처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화백의 산수에 담긴 우리 산하(山河)는 “무덤덤한 그림, 그러한 고상한 그림을 남기고 싶다”는 그의 철학처럼 아름답다. 기교에 빠지는 것을 일생 경계하고 유· 불교의 깊은 사상과 철학의 학업에 정진해 온 그의 산하는 화면에서 고요히 살아난다. 그 강가 실버들 아래 나루터나 노송(老松)이 길을 안내하는 산길 초입에, 봄비에 젖은 모란도와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매화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다.
소천 선생을 남종문인화가 라 평가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먼저 그의 작품을 보면 산수, 화조를 막론하고 화제(畵題)가 담겨 있는데, 이는 대부분 자작시로 어려서부터 배운 한학에 기초한 것이며 규슈대학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것이 한층 그 깊이를 더하였다.
한편 남화풍의 소재를 그대로 받아들인 그의 산수화는 산과 물, 나무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호남의 남화에 뿌리를 두어 엄격하고 명확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남종화가 화풍의 외형적인 양식의 수용에 치중하고 정신적인 추구를 소홀히 한 것을 지적한 안휘준 교수의 지적과는 달리 그의 산수화는 진하고 힘 있는 필치와 폭넓은 화제를 통해 작가의 품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그는 남종문인화가이다.
평론가 이구열이 지적했듯, 흔히 호남풍으로 일컬어지는 고전적 남종화법의 산수화와 화훼 그리고 일반적 문인화 화제에 충실하려는 한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적 개성주의나 어떤 표현적 시대성을 무엇보다 중요시 하는 가치관의 측면에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데 이는 그 지역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처럼 서화전통의 계승 변모와 현대화라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때 전통을 지키고 이를 계승하는 작가는 현대적인 변모와 시대성의 흐름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을 받을 위험이 있다. 소천 김천두 선생은 스스로도 현대적인 변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다만 시대의 흐름이나 유행보다는 자신의 것을 지키고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작가 의식이 강하다.
그의 호 소천(小天)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 조정이관 왈천이 소지는 비천이 소아라(坐井而觀天,曰天小者,非天小也) 우물 가운데 앉아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적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우물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늘이 적게 보인 것이다. 즉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라고 작가가 말했듯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되 한편으로 커다란 포부를 갖고 모든 경색을 보고, 담대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숨은 뜻이 있다. 다시 말해 ‘소천(小天)’이라는 그 의미를 일생을 통해 실천한 화가인 것이다.
소천 김천두는 호남화단 대가들로부터 사사, 남화의 정상급 거목 의제 허백련, 목재 허행면 남농 허건과의 만남과 의제의 춘설헌(春雪軒)에서 사군자,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고 월전 장우성에게서 인물, 화조 등을 사사 받아 개성 있는 자기정신세계 표현을 위한 회화세계를 추구해 왔다. 저서로는 <소천 한 시집>, <시·서·화 삼절과 남종화 이론>, 화집 <小天>이 있다.
