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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힘
질서의 힘
작용에 대해서는 반작용이 있다. 작용과 반작용은 서로 마주 보는 2다. 작용반작용을 통제하려면 2의 대응이 필요하다. 그것은 1보다 크다. 엔트로피 곧 무질서도 증가다.
이기는 힘은 엔트로피를 뒤집어 반대편을 본 것이다. 무질서도 증가는 에너지의 출력 측, 사건의 결과 측이다. 에너지의 입력 측, 사건의 원인 측을 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
이기는 힘은 계 내부의 압력이다. 압력은 반작용이 없다. 반작용보다 큰 힘이 압력이기 때문이다. 이기는 힘은 1이다. 압력이 걸리면 1의 대응으로 객체를 통제할 수 있다.
수도꼭지는 한 번의 조작으로 통제된다. 열거나 닫거나다. 계에 압력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닫힌계를 지정하면 압력이 걸린다. 압력이 걸리면 1로 행세하므로 조절된다.
2가 1로 행세하는 것이 이기는 힘이다. 상대적인 포지셔닝의 우위, 질서도의 우위, 에너지의 효율성의 우위를 달성한다. 질서 1로 무질서 2를 상대하고 1을 남겨서 이긴다.
도선에 전기가 흐르려면 배터리가 전구보다 전압이 높아야 한다. 에너지 입력 측이 출력 측을 이겨야 한다. 닫힌계를 지정하고 압력을 걸고 그 압력을 조절하여 이길 수 있다.
엔트로피
가장 간단하고, 쉽고, 명쾌하고,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엔트로피다. 이보다 탄탄한 논리는 없다. 게다가 우리의 경험적 직관과 일치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무수히 엔트로피를 경험한다. 엔트로피는 보편적이다. 뭐든 얄궂은 것은 전부 엔트로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엔트로피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엔트로피다. 전문가들은 수학적 통계로 도피한다. 쉬운 말로 해도 되는데 학자들이 굳이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 이유는 내막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엔트로피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는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엔트로피는 출구가 입구를 막는 현상이다. 지하철은 승객이 먼저 내리고 다음 타야 하는데 그게 안 지켜지는 것이 무질서도 증가다. 쉬운 말로 하면 혼잡도 증가다. 엘리베이터에서도 간혹 경험한다. 질서가 필요하다. 버스는 입구와 출구가 분리되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이므로 순조로운 것과 비교된다.
자연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변화는 혼잡도가 증가한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한 번 일어난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간섭에 의해서만 멈춘다. 그러므로 결국 간섭이 증가해 있다. 간섭이 증가하는 이유는 관성력에 의해 간섭을 만날 때까지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엔트로피를 무수히 경험한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로 박근혜 하나를 꺾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일은 대개 지휘권이 통일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상 다수의 군대가 소수의 군대에 참패한 전투는 대부분 지휘권의 분산 때문이다. 명령이 두 방향으로 나오면 당연히 망한다. 두 명령이 서로 간섭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입력부와 출력부를 분리하여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간섭을 피하게 하는 것은 압력이다. 압력을 조절하는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있다. 계에 질서를 만드는 엔진이 있다. 닫힌계를 알아야 하고, 자발적인 변화를 알아야 하고, 밸런스를 알아야 한다. 닫힌계 안에서 일어나는 자발적인 변화는 밸런스의 원리를 따라 힘이 두 방향으로 간다. 밸런스는 공간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균형이 맞을 때까지 공간을 늘리면 혼잡해지는 것이 무질서도 증가다. 이렇게 말하면 어렵다.
압력으로 설명하면 쉽다. 유체에 압이 걸리면 지하철에서 버스로 바뀐다. 버스는 입구와 출구가 분리되어 있다. 열은 계에 압이 걸린 것이다. 열역학은 압력학이다. 열이 압이다. 압력학이라고 하면 쉬운데 열역학이라고 하니 헷갈린다.
열이 한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압이 고압에서 저압으로 가는 것이다. 차가운 것은 압이 없으므로 흩어져서 출구가 입구를 막는다. 압이 걸리면 가지런해져서 압이 낮은 쪽으로 이동한다. 그쪽으로 떠밀리기 때문이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사람이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 압이 걸려 있다. 승차하려던 사람이 뒤로 떠밀린다. 자연히 질서가 만들어진다.
열은 압력이다. 압력의 반대는 간섭이다. 무질서도 증가는 간섭의 증가다. 엔트로피는 간단히 압력이 간섭을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욕망의 압박, 호르몬의 압박, 선생님의 압박, 가족의 압박, 집단의 압박을 받는다. 특히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의 압박이 중요하다. 소풍 가기 전날은 왠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무의식의 압박이다. 설렘과 흥분과 스트레스의 압박이다. 그것이 에너지의 입력 측을 조절한다. 그런데 간섭받는다. 압력을 받아서 뭔가 좀 하려고 하면 경쟁자의 간섭, 자연의 간섭, 고객의 갑질 등 무수한 간섭을 당해서 망한다.
내부에서 압박받고 외부에서 간섭받는다. 중심부에서 압박받고 주변부에서 간섭받는다. 에너지는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고,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동하고, 압박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이동한다. 닫힌계 내부에도 상대적인 의사결정의 중심부가 있다.
화살은 활시위의 압력을 받아 날아가고 과녁의 간섭을 받아서 멈춘다. 자동차는 엔진의 압력을 받아 움직이고 마찰력의 간섭을 받아서 멈춘다. 모든 운동은 압력에서 시작되고 간섭에서 종결된다. 자연에서 간섭은 점점 증가한다. 나이가 들면 알게 된다. 여기저기 아프다. 간섭받으면 멈추고, 멈추면 공간을 차지하고, 공간을 차지하면 주변과의 접촉면이 넓어져서 더 많은 간섭을 받게 된다. 점차 압력이 감소하고 간섭이 증가하는 게 엔트로피다.
