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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꾸다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입니다 하였더라
[아일랜드]
인격적 만남
창28:10-22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복제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클론(clone)’ 이라는 복제인간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복제인간을 통해서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사막 지하에 벙커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복제인간을 일종의 상품처럼 만들고 있었습니다.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도록, DNA를 준 원래 인간의 장기 중 하나에 이상이 생기면, 지체 없이 복제된 인간의 장기를 떼어내고, 돈 많은 원래의 인간에게 이식하여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의 인간,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 영화 속에 나타납니다.
이 영화에서 처음에는 복제인간을, 인격도, 감정도 없는 인간, 그리고 생각하지도 않은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로 만들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에서의 복제물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복제인간을 만들다 보니, 복제된 인간들도 생각할 줄 알았고, 사랑의 감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복제인간도 의지와 결단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인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이 영화의 절정은 복제인간과 원래 인간의 만남입니다. 복제인간이 감정과 인격이 없었으면 좋았겠는데, 이 복제인간도 또 하나의 분명한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그 인간은 독립성이 있는 생명이고, 감정과 의지와 결단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제인간을 함부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경고해 주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럼 영화를 보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동물과 줄기 세포의 복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던 사건이 실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제는 아직도 실험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른 생물체와 다른 이유는 바로 사람이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께서는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과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DNA를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를 독특하면서도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율의지도 없는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로 만나시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막연한 주술적인 관계에서의 만남도 원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친구처럼 대하시고, 우리와 대화하기 원하십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친밀한 만남, 즉 인격적인 만남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 존재’ 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주인공 야곱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인격적으로 만나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의 창조주이시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쉽게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때마다 인간은 투덜거립니다. ‘하나님, 안 계시죠? 하나님, 나하고는 상관도 없죠! 하나님, 나 같은 것은 관심도 없죠?’라며 하나님을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불만을 쏟아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생각하다가도 금방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의 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욕망과 세속적인 집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힘들어 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야곱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습니까? 그는 본문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버지 이삭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는 사실을 귀로 듣기만 했을 뿐, 결코 야곱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지만 ‘나(야곱)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있을 때는, 오히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부모님과 같이 있을 때는 오로지 장자권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얻기 위해 형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 이삭을 거짓말로 속여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옆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도피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가진 것과 사랑하는 가족을 다 두고 떠나와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딱딱한 돌덩어리를 베개 삼고 드러누워 있을 때, 자기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처량하다고 느끼고 있을 그때에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야곱이 잠을 자게 되었을 때, ‘꿈을 꾸었다’고 말합니다. 사닥다리가 하늘 끝부터 땅바닥까지 내려와 있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야곱이 꾸었던 이 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땅의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야곱, 땅의 것에 욕심을 내고 추구했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야곱아, 인생은 땅의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늘의 것도 있단다. 야곱아, 현실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네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초월적 세계에 새로운 복의 역사가 네 앞에 열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만을 바라보고 땅의 축복에만 얽매여 있던 야곱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은혜의 역사가 열리게 되는 사건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들어가면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만남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결혼이라는 만남,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부모와의 만남, 인생 끝까지 가고 싶은 우정이라는 만남이 있습니다. 이렇듯 좋은 만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꺼려지는 만남도 있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데 만날 수 밖에 없는 힘든 만남도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남포교회의 박영선 목사님이 우리나라에서 노사연의 ‘만남’이란 노래가 가장 좋은 복음성가라고 말하면서, 손수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운명이었소…’
[만남, 정채봉] 지금은 고인이 된 정채봉님의 ‘만남’이란 시가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 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입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
우리는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생선 같은 비린내 나는 만남, 꽃송이와 같은 조심스런 만남,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손수건 같은 만남, 어떤 만남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서로의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인격적인 만남이 최우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역시 인격적인 만남이 중요합니다. 그저 하나님을 아는 관계에서 벗어나 함께 삶을 동행할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분과 함께 생활하고, 이야기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그분의 기쁨과 고통, 그리고 비전을 함께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만남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에 대해 살펴보고 은혜 받는 귀한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고난 속에서 다가오신다.
