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2021년 제5회 한국NGO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박용운의 ‘깔세' 선정
1월말까지 모두 1,000여 편 응모...시상식은 오는 12일 예정
2021년 한국NGO신문 시 부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박용운의 ‘깔세'가 선정됐다.
한국NGO신문(대표 김승동)은 지난 1월 말까지 전국에서 응모한 작품 1,000여 편을 놓고 신춘문예 운영위원(안재찬, 이오장, 김해빈, 김기덕, 김정현, 임경순, 김정범)인 시인들이 모여 공정한 심사 규정에 따라 예심을 실시해 그 중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품 17편을 선정하고, 이어 본심에서 조명제 시인과 유성호 평론가가 최종 당선작으로 박용운의 『깔세』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일 진행될 예정이다.
본심 심사위원인 조명제(시인, 문학평론가), 유성호(문학평론가, 글) 위원은 이번 당선작을 "상상적 경험과 창조적 흔적"의 결과라고 평하고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했다.
이번 2021년 제5회 한국NGO신문 신춘문예에는 많은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모두 202명이 다섯 편씩 출품하여 모두 천여 편이 모아졌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을 통과해온 열여섯 분의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많은 작품들이 매우 공들인 시간을 축적해왔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 작품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경험들을 자산으로 삼으면서 오랜 습작 시간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도 예민하게 주목했다.
뛰어난 사례로 언급된 것들은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들이고 있어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시어의 개성과 시인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준 시편들에 호의를 가졌는데 그 결과 박용운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특히 박용운 씨의 당선작 「깔세」는 골목 안 쪽방의 철새를 서정적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처해 있는 내면의 고통과 그로 인한 실존적 반응의 연쇄를 진정성 있게 소환하고 있다. 생명성에 대한 예민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인간 실존의 난경(難境)들을 은유해가는 시인의 필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에 얹힌 철새의 날갯짓과 울음의 형식이 우리에게 비상한 감동을 주고 있다. 다른 작품들도 균질성과 지속성을 예감시키는 수준작이라고 심사위원들은 판단하였다. 그 점에서 박용운의 시가 가지는 공감의 능력은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좋은 신인을 얻어 마음 깊이 반긴다. 더불어 첫 걸음을 이렇게 뗀 박용운의 시가 더욱 공감의 상상력을 점증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부기하고자 한다.
당선작에 들지는 못했지만, 개성적 사유와 언어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많은 응모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덧붙인다.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성취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민달팽이-
비 그친 토란잎 위로 은빛 점액 줄을 그으며
민달팽이 한 마리 담뿍 젖어 있다
미끌한 민몸뚱이를 밀어 구불퉁구불퉁 길을 틔워라
토인 긴 대궁이 저에겐 먼 길이 틀림없는데
비 멎자 지하도까지 도착한 걸 보면
저 민달팽이도 사막 더위 속에서
걸어서 걸으므로 걸어야 했던 것이다
2.
비가 그치고 습한 물기를 찾아
지하도의 한 구석
차가운 시멘트 위에
누군가 읽고 버린 신문지 몇 장 깔고
길지 않은 촉수를 두리번거리며
심장을 반으로 포개어 새우잠으로 자고 있다
짊어질 게 없는 민달팽이,
머리를 들이미는 곳이 집이다
3.
햇볕을 보면 말라죽지
오늘도 민달팽이는 그늘에 젖어 있다.
맨 몸뚱이 부끄럽지 않아, 민달팽이
후끈 달아오른 한여름 더위 속에서
볕을 피해 축축하고 푸른 손을 내민다
[시부 심사평]
응모작들의 대부분이 상상력의 결핍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더위」라는 제목이나 「질투」,「사춘기」에서 연상되는 상투적인 주제어들을 따라 기계적인 언어의 나열에 그치고 있었다. 다행히 장원에 뽑힌 ‘민달팽이’라는 부제가 붙은「더위」(최성아, 전주예고)라는 작품은 언어가 싱그럽고 그 사유가 발랄하여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 운용이 활달하고 거침없었다. “비 그친 토란잎 위로/ 은빛 점액 줄을 그으며/ 민달팽이 한 마리/ 담뿍 젖어 있다”라는 표현은 얼마나 싱그럽고 도약적인가. 차상에 뽑힌 작품「더위」(정상혁, 둔촌고)는 무리하지 않은 언어 운용으로 꽉 차인 구성을 보이고 있는 점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탄광촌의 삶의 현실을 차분하게 응시하고 있는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같이 차상에 뽑힌 「사춘기」(윤태진, 안양예고)는 사춘기 소년 특유의 대담한 체험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특징을 보인 작품이었다. “부끄럽게 숙여 있던 해가/ 슬그머니 빨랫줄 위로/ 고개 내밀고/ 내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열여덟살의 시계바늘이 돈다”같은 싯구는 그의 대담한 상상력을 시적 체험으로 안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차하의 세작품인 「더위」(이슬기, 안양예고),「사춘기」(김승일, 안양예고),「사춘기」(강남기, 광신고) 역시 일정한 수준에 오른 작품들이다. 「더위」는 전라도 방언의 적절한 구사가 돋보였고, 「사춘기」는 “수위 아저씨가 키우는 개”와 교실에 갇힌 나와의 대비가 신선했으며 “여지껏 보지 못한 데미안의 거울/ 그의 거울이/ 서성이는 나를 비추기 시작할 때…”로 시작되는 「사춘기」의 감수성도 약간의 센티멘탈리즘이 눈에 거슬리지만 안정된 시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려에 뽑힌 「사춘기」(어강비, 안양예고),「더위」(황지은, 안양예고)등의 입선자들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영국의 유명한 비평가 F.R. 리비스는 시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것, 아직 구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예감을 인간에게 형성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등학생들의 작품이긴 하지만 주어진 제재를 창조적으로 뛰어넘어 자기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확산시키는, 그런 예감의 시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시의 언어는 상상을 가두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더 큰 상상력으로 펼치는 데에 기여하는 독특한 예술 장르 중의 하나라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