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문학
英國文學 English Literature
영어로 이루어진 영국의 문학. 영국문학은 유럽문학의 한 부분이며 게르만어를 바탕으로 하면서 노르만인의 정복으로 초래된 노르만어·프랑스어 등의 영향으로 영어가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과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인 독립성, 균형을 중시하는 국민성 등에 의해 독특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대륙문학과의 교류는 항상 있어 왔으며, 근세 이후에는 대륙문학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중세〕영국 본토를 이루는 브리튼섬의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는데, 5세기에 주트인·앵글로인·색슨인 등의 게르만민족이 유럽대륙으로부터 침입하여 앵글로색슨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현재의 영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고대영어 또는 <앵글로색슨어>라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베어울프》라고 하는 영웅
서사시이다. 민중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던 것이 8세기에 지금의 형태로 정착한 것으로 짐작되며 내용은 정의와 운명에 따르는 비극적 영웅정신이다. 바탕을 이루는 사상은 북유럽계의 이교주의(異敎主義)인데, 그리스도교의 침투도 엿볼 수 있다. 1066년 북프랑스 노르망디의 윌리엄공이 영국을 정복한 뒤 프랑스어와 프랑스문화가 도입되어 중세영어에 의한 영국문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중세영어는 대륙과 문화적 일체성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중심이 되는 것은 교회와 궁정이었다. 수도사 R.B.매닝은 종교시인으로 유명한데, 어린 딸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한 시 《진주》는 감동적인 종교시이다. 마찬가지로 14세기 후반 몽유담(夢遊談) 형식을 취한 W.랭랜드의 작품 《농부 피어스의 꿈》은 중세문학의 큰 특징인 우의시(寓意詩)이며, 깊은 신앙을 말하고 있지만 교회나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도 엿보인다. 한편 궁정문학은 로맨스가 중심을 이루었다. 로맨스문학의 중심은 프랑스인데, 영국은 중세 3대 로맨스의 하나인 <아서왕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 뒤 T.맬러리에
의하여 집대성되어 《아서왕의 죽음(1485)》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궁정시인으로서 뿐 만 아니라 중세를 통한 최대 시인은 G.초서이다. 그는 프랑스의 로맨스 《장미이야기》을 번역하였고 같은 시대의 이탈리아 문인 F.페트라르카·G.보카치오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영국 중세문학의 상징적인 존재이고, 말년에는 의국의 영향을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하였다. 그 결과가 14세기 말에 《캔터베리이야기》로 나타났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인간에 대한 폭넓은 관찰과 유머감각은 그 뒤 오랫동안 영국문학의 한 특징이 되었다. 15세기에 이르러 그의 계통에 속하는 군소시인이 등장하는데, 이 시대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민중문학으로서 발라드(서사시적 민요)가 나타났다.
〔르네상스기(16세기)〕 16세기 튜더왕조시대는 중세적인 봉건제를 버리고 근세적인 중앙집권화가 진행된 시대로, 문예사조로 보면 르네상스시대에 해당하고 휴머니즘이 주창되었다. 그것은 이교적인 그리스로마시대의 고전을 따르고 인간적 가치의 앙양을 목표로 한 운동이었는데 그리스도교와 모순되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고, 인문주의자들의 목표는 크리스천 휴머니즘의 확립이었다. 《유토피아(1516)》의 작가 T.모어는 그 대표자이다. 16세기 후반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로서 문예운동이 융성한 시기였는데, 문학이 일제히 꽃핀 이유는 중세영어에서 벗어나 완전한 근대영어가 되었다는 점과 영어 자체에 유연성이 풍부해졌다는 점에 있다. 이 시기에도 문예의 주류는 운문이었다. E.스펜서는 《요정여왕》으로 플라톤적인 연애사상,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인문주의, 거기에 청교도주의까지 섞어 그것들이 서로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관능적인 회화미와 밝은 음악미를 구현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문예를 대표하는 것은 운문극이었다. 종교극에서 출발한 영국의 연극은 서서히 세속화의 길을 걷다가, 16세기 중반 사회적·사상적으로 진폭이 커진
엘리자베스 시대가 되자 국민들의 연극에 대한 정열이 폭발하여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 가운데 J.릴리는 단아한 궁정희극을 써서 한 장르를 확립하였고, 가장 천재적이었던 사람은 비극시인 C.말로였다.
