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고도<古島>! 교동도 아야기...
고기잡는 어부보다 쌀농사로 더 유명한 교동도의 황금 벌판을간다.
교동도 가을 여행길, ,,,
제 1편 『지역의 고사『古史』
2012년 초봄 어느날, 강화 인근의 애기봉(155m)을 들러보고 오던길에 인근 월곳면 포내리의 문수산성과<사적139호,조선시대 1694년도 건립>대곳면 대명리에 위취한 김포시의 유일한 포구인 대명 포구를 다녀 온적이 있다.
두 지역의 철지난 방문길 이야기를 이시간 굳이 끄집어 낸 데에는 포내리의 강화대교가 대명리 인근의 약암리를 건너서는 초지대교<길이1.2km 2002년 8.26.개통>와 함께 육지속의 섬인 강화도를 건너서는 유일한 다리로서 두 지역 인근에 인젒해 있기 때문이다.
2012.9.30일 아침 10시 30분, 모처럼 한산해진 올림픽 대로를 따라 북으로! 북으로! 달려 간다.
대로의 정점인 행주대교를 지나면서 김포시의 남측 관문인 48번 도로변 고천리가 시야가 잡히기 시작한다.
올봄 방문길과 달리 한결 수월해진 고속화도로의 개통된 구간을따라 차는 거침없이 달려간다.
김포시내의 신호체계 앞에서 두어번 검열을 당한후? 대명리의 초지대교를 건너리라 예상하고 떠나온 길이었으나 얼떨결에 강화대교로 들어서 버리고 말았다. 길의 혼선과 관계없이 48번 국도인 이 도로는 강화도의 중심부를관통하여 최 북단 마을인 창후리로 이어져 나아 간다.
이제는 섬아닌 육지가 되어버린 강화도는 인삼과 순무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있으며 섬의 남쪽으로는 외포리포구를 배로 건너서는 석모도와 북쪽으로는 북한 땅, 연백군을 지척으로 두고 바라보는 교동도를 삼각 편대로 아우르고있는 모섬이기도하다.
필자는 지난 날 불교의 3대 도량인 보문사와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로 이미 그 명성이 자자한 석모도의 해명산<308.9>정과, 낙가산<235>을 수차에 걸쳐 방문 한적 이 있으나 강화 삼도의 한축인 교동도는 이번 방문이 처음인지라 서 중 도의 끝, 민통선 안에 위취한 통행이 까다로운 여행지를 찾아가는 마음은 제법 설레이기 까지한다. 강화도의 최북단 창후리 포구에서 배를 타고 들어서는 교동도는 섬이 위취한 특성 만큼이나 입도하기 위한 절차가 다소 까다로웠다. 소총화기로 중무장한 젊은 해병대원의 검문검색과 이어지는 도선시간의 절차 그리고 무었보다 다 소 비싼 차량과 여행객이 지불해야할 승선 비용은 찾는이들의 부담으로 남아 이곳 까지 찾아온 여행객들의 입도를 순간 망설이게하는 주 요인이 아닐수없다 하겠다.
어쩌랴! ...
일찍이 한가위 보름일에 맞추워 계획을 세워두고, 어렵사리 예까지 찾아든 발길을 돌려세울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
강화도에서~ 교동도 가는길.
가는길_서울 올림픽대로_강화대교_ 48번국도길_ 고천리_창후리포구(약86.3km)
창후나루 배편이용_교동도 월선포선착장. 약4~5km뱃길 15분소요.매시간 출발
하계 오전10시-오후6시30분 동계 1시간 단축
승선비용_차량 16000원 승객 2500원<편도기준>
교동도 이야기길 코스_월선포구_동진포_교동읍성_교동향교_남산포_읍내리_대룡리_교동시장_고구저수지
월선포구 나루터.
강화 <다흘 새길>나들이길은 본섬과 주변인근 섬들을 연계하여 돌아볼수있는 섬길로서 총14개 구간으로 나뉘어져있다.
오늘은 그중 한 구간이자 유서깊은 섬 마을인 교동도 나들이 길을 찾아 가보고자 한다.
교동도『대운도』
신라 경덕왕때 교동현 이라는 지명을 부여받고 지금에 이르럿으며 강화도의 북서방향 약5km지점에 위취하고있는 민통선안의 섬이다. 현제에 이르러 1개면 17개리에 약3200명의 주민이 살고있다고한다.
고기잡이가 주 생업이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이러니 하게도 쌀농사의 주산지로 옛부터 전해 내려 오고있다.
월선리에서 교동도의 중심이되는 대룡리 마을은 이곳 섬마을 상권의 중심부이다.
마치 60년대의 풍경을 그대로 유지하고있는 대룡리의 대룡시장과 그곳에서 아직까지 생없을 이어 나가고 있는
원주민들은 한국전쟁당시 월남한 시량민들이 대부분이 주를 이루며 살고 있다 한다.