- 닫힌계 내의 자발적 변화가 있다.
- 자발적 변화는 압력에 의해 격발된다.
- 관성력이 간섭에 의해 교착되면 멈춘다.
- 압력과 간섭의 조절이 변화를 결정한다.
- 압력에서 간섭까지 한 방향으로 간다.
간섭에 의해 서로가 가진 힘이 균일해질 때까지 에너지는 이동한다. 늑대 무리는 힘이 균일하다. 특별히 센 놈도 없고 약한 놈도 없다. 늑대 무리는 합의에 따라 움직인다. 개는 서열이 있다. 균일하지 않다. 개는 주인을 따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쌍방이 힘의 균일을 납득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한다. 아직은 동맹국 눈치를 보며 서로 자기가 힘이 세다고 믿고 저러는 것이다.
이기는 힘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부분의 합에 없는 것은 압력이다. 100과 (50+50)이 있다. 100은 압이 걸려 있고 (50+ 50)은 간섭이 걸려 있다. 100은 누가 묶어줘서 100이 되었으므로 압이 걸려 있다. 유체는 100에서 (50+50)으로 이동한다. 그 역은 없다. (50+50)이 움직이려고 하면 자기들끼리 서로 간섭해서 상쇄되기 때문이다.
부분의 합에 대한 전체의 우위가 이기는 힘이다. 그것이 포지셔닝의 우위다. 엔트로피 증가라고 하지 말고 포지셔닝의 우위에 따른 의사결정 비용의 감소라고 하는 게 이해가 쉽다. 엔트로피 증가는 간섭에 따른 의사결정 비용 증가다. (50+50)은 훈련하여 보조를 맞춰야 한다. 간섭을 제거하는데 드는 훈련비용이 엔트로피다.
문제는 숨은 엔트로피다. 그냥 100과 달리는 100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그냥 돌과 구르는 돌이 부딪히면 구르는 돌이 이긴다. 구르는 돌은 내부에 압이 걸려 있고 그냥 돌은 간섭이 걸려 있다. 그냥 돌은 지구의 중력에 발목을 잡혀 있다. 지구가 몰래 간섭하고 있다. 구르는 돌이 축구공에 맞으면? 축구공은 굴러간다. 깨지지 않는다. 축구공은 지구의 간섭을 덜 받는다.
가만있는 것은 사실 간섭받고 있다. 붙잡혀 있는 것이다. 수갑이 채워진 채 묶여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람과 묶여 있는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문제는 우리가 묶여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간섭받아야 멈추므로 모든 멈추어 있는 것은 간섭받고 있다. 외부에 간섭이 없더라도 자체적으로 간섭받는다.
반대로 자유로운 것은 압이 걸려 있다. 흥분해 있다. 호기심이 있다. 설렘이 있다. 계획이 있고 희망이 있다. 의욕이 있고 열정이 있다. 무사는 칼이 있고 군인은 총이 있고 지식인은 배움이 있다. 노숙자는 예외다. 그들은 자유가 없다. 에너지가 없다.
뜨거운 것은 간섭을 덜 받고 있다. 차가운 것은 간섭받고 있다. 뜨거운 것은 분자가 진동하고 있다. 진동하여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차가운 것은 반대로 공간에 잡혀 있다. 얼음은 분자들이 서로 붙잡고 있다. 자기 자신에 발목이 잡혀 있다.
우리는 자연이 붙잡혀 있고 간섭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냥 있다고 생각한다. 풀린 개와 묶인 개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우주는 압력과 간섭이다. 언제라도 압력이 간섭을 이긴다. 풀린 개가 묶인 개를 이긴다. 그것이 엔트로피다. 에너지는 압력받는 쪽에서 간섭받는 쪽으로 이동한다. 민주주의는 압력받고 전체주의는 간섭받는다. 민주주의가 이긴다.
엔트로피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이기는 쪽이 아니라 지는 쪽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압이 걸린 쪽을 외면하고 간섭받는 쪽을 주목한다. 사건의 원인 측을 외면하고 결과 측을 주목한다. 그러면서 지는 쪽이 붙잡혀 있고 꽁꽁 묶여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기는 쪽이 이기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내부의 압력을 조절하므로 이기는 것이다. 내부에 의사결정 구조 형태로 질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가 더 있다. 같은 무게라도 가열된 것은 실제로 질량이 더 크다.
긍정어법
엔트로피는 부정어법으로만 설명된다. 무한동력은 불가능하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뭐가 안 된다고만 말하고 뭐가 된다고는 말하지 않는가? 하긴 뭐가 되어도 곤란하다. 결혼은 첫날 밤이 가장 좋다. 갈수록 좋아진다면 무한대로 좋아져서 그것만 하다가 죽는다. 제품은 갈수록 나빠져야 한다. 그래야 신제품이 팔린다.
절대 법칙 - 좋지 않다.
상대 법칙 - 좋다.
우주의 절대 법칙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으면 상대 법칙은 좋다는 거다. 모든 좋은 것은 상대적이고 모든 나쁜 것은 절대적이다. 좋은 것은 상대적이므로 내가 더 좋아질 수는 없지만 상대를 나쁘게 만들 수는 있다. 엔트로피를 상대편에게 던져주면 된다. 그 방법은 겨루는 것이다. 겨루면서 상대가 전략을 쓰게 만들면 된다. 상대의 전략은 갈수록 나빠진다. 전투 중에 전술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그때 감춰둔 내 전략을 필살기로 쓰면 된다. 내 전략은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상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내 패를 감추고 상대편 패를 공개하면 이긴다.
