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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제 틈이 좀 나서 번역을 다시 해보고 있습니다. 언제 또 바빠질 지 모르는지라, 한가할 때 최대한 많이 번역하고 싶네요. 오늘은 폴 워셔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에서 종종 언급되던 존 플라벨이라는 청교도의 요한복음 3장 16절 주해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길고 짧은 번역글 종종 올리겠습니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John,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The gift of Christ is the highest and fullest manifestation of the love of God to sinners, ever made from eternity.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일은 죄인을 향한 그 분의 사랑을, 영원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크고 완전하게 나타내었다.
1. Consider how near and dear Jesus Christ was to the Father: he was his Son, ‘his only Son;’ the Son of his love, yea, one with himself; the express image of his person; the brightness of his Father’s glory: ‘Unto us a Son is given,’ Isa. 9:6, and such a Son as he calls ‘his dear Son.’ Col. 1:13. A late writer tells us, that in the famine in Germany, a poor family being ready to perish, the husband proposed to the wife to sell one of the children for bread to relieve themselves and the rest. The wife at last consented it should be so; but then they began to think which of the four should be sold; and when the eldest was named, they both refused to part with that, being their first-born, and the beginning of their strength. Well, then they came to the second, but could not yield that he should be sold, being the very picture and lively image of his father. The third was named, but that also was a child that best resembled the mother. And when the youngest was thought of, that was the Benjamin, the child of their old age; and so they determined rather to perish in the famine than part with a child for relief.
And you know how Jacob mourned when his Joseph and Benjamin were rent from him. What is a child but a piece of the parent wrapt up in another skin? And yet our dearest children are but as strangers to us in comparison of the unspeakable dearness betwixt the Father and Christ. Now that he should ever thus part with his Son, his only Son, is such a manifestation of love as will be admired to all eternity.
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였는지 숙고해보라 : 그 분은 오직 하나 뿐인 독생자셨고, 사랑하는 아들이었으며, 아버지와 하나된 존재이자 그 본체의 형상, 영광의 광채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아들을 주신바 되었는데' (사 9:6) 이는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 (골 1:13) 이었다. 예전의 한 작가에 의하면, 독일에 가뭄이 들었을 때 한 가난한 가정이 궁핍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남편은 자식들 중 하나를 팔아 나머지 식구들이 먹을 식량을 사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은 네 명의 자녀들 중 누구를 팔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첫째 자식의 이름이 거론되자, 남편과 아내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첫째는 집안의 장자이자, 힘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자식은 팔아넘기기엔 아버지를 너무나 똑닮은 아들이었고, 셋째 자식은 반대로 어머니와 너무 닮아 차마 팔 수가 없었다. 결국 막내에게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막내자식은 그들의 베냐민이자 노년에 얻은 사랑스런 자식인지라 역시나 팔 수 없었고, 자녀들 중 하나를 팔아 넘기느니 차라리 온 가족이 함께 굶어죽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야곱이 요셉을 잃고 베냐민을 보내야만 했을 때 얼마나 슬픔에 잠겼는지 떠올려 보라. 자고로 자식이란 부모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자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형언 수 없는 사랑으로 외아들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시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저 장난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분께서 아들을, 그 하나뿐인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존경받아야할 사랑의 표현일 수 밖에 없다.
2. Let it be considered to what he gave him. It breaks our heart to behold our children struggling in the pangs of death; but the Lord beheld his Son struggling under agonies that never any felt before him. He saw him falling to the ground, groveling in the dust, sweating blood, and amidst those agonies turning himself to his Father, and, with a heart-rending cry, beseeching him, ‘Father, if it be possible, let this cup pass.’ Luke, 22:42. To wrath, to the wrath of an infinite God, was Christ delivered, and that by the band of his own Father. Sure, then, that love must needs want a name, which made the Father of mercies deliver his only Son to such miseries for us.
The Lord, when the time was come that Christ must suffer, and, as it were, say, O all ye roaring waves of my incensed justice, now swell as high as heaven, and go over his soul and body; sink him to the bottom; let him go, like Jonah, his type, into the belly of hell, unto the roots of the mountains. Come all ye raging storms, that I have reserved for this day of wrath, beat upon him, beat him down, that he may not be able to look up, Psal. lx. 12. Go justice, put him upon the rack, torment him in every part, till all his "bones be out of joint, and his "heart within him be melted as wax in the midst of his bowels," Psal. xxii. 14. And ye assembly of the wicked Jews and Gentiles, that have so long gaped for his blood, now he is delivered into your hands; you are permitted to execute your malice to the full: I now loose your chain, and into your hand and power is he delivered.
