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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9년 1월 19일 (토) [금요무박]
o 날씨: 맑음
o 산행경로: 오곡재 - 미산령 - 배능재 - 여항산 - 서북산 - 감재고개 - 대부산 - 한치(진고개)
o 산행거리: 13.7km
o 소요시간: 5시간
o 지역: 경남 마산
o 일행: 올빼미산악회 낙남정맥종주대
o 트랙: 낙남정맥_오곡재_한치_20190119_040723(jbha3309-20190119_091306).gpx
▼ 코스지도
새해들어 두번쨰 산행, 낙남정맥 7구간이다. 오곡재에서 마재고개까지 예정이며, 낙남정맥 중에서도 조망이 좋기로 잘 알려져 있다. 대신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대산, 무학산 등 700고지 산봉우리를 대여섯개나 넘어야 하고, 중간에 있는 한치는 구간 중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곳으로 급경사의 오르내리막길을 넘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구간으로도 알려져 있다. 거리도 30km를 넘고...
새벽4시에 오곡재에 도착하여 장비를 점검하고 오늘 구간을 시작한다. 오늘은 일행중 몇사람이 불참하는 바람에 그러잖아도 조촐한 대원수가 오늘은 11명의 정예(?)멤버로 꾸려졌다. 회비만으론 경비 충당이 안될텐데 회장님과 대장님 그리고 총무님은 속이 타들어 갈 듯하다...ㅋ
▼ 오곡재 (들머리)
지난번 구간에서 체력상의 문제로 고생한 것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이번구간은 사전에 피트니스센터도 다니고 나름 준비를 했는데도 긴장이 된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심리적인 문제일까? 초반부터 555봉으로 향하는 약간의 된바알 구간에서 다리에 이상이 발생한다. 근래에는 없어진 정강이 통증이 발생한 것이다. 방법은 없다. 천천히 가는 수 밖에... 경험상 걸음을 빨리할 수록 통증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오르막길에는 더 심해지기 때문에 일행들을 쫒아갈수가 없다. 일행들의 헤드렌턴 불빛은 유유히 사라지고 어쩔수 없이 맨 후미로...
▼ 군북사촌 갈림길
555봉과 630봉을 차례로 거치면서 다행이 정강이 통증은 점점 완화되고 있다. 별다른 이정표도 보이지 않지만 다리에 신경을 쓰느라 어디를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동물이동통로와 정자가 있다는 미산령은 도데체 어디였을까?
▼ 미산령에서 744봉 방향 오르막길(?, 오곡재→미산령: 1.9km)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나로서는 다행이다. 미산령을 지나 여항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올라서니 서늘한 찬바람이 온몸을 파고 들고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함안군의 네온사인이 아직은 캄캄한 밤중임을 알려준다...
미산령에서 나무데크계단길을 올라서면 등로는 암릉길로 바뀌고 등로 중간 중간에 돌탑(케언)들도 많이 보인다. 특히 744봉 주변에 돌탑 들이 많으며,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사단(祠壇)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 744봉
▼ 배능재 (미산봉에서 0.8km): 돝을샘 갈림길
▼ 미산봉(?)
여항산 정상을 불과 200m 남겨 놓고 헬기장을 지난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여항산 정상부의 위용... 여항산 정상부는 뽀족한 암봉이라 위험한 곳인데, 지금은 나무데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함안의 진산인 여항산은 백두대간이 남해안에 질러놓은 마지막 정기라고 하며 이 곳 함안은
남고북저(南高北低)
지형으로
흔히 이런 지형을 풍수지리에서는 반역의 기운이라고도 하는 데 여항산(艅航山-‘여’와
‘항’은 둘 다 배를 뜻한다)이란 이름은 조선 선조 때(1583년)
함주도호부 부사로 왔던 한강 정구 선생이 반역의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배가 다니는 낮은 곳이라는 뜻으로 붙였다고 알려져
있다. 대신 북쪽 낮은 지대에다 산을 대신한다는 뜻에서 대산(代山),
대산(大山)이란
지명을 붙였다고 하며 비록 남쪽에 산이 있긴 해도 그 산이 배가 넘을 수 있을 정도로 높지는 않다는 뜻을 부여해 나쁜 기를 제압하려
했다는것이다. 그리고 산세와 풍수지리학적으로는 艅航山, 생김새에 따라 곽(각)데미산, 갓바위, 요강산, 배넘기산 또는 필봉 그리고 역사적 사건과 관련하여 갓데미산 등의 여러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여항산]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여항산 주변에서 발원한 하천이 사방으로 흐른다.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물이 산꼭대기까지 차올라 정상에 각(곽) 하나를 놓을 자리 만큼만 남았다는 데서 각데미산(곽데미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 정상의 널찍한 바위는 곽바위 혹은 마당바위이다. 산은 갓을 쓴 사람이 요강에 오줌을 누는 형상이라 요강산이라고도 부른다. 산 동쪽 아래에 형성된 봉성저수지가 오줌을 눈 흔적이라 전해진다. 