事件파일
挫折된 國家代表의 꿈
어른의 한 마디가 少年의 길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國家 代表選手를 그리던 少年의 꿈. 그 꿈은 挫折되었고 마침내 殺人犯으로서 手匣을 차게 되었으니 - 事件의 裏面은 이렇다.
검은 惡靈
서울 태릉선수촌 정문을 좌로 끼고 자리잡은 상가는 어둠이 짙어지면서 인적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였다.
새벽 1시 반.
순찰을 도는 방범대원이 한 가로등을 지나치자 검은 그림자가 소리 죽여 방범대원의 뒤를 따르더니 이내 어두운 골목으로 모습을 감추었는가 싶더니 이내 나타나 한 상가의 깨진 유리창 사이로 손을 넣어 고리를 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가게 안으로 들어선 송학근(가명 20․충남 홍성)의 뇌리엔 김성숙(56․태릉 운동구점 주인)이 금고 안에 넣고 있던 수표와 울상이 된 얼굴로 자신을 부여잡고 매달리던 노모의 힐책소리만이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송군은 김여인을 친어머니처럼 따르고 김 여인 역시 송군과 같은 아들이 있었고 송군과 고향도 같았기에 송군을 친조카처럼 여기며 남다른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던 처지였다.
송군은 자신의 고향사람들에게 국가대표선수(배구) 선수가 되었다고 속여 마을 후원회에서 몇 백만 원의 성금을 가져다 썼으나 올림픽이 시작되고 경기가 열리자 송군이 선수 리스트에도 끼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심, 배구협회에 의뢰한 후 마을 후원회에서는 속았다는 것을 알고 마을에 거주하는 노모(62․윤순례)에게 후원금의 반환을 요구, 급기야 노모가 올라와 얼마 전에 가져 온 돈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던 것이다.
태극마크의 꿈을 안고
송군은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 같은 부끄러움과 말로 형용키 어려운 격정을 한꺼번에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면 후원회에서 가져 온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어디서 그 큰 돈을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야 겨우 선수촌 옆에 터를 마련해 놓고 그것도 반은 공짜로 봉사하듯이 하며 선수들을 상대로 구두를 닦아 하루에 기 천 원 벌이의 딱사일 뿐인데.
이런 번민을 해소할 길이 없어 술 한 잔 걸친 김에 평소 그렇게 잘 대해주던 운동구점의 김여인에게 하소연이라도 해보자고 찾아갔었는데 마침 장부정리를 하고 있던 김여인이 금고를 여는 바람에 그곳에 잇던 수표를 보았던 것이다.
송학근은 충남 홍성의 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초등학교만을 마쳤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어린 시절. 남들은 다 지붕개량이다 집 구조를 변경한다 할 때 송군의 집은 영 엮을 짚조차 쉬이 구하지 못할 정도로 손바닥만한 밭떼기에 의지해 여섯 살 위인 누나와 셋이서 품팔이로 그날 그날을 연명하며 살아왔다.
초등학교만을 나온 그였지만 하루가 성실했고 노모를 섬기는데 소흘함이 없어 마을에서 내놓은 효자로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가난이 싫다며 가출해버린 누나와 비교가 되면서 그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되자 마을 이장 및 유지들에게 동정을 사게 되었고 도움을 얻어 대전시 모 은행의 급사로 취직을 해 생활의 끼니걱정을 덜게 되었다.
銀行長의 부추김이 惡의 씨앗으로
어느 날 대전시 각 은행의 친선배구대회가 있던 날, 송군은 은행의 대표선수 뒤 심부름꾼으로 경기장에 따라가게 되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송군이 속한 은행이 결승까지 진출을 하게 된다.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첫 세트가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선수가 부상을 당했다. 송군은 급사였지만 마땅한 선수가 없었던 차라 대타로 코트에 들어서게 되었다. 송군은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문 것처럼 펄펄 날았다.
이런 송군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경기를 우승으로 이끈다. 이것이 발단이었다. 그 후 송군은 시합 때마다 베스트 멤버로 기용이 되었으며 그의 실력은 뭇 선수를 능가해 대전에서 한다하는 은행측의 어느 선수도 송군을 따를 수 없을 정도다 보니 유혹은 너무도 빨리 송군에게 다가왔다.
또 한 차례 송군의 활약에 힘입어 우승을 하던 어느 날 송군은 은행장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이 것이 바로 송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송군, 난 송군이 이 은행의 급사로 있으면 있는 만큼 국가적으로 손해라고 생각해 말을 하는 거네. 난 송군이 서울로 올라가 어느 야간학교라도 입학을 해서 송군의 실력을 인정받길 원하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네. 혹 운이 따라 자네의 실력이 인정돼 국가대표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말일세.”
