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9동에 들어와 있는 나는 오늘도 2평 작은 원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여기로 들어온 이유에 대해서는 앞서 이야기한바와 같이 인덕원 아파트 집에서 아내가 비밀번호를 바꾸고 알려주지 않아 이 곳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내의 이야기는 당분간 나의 얼굴을 보기 싫으니 떨어져 있는게 났다는 것이고, 나는 제발 집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으나, 아내가 하는 말은 “아이들에게 아빠는 장기출장을 갔다”라고 말했으니, 이 인덕원 동네에서 얼짱 거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원히 보기 싫다”라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보기싫다”라고 말한 것에 언젠가 당분간 후에는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위안을 삼고 여기 신림9동 고시촌에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집에 들어가지 못한 첫날은 서초동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 늦게 퇴근한 날이어서 인덕원 집 근처에서 내가 늘 함께하는 2009년식 체어맨 차량에서 잠을 자려고 하였다. 그러나 차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 힘든 것인데, 간혹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었고, 의자가 앉기에는 편한 의자이나 눕기에는 너무 불편한 의자라서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결국 차에서 잠을 자려고 뒤척이다 잠은 선잠을 자게 되고 또 더운 여름날 씻기라도 해야 하기에 인덕원역 근처에 있는 모텔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는 장기로 있을 데가 아닌 곳이었다. 옆방에서 들리는 남녀의 사랑 소리는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틋날 밤에 조금 일찍 그래봐야 항상 늦게까지 업무를 해야하니 밤 9시에 일을 마치고, 생각해 보니 갈 곳이 없었다. “갈 곳이 없다니, 날 반겨줄 곳도 없다니” 나의 마음은 타는 듯 쓰라리면서도 중심을 잃은 듯 갈팡질팡하였다. 그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곳은 내가 20년간 살던 고시촌 신림9동이었다. 신림9동에는 우선 태용이가 있었다. 태용이에게 “오늘부터 내가 신림9동 원룸에 들어가서 잠을 자야 하는데, 혹시 근처에 빈방 있는지 아니?”라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태용이는 신림9동에 오면 방을 같이 찾아보자는 것이고 아마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같이 원룸 현관문 같은데 “방있음”이라는 A4용지로 쓴 안내문구가 있으니 같이 잘 만한 곳을 알아보자는 것인데, 같이 알아보자는 말은 고맙지만 밤 늦은 시간에 알아보는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우선 알았다고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신림9동에서 생각나는 사람은 김금자 미용실 원장님이었다. 항상 큰 누나같이 이것저것 잘 챙겨주시는 분이고, 20년간 단골이었던 데다가 아내와 아이들도 잘 아시는 분이다. 무엇보다 동네 원룸 주인일듯한 동네 아줌마들을 고객으로 많이 알고 계시고, 김금자 원장님의 미용실도 원장님 소유의 7층 원룸 건물 1층이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원장님, 안녕하세요, 사정이 있어 오늘 제가 신림9동 원룸 방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혹시 원장님 원룸에 방이 있을까요?”라고 전화를 드렸다. 김금자 원장님은 “네~ 안녕하세요~ 저의 원룸은 빈방이 없지만 근처 아시는 원룸 건물주 아주머니에게 방 있는지 확인할께요, 어서 오세요”라고 친절히 말씀해 주셨다. 다행히 원장님은 근처 원룸에 빈방 하나가 있어서 거기로 안내해 주었고, 차는 미용실 앞에 주차해도 된다고 하셨다. 이렇게 나의 신림9동 생활이 시작되었다.
신림9동은 정말 살기에 너무 편한 곳이다. 원룸은 보증금 없이 월 35만원에, 풀 옵션은 아니었지만 침대, 책상, 의자, 옷장, 냉장고,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다. 세탁기에 싱크대가 더 있으면 풀옵션인데, 내 방은 그 보다는 못 미치는 곳이다. 우선 20미터 거리에 24시간 김밥집이 있다. 언제든지 가서 김밥을 먹을 수 있는데, 김밥 뿐만이 아니라 비빔밥, 된장찌개, 주먹밥, 라면 등 거의 모든 메뉴가 있다. 그리고 30미터 거리에 빨래방이 있다. 코인을 넣고 드럼세탁기에 옷을 빨고, 이후 건조기를 돌리면 되는데, 나는 작동방법을 잘 모르고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근처에 “빨래”하는 집이 있어서 수건, 속옷, 양말 등 옷을 맡기면 3시간 안에 빨래를 해 주시고, 금액도 1만원으로 저렴한데, 빨래만 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개 놓으시기까지 하여 정말 너무 고마운 곳이다. 그리고 세탁소도 많아서 양복과 와이셔츠는 세탁소에 맡기면 된다. 빨래, 와이셔츠, 밥이 해결되니 너무 편한 곳이다. 그리고 기타 다른 식당들도 많고 술집들도 즐비하다. 여기가 바로 신림9동 녹두거리라고 하는 곳이다.
나는 이곳 신림9동 녹두거리에 와서 아내 말대로 “반성하고 근신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반성하고 근신하고 있기에는 여기 녹두거리가 너무 적당한 곳이다.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첫댓글 신림동 고시촌 이름은 많이 들었어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이 글을 보니 이웃들의 따뜻한 정이 있음을 느껴지네요.
법과 관련된 업종은 사실 저 같은 사람에겐 너무나 먼 동네이거든요.
이 나이 되도록 법원, 검찰청, 변호사 사무실, 경찰서는 커녕 법무사 사무실도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까요.
세무사 사무실은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명색이 변호사인데 고시촌 궁색한 생활을 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겠어요.
사법고시 합격한 좋은 머리는 이럴 때 고시촌 탈출 방법을 발휘해야지요.
신림9동 대학동은 정말 사람이 사는 따뜻한 정이 있는 곳이죠. 오두막 호프집이라는 곳에 어제 갔었습니다. 여기는 처음 온 사람들도 다 같이 웃고 떠드는 곳입니다. 인곳 강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