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역사를 품다 6」 - 《시조21》 2022. 겨울호 연재
꽃밭[花田]에 유배된 섬, 남해
김덕남
입은 가려도 길은 열려있다. 하동에서 남해로 가는 국내 최초 현수교인 남해대교를 건너 꽃밭[花田]으로 달려간다. 쪽빛 바다가 먼저 안겨온다. 2020년부터 내리 3년째 마스크로 자율격리 내지는 거리두기를 생활화하고 있는 터라 온몸의 숨구멍으로 바람이 드나든다. 사람들은 힐링 차 또는 관광차 보물섬 남해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남해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우며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다. 남해에서 유럽을 만날 수 있는 독일, 미국마을이 있는가 하면 죽방렴을 보면서 멸치회의 맛도 즐길 수 있는, 눈과 입이 한꺼번에 행복한 곳이다. 섬 전체를 잇는 16개 코스의 본선 바래길과 46개 코스의 지선 바래길은 다정하면서도 아픈 기억을 되살려 준다. 바다와 산을 끼고 다랭이지겟길 화전별곡길 구운몽길 이순신호국길 등을 가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는다. 내리막이 반가우면서도 오르막이 그리워지는 남해를 문학기행 1번지로 꼽고 싶다.
썰물이 빠져나간 어머니의 봄 바다
개펄 그 끝에서 어린 손에 붙잡힌
먼발치 추억이 찍힌 달랑게 물린 밤
푸른 해무 중년바다 달빛이 출렁인다
남해의 잠 속으로 섬들이 들어오고
방 안을 가득 넘치는 몸을 뉘는 파도소리
- 박연옥 「바다에게 물린 남해」 전문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에 맞춰 여인들은 가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바다로 나갔다. 개펄 속 달랑게와 조개, 바위에 붙은 파래 미역을 따다 짠물에 퉁퉁 붓고 터진 어머니의 손, 그 손이 아프게 그리운 것은 시인만이 아닐 것이다. 이 땅 어머니들의 땀과 눈물이 느껴지는 ‘바래’는 남해의 토속어로 해산물 채취를 일컫는 말이다. 바다가 통째로 올라온 어머니의 밥상을 어찌 잊을 것이냐. 이제 바래는 ‘바래길’이라는 이름으로 섬 전체 구석구석을 잇는 힐링을 위한 산책길로 거듭나고 있다. 눈 감으면 푸른 해무 사이로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꿈결처럼 출렁인다. 방 안까지 따라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바다를 버리고는 살 수 없는 남해! 바다에 기대어 사는 여인들의 억척스런 삶!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하다. 시인이 걸었음직한 바래길을 따라가 본다.
파도에 젖은 바래길은 바다를 끼고 완만하게 돌아간다. 떠나버린 애인을 기다리듯 목을 빼고 바다 쪽으로 귀를 연다. 섬에서 바다로 길을 내며 원색의 꽃이 피고 진다. 팔랑이는 나뭇잎, 눈부신 윤슬, 구르는 몽돌이 앞다투어 이야기를 꺼낸다.
빼어난 아름다움에도 서울에서 멀고 외져 죄인을 가둬놓기엔 안성맞춤이었는지 유배객이 제주도 다음으로 많다. 개경 혹은 서울에서 천릿길을 온 이 길, 바다 건너 돌아갈 기약도 없는 그들의 막막함을 생각해본다.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남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효와 나라 사랑의 마음을 담은 주옥같은 작품을 낳았기에 가히 문학의 섬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치적으로 뜻을 달리한 데서 온 유배가 대부분이기에 당시의 식자층 내지는 권력의 핵심에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날의 부귀도 영화도 한순간의 꿈만 같아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두 버리고 왔으나 충정과 신의만은 버릴 수 없어 붓으로 마음을 달랬던 유배문학관을 둘러본다. 김만중, 김구, 남구만, 이이명, 김정 등의 시를 읽어본다.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혼으로 꽃을 피운 아프고도 아름다운 시의 향기에 푹 젖는다.
남해를 꽃밭[花田] 혹은 신선이 사는 섬, 즉 일점선도一點仙島라 불렀던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길을 따라간다. 김구는 안평대군, 양사언, 한호와 더불어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꼽힌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김구의 서체를 ‘인수체’라 하였다. 그가 인수방에 살았던 까닭이다. 20세에 문과 장원으로 뽑힌 글을 보고 ‘글은 한퇴지의 작품이요, 글씨는 왕희지의 서체로다.’라며 시험관 김안국이 놀랐다는 말이 전해온다. 김구는 음률에도 능하여 장악원의 정악正樂이 되기도 했다.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사림들과 함께 혼탁한 사회를 개혁하고 도학정치를 실현하려다 훈구파의 반발로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주초위왕'(走肖爲王:走肖는 趙의 破字, 조씨가 왕이 된다)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꿀을 발라 써놓고는 벌레들이 갉아먹자 그 나뭇잎을 중종에게 보이며 조광조에게 역모 혐의를 덮어씌운 것이다. 조광조가 유배 후 사사되는 등 사림파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홍문관 부제학이던 김구(32세)가 이에 연루되어 13년간 남해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절해고도 남해 적소에서 향촌의 주민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죽림서원에서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시와 술, 노래, 거문고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달래는 벗이었다.