여항산 북쪽의 함안군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이라 하천이 북류하여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1583년(선조 16) 함주도호부로 부임한 정구(鄭逑, 1543~1620)가 이러한 지형은 풍수지리적으로 반역의 기가 있으므로 남쪽을 '낮아서 배가 넘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여항산(艅航山)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여항산(艅航山,770m)]은 예부터 함안의 주산(主山)이자 진산(鎭山)으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김해 분성산을 잇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강명리 일원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일원에 분포한다. 함안의 지형적 특성인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세와 하천의 역류(逆流)는 바로 함안의 남단에 위치한 여항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여항산에 관한 기록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148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1530), 『함주지(咸州誌)』(1587), 『영남읍지(嶺南邑誌)』(1871) 등 다수의 문헌에서 확인된다. 그 중 『함주지』산천조(山川條)의 기록이 백아홉 글자로 비교적 상세한데, 「(요약) 군성(郡城:함안읍성)에서 서남쪽으로 15리(上里)에 위치하며, 두류(頭流:현재의 지리산)에서 300리를 이어져 와 군을 진압하는 진산이다. 산꼭대기 바위는 깎아지른 듯하고 남쪽은 낙숫물을 받는 댓돌처럼 생겼는데 그 위가 편평하여 10여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멀리 대마도의 여러 섬들이 뚜렷하게 보이고, 산허리에는 한낮에도 신령한 퉁소 소리가 나는 듯하며 구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가뭄이 심할 때에는 군민들이 기우(祈雨)의 깃발을 꽂고 비가 올 것인지 점을 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항’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관련한 전설로는 천지사방이 물에 다 잠겼을 때 여항산의 꼭대기만이 배 만큼 남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경상도지리지』를 비롯한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록에 ‘남을 여(餘)’자에 ‘배 항(航)’자의 ‘餘航’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1586년 한강(寒岡) 정구(鄭逑) 군수가 부임하면서 함안이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으로 물이 역류(逆流)하는 까닭에 역모를 꾀할 기운이 있다하여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바로 잡고자 낮은 북쪽은 뜻과 글자로써 높여 대산(代山)으로, 높은 남쪽은 배가 다닐 수 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여항(餘航)으로 고쳤다는 설이 있지만, 대산과 여항은 이미 사용해 오던 지명으로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배이름 여(艅)자에 배 항(航)자의 ‘艅航’은 문헌기록과 각종 지도로 보아 18~19세기 사이에 ‘餘→艅’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여항산은 이외에도 마을주민들에 의해 곽(갓)데미산, 배넘기산, 필봉(筆鋒)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왔는데, 이 중 ‘곽(갓)데미산’은 정상에 있는 마당바위(平岩, 곽바위)를 가리키는 ‘곽(槨, 郭)’이나 ‘갓(冠)’에 큰 덩어리를 의미하는 순우리말 더미(데미)가 붙어 만들어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또 ‘갓’을 ‘어미’로, ‘데미’를 ‘산’으로 보아 ‘어미산’ 또는 ‘모산(母山)’의 의미를 가진다는 의견도 있다. ‘배넘기산’은 『함주지』총담조(叢談條) 천하의 지세(天下之地勢)에 「여항산의 ‘여(餘)’자는 방언에 ‘월(越)’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배(航)가 넘는다(越)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겠다. 한편, 6.25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사수를 위해 여항산을 중심으로 피아간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데 이 때 많은 피해를 입은 미군들에 의해 ‘갓뎀(god dam:빌어먹을, 제기랄)산’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는 ‘갓데미산’의 발음을 들어 희화하여 부른 것이다.
▼ 여항산 (배능재에서 0.5km)
▼ 여항산 전경 (펌)
그런데 이게 뭥미? 저멀리 지라산에서 이곳까지 그리고 이곳에서 무학산으로 이어지는 꿈틀거리는 낙남정맥의 용트림이 보여야 하는데... 지금 보이는 것이라고는 헤드렌턴 불빛에 비치는 몇평남짓의 여향산 정상과 저 아래로 보이는 함안군 도시의 네온불빛 뿐이다. 할수없이 조망안내도를 보면서 마음으로 낙남정맥길을 그려보는 수 밖에...
