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4일
롯데 자이언츠는 항상 대기록 달성의 순간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승엽에게는 아시아 단일시즌 홈런 신기록(56홈런)과 KBO 통산 400홈런을 모두 허용했으며, 박용택의 KBO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 경신 때도 롯데가 함께 했다. 이 외에도 롯데는 수많은 대기록의 희생양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롯데는 한 경기 최다 타점 신기록, 한 이닝 사이클링 홈런, 한 이닝 개인 최다 투구 수, 최초의 낫아웃 끝내기, 최초의 누의 공과 등 온갖 굴욕적인 기록에도 경조사 참석하듯 꼬박꼬박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그렇다고 롯데가 안 좋은 기록에만 끼어든 것은 아니다. 이대호의 9경기 연속 홈런(2010년)은 당당히 세계 신기록으로 등재됐고, (비록 2군이지만) KBO 최초의 퍼펙트 게임도 롯데 이용훈이 달성했다. 가장 최근에도 오윤석이 KBO 최초로 만루홈런이 포함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올 시즌 손아섭은 역대 최연소-최소경기 2000안타 달성에 성공했다. ‘철완’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4승 기록은 깨져서도 안 되지만 향후 누구도 깰 수 없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남아있다.
롯데가 세운 영광의 기록 중에는 7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고 있는 ‘한 경기 팀 최다 안타 신기록’도 있다. 그것도 ‘남두오성’이 라인업을 지키고 있던 1992년, ‘조-대-홍-갈’ 클린업이 리그를 폭격하던 2010년이 아니라 ‘5788’의 가운데를 지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2014년에 이 기록을 달성했다. 과연 롯데는 폭발적인 공격력과 그렇지 못한 라인업을 가지게 됐을까.
2013시즌 5위에 머무른 롯데는 비시즌 타선 강화를 위해 힘을 쏟았다. 외국인 타자 의무 보유에 따라 베네수엘라 출신 루이스 히메네스를 영입했고, FA 시장에서는 2013년 포스트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던 최준석에게 7년 만에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혔다. 또한 FA 최대어 강민호를 타 팀이 구경도 못 하도록 우선협상기간에 4년 75억 원을 안겨주며 잔류시켰다. 트레이드 후 기대만큼의 모습은 아니었던 황재균도 비시즌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체격을 키우며 장타력 상승에 나섰다.
시즌에 들어가자 히메네스의 활약이 빛이 났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을 늦게 출발한 히메네스는 데뷔전이었던 4월 10일 LG 트윈스전에서 끝내기 3점 홈런을 기록,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히메네스는 5월 30일까지 타율 0.365, OPS 1.124를 기록하며 ‘배리 본즈의 재림’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여기에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박종윤과 문규현, 정훈까지 3할 타율을 기록하며 라인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비록 기대했던 최준석과 전준우, 강민호가 시즌 초반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 부진에 빠지기는 했으나 공격에 있어서 세 선수의 부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롯데는 대기록의 전조를 보여줬다. 5월 6일* 사직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롯데는 1회부터 타자일순하며 6득점을 올렸다. 여기서 쉬지 않고 롯데는 2회와 3회에도 타자일순, KBO 최초로 3이닝 연속 타자일순을 기록했다. 히메네스가 2회와 3회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부상으로 조기 교체된 전준우(1안타)를 제외한 모든 선발타자가 2안타 이상을 때려냈다. 이날 롯데는 무려 24안타를 몰아치며 19대 10 대승을 거뒀다. 24안타는 4년 전인 2010년 롯데가 허용했던 한 경기 최다안타 기록(27안타)에 단 3안타가 모자라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5월 초 폭발적인 타격을 보여준 롯데는 5월 말 다시 만난 두산을 상대로 한 단계 상승한 듯한 폭발력을 자랑했다.
5월 31일, 롯데와 두산은 무대를 잠실로 옮겨서 3연전의 두 번째 경기를 펼쳤다. 롯데는 전날 두산 선발 더스틴 니퍼트에게 꽁꽁 틀어막히며 1대 6으로 패배했다. 그나마 히메네스가 1회 비거리 140m의 초대형 홈런을 터트린 것이 위안거리였다.
이날 롯데는 좌완 셰인 유먼을, 두산은 우완 크리스 볼스테드를 선발투수로 등판시켰다. 두 선수는 외국인 투수지만 2014시즌 초반 좀처럼 좋은 투구를 보여주지 못하며 퇴출 위기에 몰려있었다. 그만큼 두 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롯데는 1회부터 볼스테드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1회 초 선두타자 정훈의 안타로 시작한 롯데의 공격은 5번 박종윤까지 5타자 연속 안타로 이어지며 3점을 얻었다. 이어 1사 후에도 문규현의 중전 안타로 한 점을 더 내며 롯데는 1회에만 4득점을 올렸다. 롯데는 3회까지 8점을 기록하면서 볼스테드를 3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끌어내렸다. 2번 전준우는 3회까지 세 번의 타석에서 3안타를 때려냈다.
