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회 무등시조작품상 수상 |
고정선 시인 약력
전남 신안 출생, 1986년 《아동문예》, 1993년 《시세계》 2017년 《좋은시조》에 등단. 율격 시조동인 회장, 목포시조문학회 사무국장. 목포문학상, 2022년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 시조집 『눈물이 꽃잎입니다』, 동시조집 『개구리 단톡방』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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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무등시조작품상 심사평
고미술품과 현대시조의 아주 특별한 만남/ 유헌
2013년 처음 제정돼 1회 수상자를 배출한 ‘무등시조작품상’은 2018년 제6회까지 시상을 해왔다. 그 후 4년 여 공백기를 가졌다가 작년부터 다시 시행해오고 있다. 이제는 우리 협회의 재정도 조금 나아졌기 때문에 앞으론 끊김 없이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2023 제8회 무등시조작품상 수상자로 고정선 시인이 선정됐다. 심사 위원들은 최종심에 오른 4인의 작품을 읽으며 토론을 거듭한 결과 고정선 시인을 작품상 수상자로 최종 결정했다.
고정선 시인은 2017년 《좋은시조》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해 시조 경력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문단 경력으로 따지면 이미 중견시인이다. 1986년 《아동문예》로 등단해 문학 활동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수상작인 「노매老梅가 외로 앉아」는 ‘설곡 어몽룡작 월매도’란 부제를 달고 있어 고미술 작품을 보고 쓴 시조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어몽룡魚夢龍은 조선 중기의 화가로 특히 묵매墨梅를 잘 그려 이정, 황집중과 함께 당대 삼절三絶로 불린 인물이기도 하다. 고정선 시인은 시서화의 대가 작품을 어떻게 시조로 그려냈을까.
두수로 된 시조의 첫수 초장에서 노매老梅를 “삼동三冬을 견뎌내고 허리 휜 묵은 가지“라며 시각적 이미지로 먼저 묘사하고 있다. 이어 화자 어몽룡이 등장, 새하얀 ”달을 치며/ 내 맘 알지“ 이렇게 묻는다. 그림속의 대상과 얘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리다니 신선이 따로 없다. 어느새 작품을 완성한 화자가 활짝 핀 매화를 안고 그윽한 향기를 귀로 듣고 있다. 첫 수 종장을 후각적,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로 묘사해 마치 그림 속에서 또 한 폭의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흔들리는 마음결 가리려는 달무리를” 오히려 “손을 저어 말”리는 “바람 탄 노매老梅들이” “농익은/ 달의 속살을/ 못 본 척 외로 앉아”있다. ‘못 본 척’이라는 말은 이미 다 보았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말이 ‘외로’이지 슬쩍슬쩍 볼 것은 다 봤을 것이다. 고정선 시인의 혜안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선비의 고상한 문인화에서 활달한 우리 선조들의 성문화까지 훔쳐냈으니 말이다.
고정선 시인의 근작에는 고미술품이 자주 등장한다. 수상작인 「노매老梅가 외로 앉아」 외에도 이번 호에 함께 보내온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지난해 ‘광주전남시조문학’에 실린 김정희의 「세한도」,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김정희의 「불이선란도」, 이중섭의 「흰 소」 등을 시조로 풀어냈다. 고미술품과 현대시조의 아주 특별한 만남, 옛 그림도 감상하고 멋진 현대시조도 읽을 수 있어 기쁨이 배가 되는 느낌이다. 고정선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더 깊고 내밀한 좋은 작품 기대한다.
심사위원 노창수, 이한성, 김강호, 서연정, 유헌 시인(대표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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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시조작품상 고정선 시인
수상작 |
노매老梅가 외로 앉아
- 설곡 어몽룡작 「월매도」
삼동三冬을 견뎌내고 허리 휜 묵은 가지
민낯의 달을 치며
내 맘 알지 묻고 있다
암향暗香을
귀로 듣는 밤
벙근 매화 안고서
흔들리는 마음결 가리려는 달무리를
바람 탄 노매老梅들이
손을 저어 말린다
농익은
달의 속살을
못 본 척 외로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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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이 되어야지,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써서는 안된다.” 하신 서정춘 시인의 말씀을 항상 새기며 산다.
퇴직 후 불현듯 극약 같은 짧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갑자를 넘게 살아온 사람으로서 지나온 삶에 대해 주절주절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적은 수의 말을 사용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꽉 채운, 짧고 울림이 짙은 시들을 생산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시조.
아직도 가능성에 대해 자문자답하며 안 죽을 만큼 공부하고 있는 시점에서, 상을 받고 은근히 좋아하는 속내를 들킬까 봐 조심스럽다.
적당히 책을 읽고, 적당히 글을 쓰면서, 적당히 살아가지 않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나이를 핑계로 시밭 일구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심사위원들의 깊은 배려가 뜨겁고 뚜렷하기 때문이다. 말빚으로 남을지라도 쓰고, 읽고, 생각하며, 다듬는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겸허히 나를 돌보며 진심 진정을 표현한 감각적인 작품으로 격려에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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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정선 선생님 축하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