조절장치
구조론의 결론은 이기는 힘이다. 조절장치가 있다. 조절하는 자와 조절되는 자가 있다. 능동과 수동이 있다. 주최 측과 선수가 있다. 갑과 을이 있다. 포지셔닝의 차이다. 조절하는 자의 유리함이 이기는 힘이다. 다른 말로는 권력이고 자연에서는 기능이다.
칼자루를 쥔 쪽이 이긴다. 조절장치를 장악하고 게임의 주최 측으로 올라서야 한다. 권력을 쥐고 기능을 획득해야 한다. 이런 것은 역사 지정학에서 쉽게 관찰된다. 항구가 있는 나라가 발전하고 교통로가 막힌 나라는 망한다. 중앙을 차지하면 흥하고 변방에 고립되면 망한다. 여기에는 복잡한 방정식이 있다. 단기적으로 흥하는 이유가 장기적으로 망하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가 절대적으로 나빠지는 것이라면, 이기는 힘은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것이다. 무에서 유가 나오지 않으므로 주체가 절대적으로 좋아질 수는 없다. 만약 절대적으로 좋아진다면 그게 무한동력이다. 객체가 주체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루트를 개설하면 흥한다. 긴밀한 상호작용을 유지하며 계속 이겨야 한다. 바둑을 둔다면 절대적으로 이기는 수는 없지만 상대 실수를 응징할 수는 있다. 그러려면 미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불리한 위치에 가 있으면 상대가 실수해도 응징하지 못한다.
자연은 변화다. 변화는 방향전환이다. 방향전환은 대칭을 지렛대로 쓴다. 방향전환을 거듭할수록 대칭 숫자가 늘어난다. 대칭이 늘어나면 또다시 방향전환을 시도할 때 늘어난 대칭의 숫자만큼 의사결정 비용이 청구된다. 즉 나빠지는 것이다. 그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그런데 반대로 보면 나빠지기 전에는 지렛대를 가져서 유리하다. 그 유리함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이기는 힘이다.
이기는 힘은 대칭의 지렛대를 장악하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실제로 이득은 없다. 이득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이득을 보려면 상대가 실수를 해줘야 한다. 간단하다. 상대가 더 많은 횟수의 의사결정을 하게 하고 나는 더 적은 횟수의 의사결정을 하면 이긴다. 그러려면 선수를 쳐야 한다. 선수를 두는 쪽이 1을 움직이면 후수를 두는 쪽은 2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주는 쪽은 1이고 받는 쪽은 2다. 내가 1로 주면 상대는 2로 받아야 한다. 내가 공을 던져주면 강아지는 저만큼 뛰어가야 한다. 주는 쪽이 코어라면 받는 쪽은 대칭이다. 구조는 대칭 2에 코어 1이다. 코어가 대칭보다 유리하다. 지렛대는 언제나 코어에 있다.
의사결정하기 전의 상태가 의사결정하고 난 다음보다 유리하다. 대칭이 없기 때문이다. 손대지 않은 과일, 포장을 뜯지 않은 제품, 결혼하지 않은 미혼 남녀가 이미 손을 댔거나, 이미 사용했거나, 이미 결혼한 사람보다 새로운 의사결정을 하기에 유리하다.
의사결정에는 대칭이 따른다. 대칭은 마디와 같다. 손가락 끝으로 갈수록 마디 숫자가 늘어난다. 전체의 방향전환을 하려면 늘어난 마디 숫자에 일일이 에너지를 가하여 작용해야 하므로 의사결정 비용이 증가한다. 에너지가 꺾이는 지점은 적을수록 좋다.
엔트로피는 어떤 결정을 하든 결정만 하면 무조건 손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주식은 거래만 하면 세금을 뜯긴다. 그러므로 의사결정을 최대한 줄이고 신제품 상태로 가면서 때가 되면 선수를 치는 것이 좋다. 선공, 선발, 선입, 선착, 선행, 선점의 이점을 살리는 기동을 해야 한다. 보통은 응수타진한다며 때가 아닌데 집적대다가 타이밍 뺏겨서 선수를 놓치고 후수로 밀려서 손해를 본다.
역 엔트로피
엔트로피 증가를 뒤집으면 이기는 힘의 감소가 된다. 엔트로피가 사건의 결과 측 해석이라면 이기는 힘은 사건의 원인 측 해석이다. 같은 사건을 반대편에서 바라본 것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이유는 반대편에서 이기는 힘이 엔트로피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기는 힘은 엔트로피를 생산하는 주체다. 이기는 힘은 간단히 엔트로피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 이기는 힘은 감소한다.
서로 연동되어 움직일 때는 뒤에 연결되는 것이 더 많이 움직인다. 주는 쪽은 시간만 정하면 되는데 받는 쪽은 시간과 장소를 동시에 결정해야 한다. 주는 쪽은 밸런스를 붕괴시켜 주고받는 쪽은 밸런스를 만들어서 받는다.
이기는 힘은 계의 통제가능성이다. 엔트로피가 무질서도 증가라면 이기는 힘은 질서도 우위다. 변화는 사건의 원인 측에서 주체가 객체를 이기는 형태로 격발된다. 사건의 결과 측에서 객체의 패배가 무질서도 증가로 나타난다.
능력 - 잠재된 가능성 힘.. 힘이 있지만 실리지 않았다.
