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시민권자이면서 한국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작년 가을 한국에 들어온 Revival 홈스쿨 가정을 만나보았습니다. 이제 오픈한지 얼마 안되는 제가 가본 교회중에서 가장 작은 교회라 할만큼 아담한 교회(그나라교회)에서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Revival 홈스쿨을 소개해주세요.
우성희: 미국에서는 누가 홈스쿨을 담당하는지 정해야 해요. 그래서 ‘실무적인 교사는 제가 한다’ 그 정도만 생각했었어요. 홈스쿨을 생각하다 갈등했었죠.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하게 되면 중학생때부터 해야되지 않나.. 그러다가 한국에 대한 소명을 받게 되면서 시작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어요. 1907년 대부흥처럼 부흥에 대한 소명을 주셔서 Revival이란 홈스쿨학교명을 지었고 선균(조슈아)이는 중3이고 명균(아브라함)이는 중1입니다.
홈스쿨은 언제 시작하시게 되었고 시작하시게 된 배경을 말씀해주세요.
우성희: 결정적인 동기는 한국사역에 대한 부르심때문이었어요. 그전에도 관심은 있었고요. 미국 공교육이 안정적이지 않아요. 학교내 폭력, 왕따, 마약, 흡연은 물론이고 교육 내용도 퀄리티 있지 않아요. 크리스천으로서 홈스쿨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 자극받았었는데 해야하지 않을까 걱정하다 결정적으로 한국에 대한 소명을 받으면서 홈스쿨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홈스쿨협회 사이트 글들을 보고 또 기독교 교육에 관한 책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필요하단 확신을 갖게 되었고요.
한국 홈스쿨러들에게는 죄송한 것이 보통은 갈등하면서 시작하는데 저희는 한국에 대한 소명을 받으면서 단순하게 시작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해보니까 좋은거 같아요. 여기와서 외국인 학교 보내는 것은 위화감 조성 되는거 같아 싫었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외국학교 퀄리티도 좋은거 같지 않더라구요.
오랜 미국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한국에 오시게 된 목적과 배경을 말씀해 주신다면? 참, 몇년을 사셨죠?
우성희: 남편은 22년 저는 17년 살았네요.
우도환: 한국에 오게 된 것은 소명때문인데요. 미국 갈때도 사실은 가고 싶지 않었어요. 민족의식이 강했고 오히려 미국을 비판적인 시각인 제국주의 개념으로 보고 안 가려다 어머니 때문에 가게 되었어요. 먼저 가서 계셨던 작은 누님이 어머니를 초청했고 어머니가 저를 초청했거든요.
‘저희가(형제들) 안가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께서 강제로 미국에 보내셨구나.’ 싶어요. 제가 한국에 있었으면 제대로 공부도 못했고 힘들었을거 같아요. 당시가 유신시대였거든요. 미국에 가서 한국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고 한국을 위해 기도하고 살았는데 그때는 한국에 돌아와야겠단 생각이 없었어요. 2006년 말부터 다시 미국에서 제 2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는데 기도 때마다 한국에 대한 마음을 주시고 눈물이 나와도 온도가 다르고 너무 강력하게 주셨어요. 2,3년동안 정말 증거를 많이 주셨어요. 말씀을 주시고 꿈이나 환상을 주시고 한달에 몇 번 이상으로 보여주셨어요. 기도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요.지금 상태에서 한국에 가는 것은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고 보통일이 아닌데 만약 한국에 가길 원하신다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서원을 했었는데 서원한 내용의 절반이 한달새 이뤄졌어요. 결국 “제가 내건 조건을 안 들어주셔도 가겠습니다.” 하고 결단했었지요.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를 놓고 기도하는데 서울은 복잡하니 청주나 시골같은 곳으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꿈에 아는 청년 사역하는 목사님이 카드 써서 여깁니다 하고 보여주더라고요. ‘SEOUL’ 너무 선명하게 보여주셨어요. 그런데 신년기도회 때 기도하는데 ‘천안’ 이란 곳을 강하게 주셨어요. 그래서 아! 천안인가 보다.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성희: 부연설명을 하면 ‘천안’ 아! 좋다. 서울에 안가니. 그래서 천안 시세를 알아보고 그랬는데 목사님 얼굴이 안 좋아지면서 “다시 서울이라고 말씀하시네” 그러시는거에요. 그래서 기드온처럼 양털방법을 사용했어요.
