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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 치러 나가 볼까 합니다.
그저 물 위의 나뭇잎이나 건져 내려고요.
물이 맑아지는 걸 지켜볼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
엄마 소 옆에 있는
어린 송아지를 데리러 가려고 해요.
너무 어려서
엄마 소가 핥으면 비틀거리지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
제가 좋아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목장’ 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노라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 마음속에 그려집니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조금은 오래된 풍경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평화로웠지요. 우리 집 소가 송아지를 핥으면 정말 비틀거렸어요. 어미 소가 송아지를 핥으면 여린 털들이 쓰러지며 송아지 몸에 어미 소 혀가 지나간 자리가 이리저리 확연하게 그려졌지요. 그러다가 송아지가 뛰어다니며 논과 밭의 곡식들을 마구 짓밟고 다니기 시작하면 동네에서 큰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지요.
우리 뒷집에 사는 할머니가 송아지와 송아지 주인을 향해 지르는 벽력 같은 고함소리와 뒤따라오는 욕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겨우내 집안에서 지내던 송아지가 봄 햇살 속으로 뛰쳐나와 금방 씨를 뿌린 텃밭을 내달리면 그 할머니가 송아지를 향해 지르는 고함소리는 우리들을 화들짝 정신 차리게 하고 겨울잠을 자고 있는 산천을 퍼뜩 깨웠습니다.
숯불 같은 자운영이 강변 뒤덮어
아침 해가 뜰 때 햇살을 받은 강물은 반짝이며 흐르고 강변 풀밭에는 이슬들이 찬란했습니다. 그 풀밭에 소를 매어 놓으면 송아지들은 이슬을 차며 강변을 뛰놀았습니다. 한가하게 되새김질을 하는 어미 소 옆에서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송아지들은 우리 마음속에 담긴 가장 서정 짙은 그림이었습니다.
해가 뒷산을 넘어가며 산그늘이 마을을 덮으면 마을 앞에 있는 작은 논과 밭을 지나 강변으로 갑니다. 강변에는 쌀밥 같은 토끼풀꽃과 숯불 같은 자운영이 서늘하게 피어났습니다. 아! 땅거미가 내리는 강변에 화르르 살아나는 자운영 그 꽃빛이 지금도 내 가슴 속에서 타올라 내 몸에 사랑의 불을 지릅니다. 그 불길로 나는 글을 쓰고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봄에 피는 꽃들은 산그늘 속에서 서늘하게 아름답고, 가을에 피는 꽃들은 아침 이슬 속에 영롱합니다. 지금도 섬진강을 따라가다 보면 봄 강변이나 논두렁에 자운영 꽃과 토끼풀꽃들이 유난합니다. 그러나 우리 동네 강변에는 그 아름답던 토끼풀꽃과 자운영 꽃이 사라졌고, 소도 송아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텅 빈 동네에 봄이 오면 강변에는 이제 억새들이 자라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봄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바람결은 부드러워졌고 어느새 먼 산 빛이 어제와 다르게 다가오고, 나뭇가지 끝에 맺혀 있는 꽃망울들이 달라 보입니다. 생동감이 넘치고 부풀어 오르는 나무들을 보면 신비롭습니다. 저 작은 가지로 그 모진 추위를 이겨 내고 생명을 잉태하는 파란 봄을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저 아름다운 자연의 약속 앞에 우리들의 삶은 참으로 초라하고 속절없습니다. 우리 몰래 우리 곁으로 오고 있는 봄 앞에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는 길목에 이 시를 놓습니다.
포스코신문 : 2008년 0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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