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구시가지에 위치한 김해중앙여고는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소위 '기피학교'로 불렸다. 인서울은 고사하고 4년제 대학 진학률도 70%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입시결과는 가히 놀랍다. 사상 첫 서울대 정시합격생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 등을 비롯해 교대·의대 등 상위권 대학에 전체 188명 가운데 38명이 합격하는 성과를 거뒀다. 4년제 대학 진학률은 80%에 이른다. 3년 만에 어떻게 이런 결과를 거뒀을까.
◆배움의 자세로 발전의 길 찾다
민병훈 교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다가 학교 발전을 위해서 일부러 교장직을 자처하고 2002년 취임했다. 민 교장은 "명문학교로 거듭나려면 먼저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를 위해 전 교직원과 함께 똘똘 뭉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학교는 입시결과가 중요한데 그동안 좀 미진했었죠. 고교 평준화로 바뀔 때 평준화 대상에서 빼야 한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교실마다 빔 프로젝트를 설치하고, 잔디운동장을 조성하고, 지정좌석제로 운영되는 정독실 등 시설부터 바꿨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시스템 개선이 먼저 필요했습니다."
갑자기 최고의 교육시스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먼저 교장을 비롯해 교감, 학년별 부장교사 등 팀을 구성해 광주 인성고·경북 무학고·인천 숭덕여고 등 전국 각지의 학교를 직접 방문해 학생들을 잘 이끌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모든 학교가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김해중앙여고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 결과 무학년 수준별 보충수업, 입시전략팀 운영 등 개선책이 마련됐다.
◆무학년 수준별 보충수업
2006년 2학기부터 경남 최초로 시도된 무학년 수준별 보충수업은 말 그대로 학년과 반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선택하는 강좌를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는 수업이다. 기초부터 심화학습까지 수준별로 개설되는 보충수업 가운데 학생이 원하는 강좌를 직접 고르는 방식이다. 수업 선택은 1학기 초, 여름방학, 2학기초, 겨울방학 등 1년에 4번 실시된다. 보통 90개가량의 수업이 개설된다. 한 강좌가 진행되려면 20명 이상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데, 인기 강좌는 10분도 안돼 마감이 되기도 한다. 반면 전체 개설강좌 가운데 10여개는 신청미달로 폐강된다.
민 교장은 "학생들이 직접 선생님의 수업을 고르는 방식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교원평가가 이뤄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교사들의 반발이 컸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좀 더 나은 수업환경을 주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설득했어요. 이제는 모든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울대에 합격한 3학년 김은영양은 "학생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보충수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공부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대에 합격한 황희경양은 "처음에는 수능 모의고사에서 300점도 못 받았는데, 학교 커리큘럼에 충실했더니 점차 점수가 올라 실제 수능에서는 400점 이상 받았다"고 밝혔다.
◆입시전략팀 운영
김해중앙여고는 아무래도 수도권 지역의 학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시정보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전적으로 입시만 연구하는 '입시전략팀'을 운영했다. 입시전략팀은 교감, 교무부장, 3학년 부장교사 등으로 구성됐다.
이경식 3학년 부장교사는 "명문대 입시설명회를 유치하고, 전국의 대학입시자료를 수집하고, 학생들이 가장 적합한 진학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3학년이 돼서 성적을 보고 대학을 고르는 것은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진학지도를 세우기로 했죠. 1학년 때 내신·비교과·봉사·독서활동·동아리 활동 등을 시킵니다.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는 2학년이 되면 내신·수능·논술 등 어떤 방법이 유리한지 따져보도록 진로정보를 제공하죠. 3학년이 되면 3~4개 대학을 선정해 가장 적합한 전형까지 선정하는 맞춤식 조언을 했습니다. 입시전략팀뿐 아니라 학교의 모든 선생님이 모두 입시전략 전문가 역할을 해주셨어요."
고신대 의예과에 합격한 최사라양은 "선생님들이 학생마다 개별적으로 상세히 입시지도를 해주셨다. 많은 학생들이 최적의 진학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국항공대에 합격한 윤형빈양은 "1학년 때 국어가 5등급으로 약했는데 선생님께서 국어를 잘하는 2학년 선배를 소개해 주셔서 많은 조언을 얻었다. 결국 국어를 1~2등급으로 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민 교장은 "학생을 위해 학교가 무엇을 해줘야 할지 먼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바뀌고, 수업질이 높아지고, 학생 성적이 오르면 어떤 학교라도 명문학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