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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2. 20
우리는 제당업계가 하버드대의 영양학 연구나 이 분야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당연구재단(SRF)의 리뷰 문헌 지원이 식단 과학과 정책의 방향을 좌지우지했다고 결론내릴 만한 타당한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 데이비드 존스 & 제럴드 오펜하이머
영국의 과학논문 조사기관 알트메트릭(Altmetric)은 연말에 ‘올해의 인기논문 베스트 100’을 선정한다. 학술적 평가뿐 아니라 언론이나 일반대중의 반응까지 포함해 논문지수를 산정한다. 즉 뉴스 이야기, 블로그 포스트, 트위트, 페이스북 포스트, 구글플러스 포스트, 비디오, 위키피디아 참고문헌 등의 인용횟수를 수치화한다. 따라서 알트메트릭 논문지수가 높을 경우 그만큼 화제가 됐다는 뜻이다.
2017년 인기논문 베스트 100가운데 1위는 의학저널 ‘랜싯’에 실린 논문으로 고지방보다 고탄수화물이 건강에 더 해롭다는 내용이다. 캐나다 맥마스터대를 주축으로 하는 다국적 공동연구자들은 18개국 13만5335명을 대상으로 평균 7.4년에 걸쳐 식단과 질병, 사망률의 관계를 조사한 대규모 역학 조사 결과 “고지방 식단이 심혈관계질환을 일으키고 사망률을 높인다는 의학상식이 틀렸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식단 중 지방 비율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은 하위 20%에 비해 사망률이 23% 낮은 반면 식단 중 탄수화물 비율 상위 20%는 하위 20%에 비해 사망률이 28% 더 높았다. 즉 고지방 식단보다 고탄수화물 식단이 건강에 더 해롭다는 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나쁜 지방’으로 알려진 포화지방 비율이 상위 20%인 경우가 하위 20%에 비해 뇌졸중 위험성이 오히려 21% 더 낮았다는 점이다.
한편 2016년 인기논문 베스트 100가운데 5위는 제당업계의 심혈관계질환 음모를 폭로한 내용으로 의학저널 ‘JAMA내과학’에 실렸다. 오늘날 미국인의 3분의 1이 비만이고 3분의 1이 과체중이다. 그에 따라 심혈관계질환도 급증했다. 이런 배경에는 제당업계의 음모가 있다는 것이다.
/ pixabay
미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등의 연구자들은 지난 60여 년 동안의 관련 문헌을 조사한 결과 제당업계가 만든 당연구재단(SRF)이 돈을 댄 심혈관계질환 원인 규명 연구 프로젝트가 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위험성은 부각하고 당의 위험성은 은폐한 결과를 1967년 논문으로 발표했다고 폭로했다.
그 뒤로도 이런 떠넘기기 전략이 계속됐고 그 결과 미국 보건당국은 오랫동안 저지방 다이어트를 지침으로 삼았다. 연구자들은 정책 담당자들에게 앞으로는 업계가 돈을 댄 연구결과를 너무 비중 있게 다루지 말라고 권고했다.
50년 멍에 벗는 지방
1980년 미국 농무부가 공식적으로 ‘저지방 식단’을 권장한 이래 오랫동안 현대인의 비만과 대사질환의 주범으로 인식되어온 지방, 특히 동물성 지방은 최근 이처럼 누명을 벗고 있다. 대신 탄수화물, 특히 당류(설탕과 과당)가 최근 수년 사이 진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 미국 농무부의 권장식단 변천사를 압축한 도표들이다. 왼쪽은 1946년 만든 ‘기본 7’로 4, 5, 7이 지방이 풍부한 식품이다. 가운데는 1992년 만든 ‘식품피라미드’로 고탄수화물 저지방 식단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오른쪽은 2011년 만든 ‘내접시’로 탄수화물(grains)의 비율이 꽤 줄었다. / USDA 제공
필자는 한 세대 전 한국인의 전형적인 ‘고탄수화물 저지방’ 식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만(고기를 별로 안 좋아 한다) 그럼에도 이런 패러다임 변화를 적극 알리는 기사와 에세이를 여러 편 썼다. 현재 만연한 비만과 대사질환은 기본적으로 지속적인 영양과잉과 정적인 생활습관 때문이라고 보지만 굳이 따지자면 지방보다 당의 과잉섭취가 더 큰 문제라는데 공감하기 때문이다(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12년 7월호 ‘당 권하는 사회, 몸은 병들어간다’ 등 다른 글 참조).