투수가 바뀌었지만 롯데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매서워졌다. 롯데는 4회 바뀐 투수 정대현을 상대로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여기서 롯데는 황재균의 적시타와 3루수 이원석의 실책으로 3점을 올렸다. 이어 강민호의 좌전 안타가 터지며 스코어는 13대 0이 됐다. 이 시점에서 롯데는 이미 선발 전원 안타를 달성했다. 그러나 여기서 공격을 멈추지 않은 롯데는 4회에만 7득점을 완성, 스코어를 15대 0까지 만들었다.
5회까지 이미 16득점을 올린 롯데는 5회 말 이원석에게 홈런을 내주며 첫 실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이미 너무 점수 차가 많이 났다. 6회를 잠시 쉬어간 롯데는 7회 전준우의 3점 홈런과 8회 최준석의 솔로포까지 나오면서 20득점을 채웠다. 여기까지만 했어도 롯데는 충분히 대단한 경기를 펼쳤다. 롯데는 8회까지 이미 25안타를 기록, 역대 최다안타 기록에 2개 차로 다가갔다.
9회 초 마지막 공격, 끝내 롯데는 대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용덕한의 2루타로 찬스를 만든 롯데는 2년 차 임종혁의 1군 첫 안타가 나오며 한 경기 최다안타 타이기록을 세웠다. 다음 타자 정훈은 자신의 7번째 타석에서 좌익수 옆에 떨어지는 안타를 때려내며 결국 신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롯데는 2번 전준우의 좌전 안타가 터지며 29번째 안타를 기록했다. 내친김에 롯데는 최초의 30안타 기록 도전에도 나섰지만 손아섭과 최준석, 박준서가 범타로 물러나며 여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롯데는 마지막 투수 김유영이 두산의 공격을 삼자범퇴로 처리, 23대 1 대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롯데는 14명의 타자가 타석에 등장, 29안타 21타점을 올리면서 두산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두산 투수진은 선발 볼스테드(8실점)를 비롯해 이날 등판한 4명의 투수가 모두 4자책 이상을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기록에 큰 손해를 봤다. 롯데는 이날 타석에 들어선 선수 중 박준서(2타수 무안타)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했고, 그중에서도 테이블세터 정훈과 전준우는 무려 12안타 8타점 7득점을 합작, 중심타선에게 ‘12첩 반상’을 대접했다. 경기 전까지 0.229였던 전준우의 타율은 무려 0.258까지 상승했다. 뜨겁다 못해 녹아내릴 듯한 타력에 롯데 팬들은 잠실야구장 주차장에서 ‘부산 갈매기’를 합창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롯데는 3연전의 마지막 날인 6월 1일 경기에서도 18안타를 몰아치며 14대 5 대승을 거뒀다. 정훈은 13타석 연속 출루, 10타수 연속 안타 타이기록을 세우며 타격 부문에서 만개한 모습을 보여줬다. 롯데에서의 2시즌 동안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롯데 선발 크리스 옥스프링은 무려(?) 3점을 내주고도 승리투수가 되며 시즌 5승째를 달성했다. 3연전을 위닝 시리즈로 장식하면서 롯데는 시즌 23승 24패를 기록, 4위 넥센 히어로즈와 3경기 차 5위에 위치했다. 피타고리안 승률은 오히려 넥센보다 높았기 때문에 곧 4위권 안에 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롯데는 이 시리즈가 열리기 직전인 5월 28일 권두조 수석코치가 사임하면서 팀 내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선수단은 권두조 코치의 스파르타식 훈련에 항명하면서 구단주 대행에게 직접 항의했고, 결국 권 코치는 현장을 떠나 스카우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선수단의 항명 기사에 한 줄로 처리된 ‘호텔 CCTV까지 검사한다’는 소문은 5개월 뒤 롯데 구단과 KBO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이 됐던 ‘롯데 CCTV 사찰 사건’이 밝혀지며 사실로 드러났다. 결국 선수단 감시 논란과 프런트의 월권 등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롯데는 2014시즌 최악의 분위기로 시즌을 마감했다.
▲ 2014년 5월 31일 롯데-두산전 박스스코어(사진=KBO 연감)
이 당시 밝혀진 사실 중 하나는, 권 코치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롯데 선수단이 5월 말 두산과의 잠실 시리즈부터 경기를 보이콧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권 코치가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면 롯데의 경기 최다 안타 신기록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롯데 구단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을 것이다.
양철종 / 칼럼니스트
자료출처 : 야구공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