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장사로 변한 한국불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개인 수행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선방에만 들어 앉아 있으면서 마치 부처님 말씀에 따라 산 것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그런 논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어떤 이는 깨달은 부처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삶의 평안과 해탈을 얻었는가 라면서 역시 수행 밖에 없다고 하면서 선방을 강조한다.
허나 승속을 떠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위와 같은 말이 의미있는 듯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중생이 평안해지고 해탈을 얻었다고? 왠 착각!
싯달타는 깨달아 부처가 된 후 그대로 열반할 생각도 했었지만, 중생을 생각하여 49년을 길 위에서 살다가 지친 노구로 마지막 열반에 든다.
부처가 깨달아서가 아니라 깨달은 이후의 그의 삶으로 인해 많은 이들의 평안과 해탈로 이어진 것이다. 세속과 함께 한 49년이 없는 깨달음이란 그 개인의 즐거움이란 것. 그런 면에서 위와 같은 말을 하는 멍청한 수행자에겐 당신 혼자 즐거움에 왜 다른 이들이 평생 밥해주고 돌봐줘야 하는 지, 당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말해 줘야 한다.
깨달은 부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49년이나 길 위의 삶을 산 깨어있는 부처가 소중하다. 부처의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들이 무슨 불제자? 부처의 앞부분 삶만 흉내내면서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사기치는 행위일 뿐.
부처님 삶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이라면 청량징관 스님의 여래십종은(如來十種恩)을 보자. 수행? 중생
과 함께 한 삶을 따르는 것이다.
1. 발심보피은(發心普被恩)
2. 난행고행은(難行苦行恩)
3. 일향위타은(一向爲他恩)
4. 수형육도은(垂形六道恩)
5. 수축중생은(隨逐衆生恩)
6. 대비심중은(大悲深重恩)
7. 은승창렬은(恩勝彰劣恩)
8. 은실시권은(隱實施權恩)
9. 시멸영모은(示滅令慕恩)
10. 비념무진은(悲念無盡恩)
이런 삶이 있었기에 부처님으로 존경받는 것이고, 우리 역시 이런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이 삶 속의 참된 수행이다. 선각자가 이미 바른 답을 주었다면 그렇게 살면 되지,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서 듣기 좋은 선각자의 말로 사람들 속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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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보피은 : 중생제도 발심으로 가피력을 주신은혜
난행고행은 : 난행고행 온갖고통 무릅쓰고 닦은은혜
일향위타은 : 한결같이 남을위해 모든공덕 베푼은혜
수형육도은 : 육도세계 가리잖고 자비손길 내린은혜
수축중생은 : 중생들의 근기따라 방편으로 건진은혜
대비심중은 : 대비심을 베풀어서 거둬주신 깊은은혜
은승창열은 : 난체않고 용렬한척 평등심을 보인은혜
위실시권은 : 바른진리 보이고자 갖은방편 펴신은혜
시멸생선은 : 착한마음 내게하려 열반상을 나툰은혜
비념무진은 : 중생향한 대자비심 다함없이 크신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