그는 르네상스정신의 구현자로서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을 즐겨 그렸다. 《포스터스박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욕망에는 한도가 있고, 그 한도를 넘어서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지옥에 떨어지는 듯한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그 뒤를 이은 W.셰익스피어에 의하여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은 완성되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 극적 긴장, 거의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시적 표현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그의 걸작은 때때로 <극>의 형식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느낌까지 준다.
〔청교도시대(17세기)〕 17세기에 들어가면 곧 스튜어트왕조가 된다. 제임스 1세의 궁정에서는 극작가 B.존슨과 건축가 I.존스의 협력에 의하여 화려한 궁정가면극이 많이 상연되었고 민중극장에서는 존슨 등에 의한 풍자희극이 상연되었는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전대의 희곡과는 달리 무대기교에 중점을 둔 F.보먼트·J.플레처와 인간존재의 어두운 면을 예리하게 다룬 J.웨브스터·C.터너·J.포드 등의 비극이 나타나 데카당스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신흥시민계급의 물욕(物慾)을 풍자한 T.미들턴 등의 희곡도 자주 상연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연극을 죄악시하는 청교도들이 정계에서 힘을 갖게 되어 1642년에는 모든 극장이 폐쇄되었으며 49년 찰스 1세가 그들에 의해 처형되었다.
17세기 전반의 영국문학에서 빠뜨릴수 없는 것이 형이상시(形而上詩)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기발한 표현으로 노래한 시인데 착상이 재미있고 구어적(口語的)인 리듬에도 신선한 매력이 있다.
이 유파의 대표자로서는 J.던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시가 탄생한 바탕에는 과학에 입각한 신사상의 대두가 구사상과의 대립관계를 충분히 조정하지 못한 사상계의 혼미함이 깔려 있었다.
시인이며 탐험가인 W.A.롤리는 그 혼미함의 희생자였다. F.베이컨은 과학적 방법과 실험을 중시하는 경험적 귀납법을 주장하고 1620년 《신기관》을 발표하였다. 59년 O.크롬웰이 거느리는 청교도공화정부가 붕괴되고 60년에는 프랑스로 망명하였던 찰스 2세가 즉위하여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면서 청교도주의에 대한 반동과 프랑스 문물의 수입 등으로 화려한 시대로 변화하였다.
이 시대 문단의 일인자는 J.드라이든이었다.그는 정치적 격동기에 살면서 권력에 영합하는 무절조를 보였지만 그의 작품은 프랑스문학과도 통하였고, 고전주의적 입장에서 시작·극작·평론 등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왕정복고기 문예의 또다른 특색은 풍속극의 유행이다. 이것은 상류계급의 응접실을 무대로 하여 유한계급의 연애를 주제로 가볍고 소탈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도시적인 연극이었고 관객의 대부분도 상류사회 사람들이었다. 이때의 연극경향은 상류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다.
또, 이들 희극이 산문극이었다는 점도 상식을 중시하는 시대사조와 일치하고 있다. 드라이든의 후원을 받은 W.콩그리브가 이 유파의 대표자였다. 그러나 왕정복고기가 프랑스적인 기지(幾智)가 풍부한 희극이나 풍자문학만이 번영한 시대는 아니다. 이 시대에도 매우 뛰어난 청교도적 종교문학이 나타났다. 하나는 비국교도 목사 J.버니언의 《천로역정》이고, 다른 하나는 크롬웰의 라틴어비서를 맡고 있던 시인 J.밀턴의 여러 작품이다.
그 가운데서도 <원죄(原罪)>와 <지옥에 빠짐>을 주제로 한 《실낙원(1667)》은 신의 인간에 대한 가르침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의도에서 씌여진 것인데, 웅대한 구상과 풍부한 어휘·수사로 영국문학사를 장식하는 걸작이다.
