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을 처음 찾은건 스무살 때였다. 내가 은행에 입행한 후 처음 연차를 썼다. 그것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연휴를 포함에서 5일간 휴가를 냈다. 주변의 눈초리가 엄청 사나웠다. 아무리 초임이고 모르는게 많다고 해도 연말에 5일씩이나 휴가를 내는 놈이 어딨느냐 하는 눈초리였다. 그러나 친구놈들의 성화가 빗발쳤고 나 또한 겨울 설악산을 꼭 가보고 싶었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생이었고 나만 직장에 다니고 있어 내 사정을 몰랐다. "너 없어도 은행 잘 돌아간다, 너 없으면 은행이 망하냐" 내가 없어도 은행이 망하진 않겠지만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의 업무량은 늘어 날것이다. 친구들은 몇날몇칠을 찾아와 졸랐다. 나는 쭈볏쭈볏 휴가를 냈다. 마침내 12월25일, 설악산을 향한 장도에 올랐다. 1년전 치악산에서 고생한것을 생각하며 준비를 철저히 했다. 등산화와 방한복도 마련했고 침낭도 겨울용으로 빌렸다. 큰 배낭을 짊어지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백담사에서 출발 대청봉을 인증하고 설악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정했다. 산에서 2박을 하는 종주코스를 선택했다. 참! 미쳐도 단단히 미쳤던것 같다. 그 겨울에 산에서 2박을 하겠다고 생각했으니 그것도 설악산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위험하고 무모한 계획을 세운것이다. 그러나 1년 정도 등산을 해왔기 때문에 그때는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을것 같았다. 마침내 백담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감짝 놀랐다. 겨울 설악산엔 입산 통제기간이 있었던 것이다. 백담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 큰 나무봉으로 입구를 막고 그 앞에 "입산통제"라는 표지판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통제기간 12월 20일 부터 1월 10일 까지 아! 우리 모두 한숨을 쉬고 말았다. 이 무슨 꿈이 깨지는 소리인가, 나는 다른 직원들의 죽일듯한 눈초리를 받아가며 어렵게 설악산을 찾아왔건만 설악산은 나를 받아줄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어쩔수없이 근처 논에다 텐트를 쳤다. 물이 빠진 논은 얼어있었다. 저녁을 먹고 잠을 자려하는데 너무 추웠다. 우리는 지역 특산주인 경월소주를 너도나도 들이켰다. 술기운에 빠져 잠이 들었다. 무척 추웠지만 얼어죽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우리는 헤벌쭉 웃으며 산에서 잤으면 얼어죽었을 수도 있다며 웃었다. 그때는 모든일이 즐겁고 재미있었다. 이 먼 설악산까지 왔는데 집에 그냥 돌아갈순 없었다. 친구 하나가 대구에 있는 자기 작은집에 가자고 했다. 또다른 친구가 대구까지 내려 간다면 형이 있는 부산에도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오나행열차를 타고 대구로 갔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무턱대고 연락도 없이 말만한 놈 5명이 친구의 작은아버지집을 찾았다. 작은아버지는 놀라시긴 했지만 우리를 따듯하게 맞아주셨다. 우리는 작은아버지 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부산을 향했다. 부산에 있는 친구형은 이발소를 하고 있었다. 집이 협소해 집엔 가지 못했다. 어디선가 자야 할 잠자리가 필요했다. 남 사정은 전혀 안보고 느닺없이 찾아온 동생과 친구들을 구박했지만 어쩔도리가 없어 이발소의자와 소파에서 잠을 자라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어쨌든 하룻밤을 의자와 소파에서 보낸 후 우리는 해운대와 태종대를 구경했다. 그렇게 무모했던 두번째 겨울산행도 수포로 돌아가고 우리는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돈이 없던 우리는 완행입석 열차를 탔고 기차 좌석 맨 뒤쪽 빈 공간에서 쭈구리가 된 채 꾸벅꾸벅 졸았다. 가끔 그 때 사진을 보면 씻지도 못한채 머리는 새집을 짓고 쭈꾸려 조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인생길을 같이 걸어온 절친이었다. 그 다음해 우리는 여름휴가를 내어 설악산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종주등반에 성공했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설악산 계곡에 몸을 담그며 열을 식힐수 있었다. 지금은 국립공원 산들의 계곡에 들어가선 안되지만 그때만 해도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곤 했다. 산도 타고, 물놀이도 하고 어릴적 그 추억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여름은 뜨겁게 익어갔다. 그후로도 설악산을 몇번 찾았다. 주로 은행 야유회를 갈 때 1박2일로 설악산을 갔다. 야유회는 말 그대로 야유회로 설악동 콘도에 도착하면 벌써 술판이 벌어지고 나이트클럽도 가고 했다. 아침에 산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 산을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산을 사랑하는 내가 가만히 있을 수 는 없지 않는가, 멀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울산바위까진 올라갔다. 다른 직원들이 흔들바위에서 다시 돌아갈 때 나는 울산바위를 향했다. 술이 약했던 나는 아침까지 술이 깨지 않은채로 비몽사몽 울산바위를 올랐다. 울산바위의 깍아지른 돌계단은 언제 끝나는지 까마득하게 높았다. 그렇지만 너무 늦으면 다른 직원들에게 민폐를 끼칠것이기에 쉬지 않고 부리나케 올랐다. 2~3명만이 울산바위를 향했으니 다른 이들은 우리를 하염없이 기다릴것이다. 시간도 지나고 계단을 계속오르다 보니 술도 차츰 깨었다. 마침내 울산바위에 올라 웅장한 바위들을 보았다. 금강산에서 울산을 향해 가던 바위가 설악산에 떨어져 생겼다는 울산바위 전설이 있다고 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울산바위 정상에선 기념으로 조그만 팬던트 목걸이에 울산바위 완등이란 문구를 새겨 파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완등기념으로 목걸이를 샀다. 5년전 쯤 친구들과 울산바위와 비룡폭포를 갔었다. 울산바위는 전과 다르게 많이 정비되어 있었다. 데크로 계단을 깔아 전보다 오르기가 편해진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울산바위는 웅장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울산바위를 다시 오르며 지난간 추억과 직원들을 생각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빠르고 남은 것은 흰머리와 추억뿐인것 같았다. 내가 언제 또 울산바위를 올라올 수 있을까, 나는 설악산 풍경을 찬찬히 바라보며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