“내일 아침에 무조건 전화 오는 곳이 저희 새로운 사역지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새벽 4시에 전화가 왔어요. 그게 ‘사당’이었어요. 전화 온 친구가 시차를 모르는 사람이 아닌데 아무것도 모른채 전화를 한 것이었어요. 그때까지만해도 그게 무슨 사인이었는지 몰랐는데
사당하고 천안하고 연결된거에요. 사역의 연결점. 사통팔달이었어요. 나중에 천안에 사는 사람 사당에 사는 사람들 통해 도움을 받게 된거에요. 양쪽에 믿지 않는 친구가 있어요. 지금까지 너무 놀라울 정도로 교회를 찾는 것이나 집을 구하는것이나 하나님이 인도를 하셔요. 와보니 사당이 좋은 곳이네요.
우도환: 그동안 상식적인 선에서 믿었는데 믿음이란 것을 구원받은 믿음이 아닌 생활 속에서의 믿음을 체험하게 됬어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체험하게 되었고 내가 목회자지만 얼마나 믿음이 없었는가 깨닫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면 아무 것도 없어도 갈 수 있는가? 묻게 되었어요. 그리고 인도에 따라 한걸음 한걸음 따라왔어요. 정말 꿈과 환상을 통해 주시는 것이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2007년부터 준비를 했고 2008년부터는 실제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생활적으로는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그런 시기에 계속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가 훈련 받고 중간 중간 테스트도 받았어요. 미국내에서 청빙이 들어오는거에요. ‘이건 아니다 우린 결정했는데’ 심지어는 한국 티켓을 사놓고 떠나기 2주전 장로회 연합회에서 설교를 하게 됬는데 목회자가 떠난 어떤 교회에서 청빙이 왔어요. 다음주면 떠나야 하는데.. ‘아 이건 인도하심이 아니라 마지막 믿음의 테스트다.’ 생각했어요. 사실 얼마든지 합리화할 수 있거든요. 목회자는 조건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소명따라 가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사양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강력한 소명이 아니었으면 아마 한국으로 안 왔을거에요.
끝까지 주님 바라보고 가자! 동방박사가 별따라 오다가 메시아 태어난 곳까지 왔는데 끝까지 별을 따라가지 않고 왕이니 왕궁에 태어났겠다 해서 헤롯왕에게 갔고 나중에 마굿간 갔잖아요. 동방박사처럼 중간에 새지 않고 끝까지 가자! 아무도 몰라요. 첫 교인이 언제 올지 모르고 3년 동안 아무도 안 올지도 몰라요. 그래도 갑니다. 한국 사는게 하루 하루가 모험이에요. 제 나이나 경력에 비해서면 친구들은 모두 중견 목회자들이에요. 여러 가지로 조건적인 이야기들 많이 하는데 우린 그렇게 온 게 아니니까요.
우성희: 저는 완전히 보여지지 않으면 못하는,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이런 과정들 가운데 전부 내려놓게 되었어요. 주님 말씀하시면 가는 것은 가는데 멈추는게 힘들더라구요. 내가 계획하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행복해요. 그걸 오랫동안 몰랐던거에요. 홈스쿨을 미국에서 한 것보다 한국에서 한게 행복해요. 한국 홈스쿨러들을 만나면서 너무 좋은 만남들을 갖게 되었어요.
박진하: 아참 그러고보니 두 분이 성이 같네요?
우성희 : 아.. 그 질문 많이 받는데요. 저는 박성희인데 미국에서는 남편성을 따라야 해서 우성희가 되었어요. 제가 우성희가 되면서 성경적으로도 남편을 따르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우성희로 사는게 좋아요.
한국생활이 어떠신지요?
우성희: 환경적인 면에선 미국이 좋아요. 저같은 경우는 목사님이 1차 사역(한국)할 때 혼자 보냈어요. 제가 은근히 미국이 좋은거에요. 사모에 대한 압박이 한국보다 적고 여러 가지로 편한거에요. 제 가슴속 깊은 곳에 미국에 대한 미련이 있었어요. 여길 어떻게 떠나지! 눈물이 나는거에요. 그런데 작정했던 마지막 날 미국에 대한 미련이 싹 사라졌어요.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안전한 곳이란 훈련을 하고 있었고 한국에 와서 감사로 제사드리는 것을 훈련했어요. 이 상황에서 내가 힘들다고 내 입으로 내가 왜 왔지 후회하는게 불신앙이잖아요. 정말 힘들긴 힘들었어요. 생활 적응하는 것도 그렇고요. 하지만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시더라구요.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저희들이 불평을 한마디도 안한다는거에요. 미국은 넓었거든요. 아이들도 한번도 “미국에 다시 가자”, “여기 왜 왔어요.” 그러지 않고. 따라주니 감사해요.
