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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은 남한 간첩이라는 말이 사실인가
"최룡해의 권한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김동연, 리학철, 박병서, 리찬등이 외국충장 중 남한 안전기획부에 포섭되어 제주도를 여행하며 활동자금 수백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보위부의 조사를 받게 됐다
이들이 귀국한 후 외화를 물 쓰는 듯 함부로 쓰고 돈과 권력의 힘으로 문란한 사생활에 탐닉해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조사결과 이들의 혐의가 인정되어 모두 처형을 당하게 됐다.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장성택과 함께 일하고 그가 키워낸 인물들이었다
장성택은 직접 사건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때 숙청된 사람들은 최룡해를 포함해 비서급들 거의 전부로 이들 중 리학철, 박병서 등은 1980년대 장성택이 당 청년사업부장을 맡고 있을 때 '노력영웅'으로 키웠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장성택과의 인맥을 기반으로 평양시 건설과 외화벌이 부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다가 '황색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처형됐다
이들이 안전기획부에 포섭되어 제주도를 방문하고 공작금까지 받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죄목에는 북한으로 귀환해서 안전기획부 지시와 관련된 공작이나 활동을 했다는 내용은 별로 없다. 단지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안전기획부로부터 받아서 군을 포함한 고위간부들을 매수해 입지를 강화하라는 임무를 받았다는 것이다"(나종일, 장성택의 길 책 자료)
"장성택은 8월에는 50명이 넘는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다. 경제특구 공동 개발에 관한 회의에 참석한다는 명목과는 별도로 10억 달러(약 1100억원)의 긴급 대출과 투자 확대를 중국에 간절히 부탁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극진히 대접으로 김일성, 김정일이 묵은 "댜오위 타이 국빈관(釣魚台国賓館)" 18호관(号楼)를 장성택에게 제공했다. 국가 주석의 후진타오, 총리 원자바오와의 개별 면담을 마련했다. 17일의 만남에서 원자바오는 "차관 문제는 핵 문제가 진전 된 단계에서 논의 하겠다"며 투자 확대에 대해서도 "법 정비가 먼저 다"고 주문했다.
통역만을 통해 1시간 이상 진행된 밀담(密談)에서 후진타오 주석에게 "기다린다"에서 장성택은 "경우에 따라서는 핵을 포기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대신 이복형 김정남를 옹립 할 가능성도 언급 한 것으로 알려졌다."(龍谷大教授 李相哲)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고 세계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무기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겠는가?"
"2002년에는 남북경제실무접촉회담 때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몇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자본주의 문화를 맛보자"라면서 가라오케(노래방=룸싸롱) 등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남한을 방문한 북한의 가장 서열이 높은 인물. 이때 북한경제시찰단의 명목상 단장은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이었지만, 실권자는 장성택이었다고 전해진다. (여담으로 박남기는 후에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역임했으나, 2009년에 실시되었던 화폐개혁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공개처형되었다. 장성택의 죽음 이후엔 이 북한의 화폐개혁도 장성택의 책임이 되었다.)
장성택은 방한하여 삼성전자 및 한국의 여러 공장들을 둘러보고 갔는데, 한국 접대요원들이 밤마다 장성택을 강남 룸살롱에 데려가서 놀았다는 후문이 있다"
"장성택이 10여년 전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남한을 방문했을 때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그때 남한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황장엽은 가까이 지내던 탈북 망명 인사를 급히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밀봉된 봉투 둘을 주면서 중요한 문제이니 집에 가서 혼자만 열어보라는 말을 했다
첫 번째 봉투에는 장성택이 시내를 방문하는 기회가 생길 때 다른 쪽 봉투에 들어 있는 쪽지를 그에게 접근해 몰래 전해주라는 지시가 적힌 쪽지가 나왔다 두번째 봉투에서는 나온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장성택, 지금도 늦지 않았다. 조국의 반역자가 되겠는가? 아니면 남한에 남아라!'