김구가 남해 유배 중 지은 「화전별곡」은 남해의 생활상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한자와 한글 병용의 6장으로 된 경기체가이다. 1장은 수려한 망운산, 기암괴석의 금산, 봉내와 고내가 흐르는 산천, 유생과 호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장은 같이 어울리며 교우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술 취한 버릇, 시 짓기 풍월에서 운을 부르면 화답하는 광경을, 3장은 강금의 노래와 춤, 녹금의 장구소리, 못생겼지만 흥이 도도한 옥지 등, 기녀들과의 한바탕 놀이를 즐기는 장면이다. 4장에서 한원금은 시문으로 노래하고 정소는 풀피리를 잘 부는데 흥이 무르익으면 바리때로 댕댕 치고 소반도 덩덩 두드리다 사이사이 잔대도 딩딩 친다. 이렇게 잔치판을 벌이다 강윤원의 스ᄅᆞ렝딩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서야 잠이 든다는 내용이다. 5장은 각양각색의 술 이야기다. 녹파주 소국주 맥주 탁주, 황금빛 닭과 흰 문어 안주에다 유자 잔을 접시에다 받쳐 들고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자 껍질로 술잔을 대신했으니 그 풍류를 누가 따라가랴. 귀양살이의 현실을 부정하고픈 심정에서 이러한 놀이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6장은 서울의 번화로움보다 향촌의 돌무더기 밭과 띠집의 인정스러움을 좋아한다고 맺는다.(홍춘표 편저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 참고)
세월 냄새 가득 밴 화전별곡 읽다가
위리안치 부호 같은 스ᄅᆞ렝딩 스ᄅᆞ렝딩
남해는 푸르다 못해 시퍼런 속살이다
다 헐은 손마디로 달을 켜는 스ᄅᆞ렝딩
가슴에 그은 줄이 수평선으로 드러눕고
술잔에 넘치는 바다 파도가 따라 운다
소리를 끌고 가던 남해가 뒤척인다
뼈마디 스치는 밤 잠 못 들어 스ᄅᆞ렝딩
바닷물 마르는 꿈이 귓전까지 닿았다
- 정희경 「스ᄅᆞ렝딩」 전문
이 「스ᄅᆞ렝딩」은 「화전별곡」 4장을 노래하고 있다. 귀양살이의 아픔을 거문고 소리에 기대어 그리움을 달랜다. “뼈마디 스치는 밤 잠 못 들어 스ᄅᆞ렝딩 / 바닷물 마르는 꿈이 귓전까지 닿았다”고 하였으니 겉으로는 남해를 화전으로 노래하고 있지만 얼마나 고향에 가고팠으면 바닷물 마르는 꿈을 다 꾸었을까. 김구의 「화전별곡」이 정희경의 「스ᄅᆞ렝딩」으로 완성되고 꽃피운다. 13년간의 남해 유배와 임피(군산)로 이배되어 2년간 유배살이를 더 한 후 해배되어 고향 예산으로 돌아가나 양친은 돌아가시고 빈집만 덩그렇다. 부모님 산소를 오르내리며 흘린 눈물에 길섶의 풀이 다 말라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534년(중종 29년)에 돌아가시니 자암 김구의 나이 47세였다.
이튿날 날이 밝자 백련향에서 노도로 가는 첫배에 올랐다. 13인승의 조그만 배에는 선장과 부선장, 우리 일행 둘이 타고 있다. 기름값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 타기가 민망했는데 반가이 맞아주었다.
현재 13가구 17명이 거주한다고 노도에서 태어났다는 부선장이 설명하는 동안 10분 만에 노도에 닿았다. 선착장에 내리니 ‘노도 문학의 섬’ 안내 조형물이 팔을 벌려 환영하듯 서 있다. 왼편에는 『구운몽』의 일부가 오른편에는 김만중과 앵무새가 조각되어 있다. 그 아래로는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라는 『서포만필』의 글귀를 새겨놓았다. 서포유허비를 지나 헛무덤으로 향했다. 가파른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니 봉분도 없는 허묘자리가 을씨년스럽다. 허묘 위로 낙엽이 쌓였다. 관이 묻혔던 자리를 돌로 둥그렇게 표시해 놓았다. 1692년 4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묻힌 곳이다. 잠시 눈인사로 예를 표하면서도 허허로운 마음 가눌 길 없다.
