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니 40년도 더 된 일이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큰 누나는 작은 포켓북 크기의 소설책을 사왔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그 책을 어린 나이에 읽고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쏙 빨려 들어갔다. 단숨에 읽어 내린 후 감동의 물결에 휩싸였다. 요즘 표현대로하자면 문화충격이란 말이 가장 어울릴 테다. 그 촉촉한 문학의 세례를 받고 누나들이 매월 구입해오는 샘터를 읽었다. 그 책에서 지금은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를 만나고, 법정스님을 만나며 그 분들의 일상에서 펼쳐지는 내밀한 속사정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맑고 정갈한 우물물 같은 이해인 수녀의 시편들도 좋았었다.
나는 또 큰 누나가 구입했던 세계문학전집에서 훼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었다. 직접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춘기 시절 남녀주인공의 러브스토리를 훔쳐보며 밤을 새우며 책을 읽었다. 나중에 외판사원이 판촉 활동을 하며 남구 야음동의 대영연립을 찾아왔다. 그래서 구입했던 한국문학전집을 애지중지했었는데 군대 가기 전 친구에게 팔아넘겼다. 세계문학전집은 당시 유행하던 세로쓰기였고, 글씨가 아주 잘았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한국문학전집은 큰 글씨라 시원하고, 책자도 깔끔했다. 한수산의 소설과 이문열의 문장도 즐겼다. 전축에서 레코드판이 빙글빙글 돌아갈 때 사이먼 가펑클의 bridge of trouble water 노래가 방안 가득 울려퍼졌다.
형의 심부름으로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려와 만화주인공들의 활약상을 즐겼는데 공부 안한다고 한번은 엄마가 재래식 화장실에 만화책을 풍덩 빠뜨려버린 적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만화방 주인아주머니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하도 단골이어서 그냥 눈감고 넘어가준 거가 아닌가 짐작해본다. 한번은 만화책에서 엄청 감동되는 스토리에 또 빨려 들어갔는데 나중에 커서보니 벤허라는 작품이었다. 벤허가 친구 멧살라의 모함으로 노예로 팔려가고 노예선에서 죽다가 살아나는데 전투에서 우연히 장군을 구해주게 되고, 그 장군의 양자가 돼 나중에 로마의 귀족으로 친구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복수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어릴 때지만 스토리의 기승전결 흥미진진함에 빠졌던 거 같다.
이런 저런 연유로 나는 글 쓰는 것을 즐기며 일기를 쓰곤 했는데 군대에서는 보안문제로 일기를 쓰지 못해서 아주 많이 답답했다. 그러던 차 제대를 앞둔 말년병장 시절에 정훈과의 타자기로 타이핑을 배웠고, 탁탁 거리며 마찰음이 나는 타자기의 매력에 빠져 제대하고 막 바로 워드프로세서를 구입했다. 그러면서 제대 후에는 조선일보 신문지국에서 오래 근무했고, 나중에 경향신문 남목지국장과 경상일보 다운지국을 맡아 운영했다. 어릴 때 배달한 경력까지 더하자면 나는 종이신문과의 인연은 수십 년이 된다.
그리고 울산 중구청의 명예기자로 6년을 활동했고, 울산시청의 블로그 기자로는 3년 정도 일하며 블로그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중구청의 명예기자로 있을 때 지역신문에 투고하는 계기가 돼 울산제일일보에 매월 칼럼 원고를 보냈다. 울산제일일보에 수년간 원고를 보내던 중 나중에는 울산광역매일에 박정관 칼럼을 6~7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 날 보내기로 한 필진의 원고가 펑크 나면 제주도 여행가서도 당일 마감 전 메일로 송고하곤 했다. 이처럼 어찌보면 무식하달만큼 글을 썼다.