〔고전주의와 소설의 융성(18세기)〕 18세기 전반을 가리켜 오거스터스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는 문예운동이 활발하여 베르길리우스와 F.Q.호라티우스를 비롯한 많은 시인·철학자를 배출한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시대에 앤여왕의 시대를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때는 이성(理性) 양식에 의지하여 규범을 존중하는 고전주의가 문단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시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졌는데 그 대표자가 A.포프였다.
그는 드라이든을 계승하여 영웅압운시(압운이 弱强 5음보의 대구)의 시형을 단아한 형식으로 완성하고 격언풍의 내용을 교묘하고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인간론》은 대단한 인기를 끌어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영국문학에 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J.스위프트이다. 그는 고전주의 논의를 전개하여 많은 논쟁적인 저작과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의 본령은 인간의 약점을 폭로한 풍자소설인데 《걸리버 여행기(1726)》가 그 걸작이며, 염세적인 인간관이 강하게 배어 있다.
18세기 영국문학의 특색은 소설의 발달과 융성이다. 영국소설의 발생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1719년 발표된 D.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초기의 주요 작품으로 꼽는다. 무인도에서 신을 믿으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가는 주인공은 그 무렵 시민계급의 도덕관의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소설 수법은 사실을 존중하는 시민계급에게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 철저하게 사실주의적이었고, 또 이것은 근대 사실주의의 선구이기도 하였다.
이 소설의 대성공을 뒷받침한 것은 독서습관을 가진 신흥시민계급이었는데, 그들의 출현은 소설을 문예의 주류로 만들었다.
《파멜라(1740)》의 작가 S.리처드슨은 간결체를 사용하여 디포가 보여주었던 사실주의 수법으로 인간 내면을 파헤쳐 여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를 묘사하는 데 성공하였고 프랑스문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파멜라》의 감상적인 도덕관에 대한 반감과 이에 대한 패러디로 쓰기 시작한 것이 H.필딩의 《조지프 앤드류스(1742)》였다. 그의 최고 걸작은 《톰 존스》인데 희극적인 필치로 사실적이고 건강한 인간의 모습을 평이하게 그려냈다. T.G.스몰레트는 《로데릭 랜덤(1748)》을 썼는데 이것은 15세기 에스파냐에서 시작된 피카레스크소설이었다.
그는 피카로라는 아웃사이더의 눈을 통해 사회 각 계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이 장르를 영국소설계에 확립하였다.
이와 같은 소설기법을 뒤집고 매우 이례적인 책 《트리스트럼 섄디의 생애와 의견(1760∼67)》을 쓴 사람은 L.스턴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사건의 시간적인 순서가 무시되며 이야기도 뒤얽힌 전개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작가가 사건의 전개보다 심리의 변화를 중시하여 순수하게 예술적인 소설을 쓸 의도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20세기 <의식의 흐름> 기법 소설의 선구로 볼 수 있는 매우 현대적인 소설이다. 신흥 독서계급이 낳은 또 하나의 현상으로 저널리즘의 발달을 들 수 있다. R.스틸이 1709년에 창간하고 뒤에 친구 J.애디슨도 참가한 《태틀러》, 이것이 폐간된 뒤 둘이서 시작한 《스펙테이터》는 알기 쉬운 명료한 문체로 당시의 세태를 논하고 신변의 화제거리를 실어 시민계급의 윤리적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이들 잡지에는 문예비평도 많이 실렸는데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비평사의 중요한 존재인 S.존슨이 등장한다.
그의 비평은 경우에 따라 개인적 편견으로 흐르기도 하지만 깊은 학식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과 부동의 신념으로 가득차 있다. 또 자신이 편찬한 《셰익스피어전집》에 붙인 서문에서 고전주의 전성시대에 이것과는 다른 다양한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었던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논하였고, 빈곤과 질병의 괴로움 속에서 8년 동안 혼자의 힘으로 《영어사전》을 완성하기도 하였다.
존슨의 호탕한 성격과 정이 많은 인격은 J.보즈웰이 지은 전기문학 《존슨전》에 잘 나타나 있다. 고전주의 전성시대인 18세기 전반 시단(詩壇)에서도 자연을 관찰하고 개인의 내적 명상을 노래하는 시인이 있었다.
