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나무
왕태삼
아파트라는 나무를 생각한다. 개나리처럼 작지만 밝은 아파트나무도 있고, 미루나무처럼 하늘 높이 비까비까 자라는 아파트나무도 있다. 그들을 누군가는 애지중지 가꾸어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아파트나무가 사유재산 너머 공공재 또는 문화재로 보일 때가 있다. 전주시 완산공원의 꽃동산도 처음엔 사유지로 시작했다. 한 개인이 수십 년간 꽃그늘을 가꾼 그곳이, 지금은 시민의 품에 안긴 유명 꽃동산으로 확장하지 않는가? 점점 소시민들 가슴에 연인들 가슴에 활활 불을 지피고 있지 않는가?
나는 아파트가 한 그루 천연기념물로 자라길 소망한다. 그것은 따로 타고나는 금수저가 아니다. 만고풍상에도 문질빈빈文質彬彬, 외관과 바탕을 조화롭게 가꿀 때 비로소 영혼을 갖는 문화재가 될 것이다. 말하자면 시기적절한 유지관리와 인문적 주인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아파트 몸통에도 물관과 체관처럼 급수관과 소방관이 있다. 한평생 끊임없이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의 수명과 같다.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내시경도 받는다. 녹슬어 천공 나면 때우기도 하고 심하면 배관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크고 작은 수술을 받기 위해 미리미리 장기수선충당금을 의무적으로 마련한다. 이렇게 주기적 몸통관리를 하게 되면 장수하는 아파트나무가 될 것이다.
또한 아파트 잎새 같은 수천수만 창문을 바라본다. 달 뜨면 신비한 잎새처럼 빛나는 창문들. 깔깔깔 하얗게 웃는 창문들이 부지기수라면, 간혹 어두운 창문이 블랙홀처럼 언뜻 비추기도 한다. 어쩌면 이 세상은 고층아파트처럼 고독과 외로움도 높아만 갈 것이다. 갈수록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줄줄이 산책하는 애완견들을 보자. 주제넘지 않게 애정과 관심으로 바라보면 그들의 기분을 다소 눈치 챌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선 미주알고주알 알 순 없지만 이웃처럼 친척처럼 바라볼 일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노치원에서 돌아와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간절한 구원의식으로 예배당처럼 산장처럼 맞이하면 좋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아파트 뿌리라는 관리사무소를 생각한다. 땅속 깊이 보이지 않는 뿌리. 오늘은 든든한 원뿌리 내일은 사랑의 실뿌리가 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상의 몸통과 잎새잎새가 윤나게 자라게 침묵의 지주목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관리사무소는 아파트나무의 기초대사라 할 수 있다. 또한 관리사무소는 스스로 뿌리돌림을 해야 한다. 더 새롭고 더 친절한 뿌리를 키워야 한다. 물론 전용과 공용의 책임경계는 분명하지만, 부르는 곳에 깨끗한 손과 마음으로 달려간다면 그 아파트는 인문적 천연기념물이 아니겠는가?
내가 만일, 아파트라는 나무를 또 관리한다면 서어나무 한 주와 장미 한 송이를 가꾸고 싶다. 숲의 천이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장수목 나무. 나이를 먹을수록 몸통이 하얀 육체미 나무. 자잘한 잎새잎새마다 할아버지와 손주들의 속삭임이 보이는 알콩달콩 나무. 그러한 서어나무는 침묵의 뿌리도 든든하고 향기로울 것이다. 그 회색빛 아파트 가슴가슴마다 한 송이 장미를 나는 달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