소천 김천두 가(家)는 3대가 화가의 맥을 잇고 있는 드문 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들 김선두가 중앙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김선일이 한국 산수화의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또 김천두 옹의 손자인 김선두의 자 김중일(서울대 한국화과 졸업)도 동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ARISU
◆ 소천 김천두 · 1928년 전남 장흥 출생 · 한국화 개인전 36회 · 구주대학 문학부 철학전공 · 현대미술초대전 초대작가 (국립현대미술관) · 아세아현대미술대전 초대출품(동경) · 한일 및 한중미문화교류전 다수출품 · 오원국제연맹전 출품 · 프랑스국제미술교류전 출품 · 동경국제미술협회전 출품 · 한중국제문화교류전 초대출품 · 중화민국건국기념 한,중명가전 초대출품 · 뉴욕캠브리지 미술관 초대출품 · 의제예술상 초대전 출품(광주시립미술관) · 한국의 자연전 초대출품(국립현대미술관) · 동서양화 신춘초대전(서울갤러리) | · 북경아시아 미술대전 (천안문고궁) · 국제 미술 교류전출품(요코하마 시민 갤러리) · 동남아 미술 초대전(타이페이) · KBS주최중진작가 초대전 (신세계 미술관) · 한국서화작가협회 부회장역임 · 한국전업미술과협회 고문 · 작품제작 · 국무위윈 회의실 · 일본국 대판 시장실 · 육군사관학교 대강당 · 한국과학기술처 · 홈페이지 : www.newartshop.co.kr |
詩·書·畵 3절을 겸비한 우리나라 한국화 최고의 지성으로 우뚝 선 巨木
남종문인화가인 소천 김천두 선생은 전라도 장흥군 관산읍 평촌리에서 태어나 조부(祖父) 김익수(金益洙)의 예술적인 감성에 영향을 받았으며, 늘 <유천재(柳川齋)>라 부르던 서재에 다초 위복량, 이월초, 소산 주복문 등 한학자와 서예가, 화가들이 많이 드나들어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고 자라 오히려 회화라는 것이 그에게는 특별한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유천재 시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읽었으며 먹물을 한 대야 갈아 놓고 먹물이 다 떨어져 그칠 때 까지 지칠 줄 모르고 글씨를 썼으며 용맹정진 하여 소천은 필묵을 보면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았다.
소천의 글씨는 단정하고 힘이 있으며 부드러운 가운데 필획이 자연스럽게 운영되고 있다.
소천은 현대 서예에서는 기초를 등한시 하여 나타난 현상이 처음부터 너무 빨리 변화를 구하려고 했지만 진정한 변화의 의미를 몰라서 매우 기괴하고 난해한 서체의 세계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소천은 예를 들어 말하시기를, “시도 이백의 시를 보면 일반인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하며 일반인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기만이 아는 매우 기괴하고 이해 할 수 없는 시는 시도 아니다. 시는 여러 사람이 공감 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한다”고 하였다.
소천은 시와 문장을 그리고 학문에도 깊어 법고창신(法古創新)한 조용한 사군자(士君子)적 고고한 정신으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서예는 오랜 역사를 가진 풍부하고도 다양한 우리의 전통예술이다. 실용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로 서법 예술로 승화되어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그 변천과정으로 우리 주변에 일상생활과 연관하여 여러 분야와 결합하여 다양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주변에서 인격 수양은 물론, 침착성과 인내심 그리고 강인함을 기르려고 서예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과연 서예가 우리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이 있기에 사람들은 심신의 수련을 위해서 서예를 선택한다.
서예란 검정의 묵색을 이용하여 지면에 선과 점으로 표현하는 예술로서 문자의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삼는 조형적 추상적 예술이다. 그래서 서구 단색파 글자 추상화에 영향을 미쳤다. 서예는 점과 선·획(劃)의 태세(態勢)·장단(長短), 필압(筆壓)의 강약(强弱)·경중(輕重), 운필의 지속(持續)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진다. 서예는 그 미(美)라는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기가 어려우며 다른 예술과는 달리 그 미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또는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의 마음과 눈에만 보일 뿐 문외한의 눈에 는 한갖 먹선에 지나지 않는 이른바 글씨일 뿐이다.
글씨는 마음의 그림 이다.글씨는 그것을 쓴 사람의 인품과 같다. 이는 쓴 사람의 심성이나 심리 상태가 잘 나타나는 글씨를 특징을 말해 준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서화동근(書畵同根)’이라 한다.