유행하던 영웅압운시형이 아니고 무운시형(無韻詩型)을 이용하여 뛰어난 자연묘사를 한 J.톰슨의 《사계》와 고전주의 수법을 모방하면서도 풍부한 서정을 담은 T.그레이의 명상시 《묘지의 비가》 등이 있는데, 이러한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한층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스코틀랜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주로 그 지방 농민의 생활을 노래한 R.번스의 서정시는 분명히 낭만주의의 태동을 알리는 것이었고, 산업혁명이 한창일 때 런던에서 태어난 W.블레이크는 1세기 뒤의 낭만주의 시인들보다 훨씬 더 낭만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특이한 시각과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던 시인이었다.
중세 취향이 유행한 것도 반고전주의의 한 현상인데 이것은 소설분야에서 고딕소설이라는 괴기소설의 유행을 낳게 되었다. A.레드클리프의 《유돌포의 미스터리》는 대표적인 작품인데 이성과 양식을 존중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역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의 한 예고였다.
〔낭만주의시대(19세기 전반)〕 낭만주의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것은 시단이었다. 18세기 말의 낭만주의의 발흥은 전유럽적 현상이었고 프랑스혁명·산업혁명 등의 정치적·사회적 사건과도 관련이 있었는데, W.워즈워스와 S.T.콜리지의 공저 《서정민요집》이 나온 1789년은 영국낭만주의 문학으로서는 기념할 만한 해였다. <시는 힘찬 감정의 자연스러운 넘쳐 흐름>이어야 하고 <일상생활의 주제를 일상의 용어로 노래해야 한다>고 주장한 서문은 낭만주의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워즈워스는 많은 자연시를 남겼는데 그것들은 단지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의 신비한 교감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가까워지려는 명상적 태도가 강한 것이었다. 스스로의 정신적인 편력을 자서전적으로 적은 것이 대작 《서곡》이다. 워즈워스가 자연에 끌린 데 반해 콜리지는 인간과 초자연적인 외계와의 관계를 묘사하여 현실을 넘어선 상상력의 세계를 그려냈다.
그의 대표작 《노수부(老水夫)의 노래》는 고딕소설에서 볼 수 있는 괴기취미가 훌륭한 낭만적 열매를 거두고 있다. 이들에 이어 19세기 초 시단에는 G.G.바이런·P.B.셸리·J.키츠 등이 나타났다. 워즈워스와 콜리지가 프랑스혁명중에 청년시대를 맞은 것과는 달리 이들 젊은 세대 시인들의 특징은 혁명의 이상이 무너진 1815년 이후의 반동시대에, 이에 반역하는 형태로 혁명의 이상을 믿고 행동한다는 점이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강한 것은 셸리였고 시극 《해방된 프로메테우스》는 사랑의 힘으로 압제에서 해방되는 것을 노래한 방대한 서정시이다. 바이런은 자유분방한 생활 때문에 사회에서 추방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그의 작품은 대륙에서 더 크게 유행하여 대륙 낭만주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두 사람에 비해 키츠는 가장 순수하게 시의 불멸성을 신뢰하고, <아름다움은 진실이고 진실은 아름다움이다>라는 인식으로 살아간 <미의 시인>이었다. 낭만주의는 먼 옛날에 대해 동경을 갖고 중세취향의 부활을 시도하였는데, W.스콧의 역사소설은 이러한 시대취향에 잘 맞았다. 또 J.오스틴은 낭만주의라는 시대의 흐름 바깥 쪽에서 시골사람들에게서 제재를 얻은 《오만과 편견》 《엠마》 등과 같은 영국소설사에 위대한 걸작을 남겼다.