물론 이 쪽지는 전달되지 못했다 설혹 전달이 됐을지라도 당시 장성택이 남한으로 망명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 일화는 몇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적어도 황장엽은 북한의 김정일 체제에 관해 자신과 장성택 사이에 상당한 공감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않았더라면 생판 엉뚱한 사람에게 그것도 현재 높은 지위에 있는 인사에게 탈북을 권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나종일, 장성택의 길 책 자료)
-장성택은 예고없이 북한의 해외 거점에 나타나곤 했다
출장 중에는 김용순처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북한 대표부 참사로 등록되어 있어서 그 명의로 된 외교관 여권을 사용했다
그리고 자주 장승택이나 장상택등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행기 폭파작전 자체는 성공했다
숙련된 공작원 김승일은 체포 직전 자살을 하고 다른 공작원 김현희는 붙잡혀서 북한의 공작에 관한 모든 진술을 했다
남한에 압송되어 자백을 한 것이 김현희라는 사실은 장성택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녀의 부친 김원석은 대외경제사업부에 근무했기에 장성택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김원석은 쿠바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무역 서기관으로 근무했고 당시에는 앙골라의 북한 수산대표부 부대표로 있으면서 외화벌이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장성택은 김원석의 딸이 평양외국어대학 일어과 2학년 때 당의 대외정보조사부 요원으로 선발되어 훈련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1986년 중국 광주 북한 해외거점에서 김현희 등 일행이 중국어와 자본주의 교육을 받았음[중국인으로 신분세탁이나 위조교육]
-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테러-----정찰국 장성우 소장(중국으로 이동과 중국인으로 가장)
-파나마의 하비에르 카르바요 마약담당 검사는 11일 조사관들이 선박에 실린 나무 상자에서 대전차용 로켓추진 수류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파나마 정부는 지난달 15일 쿠바에서 출발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던 청천강호가 마약을 운반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억류했다.
지난달 30일 파나마 정부는 청천강호에서 전투기용 엔진 12기와 군용차량 5대를 찾아냈다.
청천강호의 화물목록에는 만 톤의 설탕을 실어나르는 것으로 기록됐지만 설탕자루 밑에서 쿠바의 군사장비들이 발견됐다.
-쿠바에 살던 장성택의 누나 장계순 일가족이 오늘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정보당국에 포착됐다.
장계순의 남편인 전영진은 주쿠바 북한 대사로 이미 북으로 소환됐고 장성택의 조카 장용철 말레이시아 대사 가족도 오늘 북으로 돌아간 걸로 전해졌다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반혁명종파 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웨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 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되였다.
특별군사재판은 현대판 종파의 두목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불순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하여 우리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찬탈할 야망 밑에 갖은 모략과 비렬한 수법으로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감행한 피소자 장성택의 죄행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였다.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립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되였다.
공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판결문이 랑독되였다.
판결문의 구절구절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이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 음모가인 장성택의 머리 우에 내려진 증오와 격분에 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준엄한 철추와도 같았다.
피소자 장성택은 우리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할 목적밑에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다.
장성택은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직위에 등용되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은덕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안았다.
장성택은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로부터 이전시기보다 더 높은 직무와 더 큰 믿음을 받았다.
장성택이 백두산 절세 위인들로부터 받아안은 정치적믿음과 은혜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 것이였다.
믿음에는 의리로 보답하고 은혜는 충정으로 갚는 것이 인간의 초보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안은 하늘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행위를 감행하였다.
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는 감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양봉음
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력사적 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전당,전군,전민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데 대한 중대한 문제가 토의되는 시기
에 왼새끼를 꼬면서 령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
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
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놈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 것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군령도지반과 령군체계가 공고해지면 앞으로 제놈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데 커다란 장
애가 조성될것이라고 생각하였기때문이라고 자인하였다.