그런데 2016년 가을 화제가 된 ‘고지방 다이어트’를 계기로 이를 다루는 글을 준비하면서 지방을 옹호하는 과학자들 가운데 너무 간 사람들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예를 들어 신경과 전문의이자 미국영양학회 회원인 데이비드 펄머터는 2013년 펴낸 책 ‘그레인 브레인’에서 “인류는 오랜 진화 기간 동안 사실상 육식동물이었기 때문에 탄수화물을 전혀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수렵‘채취’인으로 녹말이 주성분인 식물 식량이 인류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아는 필자로서는 놀라운 왜곡이었다.
존 유드킨은 정말 희생양이었는가
학술지 ‘사이언스’ 2월 16일자에는 2016년 알트메트릭 인기논문 5위에 오른, 제당업계의 음모를 폭로한 논문 역시 당시 상황을 왜곡한(적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라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실렸다. 즉 심장질환 급증의 원인을 과도한 지방섭취에 떠넘긴 제당업계의 ‘설탕 음모’는 사실이 아니라 내레이션(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다.
설탕 음모(sugar conspiracy)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 2016년 4월 7일자에 실린 기사의 제목으로, 1960년대 미국의 제당업계가 하버드대 영양학자들을 매수해 지방섭취가 심장병의 원인이라는 논문을 펴내게 조종한 것을 가리킨다. 필자는 1980년 미국의 ‘저지방 식단’ 정책 결정에 제당업계가 관여돼 있다고 들었지만 이런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몰랐다.
‘가디언’의 기사는 꽤 긴데 주인공이 셋 나온다. 즉 오랫동안 영양학계를 지배해온 저지방 식단 패러다임을 무너뜨린 일등 공신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로버트 루스틱(Robert Lustig) 교수가 먼저 등장하고 이어서 반세기 전 양진영을 대표해 영국 런던대 존 유드킨(John Yudkin) 교수와 미국 미네소타대 안셀 키즈(Ancel Keys) 교수가 나온다.
유드킨은 1950년대 이미 지나친 당류 섭취가 심장병을 비롯해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지방, 특히 동물성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문제라는 키즈 진영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밀려났고 이 과정에서 제당업계가 후자를 도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기사를 보면 유드킨은 성격이 유순하고 점잖은 신사로, 키즈는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 영국의 생화학자 존 유드킨은 1957년부터 지나친 당류의 섭취가 심장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주요인이라고 주장했지만 학계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현재 그는 영양학의 선구자로 재평가되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연구비가 부족해 소규모 연구를 했지만 양심에 따라 살아온 유드킨은 명문대의 많은 동료들과 제당업계의 지원을 받은 키즈의 공격에 영양학계에서 사실상 매장됐고 1971년 은퇴했다. 이듬해 설탕의 유해성을 다룬 교양과학서 ‘Pure, White & Deadly’을 내기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학계에서 잊혀져 1995년 85세로 쓸쓸히 생을 마쳤다.
2월 16일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저자는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의과학과 데이비드 존스 교수와 뉴욕시립대 공중보건학부 제럴드 오펜하이머 교수다. 이들은 “아주 강력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연구와 정책의 불가피한 우여곡절을 악의적인 각본과 역사적 탈선의 산물로 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라며 “과학자처럼 역사학자도 증거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데이터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야 한다”며 ‘설탕 음모’의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을 한 이유를 밝혔다.
처음에는 저지방 식단에 반감 가져
이야기는 1941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록펠러재단은 하버드대에 10만 달러(현재 화폐 기준으로 약 17억 원)를 기부하며 영양학 분과를 만들게 했다. 한편 15개 식품회사에서 도합 100만 달러(약 170억 원)를 출연해 영양재단(Nutrition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의사이자 생화학자인 프레더릭 스테어(Frederick Stare)가 하버드의 새 학과를 맡았고 영양재단이 펴내는 학술지를 편집했다.