▼ 여항산에서 바라본 서북산 방향 (펌)
여항산 정상을 내려가는 길에는 수직의 나무데크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우측이 시커멓게 천길 낭떠러지처럼 보여 자연스럽게 몸이 그 반대편으로 쏠리게 된다. 어두워 제대로 뵈는 것이 없어 망정이지 낮시간에 눈으로 직벽의 아찔함을 봤더라면 더 쫄았지 않았을까 싶다...ㅎㅎ
나무데크 계단 옆으로 예전에 이곳으로 잡고 타고 올랐던 밧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참으로 열혈 산꾼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행들을 전부 놓친 상태라 여항산 정상 인증샷을 찍지 못했다. 어둠속에서 셀카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인증샷도 찍지 못했고 여항산 정상부의 장쾌한 조망도 감상하지 못했으니 다음번에 여항산 단독 산행을 한번 와야 할 것 같다...
▼ 코바위 삼거리
여항산에서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구간도 크고 작은 암릉길이 연속된다. 귀바위는 사고다발지역이라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붙어있고, 전망바위와 마당바위 등의 조망포인트를 지나가지만 아직은 어두워 제모습을 볼수가 없다. 도중에 소무덤봉으로 이름붙은 668봉을 지난다.
▼ 귀바위 입구
▼ 소무덤봉 (668봉)
▼ 전망바위
▼ 마당바위
다리의 상태는 한결 좋아졌다. 이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속도를 올려보지만 이미 멀어진 일행들을 따라잡기는 요원하다. 멀리 앞으로 보이는 일행들의 헤드렌턴 불빛을 그저 쫒아가는 수 밖에...
▼ 진행방향으로 보이는 서북산
▼ 별천 갈림길
여명의 번짐이 본격화되고 있다. 너무 어두우면 여항산처럼 셀카 인증샷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서북산에서 만큼은 인증샷을 찍기 위해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고...
드디어 서북산. 서북산 정상부는 헬기장이며 그 바로 아래에 정상석이, 정상석 아래에는 서북산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서북산은 마산함포구의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6.25때 2개월간 낙동강 방어전투의 격전이 벌어진 곳으로 미군들이 고전을 면치 못해 '갓데미(갓뎀)산' 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그때 희생된 공산군과 아군의 백골이 산적하였다 하여 ‘백마산’ 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 서북산 (여항산에서 3.9km)
여전히 어두컴컴하지만 다행히 인증샷을 찍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ㅎ
서북산 정상 헬기장에 서서 붉은 노을처럼 타고 있는 동쪽 하늘을 바라본다. 일출까지는 아직 20분은 남았는데... 기다릴까 어쩔까? 발 아래로는 진해만도 서서히 어둠을 털어내고 있다.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형언해야 할까?
간격이 멀어진 일행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서북산에서는 감재고개로 250~300m 정도 급락한다. 오르막길에서 발생한 정강이의 통증은 없는데,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라 앞으로 쏠리는 발가락의 통증도 만만치 않다...ㅉ
한참을 곤두박질 친 등로는 감재고개에서 숨을 고른다. 덕분에 내 발가락도 여유를 찾았고... 감재고개는 함안군 여항면 버드내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미천을 잇는 고개이다...
▼ 감재고개(?)
동쪽하늘에 갑자기 불타는 황금원반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일출이다. 산 정상에서 보는 일출보다는 못하겠지만 이렇게 일출을 맞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일출을 이렇게 표현했더라...
"잠시뒤 하늘빛이 새벽빛을 띄더니 수많은 버드나무가지에서 가을매미가 일제히 울어댄다. 커다란 수레바퀴 같은 새빨간 해가 수수밭 사이로 반쯤 삐져나와 천천히 둥글어 지며 요동 벌판에 꼭 찬다. 그러자 들판을 오가는 말과 수레, 조용히 서 있는 나무와 집, 가을 터럭처럼 빽빽이 들어선 숲이 모두 붉은 수레바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중략)...
등로는 이제 대부산으로 향한다. 그런데 발걸음이 생각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일행들 보다 더 빨리 걸어야 할텐데, 대부산을 올라가는 오르막길에서 덜미를 잡혔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다리의 근력이 확 떨어진 느낌이다...