동력 - 결집한 현장의 힘.. 힘이 실렸지만 격발되지 않았다.
압력 - 공간의 비트는 힘.. 힘이 격발되어 공간의 기세를 이룬다.
이기는 힘은 힘의 형태를 계속 변화시킨다. 능력을 동력으로 바꾸고 다시 압력으로 바꾸어 주도권을 유지한다. 나의 액션에 상대가 대응하면 게임의 형태를 바꾸어 버린다. 게임 속의 또 다른 게임으로 게임을 갈아타는 것이다. 게임 종목을 내 맘대로 바꾸어 얻는 주도권의 이득이 사회에서는 권력으로, 자연에서는 기세로, 시장에서는 이윤으로 나타난다.
주도권 - 상대가 대응하면 질, 입자, 힘, 운동, 량, 순서로 게임 종목을 바꾼다.
게임 종목 갈아타기는 내가 선수를 차지하므로 상대는 후수가 된다. 선수, 선발, 선점, 선착, 선행의 이점을 계속 살려가는 것이다. 바뀐 종목은 내가 결정했으므로 상대는 대응할 수 없다. 이때 순서대로 종목을 갈아타야 한다. 순서가 바뀌어 순방향을 잃고 역방향이 되면 출구가 입구를 막으므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동력이 끊어져서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삼국지의 마속이 상대가 스스로 불리한 결정을 할 때까지 끈덕지게 기다리지 못하고 유리한 지형을 찾아 고지로 올라갔다가 망한 것과 같다. 교통로의 질에서 농성하는 입자로 가지 않고 산의 높이에 기대고 힘으로 갔다가 상대가 포위만 하고 응전하지 않으니 망했다. 장합이 외부와 연결하는 질 포지션이라면 마속은 힘 포지션이니, 승부는 뻔하다.
이기는 힘은 상호작용하는 둘 사이에서 상대적인 포지셔닝의 우위다. 사건은 주체가 객체에 대해 우위를 이룬다. 주체와 객체는 대칭이면서 비대칭이다. 대칭은 계를 만들고 비대칭은 사건을 격발한다. 대칭은 활시위를 당겨서 팽팽하게 만들고 비대칭은 활시위를 놓아서 활이 화살을 이기게 한다. 대칭을 비대칭으로 통제하는 것이 이기는 힘이다.
혼자서는 힘을 조직할 수 없고 반드시 둘 이상이 상호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결 따라 간다. 이기는 힘이 유지되는 방향으로 사건은 진행된다. 사회는 집단 내부에 권력이 유지되는 경로를 선택하여 의사결정하고, 시장은 이윤이 발생하는 경로를 따라 흘러가고, 자연은 기세를 유지하는 경로를 선택한다.
방향성의 힘
의사결정은 계의 방향전환이다. 계 내부에 간섭받는 방향전환 지점이 많을수록 의사결정하기 어려운게 엔트로피 증가라면 반대로 계 내부에 압력이 걸려 방향전환 지점이 적을수록 의사결정하기 쉬운 게 이기는 힘이다. 의사결정의 효율성 차이가 세상을 이끌어가는 엔진이 된다.
영화 왝더독Wag the dog 이야기다. 개는 왜 꼬리를 흔들까?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었을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다. 채찍을 흔들어 보면 알 수 있다. 머리가 꼬리를 흔들 수는 있는데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꼬리는 마디가 많다. 의사결정 지점이 많다. 채찍의 손잡이는 마디가 없다. 휘어지지 않는다. 의사결정지점이 많으면 불리하다. 마디가 많으면 서로 상충되고 상쇄되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출구가 입구를 막기 때문이다. 무질서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출구가 입구를 막는 현상이다. 지하철을 타면 내리는 사람이 타는 사람을 막는다. 모닥불을 피우면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가 산소가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서 잘 타던 불이 갑자기 꺼지는 수가 있다.
호박 하나는 한 방향으로 구르는데 도토리 백 개의 집합은 양 방향으로 구르며 서로 상쇄된다. 서로의 출구가 입구를 막는다. 도토리들 사이에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일어난다. 의사결정 비용은 마디의 수, 대칭의 수에 비례한다. 도토리 수에 비례한다.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 간다. 고온은 분자의 운동하는 덩어리가 크고 저온은 잘게 찢어져 있다. 큰 덩어리가 작은 것의 집합을 흔들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큰 덩어리는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작은 것의 집합은 두 방향으로 움직이며 서로 상쇄되고 상충된다.
짧은 파장을 긴 파장으로 합칠 수는 없고, 반대로 긴 파장을 짧은 파장으로 쪼갤 수는 있다. 채찍은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채찍을 휘두르면 각운동량이 보존되어 음속을 돌파하고 소닉붐을 일으킬 정도로 가속된다. 채찍의 손잡이 부분이 긴 파장이라면 끝부분은 짧은 파장이다. 채찍을 거꾸로 휘두를 수는 없다. 채찍의 가느다란 끝을 잡고 휘두르면 손에 감겨 가속되지 않는다. 이는 칼날을 쥐고 칼을 휘두르는 격이다. 압력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고, 각운동량은 긴 파장에서 짧은 파장으로 간다.
열 : 고온 > 저온
압력 : 고압 > 저압
각운동량 : 긴 파장 > 짧은 파장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무에서 유로 갈 수 없다. 무질서에서 유질서로 갈 수 없다. 무압에서 압력으로 갈 수 없다. 닫힌계 안에서 플러스로는 갈 수 없고 마이너스로는 갈 수 있다. 계가 닫혔으므로 외부의 것과 합칠 수는 없지만 내부의 것을 쪼갤 수는 있다.