깨강정같이 모래알 하나하나를 다져 만든 길은 맨발로 걷기에 적당하다. 후박나무 숲과 동백 숲의 새소리가 구운몽을 읽는 듯 청아하다. 김만중의 일대기와 문학세계를 그린 서포문학관을 지나 3칸 초옥으로 재현된 유배살이 툇마루에 앉았다. 잠시 바다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젖는다.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金益兼, 1614~1636)은 병자호란 때 강화로 가서 성을 지키다 함락되자 22세의 나이로 성 문루의 화약 더미에 올라 불을 질러 순절하였다. 그가 몸에 불을 붙여 척화를 부르짖을 때 김익겸의 노모도 아들과 뜻을 같이해 자결하였다. 이때 21살의 어머니가 타고 있던 피난선에서 김만중은 태어났다. 형 김만기는 다섯 살이었다. 어머니는 베를 짜 책을 사거나 빌려 밤새 필사하여 자식들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두 아들 모두 글의 기준을 세우고 평가하는 최고의 수장인 예문관 홍문관 대제학이 되었다.
김만중은 숙종이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 책봉에 반대하는 기사환국에 휘말려 1689년 남해 노도로 귀양을 왔다. 세 번째 유배였다. 효심이 남달랐던 그는 유배 온 첫해 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편지를 쓰려 붓을 들었다.
“오늘 아침 어머니를 그리는 글을 쓰고자 하나 / 글자가 되기 전에 눈물 이미 흥건하다 / 몇 번이나 붓을 적셨다가 도로 던져버렸는가 / 문집에 남해에서 지은 시는 반드시 빼버려야 하리”
붓을 들었으나 눈물이 앞을 가려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으니 문집에서 빼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붓을 적셔 밝힌 마음 몇 만 번이나 세웠을까
기운 달빛 차오른다 띄울 수 없는 글씨 위로
저 홀로 노를 저어간다
지새운 저 구름자락
바람은 바람 속에서 바람의 뼈를 키운 걸까
연적에 고인 해조음 뼈로 갈아 잔잔해지면
애절한 어머니 안부
숨비소리로 떠오른다
- 구애영 「노도에서 보낸 편지」 전문
김만중의 아픔이 시인의 아픔으로 고스란히 전해온다. 유배 온 지 1년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수개월이 지나서야 소식을 들었다. 그 슬픔이 어떠했을까. 초막에서 위패를 모시고 밤낮으로 울고 있는 김만중이 보인다. 슬픔에 겨워 병약해진 그도 다음 해 생을 마감한다. 56세였다. 노도에 유배 온 지 3년 만이다. 난리 중 유복자로 태어나 난세를 살았던 김만중을 대신해 여기 구애영 시인이 노도에서 편지를 쓰고 있다. “연적에 고인 해조음 뼈로 갈아 잔잔해지면 / 애절한 어머니 안부 / 숨비소리로 떠오른다” 숨비소리가 어디엔가 들려올 듯 바다와 하늘이 닿아있다.
산길을 따라 오르니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조각공원이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을 조각상으로 세우고 내용의 요점을 새겨놓았다. 『사씨남정기』는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사건에 대하여 왕이 미혹됨을 깨닫고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을 담은 풍자 소설이다.
『구운몽』은 평소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쓴 글이다. 육관대사의 제자 양소유가 지상에 내려와 팔선녀와 사랑하다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인간사 부귀영화가 일장춘몽임을 깨닫고 불문에 귀의한다는 내용이다. 한글본 한문 번역본 등의 필사본과 목판본이 있어 사대부 여염집 궁궐의 담장까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책을 사거나 빌려보기 위해 팔찌 비녀 등 패물을 팔기도 했다니 그 인기를 알 만하다. 영어판 스페인판 등 8개국에서 번역 출판되는 등 춘향전 다음으로 많이 출판된 한국 고전이다.
아름답지만 아픈 이야기를 간직한 섬, 이 땅 여인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현장인 남해! 자암 김구가 처음으로 이름 붙인 ‘화전’의 고장이요 김만중이 『구운몽』을 탄생시긴 곳이다. 남구만, 류의양 등 숱한 유배객의 붓이 문학을 꽃피우고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구하다 불멸한 노량바다가 있는 이곳, 썰물과 밀물 따라 사람들은 오고 간다. 시간의 리듬에 따라 생명은 피고 진다. 그 속에 삶의 진득한 노래가 있다.
김덕남 :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 올해의시조집상,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등
- 《시조21》 2022.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