2. 이제, 하나님께서 그토록 소중한 외아들을 무엇에 내어주셨는지 숙고해보라. 사랑하는 자녀가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질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아들이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고통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주님께서는 그의 아들이 땅바닥에 꼬꾸라져 먼지 속에서 처절히 몸부림치고, 피와같은 땀을 뚝뚝 흘리며, 가슴을 찢어놓는 통곡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눅 22:42) 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진노, 곧 무한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분노 속으로 그리스도는 내던져졌고, 이는 그가 사랑하는 아버지에 뜻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한 자비하심으로 외아들을 이같은 불행 속에 내어주게 만든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할까? 그리스도가 고난받는 순간이 왔을 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 내 모든 심판의 격렬한 파도들아. 하늘 높이 솟구쳐서 내 아들의 영혼과 육신에 휘몰아쳐라. 그를 집어삼켜 지옥의 밑바닥까지 가라앉게 만들어라. 과거에 그를 예표하던 요나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가 진노의 때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맹렬한 폭풍들아, 모두 일어나 내 아들을 덮쳐라. 그를 뒤덮어 더이상 하늘을 볼 수 없게 만들어라. 가라, 내 공의의 심판들아. 그에게 모든 고통을 퍼부어서 그의 '모든 뼈들이 어그러지고 그의 심장이 촛물처럼 녹아내리게' 하라. 마지막으로 너희 유대인과 이방인들, 곧 그의 피를 갈구하던 사악한 인간들아. 너희에게 걸린 제한을 잠시 풀고, 그를 너희의 손에 넘겨주겠다. 너희가 가진 악의를 그에게 모조리 쏟아내라".
3. It is a special consideration to enhance the love of God in giving Christ, that in giving him he gave the richest jewel in his cabinet, a mercy of the greatest worth and most inestimable value. Heaven itself is not so valuable and precious as Christ is: ‘Whom have I in heaven but thee?’ Psa. 73:25. Oh what a fair One! what an only One! what an excellent, lovely One is Christ! Put the beauty of ten thousand paradises, like the garden of Eden, into one; put all trees, all flowers, all smells, all colors, all tastes, all joys, all sweetness, all loveliness in one; oh what a fair and excellent thing would that be! And yet it should be less to that fair and dearest well-beloved Christ, than one drop of rain to the whole seas, rivers, lakes, and fountains of ten thousand earths. Now, for God to bestow the mercy of mercies, the most precious thing in heaven or earth, upon poor sinners; and, as great, as lovely, as excellent as his Son was, yet not to account him too good to bestow upon us, what manner of love is this!
3. 그리스도를 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의 보물 상자에서 가장 값비싼 보물을 꺼내어 주셨다. 천국 자체는 그리스도와 비교했을 때 그렇게 귀중한 선물이 아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시 73:25).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아름답고 유일하며 완벽하고 사랑스러운 분이신가! 에덴 동산 같은 낙원 일만개를 모아 그곳의 모든 나무, 꽃, 향기, 색깔과 맛, 기쁨, 달콤함과 사랑스러움을 모두 합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에는 견줄 바가 아니다. 마치 한방울의 빗줄기를 지구상의 모든 바다, 강, 호수, 샘을 합친 것과 비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늘과 땅을 통틀어 가장 소중한 선물을 가치없는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신다. 그토록 위대하고 사랑스러우며 뛰어난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길 전혀 아까워 하지 않으셨다. 이는 얼마나 큰 사랑이란 말인가!
4. Once more let it be considered on whom the Lord bestowed his Son: upon angels? No; but upon men. Upon men, his friends? No; but upon his enemies. This is love; and on this consideration the apostle lays a mighty weight. ‘God commendeth his love towards us, in that while we were yet sinners, Christ died for us. When we were yet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God by the death of his Son.’ Rom. 5:8-10. Who would part with a son for the sake of his dearest friends? but God gave him to, and delivered him for enemies: Oh love unspeakable!
4. 주님께서 그의 아들을 누구에게 주셨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천사들에게 주셨는가? 아니다. 사람에게 주셨다. 그의 친구에게 주신 것인가? 아니다. 그의 원수들에게 주신 것이다. 이 점을 묵상하는 가운데 사도 바울은 엄중히 선포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롬 5:8-10). 절친한 친구를 위해서라도 아들을 희생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위해 그의 아들을 내어주셨다. 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
5. Let us consider how freely this gift came from him. It was not wrested out of his hand by our importunity; for we as little desired as deserved it. It was surprising, self moved, eternal love, that delivered him to us. ‘Not that we loved him, but he first loved us.’ 1 John, 4:19.
5. 이 같은 선물이 얼마나 값없이 주어졌는지 묵상해보라. 이는 우리의 끈덕진 요구 가운데 하나님 손에서 강탈해낸 무언가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 필요성을 잘 깨닫지도 못했고 받을 가치도 없었다. 오직 놀랍고도 영원한 하나님의 선행적 사랑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요일 4:19)
첫댓글 아? 너무 반가워요. 이렇게 주님 안에서 계속 교제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요. 거기에 더하여, 좋은 글과 번역을 올려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이 카페는 청교도와 개혁주의는 물론이고요. 모든 복음적인 글을 환영하고 있으니 시간 될 때 마다 좋은 활동 부탁 드려요.
p.s.) 이 글은 '자유게시판'에서 '청교도주의' 게시판으로 이동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코뱅님. 건강하시죠? 환영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조금씩 꾸준히 번역해서 올릴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와~ 좋은 글 번역까지 해서 올려주시니 정말 좋네요. 번역도 매끄럽고 내용도 은혜로우며 깊이가 있군요. 잘 읽었어요. 종종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유익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시간날 때 최대한 올려두려고 열심히 번역하고 있어요 ㅎㅎ
좋은 글 종종 올려 주신다고 하니 감사하고 기대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날 때 최대한 많은 번역을 시도할 예정이예요
이런 귀한 자료를 친히 수고해주시다뇨 ㅠㅠ
감사합니다 틈 날 때마다 종종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