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중국에서 일어난 서안(西安) 사변은 중국 안팎을 놀라게 한 큰 사건이었다. 당시 주은래는 중국 대표단을 인솔하여 서안으로 갔다. 어느 날 그는 왕곡 군관 훈련 여단의 초청을 받고 위험을 무릅쓰고 약속 장소에 갔다. 그곳에는 군관학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곡 군관 학교는 분위기가 아주 삼엄했으며, 주은래는 분노한 무장 군관들 속 한가운데를 지나서 강당 무대로 올라갔다. 주은래는 예의 있게 인사를 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늘 귀 학교에 온 것은 여러분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라의 흥망에는 필부도 책임이 있다고 하는데, 모두 애국 군인들이 아닙니까?”
강당 아래에서 한 군관이 큰 소리로 물었다.
“장개석은 나라에 치욕을 안겨주었으니 그 죄가 아주 큽니다. 그런데 왜 그를 죽이지 않습니까?”
주은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아주 잘 물었습니다.”
말문이 터지자 군관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몽땅 털어 놓았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단 말입니까?”
“장개석을 죽이지 않으면 후환이 큽니다!”
“죽이지 않으면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습니다!”
여러 군관들의 말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주은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죽이려면 뭐가 어렵겠습니까? 한 마디 말이면 됩니다!”
이 뜻밖의 대답에 사람들은 모두 잠잠해졌다. 주은래는 장개석을 죽이는가 죽이지 않느가 하는 문제를 계속 말하지 않았다. 그는 화제를 바꾸어 서안 사변 후의 국내외 정세와 군사적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자연스럽게 원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장개석을 죽이지 않고 내전을 중지해야만 항일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는 이치는 군관들의 의문을 하나하나 풀어 주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군관이 물었다.
“당신들 공산당은 줄곧 장개석을 반대하고 항일투쟁을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찌하여 변했습니까?”
“우리가 장개석과 10년 동안 싸웠는데 왜 이 기회를 틈타서 복수하지 않는가, 왜 그를 처리하지 않는가 하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뜻입니다.” “ 좋습니다. 제가 대답해 드리죠”
주은래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우리 홍군에는 서해동(徐海東)이라고 부르는 장군이 있습니다. 서해동 장군 일가족 36명 가운데서 35명이 장개석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얼마나 참혹합니까! 서해동의 원한은 아주 깊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번에 그는 장개석을 죽이자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장내에 있던 군인들은 모두 감동해서 뜨거운 박수를 쳤다.
註) 주은래가 이용한 방법은 바로 상황 통제다. 그는 이 방법으로 소란은 제지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