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비가 있는 용강2리는 곡강이라고 부린다.용강2리는 증평에서 괴산군 청안면 방면의 592번지방도 오른쪽에 있는 마을이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의 ‘곡강(曲江)’으로 불리던 곳이다. ‘곡강’이나 ‘곡강골’은 마을 형태가 굽이쳐 흐르는 강[河回]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강리에는 암용과 수용이 있었는데 암용은 ‘안용문이’에 수용은 ‘바깥용문이’에 살았다. 용강리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이곳에 살던 용이 승천할 때 꼬리를 쳐서 강이 구부러졌다고 한다. 김득신(金得臣)은 ‘차운(次韻)’이란 제목으로 ‘곡강’을 노래하고 있다. [증평문화원]
증펑읍 용강2리 마을입구에는 조금 색다른 비석이 1기 자리하고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범부차근풍,이춘일공덕비(凡夫車根豊,李春日功德碑)라고 적혀있다.
비석의 좌우,후면에는 차근풍과 이춘일의 행적이 기술되여 있다.
차근풍은 일정한 인적근거없이 유랑객으로 우리마을에 들어와 소박하게 자기생활에 터전을 잡고 평소 배운 기술을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승화시켜 옛의관에 하나인 갓속에 바쳐쓴,ㄴ 망건을 만들어 이곳저곳 재래시장을 두루 다니며 조금씩 벌은돈을 남다른 저축정신으로 꾸준히 모아가지고 몇해동안 장만한 재산이 논 1800여평과 밭 700여평으로 자기생애동안 생활해 오다가 임종말년에 부락의 이장을 비롯하여 원로 몇어른께 유언하기를 미약하나마 내 모든재산을 부락을 위하여 희사하겠으니 내게 사후에 물이라도 한그릇 떠놓아 주었으면 고맙겠다고 소박한 뜻을 남긴후 1912년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니 옹은 인자만이 할수있는 자기가 가진것을 남에게 베푸는 아름다운 정신이냐 말로 어찌 신선한 충격이 아니며 뭇사람들에게 귀감이 아닐손가. 근대에 보기 드문 이 덕에 일향이 감복하여 그 사실을 돌에 새겨 기념코자 하오니 영원히 빛날지어다.
이춘일은 1948년 늙은 나이에 우리마을로 들어와 남의 집 머슴살이로 시작해서 3년간을 살아왔다. 심성이 착하고 친화력이 풍부하여 성실성과 책임감 역시 투철하여 부락에서 신망이 두터웠고 농사일도 내일처럼 몸을 아끼지 않고 성실하게 노력한 댓가로 세경도 나름 적지않게 받아 이 분 역시 3년간 벌어모은 백미 10입을 부락발전에 써달라며 1951년 동리에다 전액을 희사하였다.
위 두분의 고귀한 뜻에 걸맞게 두분이 마을에 희사한 자산을 마을의 운영진에서 현명하게 운영관리하여 부락의 전기사업을 비롯한 회관건립등 이외에도 대소간 부락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니 작은 미덕이 큰 광영으로 승화되였도다. 이에 동민일동은 두분의 미덕을 높이 칭송하여 일말의 보답으로 해마다 날자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원혼을 달래본다.2004년 4월 곡강부락동민일동.이라고 비석에 새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