그녀는 격정과는 거리가 먼 냉정하고도 가벼운 필치, 정확한 판단력으로 극히 평범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여 그것을 훌륭하게 통일된 소설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낭만주의는 문예비평에도 큰 영향을 끼쳐 W.해즐릿·C.램과 같은 우수한 비평가를 낳았다. 그들이 가장 존중한 사람은 셰익스피어였고, 오늘날 셰익스피어가 영국문학사상 위대한 존재로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19세기 낭만주의 비평가들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
〔빅토리아시대(19세기 후반)〕 1837∼1901년의 빅토리아여왕시대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이 강대한 공업국이 되고 물질문명도 번영하는 등 대영제국을 형성한 시기였다.
상공업·무역에 종사하여 성공한 중산계층은 부를 축적하면서 신분상승을 해나갔고, 공리주의적 윤리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여 자기만족적이며 고상한 체하는 도덕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빅토리아니즘이 생겨났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인구가 도시로 지나치게 집중되었고 열악한 조건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활은 비참하여 그 결과 차티스트운동과 같은 급진적인 노동운동이 일어났다. K.마르크스는 망명중에 런던에서 《자본론(1867)》을 썼는데 그의 눈앞에는 비참한 영국사회의 일면이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은 당연히 그런 사회를 반영하였다.
C.J.H.디킨스는 스스로 경험하기도 하였던 영국의 하층노동자계급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을 제재로 하여 많은 소설을 썼다. 출세작 《피크윅 페이퍼스》을 비롯한 초기 작품에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넘치고 인간의 궁극적인 선의를 믿는 밝은 웃음으로 가득찬 이야기들이 전개되었는데, 후기에 이르면 《황량한 저택》에서 볼 수 있는 암울함이 작품을 지배하게 된다. 디킨스와 대조적으로 빅토리아시대의 상층 중류계급에서 제재를 따 그들이 지니고 있는 위선과 속물근성을 지적인 필치로 파헤친 사람이 W.M.새커리였다.
《허영의 도시》는 그 대표작이다. 여기에는 빅토리아시대의 사회모습이 냉정하면서도 충실히 묘사되어 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여류작가가 탄생했는데 빅토리아시대에 브론티 세 자매, E.C.가스켈·G.엘리엇 등이 등장하였다.
브론티자매 가운데 샬럿의 《제인에어》는 시대의 통념을 뒤집고 강한 자아를 가진 정열적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소설이었다. 세 자매는 시도 잘 썼는데 특히 에밀리의 시적 재능이 두드러졌으며, 풍부한 상상력은 소설 《폭풍의 언덕》을 낳았다.
황량한 요크셔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격렬한 정념의 세계를 그려 비극의 경지로 끌어올린 영국소설사상 명작의 하나이다. 한편 엘리엇은 전통적인 신앙에 회의를 품은 예리한 지성과 논리성을 갖춘 작가이며 말년의 작품 《미들마치》는 영국소설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시분야에서는 먼저 A.테니슨을 들 수 있다.
그는 많은 서정 단시(短詩)와 《인 메모리엄》을 비롯한 장시를 썼는데, 우수와 권태 속에서도 기본적으로 인류의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뚜렷하게 표현한 점에서 빅토리아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시법의 교묘함, 유려한 음악성에 특기를 보였다. 그와 나란히 빅토리아시대를 대표하는 또 한 사람의 시인은 R.브라우닝이다.
그는 테니슨과 마찬가지로 낙천적이면서도 이와는 대조적으로 격한 말과 남성적인 운율, <극적(劇的) 독백> 등의 수법을 이용해 인간의 내면을 그려냈다. 때로 난해함에 빠지는 일이 있지만 인생에 대한 진지한 몰두는 대작 《반지와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대 시인으로서 그 밖에 이름을 들 만한 사람들로는 비평가로 유명한 M.아놀드, 화가로서 이름이 나 있고 남유럽풍의 관능적인 시를 쓴 D.G.로세티, 로세티의 친구이며 유려한 음악적 운율을 특징으로 하는 A.C.스윈번 등이 있다.
또 가톨릭 종교시인 G.M.홉킨스는 <스프렁 리듬(도약률)>이라는 독특한 운율로 힘찬 시를 썼는데, 그가 죽은 뒤 20년이 지난 1918년 작품이 발표되어 20세기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빅토리아시대 전반의 비평계를 보면 세 사람을 꼽을 수 있다. T.B.매콜레·T.칼라일·J.H.뉴먼이 그들이다.