4개월쯤 되니 참 잘왔다. 내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사는 모습을 통해서 자극받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한국에 좋은 홈스쿨러들을 만난 것이 너무 큰 축복이었어요. 사무장님 역할이 컸어요. 아무도 모르는데 사람들을 연결을 시켜주셨고 제 전화를 잘 받아주셨어요. 2시간인가 전화를 받으셨었지요. ^^
우도환: 저 같은 경우는 한국이 선교지가 됬어요. 29살에 미국에 가서 나도 모르게 많이 바뀌었어요. 와보니 ‘내가 생각보다 많이 바뀌었구나’ 적응하는게 쉽진 않더라구요. 체질도 바뀌고 모든 환경이 다 바뀌어 힘든데 마음을 이렇게 정했어요. 3년 정도는 말하지 말고 잘 듣고 경청하고 살자. 미국 가서 그랬거든요. 잘 모르는데 아는체 하니 싫어하더라구요. 3년동안 거의 말 안하고 듣고 살았는데 지나고보니 잘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서도 잘 듣고 경청하고 살려고 해요. 그렇게 되면 감이 잡힐듯해요. 실제적으로 와보니 개인의 정체성도 찾게 되고 단위가 크긴 하지만 한국교회에 대해 공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이 수천년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정체성을 잃어버린 나라가 되었어요.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였었는데 말입니다.
박진하: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 라는 말씀은 무슨 뜻이시죠?
우도환: 창조사학회 주장이에요. 학문적으로 밝혀져야겠지만 말이에요.
박진하: 아! 알고 계시군요. 홈스쿨러들도 홈스쿨을 하면서 창조사학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도환: 한국이 정체성을 찾아야 되는데 그 과정에 나도 동참해야겠다 생각해요. 생활 자체는 힘들지만 정체성을 찾고 이런 소명을 받고 사는 것이 좋아요.
우성희: 오자마자 두달정도 되었을때 인터뷰를 했으면 아직은 힘들어서 모르겠어요. 대답했을거에요. ㅎㅎ 아이들한테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요. 어쩌면 한마디도 불평하지 않는지 말이에요.
미국교육과 한국교육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신다면(공교육, 홈스쿨)
우성희: 미국 공교육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교육환경이에요. 큰 자연조건을 빼고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거잖아요. 여유가 있어요. 시간의 여유가 많고 바쁘게 돌아가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미국으로 들어오잖아요. “시간을 사라” 라고 말해요. 고등학교는 7시에 시작해서 오후 2시 반쯤에 끝나요. 오후에 방과후 시간을 잘 관리할 수 있다면 미국에 오라고 이야기해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교육의 퀄리티는 차이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학습수준은 한국이 더 높아요. 교사는 인격적으로 미국이 더 나은 것 같고요.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미국에서 한국 부모들은 일하는 것 때문에 아이들을 방치해요. 도서관이나 여러 시스템이 좋은데 공교육에 맡기면 맡겨 버리지 남은 시간을 활용하지 않아요.
교육의 양은 한국이 더 많이 가르치는 것 같아요. 저는 공교육의 내용이 그리 좋다고 보진 않아요. 전반적으로 보면 한국인들이 경쟁적으로 빠르잖아요. 아이들이 좀 더 많은 것를 산출해 내는 능력이 많은데 미국은 하나를 할 때 굉장히 천천히 해요.
교육 주관자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생각해요. 미국은 시간이 많이 남아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한국은 그런 환경이 안되고요. 쫓아가다보니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어요.
미국은 공교육에 있어도 무엇인가 창출해 낼 수 있는게 있어요. 하지만 그런 좋은 환경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 되지요. 안타깝게도 한국 이민자들은 그런 시간 활용을 거의 못해요.
미국 공교육의 문제라 하면 미국의 학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평준화 부분에 있어서 말이에요. 교육의 퀄리티를 이야기하고.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치관이 문제에요. 가치평가를 가르치지 않아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을 가르치지 않아요. ‘던져주면 너희가 가치를 평가할 것이다.’라는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인간은 죄인이잖아요. 존 듀이의 교육혁명 이후. 학교내 왕따, 마약, 폭력등의 문제가 많아졌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선생이 관여하지 않아요. 학생들이 싸워도 선생이 말리지 않아요. 경비원처럼 그걸 제어하는 선생님이 따로 있어요. 아이들도 공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말리려 하기에 상관하지 않지요.
담임선생님은 학생들 출석체크하는 거 외에는 몰라요. 담당 상담선생님이 별도로 있거든요. 학교시스템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 관리가 안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학사관리가 우리 정서랑은 많이 다르죠. 담임제도를 통해 확실히 맡아서 돌보는게 안되는거죠.
