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탄현초등31회
 
 
 
카페 게시글
★..누구나 보시고 스크랩 180_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소령원에 가면....
형균 추천 0 조회 73 09.07.06 17: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동에 있는 조선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사친(私親)인 숙빈최씨(淑嬪崔氏)의 묘. 사적 제358호. 처음에는 소령묘(昭寧墓)로 불렀으나 영조의 사친이므로 1753년(영조 29) 6월 숙빈최씨를 화경(和敬)이라 추시(追諡)하고, 묘(廟)를 궁(宮)으로, 묘(墓)를 원(園)으로 승격시켰으며, 같은해 9월에 이 사실을 태묘(太廟)에 고하고 진하반사(陳賀頒赦: 축하를 하고 널리 알림)하였다. 1757년 11월 예조판서 이익정(李益炡)이 각 능의 예에 따라 소령원에도 동지제(冬至祭)를 지낼 것을 주청하였다.


원묘(園墓)에는 정해진 예가 없다 하여 영조는 이를 반대하였다. 영조 만년에는 각 지역 유생(儒生)들이 원을 능(陵)으로 승격시키자는 상소가 수년간 잇달았으나 시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능으로 승격시키자는 유생들의 속셈은 최씨가 영조의 생모라는 점을 들어 그러한 소를 올림으로써 조정에 관심을 끌어 벼슬자리라도 얻어보려는 의도적인 것이 강하였다. 영조는 이에 대해 처음에는 상소자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그 수가 증가되자 단호히 대처하였다. 고 엠파스 백과사전에서 알려준다.


[소령원 안에는 피나물이 흐뜨러지게 피어있고...]


소령원을 찾게 된 것이 벌써 세 번째 인가 보다. 이곳 광탄족에는 여러 가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우선 유일레져 근처에 이모부 묘소가 있고, 또 친구가 분수리에 살고 있다. 항상 연관을 지여 둘러보게 되는 곳이 소령원하면 보광사를 생각하게 되고 또 보광사를 떠올리면 용암사를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보광사는 소령원의 원찰이기도 하지만 대웅전의 주춧돌, 그리고 외벽의 나무판에 그려놓은 벽화가 눈앞에서 아른거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근처만 해도 문화유산이 많은 것 같다. 특히 근처에 왕릉이 산재해 있어 더욱 정감이 가는 곳이라 할 수있다


[소령원 홍살문 뒤로...]


소령원은 영조의 효심이 깃든 곳이라고 한다. 국내에 산재해 있는 13군데의 원(園) 중에 한군데로 영조가 친필로 쓴 비석 두 개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이 두 개나 된다. 영조는 모친 최씨의 묘에 4개의 비를 세웠다. 정자각 동쪽에 있는 비각과 봉문밑 동쪽의 비각엔 1744년 영조가 친필로 쓴 비석이 있다. 입구의 관리소직원과 실랑이를 하느라 놓친 것은 관리소위에 석벽이 있어 의아해 했었는데 그곳이 영조가 시묘 살이 하던 곳인데 무려 99간이나 된다고 한다. 지금은 일부의 담장같은 돌담이 남아있고 주춧돌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다.


[정자각과 재실 뒤로 비각도 보이고...]


영조의 모친인 숙빈 최씨는 숙종 44년(1718)에 49세의 나이로, 영조가 즉위하기도 전에 별세하게 된다. 왕실의 법도에 따라 왕비의 무덤인 능에 모셔지지 못하고 묘에 모셔지게 되었다. 역사에 따르면 능은 왕실의 국왕과 왕비의 분묘를 쓸 수 있고, 또 원(園)엔 왕세자, 왕세자비, 후궁들이다. 효심이 지극했던 영조는 숙빈최씨 무덤에 막을 짓고 무덤을 받들었으며 친필로 네곳에 비를 세우고 효심을 발휘했다고 한다. 영조는 즉위하던 해 생모를 기리기 위하여 경복궁에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짓고, 숙빈최씨 묘라 했다고 한다.


[정자각에 비추이는 햇살에 수줍듯이 숨어...]


[정자각 옆에 마련된 재실...]


[정자각의 왼편에서 올려다 본...]


영조의 모친인 숙빈 최씨를 능에 모시질 못하게 되자 영조 29년에 숙빈묘를 승격시커 육상궁이라 부르면서 다시한번 소령원에 친필 비석을 세우었다 한다. 그래서 숙빈 최씨에게 화경이라는 시호를 붙인 후 조선국 화경 숙빈 소령원이라는 친필 비문을 새긴 비석을 말들어 세웠다 한다. 그러나 영조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능으로 승격을 시키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조정의 중신들이 반대하는 세력이 많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못하는 것이 있는 그런 시대였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영조의 친필 비석을 모신 비각...]


[영조의 친필 비석 조선국화경숙빈소령원(朝鮮國和敬淑嬪昭寧園). ...]


[정자각 잡상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악귀를 쫓기엔 모자라는듯...]


[황용이 꿈틀거린다는 능으로 오름길이 꽤 멀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능을 오르며 내려다 본 정자각과 재실...]


[숙빈 해주최씨 소령묘비각...]


[소령묘비 받침돌에 쓰여진 글...]