[10-11절]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는 야곱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처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신뢰를 잃어버렸고, 사랑하는 형과의 관계까지 깨어져 그 형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또한 장자권에 대한 욕심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도 잃게 되었고, 어머니의 탄식과 근심의 대상이 되어 정든 고향 땅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허허벌판 빈들에서 야곱은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면서 자기 신세를 한탄했을 것입니다. 이때 야곱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습니까? 절대 고독과 절망, 허무감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철저하게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비겁한 자인가? 나는 왜 거짓과 술수까지 써서 형과 아버지까지 속였을까?’
이때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람에게 극심한 절망과 고독의 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자포자기하고, 심지어는 죽음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고독한 현실을 맞이하게 되어 사방이 막힌 상황이었지만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순간에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조용히 자신이 그 동안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입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와 함께하시겠다! ‘ 하나님께서 이렇게 야곱을 찾아오셨고 야곱도 비로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고난을 통해, 그 동안 야곱이 그리도 집착했던 모든 것이 다 허무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장자권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는 만남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만났습니까? 분명한 것은 인간적인 집착과 욕심에 붙잡혀 있을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뒤엎어 놓으시고, 잘나가던 일도 어느 순간 멈춰 서게 하시며,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당하게 되는 고난의 이유를 우리는 다 알 수 없고,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분명한 한 가지 이유는, 고난을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는 무장해제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공하고 번성해지면 하나님을 찬양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면 하나님을 잠깐 찬송하다가, 곧 그 모든 것이 내가 잘나서 된 것인 줄 착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어려움과 힘든 일이 다가오면, 하나님이 나를 안 돌보신다고 원망하고, 하나님이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갔다고 불평하는 인간이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공과 번영의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도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실패와 고통의 현장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고난과 실패의 현장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다가오셔서 내 이름을 부르시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이루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우리 자신과의 만남을 원하신다.
[13절]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외로움과 후회함에 빠져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되고 이삭의 하나님도 되지만 나는 바로 너 야곱의 하나님이 되길 원한다! 이제 너는 내가 너의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알아라! 야곱아,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너의 할아버지 신앙과 아버지 신앙에 붙잡혀 있지 말고, 야곱 네 자신이 직접 나를 만나야 합니다. 네가 추구하던 장자권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네가 나를 만나 너의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의 술수와 지식으로 하나님을 재단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이제 네 어머니의 치마끈과 아버지의 바지자락을 그만 놓고, 네 자신의 신앙으로 바르게 서라! 이제는 친구의 권면이나 가족의 신앙으로 예수를 믿지 말고, 너 자신 스스로의 신앙으로 직접 나를 만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어머니의 신앙으로 교회까지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친구의 신앙 때문에 억지로 예배당까지 끌려 나옵니까? 하나님을 직접 만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의 하나님으로 만나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인격적 만남은 나 자신과의 만남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이때 신앙은 도약이 있고, 기쁨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내 가슴으로 뜨겁게 만나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삶에서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 우리의 가슴이 터지는 것 같은 벅찬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때로는 우리의 지성이 하나님 만나기를 거부하게 하고, 때로는 우리의 돈과 재물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내가 자랑하는 명예, 내 권력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의 가슴은 뜨겁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총에 감격스러워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 속에 기쁨의 눈물을 쏟게 됩니다.
예수를 믿은 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어도, 감격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를 부르시고 내 인격 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여러분 자신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의 가슴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감격을 주시고 놀라움과 경탄을 생기게 하시며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셋째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
[14-16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이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나니, 주님께서 야곱을 축복의 인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로 인하여 네 자손이 복을 얻고 네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복의 사람,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길 바랍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내가 예수 믿는 것에 감격해야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보이며 증거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예수 믿는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심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나가면서
지금 우리 가운데 우리를 도와줄 어떤 사람도 없고 어떤 환경도 갖추어지지 않아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방이 꽉 막혀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습니까? 해야 할 일은 있는데 내가 가진 술수로 지식으로 노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주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때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네 사랑하는 딸이다. 너를 복의 통로로 삼겠다. 너를 통해서 이 땅에 많은 사람들에게 내 영광을 들어내겠다’고 오늘 이 시간도 사랑하는 여러분을 주님께서 초청하시면서 만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이 아니라, 나의 신앙, 나의 인격, 나의 가슴으로 주심을 받아들이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복의 통로가 되며 주님과 함께 하는 멋진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