주체의 사고
사건을 일으키는 상호작용은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결과 측의 객체를 향한다. 틀렸다. 원인 측의 주체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우리가 주체 지향적 사고를 익혀야 한다. 원인 지향적 사고가 필요하다.
활은 순식간에 쏜다. 과녁에는 그대로 박혀 있다. 원인 측의 의사결정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결과는 오랫동안 전시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자연히 결과 측을 향한다. 압력 측이 아니라 간섭 측을 보게 된다. 즉 우리는 간섭 측을 간섭한다.
주체는 연역하고 객체는 귀납한다. 인류의 문명은 통째로 귀납적 사고에 맞추어져 있다. 먼저 결과를 확인하고 나중 원인을 추적하는 결과 지향적 사고다. 귀납은 넘겨짚기다. 귀납의 오류는 필연이다. 21세기에 종교와 주술과 음모론이 난무하는 이유다.
[주체] - [객체]
입력 - 출력
원인 - 결과
압력 - 간섭
능동 - 수동
연역 - 귀납
우리는 초대된 손님과 같다. 자연이 주체라면 인간은 객체다. 손님으로 포지션이 굳어버렸다. 손님은 공간을 장악하지 못하므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자체 에너지가 없어 계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기는 힘이 없다. 기능이 없고 권력이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밖에서 날아오는 돌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밖에 없다. 넘겨짚을 수밖에 없다. 손님은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주인의 의도를 넘겨짚어야 한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다. 인간이 주체가 되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자체 동력으로 무장하고 닫힌계를 설정하여 공간을 장악하고 압력을 가해야 한다. 사건의 원인 측에 주목해야 한다. 원인 측은 빼먹을 에너지가 있고 결과측은 그 에너지가 없다.
자동차는 파워트레인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엔진에서 트랜스미션, 차동장치, 구동바퀴로 연결되는 라인이 있다. 사건은 능력에서 동력과 압력을 거쳐 변화와 결과로 진행된다. 우리는 변화와 결과 중심으로 사유한다. 그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능력과 동력과 압력은 엔진 내부에 감추어져 있다. 파워트레인 내부에 감추어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건의 원인 측을 보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능력 - 동력 - 압력 - 변화 - 결과
수학은 연역을 쓰지만, 수학의 해석 대상은 객체다. 이미 귀납하고 있다. 수학자의 방정식은 연역 논리로 만들지만 그 방정식으로 풀고자 하는 문제는 귀납이다. 대수는 셈하는 대상이 눈앞에 있다. 이미 귀납이다. 기하학이 연역에 가깝지만 부족하다. 대개 사건의 시작 부분이 아니라 종결 부분을 본다. 사건의 출발점을 사유하지 않는다.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는 게 수학이다. 피라미드는 이미 지어져 있다. 어떻게 짓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지어진 결과물을 놓고 분석하면 귀납적 포지션이다. 수학의 논리가 연역일 뿐 인간의 자세는 귀납이다. 피라미드는 에너지가 전달되어 건축된 것이다. 에너지를 어떻게 집결시켰는지를 추궁해야 한다.
오늘 판매한 상품을 결산한다면 귀납이다. 내일 판매할 제품을 세팅한다면 연역이다. 우리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상대가 취하는 공세를 보고 맞대응하면 귀납이다. 선수를 치고, 미끼를 던지고, 함정을 파고,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게임을 설계해야 한다. 능동적 사고를 훈련해야 한다.
압력의 힘
인류문명의 맹점이 있다. 집단적 착각에 빠져 있다. 현실에서 인간은 약자다. 자연히 약자의 사고를 하게 되어 계속 약자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강자에 의해 조절되어 버린다. 약자도 힘을 모으면 강자다. 사건의 원인 측에 서고, 주인 측에 서고, 능동 측에 서야 한다. 동력원을 장악하고 자체 동력에 의지하는 강자의 사고로 갈아타야 한다. 조절하는 자의 눈을 얻어야 한다.
원인 측과 결과 측
주인 측과 손님 측
능동 측과 수동 측
동력원과 반발력
주인은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매뉴얼을 가지고 일관된 대응을 하지만 손님은 상황에 따라 선택을 잘해야 한다. 주인은 진상짓 하는 손님을 쫓아버리면 된다. 손님은 주인이 제공하는 메뉴판 안에서 음식을 골라야 한다. 우리는 지고 들어가는 손님 포지션에 길들어 있다. 현실이 그러므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극복해야 한다. 남의 하우스에 가서 베팅하지 말고 나의 게임을 개설하고 주최 측 포지션으로 올라서야 한다.
주체와 객체로 나누기 전에 둘의 상호작용에 주목해야 한다. 너와 나는 왼쪽과 오른쪽이 있지만 상호작용은 언제나 한 방향이다. 그 세계에 옳고 그름은 없고 강과 약이 있을 뿐이다. 어느 쪽이 옳을까 하고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게임에 져 있다. 총을 쥔 자는 선택을 고민하지 않는다. 주최 측은 고민하지 않는다. 누가 돈을 따든 카지노는 승리자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 구조로 설계한다. 어느 분야든 최종 보스가 있다.