?紀元後百十七年  至行純德永謀  敦烈主上殿下卽祚  二十年甲子八月二  十八日立干內靑龍  內午向  向神道碑立於外白  虎之內乙向誌石一  本安於遊石下一本  安於三階下.... 받침돌에 쓰여있는 글에 대한 자료가 없어 짧은 한자 실력으로 써놓긴 했지만 해석은 불가 하다. 어서 공개되어 답답함을 풀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묘비 받침돌에는 총탄자욱이 양쪽으로 두군데나 있고 또 비석의 좌측 밑부분 에도 한발의 총탄자욱이 보인다. 아마도 6.25때 이곳도 피해를 입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본다.


[숙빈 해주최씨 소령묘 (淑嬪 海州崔氏 昭寧墓)라 쓰인 비석...]


[숙빈 최씨 소령묘 비각...]


[소령원 봉분과 문인석, 그리고 장명등, 석물들...]


[소령원의 장명등 또한 섬세한 조각이...]


[한쌍의 석마가...]


[한쌍의 문인석이...]


[한쌍의 망주석이...]


[한쌍의 석양이 대칭으로...]


[봉분 뒤쪽구석 양쪽에 석구로 보이는 석물이...]


[유명조선국후궁최씨지묘(有明朝鮮國後宮崔氏之墓)라 쓰인 숙빈 최씨의 비석...]


[봉분과 비석 그리고 상석과 향로석이 가지런히...]


[장명등의 옥개석이 아름다워...]


[묘소앞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쪽...]


다시 내려오며 정리를 해보면, 숙빈최 씨는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1670년(현종 11) 11월6일 태어나 7세에 입궁하여 무수리로 있다가 숙종의 관심을 받아 숙종의 후궁이 되었다. 1694년(숙종 20) 9월 13일 창덕궁에서 영조를 낳았고, 1718년(숙종 44) 3월 19일 춘추 49세로 돌아가 그해 5월 12일 당시 양주땅 이었던 지금의 광탄면 영장리에 장사를 지냈다 한다. 그후 영조의 효심에 의해 이렇게 좋은 곳에 모시게 된 것이다. 이곳을 떠나며 느낀 것이지만 들어오는 길이나 주위 환경이 너무 좋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정도이다.


[천남성을 먹고 혼났다는 사람도 있다던데...]


[색이 아주 고운 매발톱꽃...]


[큰별꽃이 아름다워...]


[피나물꽃 잎이 햇살에 반사되 멋진색으로...]


소령원을 둘러본후 소령원앞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난 도로를 올라가면 "소령원 숲속" 이라는 커다란 음식점이 있다. 오늘도 이곳에서는  SBS 촬영 차량들이 가득하다. 산속의 요정이라도 나올 듯한 이곳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내려가는 길목엔 소령원 맞은편으로 영조의 후궁이고 영조의 첫 번째 왕자였던 진종(眞宗)의 어머니인 정빈 이씨의 묘인 수길원이 있다. 정빈 이씨는 영조의 후궁으로, 효장세자를 낳았다. 진종(眞宗)이다. 그런데 이곳은 마찬가지로 미 개방지역이다. 이젠 담장까지 만들어 놓아 들어갈 수가 없게 해놓았다.


[하이얀 수수꽃다리(라일락)꽃이...]


[개울까엔 황매화가 가득...]


[탐스러운 황매화...]


소령원에서 나오는 길목 끝에 삼거리가 나온다. 똑바로 나가면 큰길을 만나지만 좌측으로 넘어서면 커다란 음식점을 만나게 된다. 10여년 전부터 가끔 씩 들르던 "명가원이라는 음식점인데 안쪽으로 들어서면 옛날 대갓집 풍으로 꾸며져 있다. 음식의 맛깔스러움도 그렇지만 들어서면서 포근한 외갓집 들어가는 그런 느낌을 받는 기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주위엔 꽃들로 가득차있고 아직도 개천엔 맑은 물이 흐른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이다.


[명가원의 굴뚝...]


[운치있는 명가원 창문...]


[한층 멋을 더한 창문...]


[명가원 내부 천장의 멋스러움...]


[이천서 옮겨다 지었다는 건물...]


[명가원 건물...]


[멋진 소나무와 아름다운 지붕의 처마선...]


[가지색 매발톱꽃...]


[건물 주변에 많이 핀 매발톱꽃...]


[아름다운 금낭화도 피어있고...]


[계속 눈길을 주는 매발톱꽃...]


[덜핀 매발톱꽃이 정말 매의 발톱 같아...]


[명가원앞 개울가에 목조형물...]


오늘의  여행은 명가원에서 끝이 나지만 그 끝은 그곳이 아니다. 근처에 산재되어 있는 곳곳이 다 나를 부르고 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여러 군데를 돌아보고 싶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윤관장군묘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지난 번에 찍은 사진이 비그친 후의 흐린 날씨에 찍은것 이기에 올리지 않았었는데 오늘도 역시 날씨는 부조를 하지 않는 다. 이런 날엔 가까이에 있는 꽃이나 주위 건물을 찍는데는 맑은날 보다도 더욱 좋지만 멀리 있는 것들을 찍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끝>-


- 글 / 그림 - [김영윤의 여행보따리]  도시애들 배너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