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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한 칼럼) 신부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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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한
- 성모성심성당 주임신부 | |
| 사회복지에 몰입해 있는 필자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으며 모 방송국 피디가 붙여준 제목이다. 호기심을 자극하여 시청률을 올리려는 의도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사회복지라는 일에 빠져 살고 있다는 칭찬인 것 같아 그 제목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엄청난 교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결혼만큼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시작하는 일은 흔치 않다. 아니 자신만이 아니라 상대의 인생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일이 결혼이다. 그렇다면 어떤 일과 결혼했다는 것은 그 만큼 끝까지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동의를 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고 보니 "풍부한 경험은 노인의 자랑이요, 노인을 공경함은 젊은이의 자랑이다."라는 관훈을 내 걸고 청원군노인복지관과 결혼한지도 어느새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 9월 1일 이임식을 갖고 그 곁을 떠났다. 이혼이라기보다는 잠시의 별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임지인 성모성심성당으로 떠나왔지만 최선을 다하지도, 책임을 다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못내 아쉽다.
한 번의 만남은 반드시 떠 한 번의 이별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오늘이 그 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먼 훗날의 일로만 생각한 나머지 많은 일에 소홀했던 것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노인이 왕처럼 섬김을 받는 지역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청원군노인복지관 소식지의 제목도 궁(宮)이라 정했는데 과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생각하니 그저 부끄럽고 그래서 더욱 더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궁궐의 주춧돌 정도는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하고 밤에 눈을 감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또한 오늘 같은 월요일에 한 주간을 시작하고 주말이 되면 마감을 한다. 한 달이 그렇고 또한 일 년이 그러하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작 할 때의 마음을 마칠 때 까지 간직하고 살아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설계는 잘 하지만 설계대로 일을 진행하고 마치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그래서 더욱 더 후회스럽고 아쉬운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닌 가 싶다. 결국 성공한 인생이란 시작과 끝을 한 결 같이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겠는가.
이제 이곳에서 부푼 꿈을 안고 다시 새로운 삶,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별을 통해 그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아쉬움과 후회가 아닌 만족과 뿌듯함으로 장식되기를 희망해 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과 같은 마음만 한 결 같이 간직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 2011/ 09 /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