우리는 내가 잘했다거니, 네가 잘못했다거니 하고 따지기 좋아하지만 대개 상호작용이 약해진 게 원인이다. 약하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피해야 하지만 강하면 파도를 타고 넘는다.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이미 압력을 잃고 간섭당하는 상태다. 그 포지션에서 탈출해야 한다. 우리는 핸들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잘 꺾어야 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엔진의 출력이 약한 게 문제다. 출력이 강하면 그대로 치고 나간다. 자전거는 장애물을 피해야 하지만 탱크는 그냥 밀어버린다. 을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져 있지만 갑은 빨리 먹거나 천천히 먹거나 속도 조절을 할 뿐이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면 남자 탓도 아니고 여자 탓도 아니고 둘이 공유하는 그 무엇이 없는 게 원인이다. 공유하는 자녀가 없거나, 공유하는 돈이 없거나, 공유하는 매력이 없거나다. 압력은 공유다. 취미든 일이든 몸이든 공유하는 게 있어야 한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한다면 이미 잘못되어 있다. 둘이 공유하는 것의 총량을 늘리면 된다. 상호작용의 총량 증대가 진정한 답이다.
특히 정치판에서 잘 관찰된다. 종파주의로 분열되어 노선을 고민하고 있다면 틀려먹었다. 싹수가 노랗다. 물이 들어오면 노를 젓는다. 고민하지 않는다. 노를 세게 젓는지 약하게 젓는지가 있을 뿐이다.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든 범선은 전진한다. 좌파니, 우파니 하며 노선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져 있다. 이미 압력이 바닥나서 간섭당하는 상태다. 정치의 본질은 생산력 증대에 의한 압력이다. 인터넷이 들어오고, 인구가 증가하고, 신기술이 탄생하고, 신무기가 도입되는 형태로 압력이 증가하면 무엇을 해야할지는 저절로 자명하므로 고민할 이유가 없다.
동적균형
문제의 해결은 어떤 고정된 균형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균형점을 부단히 이동시키는 것이다. 즉 조절하는 것이다. 한 번 조절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계속 조절해야 한다. 나무가 생장점을 가지 끝으로 밀고 가듯이 계속 밀고 가는 것이다. 물이 흐르게 하려면 배관에 일정한 수압이 유지되어야 한다. 입구가 출구보다 압력이 높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든, 남자와 여자든, 강자와 약자든 집단에 어떤 힘의 균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단히 균형점을 이동시켜 동력을 조달해야 한다. 균형은 균형이되 움직이는 균형, 동적 균형이라야 한다. 그래야 자원들이 연결된다. 단지 균형에 도달하기만 하고 거기서 멈추면 계 내부의 자원들이 느슨해져 있다. 전압이 0볼트가 되어 도선에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봉건시대라면 고정된 균형에 도달하는 게 미덕이 된다. 그러나 집단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가만 놔두면 점차 무질서해진다. 그리스 페리클레스의 황금시대도 로마의 5현제 시절 팍스 로마나도 잠시 스쳐 갔을 뿐이다. 어떤 안정된 이상에 도달하면 집단은 그때부터 붕괴한다. 정지상태의 균형이 아니라 움직이는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는 막연히 균형을 추구한다. 그 생각은 틀렸다. 옴쭉달싹 못 하는 교착상태를 균형이라고 착각한다. 균형점을 적절히 이동시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가 중도를 따라가면 망한다. 중도를 판정하는 기준점을 조금씩 왼쪽으로 밀고 가야 한다. 그래야 계에 압력이 걸려서 무리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따라온다. 집단은 압력이 0보다 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이다. 핸들을 잘 꺾어야 한다. 틀렸다. 파도를 타고 넘어야 한다. 강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 상호작용의 총량 증대가 답이다. 남자 때문이라거나 혹은 여자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핸들을 꺾는 문제다. 대개 상호작용 총량이 감소해서 문제가 된다. 남고와 여고로 분리해서 상호작용이 감소한 게 원인이다.
자동차를 통제하려면 일단 마력을 높여야 한다. 엔진 출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핸들을 잘 꺾어봐야 개고생이다. 남녀관계라도 상호작용 총량 증대가 답이다. 서로 데면데면해진 상태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 봤자 의미 없다. 너무 힘만 추구해도 안 된다. 힘은 0보다 큰 상태로 족하다. 조절이 중요하다. 긴장 상태, 긴밀한 상태, 맞물려 돌아가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주체의 입장이냐 객체의 입장이냐다. 손님은 선택을 잘해야 한다. 짜장면과 짬뽕 중에서 고르면 된다. 주인은 에너지 총량으로 승부해야 한다. 손님을 힘으로 눌러야 한다. 선택하지 말고 거꾸로 선택을 강요해야 한다. 적절한 이념과 노선의 선택이나 혹은 절묘한 힘의 균형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달성한 다음 적절한 조절로 이겨야 진짜다.
무한동력 착각
사람이 걷는 이유는? 오른발을 내밀어서다. 틀렸다. 사실은 왼발로 뒤땅을 민다. 오른발이든 왼발이든 발을 움직여 걷는다. 틀렸다. 상체를 숙여서 무게중심 이동으로 걷는다. 왼발과 오른발은 무너진 밸런스를 바로잡아 원상복구 시킨다. 운동의 주체는 손발이 아니라 인체의 무게중심이다. 걷기는 밸런스 무너뜨리기와 바로잡기의 반복이다. 비탈길을 미끄러지는 것과 같다.
수레는 바퀴가 굴러서 간다. 아니다. 축이 가는 것이며 바퀴는 마찰력을 줄인다. 어떤 대칭된 것은 가짜다. 왼발과 오른발은 대칭이므로 가짜다. 왼발과 오른발을 연결하는 골반이 진짜다. 골반이 업고 가는 무게중심이 진짜다. 두 바퀴를 연결하는 축이 진짜다. 여전히 로봇이 달리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인간형 로봇은 한 발로 서고 한 발로 달릴 수 있어야 진짜다.