역사가 매콜레는 화려하고 명쾌한 《영국사》를 지어 많은 독자를 얻은 시대정신의 대변자였던 것에 반해 나머지 두 사람은 시대를 비판하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칼라일은 기계론적인 합리주의를 배격하고 개인의 내적 생명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유물주의와 공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풍조를 통렬히 비판하였다. 문장이 난해한 것으로 유명하였는데 그의 반속적(反俗的)인 태도가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유명한 《사터 리사터스(衣裳哲學)》은 자신의 정신형성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한편, 종교가 뉴먼은 당시의 초월적인 지위와 기능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옥스퍼드운동>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뒤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지만 신학자로서뿐 아니라 산문작가로도 유명한데, 《내 삶의 변명》은 정신적 자서전류의 고전이다. 이들 세 사람보다 조금 늦은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비평가·사상가로는 J.러스킨·M.아놀드·W.H.페이터·W.모리스·L.스티븐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생명력 강하게 남아 있는 사람은 아놀드이다.
그는 현실을 구가하는 그 무렵 영국인의 지적 허위성을 지적하였고, 낭만주의적 사상에 반대하고 질서관념을 중요시하여 귀족계급·중산계급·노동계급을 각각 야만인·속인·대중이라 하여 비판하고, 개개인이 스스로의 인간완성을 목표로 <교양>을 몸에 익힘으로써 시대의 <무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학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전문과학자뿐 아니라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씌어져 시대사조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C.R.다원의 《종의 기원(1859)》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진화론과 적자생존이라는 견해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을 뿌리째 흔들 수는 없다고 해도 <세계는 비인격적인 법칙에 따라 아무도 알 수 없는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은 서서히 사람들의 종교적 확신을 동요시켰다.
한편 소설분야에서는 이미 엘리엇이 주지적 회의(懷疑)의 경향을 보인 바 있었는데 G.메러디스에 이르러 이런 경향은 한층 강해졌다. 19세기가 끝날 즈음 G.기싱과 아일랜드의 G.A.무어 등의 자연주의적 경향을 지닌 작가들이 나타났는데 그러한 흐름 속에서 T.하디가 《테스》을 쓰고, 인간은 <우주에 내재하는 힘> 즉 맹목적이고 큰 힘에 조종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상을 전개하였다.
빅토리아시대 사조는 매우 강고하였지만 문학에는 여러 가지 반동이 나타났다. S.버틀러는 《에르혼》과 《만인의 길》에서 빅토리아니즘이 지닌 위선성을 통렬히 폭로하였고, 페이터의 <시적 정열, 미에 대한 욕구, 예술을 위한 예술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생의 성공을 가져오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시대정신의 속물성에 대한 반항의 표명이었다. 또 세속에 반항하여 퇴폐의 길을 선택한 O.와일드는 그의 삶의 방식 자체가 빅토리아니즘에 대한 반동이었다.
영국에도 세기말적인 현상이 찾아온 것이다. 그 즈음 연극계에서는 근대극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 연극은 18세기 이후 희곡의 빈곤에 빠졌고 극단은 후원자와 배우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19세기 말 유럽대륙에서 일어난 예술극장운동에 자극을 받아 1899년에 <무대협회>가 설립되었다.
그 지도자의 한 사람인 G.B.쇼는 H.J.입센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유머와 풍자를 섞은 많은 희곡을 발표하여 영국 근대극을 열었다.
아일랜드에서 민족주의적인 신극운동(아일랜드문예부흥)이 번성한 것도 거의 같은 시기이다.
〔20세기〕 에드워드시대라고 하는 20세기의 처음 10년 동안은 빅토리아시대에서 20세기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다.
빅토리아시대가 낙천적·현세구가적인 경향인 데 비하여 이 시대에는 기성의 종교·도덕·권위에 대한 회의의 색채가 짙어졌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 뒤의 시대와 비교하면 19세기적인 안정과 번영의 기운이 남아있었다. 소설에서는 J.골즈워디가 3부작 《포사이트가(家)이야기》을 썼는데, 1886년부터 제1차세계대전 뒤까지의 포사이트가 사람들을 묘사하여 빅토리아시대 번영의 중추였던 상층 중류계급이 역사의 전환기를 겪으며 변모하는 모습을 충실하게 기록하였다.
