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와 그림
글; 무애(한국선도학회장)
- 기그림(氣畵)- 그림에 저장된 기(氣)정보
특정 그림이나 도형은 기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나아가 기(氣)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림 속에 능히 많은 기를 주입할 수도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림 속에 기정보를 입력시키는 것이다. 그 방법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직접 발공을 해서 기정보를 주입하기도 하고, 그림을 다 그린 후에 공력가가 그 그림에 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일단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 전통미술과 기
우리 전통미술은 특히 기공과 관계가 깊다. 이에 대한 단적인 사례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명한 화가 솔거(率居)의 ‘노송도(老松圖)‘ 전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솔거가 황룡사(皇龍寺) 벽에 그렸다는 ‘노송도’는 사실감이 어찌나 뛰어났는지, 날아가던 새들이 와서 앉으려고 하다가 벽에 부딪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그림을 볼 수 없고 사실을 확인할 수도 없지만,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일 수 있다. 새들은 그림 속의 소나무에서 생기(生氣)를 느꼈기에 날아와 앉으려 했을 것이다. 선도를 수련한 솔거는 아마도 그림 속의 소나무에 실제 소나무와 같은 생기를 가득 불어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새가 날아와 부딪히는 일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에 그림의 색이 바래지자, 한 화가(혹은 스님)가 그 위에 덧칠을 하였는데, 그 이후부터는 새가 전혀 날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덧칠로 인해 그림 속의 소나무가 내뿜던 생기가 사라져버린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 이해의 관건도 기(氣)
기공은 현대 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기도 한다. 한 미술가는 기공을 수련한 후에 피카소, 고호, 미로 등의 작품에 눈을 떴으며, 엄청난 영감(靈感)과 정력을 가지고 작품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련 후) 난해한 피카소, 고호, 칸딘스키, 뭉크, 미로의 작품들에 대한 안목이 달라졌다. 동서양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은 그림을 통해 뭔가 생명체의 본질을 향해 다가가려 몸부림친 것이다.
피카소의 경우 사실화를 던지고 화폭에 한 사람의 얼굴이 둘, 셋으로 나타나고, 나중에는 이상한 선으로 낙서를 해놓은 듯 뒤로 엉키기도 하고 꼬이기도 하는 변화를 보여 주었다. 제한된 화폭 위에 그렇게 밖에 생명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피카소 뿐 아니라 대부분의 거장들의 그림은 점차로 단순해지는 공통점을 보이는데 이것은 생명체의 본질로 접근해간 증거이다.“
- 종교화와 기(氣)
일본의 저명한 기공연구가 다카후치 소이치로는 유체이탈(幽體離脫)을 하여 원자나 분자상태의 마이크로(micro) 세계로 자신의 양신(陽神)을 투입하여 여행을 했다는 기이한 체험을 밝히고 있다. 그가 여행했다는 마이크로 세계는 보석(寶石)이나 그림, 또는 병(甁) 속에 담긴 물질 등이었다. 특히 그는 그림 속을 여행한 경험을 이렇게 말하였다.
“처음에 나는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채색된 인도의 종교화(宗敎畵) 안에 양신(陽神)을 투입했습니다. 미세분자의 세계인 그 차원 안에서도 확실히 힌두교의 신(神)이나 사원(寺院) 등이 보이기는 하더군요. 하지만 너무나 조잡했습니다. ... 밀교(密敎)의 만다라는 굉장했습니다.
만다라도 만다라지만 그것보다도 도교(道敎)의 ‘오악진형도(五岳眞形圖)’ 속에 양신을 투입했을 때는 하마터면 숨이 막혀 죽을 뻔했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만 한마디로 엄청났습니다. 오악진형도의 내부는 온통 찬란하고도 황홀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는 마치 그 소용돌이 속에 빨려든 것처럼 아찔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한 낱 그림 속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 세계를 확인해 보고 싶다면 기공(氣功)과 선도(仙道) 수련을 하십시오. ⋯ ”
믿기지 않는 말이겠지만 이러한 그의 체험이 사실이라면, 고대의 그림이나 종교화에는 우리가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
불교화(佛敎畵) 중에 ‘십(十)바라밀도’ 혹은 ‘해인도(海印圖)’라는 것이 있다. 이 그림을 운영하면, 비를 오게 하고 바람을 일으키고 산(山)을 옮기며 바다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그 그림에 담겨있는 힘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그림에 우주의 에너지(氣)를 운행해 넣었다면 이러한 위력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화가이며 서예가인 현원경 선생은 기공법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국내 뿐 아니라 중국 등 해외에서도 유명한 분이다. 자신의 서화(書畵)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운반 기공법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기공의 힘을 지묵에 함축 주입하는 것이다. 염력(念力)으로 붓을 움직이는 까닭에 모든 글과 그림을 1필에 끝낸다. 이는 기(氣)를 운반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1992년 중국 길림(吉林)의 문묘 박물관(중국내 4대 공자묘 중 하나)에서 열린 그의 ‘서화초대전(書畵招待展)’에는 5만여 인파(人波)가 몰려들었는데, 이는 ‘그의 서화(書畵)를 보기만 해도 병(病)이 낫는다’는 소문 때문이었다고 당시 그 지역 일간지는 대서특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