장성택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너무도 갑자기,너무도 일찌기,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게 되자 오래전부터 품고있던 정권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본격
적으로 책동하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하게 된것을 악용하여 제놈이 늘 원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어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고 꾀하였다.
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놈에게 아부아첨하고 추종하다가 된
타격을 받고 철직,해임된자들을 비롯한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이였다.
장성택은 청년사업부문에 배겨있으면서 적들에게 매수되여 변절한자들,배신자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우리 나라 청년운동에 엄중한 해독을 끼치였을뿐아니라 그자들
이 당의 단호한 조치에 의하여 적발숙청된 이후에도 그 끄나불들을 계속 끌고다니면서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 박아넣었다.
놈은 1980년대부터 아첨군인 리룡하놈을 제놈이 다른 직무에 조동될 때마다 끌고 다니였으며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는 종파적 행동을 하여 쫓겨났던 그자를 체계
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자리에까지 올려놓아 제놈의 심복졸개로 만들어 놓았다.
장성택은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켜 쫓겨갔던 측근들과 아첨군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몇년사이에 제놈이 있는 부서와 산하단위들에 끌어올리
고 전과자,경력에 문제가 있는자,불평불만을 가진자들을 체계적으로 자기 주위에 규합하고는 그우에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였다.
놈은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제놈이 있던 부서를 그 누
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
놈은 무엄하게도 대동강타일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영상작품과 현지 지도 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뿐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내
무군 군부대에 보내주신 친필서한을 천연화강석에 새겨 부대 지휘부청사앞에 정중히 모시자는 장병들의 일치한 의견을 묵살하던 끝에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구석에 건립
하게 내리먹이는 망동을 부렸다.
장성택이 지난 기간 우리 당의 조직적의사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거역하는 반당적행위를 감행한것은 제놈을 당에서 결론한 문제도,당의 방침도 뒤집을
수 있는 특수한 존재처럼 보이게 하여 제놈에 대한 극도의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는 고의적이고 불순한 기도의 발로였다.
장성택은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기 위하여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깨끗한 충정과 뜨거운 지성이 깃들어있는 물자들까지도 중도에서 가로채 심
복졸개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제놈의 낯내기를 하는 무엄한짓을 하였다.
장성택이 제놈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고 끈질기게 책동한 결과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
며 어떻게 하나 잘 보이기 위해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장성택은 부서와 대상기관에 당의 방침보다도 제놈의 말을 더 중시하고 받아무는 이질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놓음으로써 심복졸개들과 추종자들이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게 하였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것들은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총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며 그런자들은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힐 자리가 없다.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총리자리에 올라앉을 개꿈을 꾸면서 제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
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가려고 획책하였다.
놈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세워주신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들을 제놈밑에 소속시키였으며 위원
회,성,중앙기관과 도,시,군급기관을 내오거나 없애는 문제,무역 및 외화벌이단위와 재외기구를 조직하는 문제,생활비적용문제를 비롯하여 내각에서 맡아하던 일체 기구
사업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손안에 걷어쥐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함으로써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할수 없게 하였다.
놈은 국가건설감독기구와 관련한 문제를 내각과 해당 성과 합의도 하지 않고 당에 거짓보고를 드리려고 시도하다가 해당 일군들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작성해주
신 건설법과 어긋난다는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자 《그러면 건설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는가.》고 망발하였다.
장성택은 직권을 악용하여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세워주신 수도건설과 관련한 사업체계를 헝클어놓아 몇년사이에 건설건재기지들을 페허로 만들다싶이 하고 교활
한 수법으로 수도건설단위 기술자,기능공대렬을 약화시키였으며 중요건설단위들을 심복들에게 넘겨주어 돈벌이를 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평양시건설을 고의적으로 방
해하였다.
장성택은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
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
이다.