전시라 연구의 초점은 영양결핍에 맞춰져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미국에 풍요가 찾아오면서 연구의 방향이 바뀐다. 즉 당시 미국인 사망원인의 거의 40%를 차지하는 순환계질환을 줄이기 위해 비만과 심장질환에 주목했다.
1951년까지 스테어는 27개 기관에서 지원을 약속받았는데 여기에는 정부기관과 함께 미국육류연구소, 미 국립낙농협회, 미국암학회, 당연구재단 등이 망라돼 있었다. 1958년 스테어가 영입한 심장병전문의 버나드 라운(Bernard Lown)은 2016년 12월 논문의 저자인 존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스테어가 식품업계로 눈을 돌린 건 자연스럽고 적절한 일”이었다며 “당시에는 ‘매수된다’는 개념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버드의 영양학자들이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저지방 식단이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안셀 키즈의 주장에 반감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믿음이 ‘육류와 우유, 달걀에 기반한 건강한 미국인의 식단’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 지난 반세기를 풍미한 ‘저지방 식단’의 대부인 미국의 생리학자 안셀 키즈. 1975년 지중해 식단을 권하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그러나 수년 간 연구를 하면서 심장병이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관상동맥에 지방물질이 쌓인 최종 결과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심장병 환자의 다수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2차세계대전 동안 동물성 지방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유럽인들에서 관상동맥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뚝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결과들을 접하며 연구자들은 점차 지방이 문제라는 관점을 지니게 됐다. 훗날 저지방 식단으로 이어질 초기 연구들에 돈을 댄 건 미국 낙농업계였다!
이런 와중에 1955년 어느 날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심장발작을 일으켰다. 다행이 바로 회복이 됐는데 이를 숨기자는 참모들의 만류에도 아이젠하워는 이를 공개해 국민들이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자고 주장했고 당시 주치의였던 폴 화이트는 답을 원하는 언론의 등쌀에 "아마도 미국인의 식단에서 지방을 줄이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런 우연과 필연이 겹쳐 미국에서 저지방 식단 패러다임이 점차 자리를 잡았고 동시에 동물성 포화지방 대신 식물기름을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지고 심장병 위험성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놀라운 선견지명이었지만...
이무렵 대서양 건너 영국의 런던대에서는 의사이자 생화학자인 존 유드킨이 영양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생활과학대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에 의료연구위원회(MRC)에서 연구비를 받지 못했고 기업체의 지원을 받았다. 유드킨은 1979년 한 인터뷰에서 “난 언제나 식품업계의 자문을 해왔다”며 “영양학자가 식품회사와 같이 일하기를 거절하는 건 매우 비논리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유드킨이 식단-심장병 논쟁에 뛰어든 건 1957년으로 관상동맥질환으로 인한 사망에는 지방보다 동물성단백질이나 설탕, 라디오와 TV(즉 정적인 생활)가 더 큰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하던 곳에서 이민을 와 설탕을 많이 먹게 된 사람들이 심장병 발생률이 높아졌다는 한 연구결과를 보고 당 섭취에 민감한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콜레스테롤보다 심장마비를 더 잘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선견지명이다.
1964년 유드킨은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즉 심장질환이 없는 남성 25명, 관상동맥질환 환자 20명, 동맥질환 환자 25명을 대상으로 설탕섭취량을 조사한 결과 설탕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심장마비를 일으킬 위험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편 하버드대 스테어 그룹에서는 저지방 식단이 정말 심장병 위험을 낮추는지에 대한 좀 더 엄밀한 연구에 들어갔다. 마크 헤그스테드(Mark Hegsted)가 이끄는 연구자들은 댄버스주립병원의 정신병동에 입원한 남성 조현병 환자 20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헤그스테드는 ‘데이터로 말하는 과학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 미국 제당업계의 꼭두각시로 그려지고 있는 미국의 영양학자 마크 헤그스테드. 그러나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헤그스테드는 실험데이터에 충실했을 뿐 연구비를 댄 곳의 입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 미네소타대 제공
예를 들어 성인의 단백질 요구량 분석 연구에서 헤그스테드는 “(연구 결과) 미 학술연구원의 권장 하루 섭취량은 너무 높다”며 “채식만으로도 적절한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비를 댄 미국육류협회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댄버스 연구 역시 낙농업계가 연구비를 댔지만 1965년 5월 6일 영양학재단 모임에서 헤그스테드는 “설탕이 문제라는 유드킨의 주장은 고려할 가치는 있지만 엄밀한 실험 데이터가 없다”고 언급했고 콜레스테롤보다는 중성지방이 더 나은 위험지표라는 주장에도 회의를 표시했다. 그리고 댄버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 상승에 미치는 탄수화물의 영향이 미미했고 지방이 문제라고 결론내리며 이를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헤그스테드 방정식’까지 만들었다. 돈을 댄 낙농업계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모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제당업계 사람들은 한 달 뒤 당연구재단(SRF)을 통해 헤그스테드에게 접근해 설탕이 문제라는 논문들에 대한 검토를 부탁했고 헤그스테드는 “충분히 폭넓은 관점에서 검토해야 가치가 있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헤그스테드는 이 논문들을 과소평가했고 1967년 학술지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실은 리뷰논문에서 지방이 문제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논문에는 당연구재단이 연구비를 댔다는 언급이 없었다.