10년 전 어느 날 지금은 별세한 변재덕 목사님이 “전도사 네가 기자가 되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 네가 가진 중요한 정보가 담긴 파일을 악한 자들이 몰려와 빼들어 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이게 무슨 뜬금없는 내용인가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경북기독신문의 울산주재기자로 1년을, 굿뉴스울산을 창간하여 편집장으로 햇수로 10년째 맞고 있다. 어떤 이의 지독한 모함도, 면전의 침뱉음 같은 구박도, 느닷없는 폄훼와 질시도 묵묵히 견뎌온 이금희 발행인과 박정관 편집장의 행보를 주님은 아시리라. 교만한 자들은 자신들의 교만함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교만 때문에 신의 징계를 받는 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니 백약이 무효다. 처방전이 없으니 해답을 못 찾는다. 그것이 교만한 자의 형벌이다.
굿뉴스울산을 창간하기 전 그 당시 무료 홈피를 제공했던 온맘닷컴의 전문가를 서울서 울산으로 불러 하루 홈페이지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 홈피의 게시글까지 치자면 현재의 카페와 블로그와 유튜브 및 카카오Tv 등에 2만 여개가 훨씬 넘는 글·사진·영상이 우리의 것이다.
https://youtu.be/-pJy20aFasw
이런 행보를 이어와서 나는 현재 국회의원출마자의 유튜브 영상을 담당한 이력과 울산UBC의 영상공모전 심사위원을 거쳐 유튜브 아카데미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굿뉴스울산에서 기획사업으로 개척교회들에게 카페 및 블로그를 무료로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 코로나19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블로그나 카페 개설을 도와주고 있다.
나의 글, 나의 사진, 나의 영상이 창작의 과정을 거쳐 블로그나 카페 및 유튜브 같은 매체에 게시되면 콘텐츠로서 훌륭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편집장의 업무를 여태 맡아오면서 몇 년 전 도서출판 굿뉴스를 등록해서 굿뉴스울산 부설기관으로 세웠다. 이사장님의 생애 첫 책 발간을 기획해 제안하며 전담했고, 굿뉴스울산의 창간의 전 과정에 얽힌 비하인드스토리와 인터뷰 및 탐방 등 취재현장의 기사를 모아 <신의 손>이란 저서를 집필했다.
앞서 언급한 이런 일들을 하면서 나는 끊임없는 배움에 대한 정진을 도모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배움에 대한 것을 참 우습게 여긴다. 돈 얼마에 배우려하고, 노력이나 품을 들이지 않고 큰 결실을 거두려한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것은 사상누각에 다름없다.
저번에 광주에서 아파트가 붕괴될 때 안전에 대한 고려가 미비했다. 완벽한 설계와 충분하고 넉넉한 자재공급과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인력들이 고가장비와 더불어 현장에 투입됐는데 왜 부실공사로 외벽이 무너져 내려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망신살을 뻗치는가 말이다. 결국 원가절감이라는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한 치의 빈틈없는 적확한 감리만 작동됐더라도 불상사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개(擧皆)의 사람들은 꾸준함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리석을 정도로, 혹은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며 끈기 있게 어떤 일을 도모한다면 필시 그 사람은 좋은 열매를 전리품으로 얻을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으니 고진감래를 수확물로 챙기는 것이다. ‘코로나가 왜 어려운가?’ 가만 살펴보면 내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돈 많은 사람이 돈 자랑하고 싶은데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그러니 돈 많은 사람에게 이 코로나는 힘들다. 명예를 자랑하던 사람도 익명성 뒤에 숨어있으려니 자랑치 못해 부아가 치솟는 것이다.
소처럼 천천히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다보면 답답하기도 하겠지만 우보만리(牛步萬里)가 버팀목처럼 든든하고 재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step by step, day by day로 일거수일투족 행하다보면 그것이 하루하루의 행운을 불러 오게 된다. 코로나의 계절을 지나면서 나는 천수답(天水畓)의 심정으로 매일 하늘을 우러러 올려다본다. 사람들의 노력이 모두 무위(無爲)로 돌아가도 신의 은총으로 매일매일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리라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