라며 은행장은 격려금까지 내어놓으며 송군으로 하여금 꿈을 갖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위에서도 선수가 되어보라는 말이 있던 차에 은행장의 격려금까지 받고 보니 송군은 마치 자신이 국가대표라도 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이에 말리는 어머니를 설득, 마침내 서울로 상경을 하였다.
서울로 상경한 송군은 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 찾질 못하고 격려금가지 바닥이 나자 묘안 끝에 선수촌 근처에 머물면서 선수들을 사귀다 보면 길이 열리지 않겠느냐고 믿고 구두닦이를 시작, 예측대로 선수들과 상면이 가능해지자 수익금을 모아 선물공세의 환심을 사기에 이른다.
그러자 어느 선수는 이런 송군의 선심에 고마움을 느꼈던지 태극마크가 달린 츄리닝을 선사하기에 이른다. 츄리닝을 얻은 송군은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다.
가난에 멸시받으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온 그였기에 그는 폼이라도 내어보자는 영웅심리로 괜히 할 일 없이 마을 골목길들을 서성거렸다.
그러지 않아도 송군의 노모로부터 아들 자랑을 신물나게 들어 온 마을 사람들이었기에 송군의 츄리닝 모습을 보고 대견해 하며 마을의 영웅으로 추앙 받기에 이른다.
어른의 한 마디가 빚은 엄청난 오류, 그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는 식의 화제가 꼬리를 물더니 곧이어 후원회가 발족되기에 이른다. 그러자 거만해진 송군은 있는 말 없는 말로 줏가를 높였다. 후원금 명목으로 기십만 원을 받아 상경한 송군은 가만 생각해 보니 멸시의 시선 속에서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편히 살 수 있지 않느냐는 방법을 깨우침과 동시에 구두닦이를 그만 둔다.
필요한 돈은 편지 한 장이면 곧바로 송금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상비군에서 후보로, 그리고 주전 선수로 명칭을 바꾸어 가며 송금 방법을 모색해 나갔다.
올림픽이 다가오자 후원회로부터 경기 일정을 적어 보내라는 편지가 쇄도, 송군은 경기 날짜를 가일로 적어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 날을 맞아 TV를 지켜보았으나 배구 시합은 없었다. 이를 이상히 생각한 후원회에서 배구협회로 문의를 해 송군의 사기 행각임을 밝혀내고 송군의 모친에게 후원회로부터 받은 후원금을 돌려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차마 한 마을에서 고발까지야 하지 않겠다며.
빛바랜 幻想
송군의 심리적 압박은 컸다.
당장 돈을 마련해 마을 주민에게 시달림을 받는 모친을 구해줘야 했으나 그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송군은 가출했던 누이의 거취를 알아내 누이가 일하는 카페로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누이는 돈 문제에 대해서는 얼음처럼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어찌 되겠지 하는 기대감이 컸던 만큼 송군의 실망은 비례했다. 허탈감이 컸던 송군은 평소 쳐다보기만 해도 취할 것 같던 술로 번뇌를 지워보려 했으며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이나 하려 김여인의 운동구점을 찾았던 것인데 금고 안의 수표가 송군의 시야를 어지럽혀 온 것이다.
송군은 그저 수표만 훔쳐가려고 가게에 잠입, 금고를 열었으나 김여인이 기척을 느끼고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금고 옆에 있던 망치로 머리를 후려치고 뒤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나온 것이다.
송군은 다음날 훔친 수표를 누나의 카페에서 현금으로 교환, 어머니에게 송금한다.
송군은 며칠 후 구두수선 센터에서 구두를 닦던 중 경찰에 잡혔는데 김여인의 출납장부를 조사하던 중 수표의 도난을 알고 추적해 송군의 누나에게서 송군의 행위임을 알게 된 것이다.
송군은 순순히 자백했다. 송군은 조사과정에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은행장이 바람만 불어넣지만 않았어도 하루를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알았을 땐 이미 손엔 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고 술회했다. 또 송군은 결코 은행장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친누이이면서도 어찌 그리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박절하던 이R주의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송군은 살인 및 절도죄로 구속이 되었다. 이 엄청난 비극, 꿈 많은 청년이 말 한 마디가 빌미가 되어 빛이 없는 나락의 수렁으로 떨어진 결과이고 보니 말 한 마디의 의미가 얼마나 주요한 결과를 낳는 것인지를 생각케 하는 건이었다.
기사 끝.
1988년 11월 호 月刊 歷史와 實話 3페이지 朴勝基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