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7. 03.
여성의 정치 참여를 두고 UN에서는 최소 30% 의석을 권고한다. 여성 의원 수가 적어도 전체의 30%는 돼야 여성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의문. 지구상에 여성은 분명 절반을 차지하는데, 왜 하필 30%를 UN이 권고할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30%라는 수치는 사회과학적인 근거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30%는 돼야 여성 인권이 더 이상 소수 인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될 것이라는 차원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여성 의원 최소 30% 권고는 마치 일종의 ‘실무율’처럼, 사회과학에서도 자극에 반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 수치’라고 보면 된다.
물론 여성 의원 숫자가 많다고 해서 해당 국가나 해당 사회의 여성 인권이 활발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통계를 보면, 의회에서 여성 의원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아프리카 르완다이다. 르완다의 정치 체제나 혹은 민주화 수준을 폄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르완다는 영화 ‘호텔 르완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종족 간 분쟁으로 정치가 매우 불안정했던 국가다. 이런 국가에서 여성들이 전체 의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여성 인권과 사회적 성평등이 선진국 수준으로 구현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굳이 먼 아프리카 국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북한은 우리나라의 국회 역할을 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여성 대의원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높다. 혹자는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의 정치와 사회 분야 참여도가 높을 것이라 한다. 하지만 북한 여성들의 사회 참여 혹은 정치 참여 뒤에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북한 남성들은 가정에서 대한민국 남성보다 훨씬 권위주의적이다. 과거 김일성 생존 당시부터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이라는 고유명사 앞에 반드시 ‘어버이 수령’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만 했다. 즉, 김일성이라는 존재와 북한 주민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과 같다는 식의 논리를 북한 당국은 계속 주민들에게 주입해왔다. 이런 가부장적인 논리는 김씨 왕조의 세습마저 정당화했다.
이런 과정에서 가부장적 논리와 사고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 방식 자체를 지배하게 됐다. 일례로, 대한민국으로 탈북한 사람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그 이유를 북한 출신 여성들의 높은 생활력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다른 이유로는 남성보다 더 많은 수의 북한 여성이 중국으로 건너간 것을 꼽을 수 있다. 상당수 북한 여성이 중국으로 건너간 이유는, 중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는 북한 가정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데, 남성은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워 가정 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북한 여성들은 가정을 위해 경제 행위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북한 여성은 가정과 정치, 사회라는 각 분야에서 다중의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지난 6월 27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오후 국회 대표실을 예방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수치만으로는 여성 정치 참여의 의미를 일괄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가 갖는 상징성까지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바른정당 전당대회 결과 이혜훈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됐다. 3선 의원인 이혜훈 의원이 바른정당의 당대표로 선출됨으로써,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 이어 또 한명의 여성 당대표가 탄생했다. 5당 체제에서 3명의 당대표가 여성이다. 그래서 이혜훈 의원의 당대표 선출이 갖는 의미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우선 이혜훈 신임 당대표가 바른정당의 ‘자강론’을 주장하는 당대표 후보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혜훈 당대표는 자유한국당과의 연계를 통한 생존의 모색보다는 스스로의 힘에 의한 생존을 주장했다. 때문에 이혜훈 후보의 당선은, 앞으로 보수 정당 간 역학구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물론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는 자유한국당에서 누가 대표가 되는지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보수 정당의 한 축에서 ‘자강론’을 주장하는 당대표가 등장함으로써 당분간 보수 진영이 지금의 분열된 상태로 흘러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두 번째 의미는 보수 정당에서 여성 당대표가 나왔다는 점이다. 이혜훈 의원이 최초의 보수 정당 여성 당대표는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 한나라당 당대표를 지냈고, 비대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이혜훈 신임 당 대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엄청난 일을 겪고, 그 이후 박 전 대통령이 구속까지 된 상태에서 상당수 여성 정치인은 엄청난 걱정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문제 때문에 국민들이 여성 정치인 전체를 싸잡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더구나 보수 정당에 속해 있는 여성 정치인의 근심은 더욱 컸다. 이런 와중에 보수 정당에서 여성 당대표가 탄생했으니, 보수 정당 여성 정치인들은 상당히 반길 만하다.
이혜훈 신임 당대표는 추미애 대표 그리고 심상정 대표와 함께 헤쳐 나가야 할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우리나라 정치판을 지배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무한 투쟁을 하고,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이런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다. 내 쪽은 무조건적인 선이고 상대는 타도해야 할 악이라는 것인데, 이런 선악구도에서는 정치가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정치는 악을 제압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일종의 파트너로 생각하며 파트너와 타협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국민의당 사태에서 드러났듯,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가 판을 친다. 바로 이런 점도 우리나라 정치판을 더욱 비극으로 몰아가는 중요한 원인이다.
세 명의 여성 당대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십분 발휘해 이런 한국 정치판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세계은행은 과거 2000년대 초반 여성의 의회 진출이 활발한 국가에서의 부패 정도는 상당히 낮다는 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수적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가 많은 국가 모두가 부패지수가 낮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은행은 서구적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가 중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가 상당히 활발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나라에서는 부패가 만연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 여성 정치인이, 자신들만의 상징성을 이용해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보다 많이 기여하기를 바란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포인트. 단순히 여성 정치인 수가 많아지고, 또 더 많은 여성 당대표가 등장하는 것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 수적인 측면과 아울러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한 권리를 보다 많이 인정해주고 여성 인권을 더 이상 소수 인권으로 바라보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데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많은 지역구 출신 여성 의원이 나와야 한다. 지역구에서 선택을 받아야 정치 생명이 오래갈 수 있다는 차원에서, 지역구 출신 여성 의원의 수가 늘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경쟁해 여성도 승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간다는 차원에서도 이 부분은 중요하다.
5당 체제 아래서 3당의 당대표가 여성이라는 의미는 문재인정부에서 전체 장관의 3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공약과도 일맥상통한다. 행정부와 의회에서 여성들 존재감이 각인된다면,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역할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 아직도 직장과 사회에서 차별받는 여성들 입지를 좀 더 강화시키는 데 기여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5당 체제에서 3명의 당대표가 여성으로 꾸려졌다는 점이 우리 정치를 보다 이성적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15·창간호 (2017.07.05~07.1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