우도환: 홈스쿨 자체가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치관의 출애굽’ 이라 할 수 있고 또 출애굽 자체가 엄청난 결단이잖아요. 왜냐하면 공교육을 거부함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는거잖아요. 가치관의 혁명이 없으면 시작할 수 없는게 홈스쿨이라고 생각해요. 시작했다 하면 대단한 결단이에요. 미국은 홈스쿨이 새로운 교육의 대안이 되었어요. 홈스쿨러의 수가 1200만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최근 대학 상위권에 홈스쿨러들이 상당수가 포진되어 있고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잡히었지요. 미국 자체가 기독교 문화권이고 홈스쿨을 하면 좋은 길도 마련되어 있어서 미국에서 홈스쿨을 하는 것은 크게 어려움은 아니에요. 캐네디때 공립학교에서 기도 하는 것을 폐지한 이후부터 기독교적 가치관이 무너져 내리면서 시작했어요.
미국은 홈스쿨을 교육청에서 관리해줘요 펜실베니아의 경우 나름대로 신앙공동체가 많은 주에요. 아미쉬도 있고. 홈스쿨에 대해 이상하게 보는 경우는 없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홈스쿨 컨퍼런스에 참석해보니 한국에서는 보통 일이 아닌거 같더라구요. 미국 홈스쿨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단계라면 한국은 출애굽 했는데 광야에서 머무르는 단계가 아닌가 싶어요. 한국 홈스쿨은 많은 기도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맥이나 사회적 진출,학벌을 포기하는 것은 한국에선 매우 중요하기에 홈스쿨은 한국에서는 교육의 혁명이라고 봐요. 완전히 정착되고 한국사회 변화를 일으키기까지 정말 많은 기도가 필요해요. 그래서 마음이 무거워요. 한국 홈스쿨이 무너지지 않도로 잘 설수 있도록 기도해야할거 같아요. 크게 봐서 그런 차이인거 같아요.
우성희: 미국은 법적인 문제가 있을때 대변해주는 기관도 있어요. 한국 홈스쿨러들 보면 존경해요. 대단하신거 같아요. 홈스쿨러들과는 말이 통해요. 다 그런건 아니지만 믿는 사람끼리도 가치관이 다르니까 말이 잘 안 통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미국교육을 동경하며 미국이민이나 기러기 아빠를 감수하면서까지도 자녀들을 미국학교에 진학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경험해보신 미국교육의 실상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면?
우성희: 해라 마라 차원이 아니라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서 몇가지만 보고 선택하는거 같아요. 잃어버리는것과 얻는 것을 잘 고려해야 하는데 그런 분들은 이유가 단순해요. 영어 때문에 학벌.. 이런 이유지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잃는게 많아요. 저희 같은 경우는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영어나 외국 학벌 얻는 중간에 부모와 떨어져있는 정서적인 부분들 너무 중요해요. 돌아갔을때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이유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이죠. 또 엄마가 애들하고 살아가는 생활고가 너무 심해요.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고 그 영향이 자녀에게 가요. 그 아이는 영어를 잘하고 학벌을 얻기 전에 부모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고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아이인데 말이에요.성공케이스보다 실패한 케이스를 더 많이 봤어요. 90%정도 될까요. 정서적으로 안 좋은 영향력을 많이 받아요. 보고 있으면 너무 마음이 아픈거에요.
우도환: 한국분들이 무리하면서까지 보내는 이유가 일단은 미국에서 대학가기가 쉽잖아요. 중고등에서 왠만큼 하면 대학에 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가는거 같고요. 실제로 정식 4년 대학이 3천개가 넘는다 그래요. 3천개 정도면 왠간하면 갈 수 있거든요. 대학수준은 거의 비슷하고 이름이 떨어진 학교라 할지라도 교수 수준은 거의 비슷하다고 봐요. 일단 대학에 들어가긴 쉽지만 졸업하긴 쉽지 않아요. 또 국제적으로 일할 근거가 생기지요. 미국자체가 토론식 교육인 것도 장점이고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1930년대 존 듀이의 실용주의가 문제지요. 그전에는 기독교적 교육이었는데 실용주의가 들어오면서 학생들에게 ‘가치를 전달해주지 말라.’, ‘인간은 자율적 선한 존재이다.’ 이 틀이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기능적 지식적 교육은 하는데 가치판단을 하는 교육은 안 시키는거죠. 스스로 자율적으로 가치관을 찾아가야 하는 단계라 위험한거죠. 개인적으로 봤을때 개인주의는 가르쳐요. 시민으로써 매너같은..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죠. 최소한 남에게 폐끼치지 말자는 교육은 가르칩니다. 한국은 너무 개인주의를 안 가르쳐져서 폐를 끼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선 개인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것 같은데 개인주의는 개인을 존중하는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것은 미국교육이 앞서 있어요. 그런 장점이 있는 대신 스스로 찾아가야하는 길이라 부모가 잘 가이드 해주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볼 수 있지요.
