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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투쟁 자신 있다, 준비한 실력이다” | ||||||||||||||||||||||||
[사람과 현장] 국내지분매각 대응투쟁 중인 한국델파이 노동자들
외환카드 한 해고노동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2003년 투기자본 론스타 펀드가 불법적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다. 외환카드 해고노동자는 “혹시 투기자본으로 매각이 예상되는 사업장이 있다면 경험자로서 절절하게 호소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먹고 튀는 투기자본이 들어오는 순간 끝입니다. 노동자들이 잘려나가고 회사가 쪼개지고 난 후에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투기자본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꼭 막으세요.” 금속노조 대구지부에 투기, 악질자본으로부터 공장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지회가 있다. 회사의 국내지분매각을 앞두고 있는 한국델파이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인공이다. 한국델파이지회(지회장 홍주표)는 3월30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해 96.27%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했다. 개표 직후 홍 지회장은 “투표권자 9백79명 중 9백38명이 투표했고 총 9백3명이 찬성표를 던졌다”며 “투기자본과 악질자본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대의사가 확인된 만큼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파업찬반투표 96% 찬성의 이유 한국델파이 국내 주주협의회가 지난해 5월 매각을 선언했다. 지회는 노조와 한마디 상의 없는 일방적 매각을 반대하며 현장실사를 저지했다. 이어 지회는 대의원대회를 열고 투기· 악질자본 저지와 전원고용보장을 위한 투쟁을 결의했다. 홍 지회장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다 철저히 짓밟힌 다른 사업장들을 보았다. 자본보다 노조가 먼저 움직여야한다고 판단했다”며 “우선협상대상자가 정해지고 난 다음에 투쟁에 나서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주주협의회는 지회의 반대에 부딪히자 10개월가량 매각절차를 연기하다 현장실사 없이 올해 1월14일 매각공고를 냈다. 지회는 현장실사 저지 때부터 지금까지 투기자본은 물론 코오롱과 에스앤티그룹 같은 이른바 ‘악질자본’에 대한 반대의사도 명확히 하고 있다. 홍 지회장은 “노동자 탄압으로 악명 높고 매각 성사되면 직원 6백 명 정리해고부터 하겠다는 에스앤티 같은 자본에 공장을 맡길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지회는 1월부터 매주 전 조합원이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 올라가서 투쟁했고, 결국 에스앤티는 3월8일 인수의향서 접수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 쟁의행위 찬반투표 투표율과 찬성률도 놀랍지만, 조합원들의 상경투쟁 참석률이 99.5%가 넘는다. 연월차휴가를 써가며 매주 서울로 올라가 공장의 앞날을 위해 싸우는 한국델파이 노동자들의 열기가 뜨겁다. 홍 지회장은 “공장의 주인인 노동자가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가는 것은 당연하다”며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노조가 대안을 제시하고 회사의 움직임을 항상 주시하며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노동조합의 적극성과 주체성을 강조했다. “자본보다 앞서 준비하고 공장의 비전을 노조가 먼저 내놓았기 때문에 지금 싸움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며 승리에 대한 확신을 내비쳤다.
지회의 일사불란함이 노조의 빠른 대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회사 매각 국면에 조합원들이 두려워하기보다 당당하게 투쟁에 동참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홍 지회장은 “전노협 시절부터 연대투쟁도 했지만 무엇보다 공장별 골간조직을 세우는데 노조가 꾸준히 힘을 쏟았고, 이 결과로 현장과 지회간의 관계가 튼튼하게 정착돼 있다”고 분석했다. 자본보다 앞서서 대처하다 노조활동을 노조간부만 한다는 뼈아픈 비판이 떠돌기 시작한지 오래다. 한국델파이지회는 지회간부들의 헌신과 더불어 대의원과 소위원 등 공장별 실천위원들이 현장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투쟁에서 승리하거나 모범적으로 활동하는 사업장을 분석해보면 현장위원들이 공장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델파이지회도 10년 넘게 운영했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는 어렵다. 홍 지회장은 “겉으로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작년 한해 타임오프가 시행되자 맥없이 무너진 지회들이 있었다”며 “그런 현장을 살펴보니 지회 대의원조차 세우지 못할 정도로 현장이 무너져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조태엽 지회 사무장은 “보여주기가 아닌 진짜 실력을 갖춘 알짜배기 노조활동을 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우리 지회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현장과 소통하고 간담회와 교육, 선전을 진행했다”며 꾸준한 일상활동을 강조했다. 