E.A.베넷이 다섯마을을 무대로 지방의 하층 중류계급을 그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H.G.웰스는 문명비평·사회비평적인 요소가 강한 많은 작품을 쓰고, 또 《타임머신》이라는 과학소설도 써 오늘날의 공상과학소설의 선구가 되었다. 이러한 작가들은 사회계층의 변화, 과학의 진보라는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작품에 받아들였는데, 그런 소설은 19세기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그것을 지탱하는 사상도 근본적으로는 19세기적인 인간에 대한 신뢰와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지탱되어 있다.
그들보다 연대적으로는 오래 되었지만 후세에 더 큰 영향을 준 두 작가가 있는데 H.제임스와 J.콘라드이다. 미국 태생인 제임스는 소박하고 선량한 미국과, 완숙한 전통문화를 자랑하지만 내면적인 부패를 지니고 있는 유럽을 대비시켜 양자의 대립에서 생기는 인간의 심리적·윤리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초기에는 사실주의적 수법을 썼으나 점점 심리묘사를 중요시하게 되었는데 소설기법에 대한 그의 예리한 의식은 이후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콘라드는 작가가 되기 전에 오랫동안 선원생활을 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선상생활이나 먼 이국의 풍물을 제재로 취한 것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항해모험소설이 아니고 극한상황에서의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려는 지극히 윤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도 19세기적인 사실주의를 내면화한 점에서 현대소설의 한 선구자였다. 20세기 초까지 남아 있던 빅토리아시대적인 낙천주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영국의 19세기를 완전히 과거지사로 돌린 사건은 제1차세계대전이었다.
르네상스 이래의 휴머니즘을 부정하고 인간의 유한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낭만주의 대신에 고전주의를 주장한 T.E.흄의 사상은 대전의 경험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결과로서 탄생한 것이다.
그에게 사상적 영향을 받으면서 이미지즘이라는 혁신적인 자유시운동을 일으킨 사람이 E.파운드였다. 이 두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T.S.엘리엇은 《황무지》을 써서 제1차세계대전 뒤의 정신적 황폐함을 노래하여 시단에 충격을 주었다.
낭만주의의 꿈을 좇고 있던 W.B.예이츠도 파운드에게 깊은 영향을 받아 20세기 중 가장 뛰어난 상징파시인의 한사람으로 변모하였다. 소설에 있어서도 행동의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심리를 추구하는 <의식의 흐름>을 묘사하려는 A.V.울프의 자세는 19세기적 사실주의와 완전한 결별을 고하는 것이었다.
이 수법을 극한까지 밀고 간 J.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시에서의 《황무지》와 비교할 만한 혁명적인 작품이었다. 또 인간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에 주목하여 성(性)을 생명의 근원으로 파악한 D.H.로렌스의 여러 작품도 19세기의 도덕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특히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인도로 가는 길》의 E.M.포스터, 《연애대위법》의 A.L.헉슬리도 이 시기의 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던 지적 자유주의와 불안을 말해 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비평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나타났다. 엘리엇은 흄의 반낭만주의를 계승한 형태로, 시는 개인을 초월하여 전통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고전주의적 비평을 전개하였다. 또 I.A.리처즈는 작품을 순수하게 언어적인 관점에서 보려는 문학이론과 비평이론의 확립에 힘썼다. 그 제자인 W.엠프슨은 《애매성의 7가지 유형》을 쓰고 작품의 단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분석을 하여 비평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비평의 관심이 언어적인 측면에 치중되는 이러한 태도는 뒤에 미국에서 꽃핀 <신비평>의 근원이 되었다. 잡지 《스크루티니》로 케임브리지학파를 이끌었던 F.R.리비스도 전통을 중시하는 윤리적 색채가 짙은 비평을 전개하여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1930년대는 어두운 시대였다. 미국의 <대공황>에서 시작된 범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나치즘이 대두하는 등 유럽은 한층 불안에 빠지고 많은 지식인들이 좌경화하였다. 이러한 좌우대립으로 인하여 에스파냐내전이 일어나고 젊은 문학가들은 인민전선 쪽에 가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내전의 실상을 직시한 그들은 대부분 공산주의에 대한 신뢰에 동요를 일으켰고 점차 이탈해 나갔다. 이 시대의 시를 대표하는 <오든그룹>이라는 시인들의 중심인 W.H.오든과 S.H.스펜더, 그리고 소설가이며 예리한 사회비평가이기도 한 G.오웰은 이러한 경향의 대표자이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영국사회가 입은 타격은 매우 심각하였는데, 이 시기에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은 전쟁 이전부터 활동해오던 가톨릭 작가 G.그린과 E.A.J.워이다.