▼ 대부산 방향
날머리 마재고개까지는 아직 절반도 훨씬 못왔는데... 점점 완주가 불안해진다. 뒤롤 돌아보니 지나온 여항산 능선이 아침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여항산 정상의 암봉은 멀리서 봐도 어마무시하다...
▼ 뒤돌아본 여항산 능선
겨우(?) 200여m 고도차의 대부산을 오르는데 천길처럼 느껴진다. 별수 없다. 힘들면 쉬는 수 밖에... 쉬는 순간에도 일행들은 달리고(^^;;) 있을 텐데...
▼ 602.7봉
게걸음으로 6027.봉을 지나고 대부산에 도착하니 황금송 형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나를 혼자 버리고(^^) 가기에는 너무 마음이 걸렸던 모양이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저는 이미 틀린 것 같습니다" 라는 명대사(ㅎㅎ)를 전하고 오늘은 한치에서 산행을 중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신체적 컨디션에 반하여 무리하면 더 큰 후유증을 낳기 때문이다. 옛 지형도에는 이곳 대부산이 봉화산(烽火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현재 지도에는 봉화산은 대부산에서 북쪽으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 대부산
▼ 봉화산 갈림길
봉화산 갈림길에서 한치까지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 대략 4~500m 정도 꼬꾸라진다. 한치에서 중단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발걸음이 더 무거워진다. 이제 시간은 충분하니 천천히 천천히...
▼ 봉곡갈림길
봉곡갈림길에서는 편하게 임도를 따라가면 한치로 연결되지만 한치에서 오늘 산행을 종료하기로 마음을 먹고나니 한치까지는 정도(正道)를 걷자는 오기가 생긴다. 하지만 봉곡갈림길에서 올라야 하는 작은 오르막길에서 또 얼마나 후회를 했던지... 그리고 한치로 내려서면서 한치 뒤로 솟아있는 광려산을 바라보니 여기서 그만!스톱!! ^^;;
▼ 한치와 뒤로 보이는 광려산 능선
한치에는 79번 국도가 지나고 있으며, 이곳 사람들은 진고개라 부르기도 한단다. 광려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국도를 건너야 하는데 지하통로는 좌우로 왕복 1km를 돌아야 하기 때문에 중앙분리대를 무단으로 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휴게소도 있고 하니 건널목을 하나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한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에 있는 고개이다. 광려산과 봉화산 사이에 있는 큰 고개가 바로 ‘한치’이며 ‘한티 고개’ 또는 ‘진고개’로도 알려져 있다. 예부터 진북면에서 함안군으로 넘어가는 고개 중 가장 큰 고개였다. ‘큰 고개’, ‘목 너머’, ‘대현’이라고도 불렀으며, 지금은 고개 아래로 국도 79호선이 지나고 있다. ‘한치’라는 지명은 “큰 고개”라는 뜻에서 ‘한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창원시 마산 일원과 함안군의 경계선을 형성하고 있는 광려산에서 산은 두 줄기로 갈리어, 북쪽으로는 상투봉(724m), 화개산(457m)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진동면과 함안군을 잇는 한치 고개를 건너 봉화산(676m), 서북산(739m), 여항산(770m)에 이른다. 한치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창원시의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함안군의 경계를 잇고 있는 광려산이 있으며 서쪽으로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함안군 여항면의 경계에 위치한 봉화산이 있다. 광려산 산기슭에는 광산사(匡山寺)를 비롯하여 법륜사(法輪寺) 등의 사찰이 있고 광산, 매봉, 길마봉, 상투봉, 삿갓봉[또는 투구봉], 중바위[또는 흔들 바위] 등 빼어난 봉우리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다. 한치를 지나는 국도 79호선에는 ‘진고개 가든 휴게소’가 자리 잡고 있다
▼ 진고개휴게소
한치에서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해결한 후 농어촌 버스를 타고 함안으로 들어와 함안에서 택시를 타고 마재고개에 도착하고 보니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확실한 1빠다(ㅋㅋ). 일행들의 하산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았는데... 했살 따스한 버스정류소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비타민D도 충분히 섭취하고... 오늘 빼먹은 한치~마재고개 구간은 꽃피는 4월에 무학산 진달래 구경을 겸해 보충할 생각이다...
뒷풀이는 마산지방 유명음식인 아구찜으로...
반복되고 있는 다리 문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빡세게 하체 운동을 하던지, 몸무게를 쫙~ 줄이던지...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