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2008/12/15
http://blog.hani.co.kr/voyager
쏘울을 산 누군가가 정지신호를 받아 멈춰서 있는데 옆에 선 차가 창문을 내리고 빵빵거렸다. 길을 물어보나 싶어서 창문을 내려보니 옆차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더란다.
"그차 어디서 샀어요? 얼마에요? 너무 이쁘다."

쏘울의 모습. 이쁘긴 이쁘다.
아마 자동차 업계에서만 도는 이야기겠지만, 쏘울이 나오고 얼마 안돼 이 바닥에서 퍼진 이야기 중 하나다. 디자인적으로 이렇게 화제가 된 차는 최근에 거의 없었던 듯 싶다.
의심할 여지없이 쏘울은 이쁘다. 둥그런 앞태와 우뚝 솟은 A필러(앞유리창과 앞문 사이의 쇠 부분. 필러는 기둥이라는 뜻으로 차 뚜껑과 차체를 이어주는 부분을 말한다. 대부분의 차는 앞 중간 뒤 세개가 있으며 차례대로 A필러, B필러, C필러로 부른다), 뒤로 갈수록 완만하게 낮아지는 차체 라인, 깔끔하게 마무리된 뒷태까지 나무랄데 없이 이쁘다.

토마토 레드 색깔에 커스터마이징을 전부 다 한 모습.
지금까지 본 많은 차량 관계자나 기자들 중에서도 쏘울이 이쁘다는 데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물론, 생각보다 차가 커서 어색하다는 반응은 곧잘 있었다. 사실 사진만 봐 오던 사람이 차를 실제로 보면 '어?' 할 정도로 차가 상당히 크긴 하다. 하지만 저 정도 크기도 안했으면 실용성 면에서는 상당히 손해를 봤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차를 기아차가 추구해온 디자인경영의 아이콘으로 생각하고 시장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장에서의 호응도 상당하다. 쏘울은 11월에 2311대를 팔았다. 국내 모델별 판매순위로는 9위였다. 전반적으로 시장이 불황인 것 치고는 선방했다. 그리고 쏘울은 원래 볼룸모델은 아니다.
하지만 흔히 이야기되는 대로 이 차가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의 영입에 따라 그의 디자인 철학인 '직선의 단순화'가 적용된 결과물은 아니다. 쏘울의 컨셉트카는 기아의 북미디자인센터에서 초안을 잡았고 이 때는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차에 입사하기 전이다. 물론 피터 슈라이어 사장 영입뒤로 그의 터치가 들어가긴 했지만 애초 콘셉트는 그의 것이 아닌 셈이다.

녹차라떼 색깔. 실제로 보면 상당히 이쁜 색깔 중의 하나다.
깍두기 같은 박스형 디자인은 흔히 닛산의 큐브와 비교된다. 이효리가 타서 유명해진 그 큐 브 말이다. 일부에서는 '베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 정도의 비슷한 점도 인정되지 않는다면 세상 디자인 중에 어떤 것이 독창적인가. 쏘울은 '전고후저'형의 박스형 디자인, 부리부리한 라이트와 둥글둥글한 전면 디자인 등 독창적인 면이 두드러진 차다.
차량 뒷면 디자인은 좀 아쉽다. 위로 열리는 트렁크문과 뒷면 라이트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자동차 디자인의 오랜 과제이긴 하지만 쏘울은 문은 문대로 깔끔하게 처리하고 라이트는 조그맣게 처리해 버렸다. 깔끔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당히 심심한 디자인이 됐다.

