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안녕하세요. 아버님.
상협이는 초등시절부터 학교에 다니는걸 죽고싶을 정도로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전 상협이를 위로하느라고 빈 말로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되니 자살할 생각을 거두라고 말했습니다. 4학년때 손목을 칼로 그으면 죽을수 있냐고 담임께 말했다는 전해들은후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끊으면 천국에 갈수 없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안된다고 말했지요.
그후 중1년을 마친 상협이는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말의 신용을 잃으면 안되었기에 제 말에 책임을 지기로 결정했지만 이런타협점을 정했습니다. 1년만 쉬어보고 학교로 갈지 말지를 결정하기, 학교를 관둔후에는 모든지원은 끊는다. 스스로 용돈을 충당할 방법을 찾기, 엄마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1년후 복학을 할지 학교를 접을지 결정하기 그리고 공부는 혼자 살아갈 세상에서 좀 더 풍요롭도록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물론 상협이는 늘 그러하듯 내 말을 듣거나 이해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의문을 품거나 질문하는 일들은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설명하고 또 설명하는 일들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가진 기준과 템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과 템포가 대체적으로 규정지어진 교육과정이나 교본화 된 메뉴얼 발달과정 교과서적인 기준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그 기준을 근거로 삼지만 내 아이가 꼭 그 범주안에 있다고 예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상이 가지 않을만큼 느리더라도 전 상관하지도 않을뿐더러 아무일도 아니라고 늘 말하고 늘 괜찮다고 말하고 너는 너무 사랑스럽고 귀한 사람이라고 말해줄 뿐입니다.
단지 정직하지 않은것에 대해 게으른것에 대해 안일한 것에 대해 타이르곤 합니다.
상협이는 이렇게 행복한 집으로의 1년이 너무도 자유로워졌던것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제가 준 편안함보다 상협이를 평안하게 한것은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은 뜻을 모르고 읽어도 가장 좋은것으로 채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에서 모자라다고 부족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그들을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다 끊임없이 말하며 안아줍니다.
초등6학년까지는 제 바운드리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어찌할수 있는 상황들이죠. 그러나 다른 발달과정들은 늦는데 사춘기 같은 상황들은 비슷하게 왔습니다. 그때 엄마로부터의 독립적인 그리고 완전한 분으로의 연결을 시도한것이 성경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뜻도 모른채 엄마가 시키면 읽긴 했지만 언젠가부터 스스로 성경책이 닳도록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상협이의 자유는 학교를 쉴때 환경으로부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주어졌습니다.
우리아이들이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순서를 지향했으면 합니다.
첫댓글 좀 더 고민해 볼 수 있는 답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