2016년 'JAMA내과학' 논문이 문제 삼은 게 바로 이 장면으로, 그 앞의 정황을 모른다면 헤그스테드가 정말 SRF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입맛에 맞는 과학자를 찾은 것일 뿐
존스와 오펜하이머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당시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즉 당시는 논문에 누가 돈을 댔는지를 언급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디언’ 기사에서 희생양으로 그려지고 있는 유드킨 역시 식품업계와의 끈끈한 관계(물론 꼭두각시였다는 의미는 아니다)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1966년 유드킨은 ‘큰 식품회사’에서 2만5000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6억 원)을 받았다고 기록했고 영국달걀판매협회나 영국 국립낙농협회가 주관하는 행사에도 적극 참여했다. 한 업계 모임에서는 그의 설탕 연구가 “버터지방에 씌워진 죄를 벗겨주는데 도움이 되는 변칙 전략”으로 볼 수 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데이터 신봉자’인 헤그스테드는 엄밀한 연구는 뒷전이고 이런 말을 하고 돌아다니는 유드킨을 지켜보며 한 동료에게 쓴 편지에서 “유드킨은 바람직한 영양 정책을 훼방놓는 골칫덩이”라고 썼다.
한편 유드킨의 몰락 역시 제당업계의 조종을 받은 저지방 식단 옹호 영양학자들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미국 영양학자들에 맞서 싸우는 자국 과학자의 주장을 지켜보던 영국 정부는 마침내 유드킨의 주장을 제대로 검증해보기로 하고 의료연구위원회가 주관해 팀을 꾸려 연구를 수행했지만 심장마비 환자들이 설탕을 과다섭취하는 경향이 있다는 유드킨의 발견을 재현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1970년 ‘랜싯’에 발표한 논문에서 “설탕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희박했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이듬해 62세의 유드킨은 학계에서 은퇴했다.
한편 헤그스테드는 1977년 미 상원 위원회의 ‘미국을 위한 식단 목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책임편집했는데 설탕의 위험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즉 설탕이 충치와 관련이 있고 당뇨병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설탕 섭취를 현재 수준에서 40% 줄이라고 권고했다.
저자들은 “제당업계가 헤그스테드에게 접근한 건 낙농업계가 지원한 연구에서 설탕이 아니라 지방이 심장질환의 요인이라는 결과가 나온 걸 안 직후”였다고 강조했다. 당시 헤그스테드 연구팀에 있었던 버나드 라운은 “‘이런 식으로 결과를 내면 그들(제당업계)로 부터 돈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고지방 다이어트 진영의 이론가인 개리 토부스 조차 “제당업계는 하버드에서 제당업계에서 돈을 받기 위해 스스로 믿지도 않는 이야기를 기꺼이 만들어낼 연구자를 찾지 못했다”며 “그들이 한 일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이미 믿고 있는 사람을 찾아 이들이 그 믿음을 널리 퍼뜨리게 돈을 댄 것”이라고 썼다.
제당업계가 지난 반세기 동안 영양학계를 풍미한 ‘저지방 식단’ 패러다임을 기획한 게 아니라 편승한 것이라는 말이다.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