“소천의 그림은 시(詩)·서(書)·화(畵)가 삼박자를 이룬다. 시를 이해하고 음미하면서 작업하기에 그림의 분위기 또한 그런 정취에 녹아든다. 전형적인 남화풍의 산수이면서도 그윽한 깊이를 느끼게 하는 것은 문인으로서의 격조를 견지하기 때문이리라.” (신항섭 미술평론가)
得粮바다에 해 오르니 水波는 푸르고照蘇의 석양볕은 서운이 붉구나
日昇得粮水波綠 落照蘇山瑞雲紅
화백은 작품 ‘天冠山’에서 자작시 ‘등천관산유람(登天冠山遊覽)’을 노래하고 있는데 산에서 바라본 득량만의 서정을 읊은 시 중 일부다. 화백은 “가을엔 억새밭이 은빛 물결을 출렁이고 천불, 천탑과 기암괴석 사이로 다도해가 한 폭의 수묵산수화를 펼쳐 보이며 겨울엔 동백꽃이 추운 한겨울을 잊게 한다”고 회상했다.
유천재 한시(위)/천년노송(아래)(김천두 작품)
마음이 그려져야 고상한 그림 부분, 부분이 실경이면서도 그러나 전체적으로 공상적인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는 화백의 화법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필선(筆線)이다. 서법(書法)의 기본 획을 사물 묘사의 방법으로 전용하고 있는데 점선 따위로 초목이나 산천의 모든 사물을 묘파해 냄으로써 사물에서 매우 박진감 있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는 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가장 개성적인 산수화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글씨의 조각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그림이 되고 있다. 덩어리를 깨면 글씨의 파편, 그 파편을 모으면 그림이 된다.” (박용숙 미술평론가)
또 작품은 화제(畵題)를 담는다. 고시도 인용하지만 자작시도 적지 않다. “한국화는 고상해야 한다. 손으로 그린 것 같지만 마음이 그려져야 그러한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작가와 대화에서)
리인위미(里仁爲美)라 했던가. 어진 마음이 깃든 곳이면 그 거처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화백의 산수에 담긴 우리 산하(山河)는 “무덤덤한 그림, 그러한 고상한 그림을 남기고 싶다”는 그의 철학처럼 아름답다. 기교에 빠지는 것을 일생 경계하고 유· 불교의 깊은 사상과 철학의 학업에 정진해 온 그의 산하는 화면에서 고요히 살아난다. 그 강가 실버들 아래 나루터나 노송(老松)이 길을 안내하는 산길 초입에, 봄비에 젖은 모란도와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매화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다.
소천 선생을 남종문인화가 라 평가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먼저 그의 작품을 보면 산수, 화조를 막론하고 화제(畵題)가 담겨 있는데, 이는 대부분 자작시로 어려서부터 배운 한학에 기초한 것이며 규슈대학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것이 한층 그 깊이를 더하였다.
한편 남화풍의 소재를 그대로 받아들인 그의 산수화는 산과 물, 나무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호남의 남화에 뿌리를 두어 엄격하고 명확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남종화가 화풍의 외형적인 양식의 수용에 치중하고 정신적인 추구를 소홀히 한 것을 지적한 안휘준 교수의 지적과는 달리 그의 산수화는 진하고 힘 있는 필치와 폭넓은 화제를 통해 작가의 품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그는 남종문인화가이다.
평론가 이구열이 지적했듯, 흔히 호남풍으로 일컬어지는 고전적 남종화법의 산수화와 화훼 그리고 일반적 문인화 화제에 충실하려는 한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적 개성주의나 어떤 표현적 시대성을 무엇보다 중요시 하는 가치관의 측면에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데 이는 그 지역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처럼 서화전통의 계승 변모와 현대화라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때 전통을 지키고 이를 계승하는 작가는 현대적인 변모와 시대성의 흐름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을 받을 위험이 있다. 소천 김천두 선생은 스스로도 현대적인 변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다만 시대의 흐름이나 유행보다는 자신의 것을 지키고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작가 의식이 강하다.
그의 호 소천(小天)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 조정이관 왈천이 소지는 비천이 소아라(坐井而觀天,曰天小者,非天小也) 우물 가운데 앉아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적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우물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늘이 적게 보인 것이다. 즉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라고 작가가 말했듯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되 한편으로 커다란 포부를 갖고 모든 경색을 보고, 담대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숨은 뜻이 있다. 다시 말해 ‘소천(小天)’이라는 그 의미를 일생을 통해 실천한 화가인 것이다.