장성택은 정치적 야망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률적인 독
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1980년대 광복거리건설때부터 귀금속을 걷어모아온 장성택은 수중에 비밀기관을 만들어놓고는 국가의 법은 안중에도 없이 은행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내여 귀금속을
사들임으로써 국가의 재정관리체계에 커다란 혼란을 조성하는 반국가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장성택은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류포시켜 자본주의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
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장성택이 2009년 한해에만도 제놈의 비밀돈창고에서 460여만?歷? 꺼내 탕진한 사실과 외국도박장출입까지 한 사실 하나만 놓고보아도 놈이 얼마나 타락,변질되였
는가를 잘 알수 있다.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날뛰던 나머지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
요하게 책동하였다.
장성택 놈은 심리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
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하면서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령도자동지이다.》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놈은 정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간부들을 리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하였다. 최근에 임명된 군대간부
들은 잘 몰라도 이전시기 임명된 군대간부들과는 면목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들과 군인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면 군대도 정변에 동조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
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 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보
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수 있다고 보았다.》고 꺼리낌없이 뇌까리였다.
장성택놈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하여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 인내》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
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매국노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
장성택의 반당적,반국가적,반인민적인 죄악은 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 재판소 심리과정에 그 가증스럽고 추악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지게 되였다.
시대와 력사는 당과 혁명의 원쑤,인민의 원쑤이며 극악한 조국반역자인 장성택의 치떨리는 죄상을 영원히 기록하고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수도 바뀔수도 없는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김정일,김정은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하늘아래서 감히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
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것을 확증하였으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인민의 이
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
1.장성택은 김정은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추대하는 시기에 계승 문제를 비아냥대며("왼새끼를 꼬면서") 음양으로 방해했다. 구체적으로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결정되자 건성건성 박수를 치는 등 오만불손한 행동을 했다.
2.자신이 김정은("경애하는 원수님")과 자주 현지 지도를 다닌 점을 악용하여 자신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 했다.
3.장성택에게 아첨하다가 해임된 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산하기관에 끌어들였다. 특히 청년 사업 부문에서 북조선을 배신한 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조선로동당과 북조선 정부의 중요 직책에 넣었다. 1980년대부터 리룡하를 심복으로 두고, 그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했다.
4.대동강 타일공장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 영상 작품과 현지 지도 사적비를 만들지 못하게 방해했다. 또한 김정일이 조선인민내무군 부대에 보낸 친필 서한이 적힌 비석을 그늘진 곳에 건립하게 했다.
5.장성택 자신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킨 결과 장성택이 있던 부서의 아첨꾼들이 장성택을 '1번동지'로 부르며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거역하는 일이 있었다.
6.김정일이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세운 국가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을 자신의 밑에 소속시켰다. 정부기관이나 지방단체를 멋대로 변경시켰으며, 외화벌이나 생활비 적용 등 국가경제에 관한 사항을 좌지우지했다.
7.자신이 정한 국가건설감독기구 방침과 김일성, 김정일이 정한 건설법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자 "그럼 건설법을 고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한 평양시 건설사업에서 부패를 저질러 돈벌이를 했고 결과적으로 건설사업을 망쳤다.
8.경제적 혼란 초래: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마음대로 팔아먹고, 라선경제 무역지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매각했다. 또한 2009년 박남기를 부추겨 화폐개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폐개혁)을 일으켜 북조선 경제에 혼란을 야기했다.
9.1980년대 광복거리 건설 때부터 국가 은행 자금을 빼내 귀금속을 수집했다.
10.2009년부터 여러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를 유포시키고, 가는 곳마다 방탕한 생활을 했다. 특히 2009년 한 해에만 비밀 금고에서 460여만 유로를 탕진하고 외국 도박장을 출입했다.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장성택 특별군사재판 전문 내용 발췌, 정리-
북한 TV의 영상은 장성택이 공개적으로 북한 노동당 회원의 수천의 앞에 보안 요원에 의해 체포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2013년 12 월 12 일 특별 군사 재판소에서 처형 시전에 촬영한 사진
한국 미디어는 장성택 사진에서 고문과 구타 의심 의혹을 제기돼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