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김씨 계림군파의 조상님 되시는 휘 원정(元鼎) 조상님께서는 고려전기 서경유수사, 수태위문하시중 등을 역임하신 문신출신이시다. 고려의 대표적인 귀족인 이자연(李子淵, 1003~1061)은 김원정 조상님과 인척관계다. 이자연 이름을 못들어 봤다면 이자겸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자겸은 이자연의 손자다.
김원정 조상님의 누이는 현종의 제8비가 되셨고, 또 다른 누이는 이자연과 혼인을 하시었다. 단, 이자연이 김원정 조상님의 매형인지 매제인지는 지금까지의 기록으로는 알 수 없다.
흥미롭게도 김원정 조상님과 이자연은 고려사절요에 함께 이름이 올라온 기록이 있다.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4 > 문종인효대왕1(文宗仁孝大王一) > 문종(文宗) 9년 > 7월 > 최충을 치사하게 하고 이자연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최충을 치사하게 하고 이자연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최충(崔沖)을 내사령(內史令)으로 삼은 뒤 곧이어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이자연(李子淵)을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門下侍中 判尙書吏部事)로, 김정준(金廷俊)을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로, 박성걸(朴成傑)을 내사시랑평장사 상주국(內史侍郞平章事 上柱國)으로, 김원정(金元鼎)을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겸 태자소보(尙書左僕射 參知政事 兼 太子少保)로 삼았다.
김원정(金元鼎)
감찰어사(監察御史)·우사낭중(右司郎中)을 거쳐 문종 때 어사대부(御史大夫)·중추원사(中樞院使)·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시었다.
1057년 병부가 동서 양계에 군사를 보내어 수비하기를 청하므로 김원정 조상님은 왕에게 “근래 군사와 백성이 책봉사(冊封使)를 송영(送迎)하느라 시달렸고, 또 흥왕사(興王寺)의 역사(役事)로 쉬지 못했으며, 자량(資糧)주 01)도 거의 떨어져가니 봉책군(封冊軍)의 예에 의하여 물품을 주어 보내소서.”라고 청하여 이를 좇게 하였다.
그 해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內史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에 승진하였다. 1058년에 수사도(守司徒)가 되었고, 뒤이어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상주국(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上柱國)이 되어 서경(西京)을 다스리면서 일을 아뢰다가 왕의 뜻을 거슬러 서경유수사(西京留守使)로 좌천되시었다가 곧 소환되셨으며, 1063년 수태위문하시중(守太尉門下侍中)에 이르렀다.
동북로병마사(東北路兵馬使)가 장주(長州)·정주(定州)·원흥진(元興鎭)에 성을 쌓았는데, 김원정 조상님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요충로에 주둔하며 방비하다가 적과 만나 전투를 벌여 전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포상을 받았다. 사망하신 후 4년 뒤에 부의와 추증이 빠져있다는 건의에 따라, 추증하고 곡식 130석을 하사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자연(李子淵 : 1002~1061)
인주(仁州) 사람으로 자는 약충(若沖), 시호는 장화(章和)이다. 아버지는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이한(李翰)이고, 어머니는 낙랑군대부인(樂浪郡大夫人) 최씨(崔氏)이다. 현종(顯宗) 대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덕종 때 우보궐(右補闕)·이부낭중(吏部郞中)·어사잡단(御史雜端)·우승선(右承宣)이 되고, 정종 때 급사중(給事中)·중추원지사(中樞院知事)를 거쳐 1047년(문종 1) 이부상서(吏部尙書)·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1050년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에 승진되고, 세 딸이 모두 문종의 비가 됨으로써 세력을 장악하였다. 1052년 수태위(守太尉)가 되고,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러 공신이 되었다. 1055년 문하시중(門下侍中)·상서이부판사(尙書吏部判事) 겸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 그 후 추성좌운보사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사 수태부 삼중대광 문하시중 판상서이부 삼사사 상주국 감수국사(推誠佐運保社功臣 開府儀同三司 檢校太師 守太傅 三重大匡 門下侍中 判尙書吏部 三司事 上柱國 監修國史)가 되었고, 사후에 수태사 중서령(守太師 中書令)에 추증되고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부인은 낙랑군(樂浪君) 김씨(金氏)로 왕비의 어머니인 까닭에 계림국대부인(鷄林國大夫人)이 되었다. 슬하에 8남 3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은 정(頲)은 검교위위경 행상서우승 지합문사(檢校衛尉卿 行尙書右丞 知閤門事), 둘째 적(頔)은 전중소감(殿中少監), 셋째 석(碩)은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넷째 의(顗)는 합문지후(閤門祗候), 다섯째 소현(韶顯)은 출가하여 대덕(大德)이 되었고, 여섯째 호(顥)는 상식직장동정(尙食直長同正), 일곱째 전(顓)은 일찍 죽었고, 여덟째 안(顔)은 예빈주부동정원(禮賓注簿同正員)이 되었다. 세 딸은 모두 왕비가 되었으니, 큰 딸은 문종의 왕비인 인예태후(仁睿太后)로 순종(順宗)·선종(宣宗)·숙종(肅宗)의 세 왕과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의 어머니이다. 둘째와 셋째도 모두 문종의 비로 각각 인경현비(仁敬賢妃)와 인절현비(仁節賢妃)이다. 여섯째 아들인 이호(李顥)의 아들이 인종대의 권신으로 난을 일으킨 이자겸(李資謙)이니, 그는 바로 이자겸의 할아버지가 된다.
묘지명은 장사랑 상서병부원외랑 지제고(將仕郞 尙書兵部員外郞 知制誥)의 관직에 있던 이성미(李成美)가 지었다 .
(출처: 고려시대 금석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