모든 운동은 밸런스의 균형점을 흔들어 격발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이유는 엔트로피가 0인 지점을 흔들기 때문이다. 인체라면 골반이다. 운동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걷기 운동의 시작점은 왼발이나 오른발이 아니라 숙어지는 상체다. 달리기 선수의 스타트 자세와 같다. 상체를 숙이는 동작이 운동을 격발한다. 무게중심을 낮추고 그것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 운동이다.
새는 날개를 퍼덕여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점프해서 날아오른다. 다리 힘으로 점프하여 무게중심을 공중에 띄운 다음 날갯짓으로 중심의 위치를 조절한다. 점프가 비행에 도움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무한동력은 밸런스의 복원력을 이용한다. 돌아오는 복원점은 출발점 0과 같거나 작아서 실패한다. 복원점은 0보다 커야 움직일 수 있다.
복원점을 0보다 크게 만들려면 먼저 큰 파동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잘게 쪼개서 각운동량 보존을 끌어내야 한다. 사람이 걸어도 인체 전체의 밸런스 축을 흔들어서 큰 파동을 만들고 이를 다시 두 다리의 짧은 파동으로 쪼개서 걷는 것이다. 상체와 하체를 합친 신체의 무게중심을 흔들어야 한다. 투수가 공을 던져도 팔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무게중심을 옮겨서 던진다.
무한동력 착각이 그렇다. 대부분 바퀴에 추를 달아맨 다음 그 추가 움직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축이 반대편으로 이동하므로 영구기관은 실패한다. 바퀴에 추를 달아매면 편심이 된다. 편심이 되면 축이 반대편으로 밀린다. 눈에 보이는 축이 바퀴 가운데 있다고 믿지만, 역학적으로는 축이 그곳에 없다. 모든 영구기관은 그냥 축이 틀어져서 비틀거리는 바퀴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지구에 없다는 점이다. 복잡한 열역학으로 설명해도 무한동력 아저씨는 납득하지 못한다. 열역학이 왜 거기서 나와? 난 그냥 바퀴를 굴렸을 뿐이라고. 운동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운동은 축이 격발한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의 모든 원인은 밸런스의 중심점 이동이다. 그냥 활을 쏘는 게 아니고 활몸과 활시위의 균형점이 움직인 것이다.
상호작용의 밸런스가 존재를 쏘는 총이다. 낙하하는 물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물체와 지구 사이의 밸런스가 움직인 것이다. 공간의 장이 움직여서 물체를 발사한다. 자석이 쇠붙이를 당기거나, 물체가 지구를 향해 떨어지거나 간에 물체는 하는 일이 없다. 화살은 하는 일이 없다. 화살은 가만있고 활이 움직인다. 물체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광속이 일정한 이유는 공간의 장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빛은 제 자리에 있는데 장이 흔들려서 전자 내부의 진동이 외부 공간의 파동으로 갈아탄 데 따라 결과적으로 빛이 이동한 셈이 되었다. 총알은 가만있는데 화약이 총알을 밀어낸다. 총알이 공간을 헤엄쳐 가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어떤 둘 사이에 상호작용의 균형점이 있고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그 균형점이다.
우리가 연장을 쓸 때는 힘점을 움직이지만, 자연의 지렛대는 언제나 받침점이 움직인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생명이 자라는 것은 언제나 둘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다. 자연에는 기압이 있고, 수압이 있고, 열압이 있다. 압에는 밸런스가 있으며 그 밸런스의 변화가 이동을 촉발한다. 둘이 하나를 공유하면 압이 걸리고 언제나 그 공유하는 지점이 움직인다.
엔트로피의 힘
모든 것은 엔트로피로 설명된다. 국힘당은 왜 시끄러울까? 당 내부에 엔트로피가 증가해서 시끄럽다. 민주당은 왜 정권을 뺏겼을까? 역시 엔트로피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세계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엔트로피가 증가한 데 따른 청구서를 뒤늦게 받고 있다. 온난화의 청구서가 그러하다. 지구 전체의 엔트로피 증가는 바닷물 속에 숨는다. 바다가 열을 비축했다가 갑자기 내뿜으면 지구는 망한다. 근래에 러시아, 인도, 사우디, 브라질, 중국이 일제히 서방에 반기를 드는 것도 문명 단위의 엔트로피 증가다. 예정된 대로 지구는 점차 개판이 된다. 원래 그렇게 된다. 외부에서 새 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신기술이 개발되지 않으면. 생산력이 증대하지 않으면 망한다. 우리가 인공지능 신기술을 선점하고 말 안 듣는 야만 국가를 통제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비료 발명으로 맬서스 트랩 해결, 자동차 발명, 전자산업 등장, IT산업 등장이 지난 백 년간 일어난 일이다. 언제나 새로운 힘이 외부에서 들어와서 엔트로피를 감소시켰다. 새로운 생산력이 출현하지 않으면 인류는 죽는다.
왜 엔트로피가 증가할까? 무엇을 하려면 힘이 필요하다. 힘은 압력이다. 압력을 생성해야 한다. 압력을 생성하는 방법은 잘게 쪼개는 것이다. 하나를 둘로 쪼개면 내부 압력이 증가한다. 그래서 쪼갠다. 그렇게 쪼개진 것이 무질서도 증가다.
회전하는 물체는 지속해서 방향을 바꾸므로 그만큼 내부 압력이 증가한 것이 원심력이다.