피난민들이 이곳에 몰려들어 판자촌을 형성하고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 자연스럽게 장 이 서기 시자한 겄이다.
당시에는 1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도 하니 가히 그 시절의 이곳 시장 풍경이 어떠 했으리라는 상상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시간이 멈춘땅!
강화 교동도 여행길......
교동도 조감도
88도로 한강철교 인근을 지나며...
강화도 최북단 창후리 포구 인근의 별립산 전경 창후리 마을의 진산이며 산의 서쪽 약 4km 이르는 바다 건너
에 위취한 교동도의 화개산<259>을 마주보고있다.
교동도의 최고봉이자 유일한 산군인 화개산이 산아레 바다가에 위취한 월산 포구를 내려다 보고있다.
강화도와 교동도의 최단거리는 3,44km이다.
월선포구에 승객을 내려주고 돌아오고있는 페리호의 모습이 보인다.
갈매기의 꿈. 뒤로 강화 본토와 교동도를 이어줄 연육교가 제법 모습을 같추어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완성될 다리의 예상 총 길이는 3.44km이다.
도선을 기다리는 차량들은 매표소 주차장에서 일차 대기후 승차가능 대수의 차량많이 부두가로 이동하여 최종 승선을 기다리게 된다. 당일 황금연휴 탓일까? 승선대기 시간은 어림잡아 1시간30분이나 소요되었다.
한번에 도선할수있는 차량은 승용차 기준 약 30대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기다린 보람이 있어 드디어 승선할 배가 들어오고 있다.
<화개9호>
어부들의 풍어를 비는 노래소리가 들려오는 바다가 저편!!
시계는 정 남쪽이며 한껏 목늘림을 하고 늘어선 석모도의 실루엣이 한편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창후리 포구의 어시장 풍경
연육교가 완성될 그날 ...
시계는 북쪽 황해도의 연백군 방향이다.
떠나온 창후리 포구의 변립산을 배경으로 떠도는 삶! 갈매기의 모습을 담아본다.
던진 자와 받는자.
바다건너 교동도의 화개산을 배경으로 바다 한가운데 붉은색 등대가 항해하는 배의 항로를 알려 주고있는 모습
이 보인다. <배의 운행 소요 시간은 15분이다>
교동도 월선포구에 이르고. ...
선수의 위취에서 하선을 준비하는 선원들 ...
좌측 바다 건너로는 석모도의 북측 끝 자락이 보인다.
상용리의 교동 향교에 이르러,,,
사찰의 일주문 격인 진입로 입구의 홍살문이 방문자를 내려다 보며 반겨준다.
교동향교_우라나라 최초의 향교로 알려져온다. 성현의 위페를 모시고 제을 올리며 교육을 담당하든 기관이다.
더 크게는 유교의 좌장인 공자를 숭배하는 곳이기도하다.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다.
가족 나들이 길...
읍내리 비석거리_조선시대 선정을 펼친 교동지역의 목민관인 수군 전도사겸, 삼도 통도사, 도호부사, 방어사,
등의 영세 불망비등, 총39기의 비석을 이곳에 모아서 세워둔 거리이다. 한마디로 지역에서 선정을 배푼 관료들
의 비석인 샘이다.
섬의 북쪽, 고구2리마을의 고구 저수지. 조선시대 연산군의 유배지로도 알려진 곳이나 역사의 흔적은 찾아보질
못하였다. 다만 오랜 세월 이곳에 물을 가두어 둔것으로 보아 옛 부터 교동도는 너른 평야를 보유한 덕분으로 농
사가 주업 이었음을 알수있겠고, 섬의 특성상 물이귀할수밖에 없었을 지역의 특성도 였보게 되는 대목이다.
실 예로 섬의 곳곳에는 크고작은 연못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음을 확인할수 있었다.
고구 저수지의 물결 넘어로 북측 연백군의 산군들이 아련하게 보인다.
이지점 해협을 건너 북한땅 까지는 약5km 전후이다.
고구 제2저수지와 그뒤로 화개산의 북측 전구간 모습도 보인다.
이산은 259m의 낟은 산봉우리로서 그나마도 교동도의 최고봉이며 산행소요시간은 1시간 전후이다.
필자는 늦은 출발과 한 없이 기다린 배시간, 더불어 돌아갈 배편의 촉박함으로 인하여 등정 목표로 삼고 들어선
화개산 산행은 다음 일정을 위하여 아쉬움속에 발길을 돌려 세울수 밖에 업었다.
섬의 북쪽에 위취한 북진나루터를 향하는 인사리 마을의 황금들역, 끝을 가늠할수가 없을 정도이다.
고구2리 마을에 이르러.,,,
교동도 면사무소가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설 지점에 지척으로 섬마을의 명동격인 대룡리와 가까운 거리에 위취
한 산중 마을이다.
교동도.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가 있는곳. 제2편으로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