칵테일오렌지색 차량의 후면.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외형의 만족스러움을 생각한다면 내장은 상당히 아쉽다.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플라스틱은 싸구려 느낌이고 긁힘 등에 매우 약했다. 특히 문짝 내장은, 시승차가 좀 험하게 다뤄지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새차인데도 벌써 신발에 긁힌 자국 등이 선명했다. 가운데 대시보드 부분이나 오디오, 에어컨 조작 부분도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딱히 플라스틱 마무리가 거친 부분까지는 안보였지만 왠지 엉성한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무광의 매끄러운 플라스틱 재질 또한 이쁘다거나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디자인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재질이 나쁘면 아무리 이뻐도 소용없다.
물론 내장재를 고급화하려면 차값이 올라가야 할 것은 당연하지만 쏘울이 유난히 디자인을 강조하는 점이나 젊은 층의 자기 표현욕구를 충족시키겠다는 애초 제작 컨셉트 등을 생각한다면 내장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라이트 시트나 불이 들어오는 스피커 등은 글쎄, 사족같이 느껴지고 그 돈이면 대시보드 재질에나 돈을 더 쓰지 싶은 생각이 절로 났다. 물론, 이건 내가 생각이 고루하고 디자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내장재는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다.


야광 시트와 불들어오는 스피커는 도대체 무슨 쓸모가... 역시 내가 고루한 것인가?
실내공간은 상당히 널찍해서 좋았다. 특히 뒷좌석의 개방감이 상당했다. 역시 차는 높은게 좋다. 뒷좌석도 성인이 타도 괜찮을 정도로 풍족한 편이었다.
트렁크 공간은 예상외로 좀 좁았다. 높긴 하지만 폭이 좁아서 많은 짐을 싣기가 힘들어 보였다. 물론 뒷좌석이 접히는 등 일반 승용차보다 활용의 여지는 컸다.
승차감은, 딱 예상한 정도였다. 기자가 시승한 모델은 1600cc 가솔린 엔진이었는데, 딱 출력이 약간 떨어지는 실용차같은 승차감이었다. 차체가 높고 운전 시점도 높아서 운전 자체는 쾌적하지만 높은 만큼 흔들림도 있는 편이었다. 급회전할때 차가 밀리지는 않았으나 왠지 위태위태했다. 이것도 중심이 높은 탓이다. 정숙성 등도 세단만큼은 못했다. 승차감에서는 큰 기대를 않는 것이 좋겠다. 물론, 크게 나쁘지도 않다.

용모양 바디데칼(스티커)을 한 문라이트 블루색 차량.
그런데 길에서 데칼 차를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자유로에서 최대로 밟은 속도는 시속 160킬로미터 수준. 계기판에서 그정도였으니 실제로는 조금 낮을 수도 있겠다. 가속페달을 최대한 밟았을때 평지 속력이었다. 고속주행을 위한 차량은 아니니 이정도면 됐다 싶기도 하다. 조금 더 속도와 힘에 욕심이 나는 사람은 2.0리터 모델을 사야할 것 같다. 1.6 가솔린 모델은 최고출력 124마력, 연비 13.8km/ℓ, 2.0 가솔린 모델은 최고출력 142마력, 연비는 12.9 km/ℓ, 1.6 디젤 모델은 최고출력 128마력, 연비 15.8 km/ℓ다. (자동변속기 기준)
가격은 1.6 가솔린 모델이 1275만원~1820만원, 2.0 가솔린 모델이 1670만원~1875만원, 디젤은 1515만원~2060만원이다.(수동변속기 기준)

바닐라쉐이크색의 후측면. 바퀴에 주목하라. 선택사양인 18인치 플라워휠이다.
실제로 보면 상당히 이쁘다.
'디자인 경영'은 기아차의 경영 슬로건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결실을 맺고 있다. 로체 이노베이션, 포르테, 쏘울로 이어지는 기아차 3총사는 기아차에 상당히 활기를 넣고 있고, 시장에서도 호평이다. 기아차는 11월에 국내시장 점유율 35% 고지를 밟기도 했다. 항상 20% 초반 언저리에서만 맴돌았던 기아차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기분좋은 소식이었을까.
하지만 디자인이 발전하는 만큼 품질과 주행성능도 발전하길 바라는 기대에는 기아차가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기아차는 나쁘지 않은 차들을 만들고 있지만 디자인 혁명 못지 않게 품질 혁명도 함께 일으켰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기아차의 디자인 수준이 수직상승을 하는 만큼 그 껍데기 안에 든 내용물의 수준도 수직상승을 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