소천 김천두는 호남화단 대가들로부터 사사, 남화의 정상급 거목 의제 허백련, 목재 허행면 남농 허건과의 만남과 의제의 춘설헌(春雪軒)에서 사군자,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고 월전 장우성에게서 인물, 화조 등을 사사 받아 개성 있는 자기정신세계 표현을 위한 회화세계를 추구해 왔다. 저서로는 <소천 한 시집>, <시·서·화 삼절과 남종화 이론>, 화집 <小天>이 있다.
소천 김천두 가(家)는 3대가 화가의 맥을 잇고 있는 드문 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들 김선두가 중앙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김선일이 한국 산수화의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또 김천두 옹의 손자인 김선두의 자 김중일(서울대 한국화과 졸업)도 동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ARISU
◆ 소천 김천두 · 1928년 전남 장흥 출생 · 한국화 개인전 36회 · 구주대학 문학부 철학전공 · 현대미술초대전 초대작가 (국립현대미술관) · 아세아현대미술대전 초대출품(동경) · 한일 및 한중미문화교류전 다수출품 · 오원국제연맹전 출품 · 프랑스국제미술교류전 출품 · 동경국제미술협회전 출품 · 한중국제문화교류전 초대출품 · 중화민국건국기념 한,중명가전 초대출품 · 뉴욕캠브리지 미술관 초대출품 · 의제예술상 초대전 출품(광주시립미술관) · 한국의 자연전 초대출품(국립현대미술관) · 동서양화 신춘초대전(서울갤러리) | · 북경아시아 미술대전 (천안문고궁) · 국제 미술 교류전출품(요코하마 시민 갤러리) · 동남아 미술 초대전(타이페이) · KBS주최중진작가 초대전 (신세계 미술관) · 한국서화작가협회 부회장역임 · 한국전업미술과협회 고문 · 작품제작 · 국무위윈 회의실 · 일본국 대판 시장실 · 육군사관학교 대강당 · 한국과학기술처 · 홈페이지 : www.newartshop.co.kr |
East Wind. Korean Traditional. Paintings Academy.
한국의 한국화는 그 고졸한 멋에서 가히 한민족의 심성과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창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도 잊고 있는 한국과 우리 문화의 본질을 외국인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따라서 스스로의 자존을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일련의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한국 대중들에게도 우리 그림과 마음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한국화 수강생 모집 우리의 그림인 한국화의 묘사와 기초 과정을 실습과 동양화론을 지도 합니다. 기초부터 창작에 이르기까지.초급.중급.고급 과정으로 지도하며 한국화 작가 지망생.취미생반은 저녁 시간에 직장인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일반: 오전반 10시-1시 까지. 오후반 2시-5시 토요일 특별반: 오전반 10시-1시 까지. 오후반 2시-5시 평일 저녁반; 저녁 7시-9시 까지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 가장 세계적인 그림 입니다. 한번 배워 보세요 한국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 한국화는 정신 함양과 마음수련 자기개발에 도움이 된다. *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한국화를 하기 때문에 초심자도 누구나 가능하다. 지도 과목 산수화 사군자 채색화 석채화 수묵화 화조화 민화 문인화 한국화 기법 기초 한국화 한국화 이론 외국인 한국화반 한국화 미대 입시반 개인지도로 수업 합니다 수강 신청 서울 송파구 가락동 96-1 가락우성아파트 상가 3층 지하철 8호선,3호선 가락시장 전철역 3번 출구 가락우성아파트 상가 3층 02.406.6569. 010.7643.7355 김선일화실 http://cafe.naver.com/sunil7355 김선일화실 뉴아트샵 www.newartshop.co.kr 김선일화실 http://www.youtube.com/watch?v=ipFaoz... www.newartshop.co.kr /010ㅡ7643-7355 김선일화실 http://cafe.naver.com/sunil7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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