그린은 극한상황에서 신을 찾는 인간의 모습을 교묘한 줄거리로 묘사하였고, 워는 철두철미 냉정하고 건조한 풍자를 무기로 인간의 어두운 면을 파헤쳤다. 비종교적인 인물이 신을 찾는 모습을 그려내는 그린에게도, 반속적·귀족적 입장에서 풍자의 채찍을 휘두르는 워에게도 기성 가치관의 붕괴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전쟁이 끝난 뒤 작가활동을 시작한 소설가로 A.윌슨이 있다. 그도 전후의 혼란을 풍자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 뒤 영국 풍속소설의 전통을 이어받은 작품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시에서는 30년대의 시인들이 정치에 흥미를 잃은 이래 개인주의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으나 이러한 경향 속에서 새롭게 낭만주의적 향기로 가득찬 시를 쓴 사람이 D.M.토마스였다. 50년대에 들어서면 전후문학의 기수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성난 젊은이(angry youngman)>라 한다.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되어 있지만 정열을 쏟아야 할 삶의 목표를 잃은 젊은이들이 기성질서에 깊은 의혹을 느끼며 강한 반항의 자세를 나타냈다.
J.오즈번의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소설에서도 K.에이미스의 《럭키 짐》, A.실리토의 《장거리주자(長距離走者)의 고독》 등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그 밖에 이 세대에 속하는 시인·소설가에는 P.라킨·J.웨인·D.J.엔라이트 등을 들 수 있다.
이 유파로 분류되는 작가들의 대부분은 하층 중류계급 출신이며 작품 속에 노동자계급을 적극적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한편으로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사람도 많으며 활동하는 분야도 시·소설·비평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다.
그들과 같이 출발하여 소설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 중에 특이한 주제를 명확한 허구성으로 묘사하는 J.I.머독이 있다. 또 그녀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을 더욱 심화시켜 <신화작가>라고도 불리는 작가로 《파리대왕》의 W.골딩이 있다.
《알렉산드리아 4중주》의 화려한 문체로 유명한 L.G.더렐도 인기작가이며, M.스파크·D.M.레싱 등 여류작가들의 활동도 많았다. 제2차세계대전 뒤의 연극은 활기에 차 있었다. N.카워드와 T.래티건에 의해 계승된 풍속극·상업극이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하는 한편, 엘리엇과 C.프라이는 시극의 부활을 시도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새로운 연극이 출현한 것은 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오즈번에 이어 하층계급의 생활감정을 사회변혁에 대한 꿈과 좌절로 그려낸 A.웨스커도 많은 인기를 모았다.
그들이 극작법에서 전통적인 수법을 따른 것과는 달리 종래의 틀에서 벗어난 이른바 <부조리연극>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 아일랜드 출신 작가 S.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이 계보에 속하는 H.핀터는 반연극(反演劇)의 부조리성과 전통적 연극성을 교묘히 배합한 형태의 많은 희곡을 발표하여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이들보다 더 새로운 세대에 속하는 T.스토파드·E.본드 등의 활동도 활발하여, 특히 풍속극의 전통을 부활시키고 있다. 인간성에 예리한 빛을 비추어 웃음을 유도하는 A.에이크반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