지회는 매주 1~2회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한다. 공장별로 실천위원들과의 간담회를 수시로 연다. 지회가 주기적으로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실천위원들이 자발적으로 지회에 간담회를 요청하고 지회는 이를 당연히 받아들인다. 실천위원 간담회가 1년에 1백10번 열린 공장도 있다. 지회와 현장간부들의 소통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실천위원들 역시 월 2회 이상 공장별 소식지를 만들어 조합원들에게 직접 전하며 지회의 고민이나 소식을 조합원들에게 알린다. 실천위원들이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회에 전달함은 물론이다. 조합원 간담회 1년에 1백10번
잘 짜인 모시처럼 노조와 현장의 구조가 견고하다. 교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동환 제동공장 운영위원은 실천위원을 지회와 조합원을 연결하는 다리라 표현했다. 현 운영위원은 “매각투쟁에 들어가자 지회가 모든 상황에 대해 조합원들과 공유했다”며 “실천위원들도 공장별로 전진대회와 조합원 단합대회, 간담회를 열고 조합원들과 계속 소통하고 결의를 모았다”고 지난 투쟁과정을 설명했다. 끊임없는 소통과 꾸준한 일상활동. 뻔한 모범답안이지만,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 법. 조 사무장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조 사무장은 “조합원들 먹는 밥이 형편없고 작업복이 불편하며 되겠느냐”면서 “너무 당연하기에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기본적인 문제부터 노조가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조 사무장의 설명에 의하면 한국델파이에는 식당발전위원회와 작업복발전위원회등 몇개의 위원회가 있다고 한다. 이 공장에서는 회사가 형편없는 식재료와 원단으로 단가를 낮춰 이윤을 남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식당 밥, 쌀이 좀 별로던데…….” 조합원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면 지회는 곧장 회사에 식당발전위원회 회의를 요구하고 쌀을 바꾸게 만든다. 섬유개발연구소에 의뢰해 원단샘플을 비교 분석하는 등 안전하고 편한 작업복을 만드는데도 심혈을 기울인다. “노조활동, 기본에 충실해야” 홍 지회장은 “시작과 결과만큼 평가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홍지회장은 “노동조합이 계획만 내고 실천은 흐지부지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연말에 10개 평가기준을 놓고 공장별로 한 해 노조활동을 평가한다”며 델파이지회의 평가구조를 설명했다. 홍지회장은 이를 통해 “부족한 점은 비판하고 칭찬할 것은 추켜세워 새해 노조활동에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홍지회장은 “실수를 반복하고 잘된 것을 더 발전시키지 않는 노조가 후퇴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며 되물었다. 지회 국내지분매각 대응투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홍 지회장은 현재 상황이 어둡지 않으며 지회 요구가 점차 단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 하루 전인 3월29일 지분매각주관사인 산업은행은 공장 분할매각을 전제로 인수전에 뛰어든 해외투기자본 두 곳을 인수적격자에서 배제했다. 에스앤티그룹에 이어 투기자본 두 곳까지 손을 뗀 상황. 지회의 준비된 투쟁이 아니었다면 결코 쉽지 않았다.
지회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예비입찰대상자 명단에 올라와 있는 코오롱 때문이다. 한국델파이 노동자들은 지난 2005년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벌어졌던 대량정리해고 사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홍 지회장은 “간담회와 교육 때 조합원들에게 계속 얘기했고 조합원들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결코 코오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코오롱 자본에 대한 반대의사를 거듭 나타냈다. 매각 인수전 해외투기자본 두 곳 철수 4월 초 본 입찰대상자 선정과 5월 초 우선협상대상자 최종 확정이 예정돼 있는 한국델파이. 홍 지회장은 지회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를 강조하며 "지회 요구에 대한 분명한 답변과 보장이 없을 경우 전면 파업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홍 지회장은 “4월 7일 모든 조합원이 산업은행 앞에 모인다. 이 날까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총파업에 들어간다”며 “지역경제 뿐 아니라 우리 공장에서 대부분의 부품을 가져가는 한국GM자동차를 완전히 멈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신 있느냐고 물었다. 홍 지회장은 망설임 없이 “자신 있다. 명분이 있고, 조합원들 뜻이 확실하다. 안 될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허풍이나 과장이 아닌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왔고 자본보다 앞서 준비해 온 한국델파이 노동자들의 진짜 자신감이다. 델파이지회 승리가 바로 눈앞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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