우성희: 대한민국은 특이한 나라에요. 외국에 안 나가고도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나라.
영어를 한 과목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어가 필수라는게 이해가 안가요. 필수이면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이어야 하는데 왜 필수인지 이해가 안가요. 한국의 분위기는 영어를 못하면 중요한걸 놓치고 살았다고 생각하죠. 영어에 투자하는 노력이 다른곳에 분산되면 한국이 더 발전할거 같아요. 회사에서도 영어시험을 보는데 영어로 승부를 봐야하는 직업이면 영어시험을 봐야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필수로 영어시험을 보는것은 굉장한 국력낭비라고 생각해요. 영어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영어를 하는냐가 중요해요.
유명한 한 재미 골프선수의 경우 낯뜨거울정도로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는 수준으로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았어요. 오히려 김연아 선수보다도 영어를 못해요. 말하는 태도나 단어의 격이 떨어지는거죠. 미국에 산다고 다 좋은 영어를 하는게 아니에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교육의 주관자가 중요해요. 영어를 한다고 다가 아닌거죠.
홈스쿨을 경험하시면서 공교육을 마다하고 홈스쿨을 선택하길 잘했다 싶을 때가 언제인지? 후회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우성희:후회한적은 없는거 같아요.
우도환: 제가 이론적인 사람이라 실제적으로 홈스쿨을 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이론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아이들하고 같이 삶의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보면서 억지로 감추지 말고 안되는 부분은 조금씩 고쳐나가고 잘해 나가려고 합니다. 홈스쿨 아니었으면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이거든요. 아이들 학교 보내면 문제없이 되는 부분인데 홈스쿨하면서 드러나는 것들이 결과적으로 좋은거 같습니다. 저희 아이들과 겪으면서 하나님 은혜를 간구하게 되더라구요.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교육한다고 변하는것이 아니니까 다른 아이들을 정죄하거나 비난하는게 없어지더라구요. 아이들한테 세속적인 기대감도 없어지게 되고 저도 참여하면서 똑같이 변화되는거에요.
우성희: 좋은 만남들을 갖게 되어 좋아요. 한국 홈스쿨러들이 너무 좋고 열려있고 신앙의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거 같아요.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내려놓으신 분들이잖아요. 하나님을 택할 것인지 세상을 택할것인지. 저는 홈스쿨만이 모든 교육의 대안이라고는 말 못해요. 홈스쿨을 할 수 있는 것이 은혜지만 홈스쿨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대한민국에서는 홈스쿨하는 분들이 샘물같은 새로운 물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는거 같아요. 그런 홈스쿨 가정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좋아요.
비전드림이라는 영어교육 사이트를 미국에 계실때부터 운영하셨는데 운영하시게 된 계기와 바램은?
우성희: 교육에 관한 것을 하고 싶었어요. 은사를 주셨고. 학원을 미국에서 운영했었어요. 한국에 오면서 내게 주신 사역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아주 소박한 동기였어요. 전문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학생과 부모님들에게 제가 알고 있는 만큼이라도 영어 교육에 대한 생각과 경험, 노하우를 나누고 싶었어요. 그러던 즈음에 한국 홈스쿨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가지고 있던 교육의 방향과 커리큘럼이 홈스쿨러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어요. 또한 다양한 리딩이 영어 교육에 필요한 것을 절실한 상황에서 저희가 가지고 있던 책들을 나눌수 있는 기회로 도서관도 함께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부모님들께는 바람직한 영어 교육에 대한 생각들을 함께 나누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작년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기 위해 준비할때부터 우성희사모와 메신저와 전화를 통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터인데 여러가지 노파심과 걱정으로 한국에 오는 것을 만류하고픈 마음이 많았었습니다. 그다지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하여 한국에 와서도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 예상되어 걱정스레 이야기할 때마다 굳건하게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마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요지부동' 믿음과 확신 앞에 오히려 말을 꺼낸 제가 부끄러웠었습니다. 인터뷰 후에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어느새 돌아서서는 그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현실을 바라보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부끄러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인터뷰 : 박진하 사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