사회를 유지하려면 집단을 잘게 쪼개서 권력을 생성해야 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서구의 봉건 계급제도다. 모든 차별은 권력을 생성하려는 의도가 있다. 박정희는 김재규와 차지철로 쪼개서 권력을 생성한다. 이준석은 남자와 여자로 갈라쳐서 권력을 생성한다. 선조는 이순신과 원균을 경쟁시켜 권력을 유지한다. 쪼개면 내부 압력이 증가하고 권력은 그 압력으로 통제한다. 현명한 자는 외부를 쪼개고 어리석은 자는 내부를 쪼갠다. 그게 내부 총질이다.
엔트로피 증가 – 자연의 변화는 객체를 쪼개서 얻는 압력을 동력으로 사용하므로 모든 변화의 결과는 결국 쪼개지는 것이다.
쪼갠다는 것은 진행하는 방향을 바꾼다는 말이다. 수렴-><-에서 확산<-->으로 바뀌면 계가 쪼개진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압력이며 압력은 방향전환 과정에서 일어난다. 방향을 바꾸면 쪼개져서 부스러기가 증가한 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주도권의 힘
이기는 힘의 의미는 세상이 한 방향으로 가므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더하고 빼면 결과는 같다. 조삼모사의 고사와 같다. 원숭이는 조사모삼을 선택해야 한다. 아침에 많이 먹고 활동하다가 저녁에는 잠들면 된다. 원숭이는 신중하게 판단하여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지만 저공은 상관없다. 조절할 뿐이다.
주도권을 가진 원인 측 능동 - 압력의 강약을 조절한다.
주도권이 없는 결과 측 수동 - 간섭의 선택을 잘해야 한다.
사건의 원인 측에 서고 에너지의 입력 측에 서면 상대가 어떻게 대응하든 결과는 같다. 단 강해야 한다.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이겨서 압력이 0보다 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상호작용은 긴밀해야 한다. 긴장이 끊어지면 안 된다. 잘 안되면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고 더 큰 판을 벌이고 장기전을 하면 된다. 어차피 도박은 밑천이 많은 쪽이 이긴다.
왜 사회에 권력이 있을까? 권력은 현재 진행 중이다. 운전기사에게 권력이 있는 이유는? 버스가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왜 왕에게 권력이 있을까? 모든 국가는 잠재적인 전쟁상태이기 때문이다. 달리는 말은 권력이 있다. 속도가 붙으면 기수가 임의로 멈춰 세울 수 없다. 이기는 힘은 변화의 현재 진행 중이 멈춘 것에 대해 프리미엄을 가지는 것이다.
살아있는 소가 죽은 소보다 비싸다. 택시는 달리는 차를 세워서 타고 버스는 정거장에 멈춰 있는 차를 탄다. 요금이 다른 이유다.
달리는 것은 두 개가 연결되어 계를 이룬 것이다. 멈춘 것은 낱개의 집합이다. 달리는 것은 이미 집합되어 있고 멈춘 것은 인간이 돈을 들여 집합시켜야 한다. 멈춘 것은 집합 비용이 청구된다.
이기는 힘 - 달리는 것이 유리하다.
엔트로피 - 멈춘 것이 불리하다.
자동차의 속도가 빠르면 핸들링이 쉽다. 느리게 움직이는 차는 핸들을 더 많이 돌려야 한다. 엔트로피는 느린 차의 불리함을 말하고 있다. 왜 빠른 차의 유리함을 말하지 않는가? 자동차 구매자가 제로백을 따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무엇이 옳으냐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현재 진행 중인 상태, 라이브 상태, 살아있는 상태, 상호작용이 이어지는 상태, 연결된 상태, 압력이 걸린 상태, 간섭받지 않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많은 경우 도덕가보다 행동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행동은 조절되지만, 도덕은 선택되기 때문이다. 도덕은 간섭받는다.
노인과 어린이가 물에 빠졌다면 어린이부터 구하는 것이 맞다. 어린이는 변화 중이고 노인은 멈추어 있다. 살아있는 것에 권력이 있다. 관성력이 있다.
큰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에 우선권이 있다. 버스와 승용차가 좁은 도로에서 마주치면 승용차가 비켜주는 것이 맞다. 우리는 상호작용 총량을 늘리고, 계속 사건을 연결하여 세력을 키우고, 관성을 태우고,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 멈추면 옳아도 죽고 옳지 않아도 죽는다.
역사는 도덕적인 후진국을 부도덕한 선진국이 이겨온 역사다. 상호작용 총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상호작용 총량이 많다. 움직이는 것에는 붙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기는 힘은 다른 조건이 같을 때
- 압력은 간섭을 이긴다.
- 질서가 무질서를 이긴다.
- 전체가 부분의 합을 이긴다.
- 관성이 작용반작용을 이긴다.
- 움직이는 것이 정지한 것을 이긴다.
- 연결된 것이 단절된 것을 이긴다.
- 뜨거운 것이 차가운 것을 이긴다.
- 살아있는 것이 죽은 것을 이긴다.
- 씨앗 1킬로가 수확 1킬로를 이긴다.
- 압력이 걸린 것이 느슨한 것을 이긴다.
위와 반대되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전체가 아닌 부분을 본 것이다. 드러난 부분을 강조하고 전체를 은폐하는 꼼수를 쓰면 뒤에 청구서를 받는다. 기레기들이 늘 하는 짓이다.
존재는 에너지의 진행 방향을 바꾸어 압력을 생산한다. 각운동량 보존은 큰 파동을 작은 파동으로 쪼개서 압력을 생산한다. 원심력은 부단한 방향전환으로 압력을 생산한다. 사회는 계급과 차별로 압력을 생산한다. 사회가 신기술로 압력을 생산하면 이기는 힘으로 흥하고 차별로 압력을 생산하면 엔트로피 증가로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