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陰陽體象
體象之道 自無而有者也 無者先天之氣 有者後天之形 邵子曰 天依形 地附氣 氣以造形 形以寓氣 是以開物者爲先天 成物者爲後天 無極而太極者先天 太極而陰陽者後天 數之生者先天 數之成者後天 無聲無臭者先天 有體有象者後天 先天者太極之一氣 後天者兩儀之陰陽 陰陽分而天地立 是爲體象之祖 而物之最大者也 由兩儀而四象 由四象而五行 程子曰 四象者 陰陽剛柔也 陰陽生天 剛柔生地 朱子曰 天之四象 日月星辰是也 地之四象 水火土石是也 邵子曰 天生於動 地生於靜 動之始則陽生 動之極則陰生 靜之始則柔生 靜之極則剛生 陰陽之中 又有陰陽 故有太陰太陽少陰少陽 剛柔之中 又有剛柔 故有太剛太柔 少剛少柔 太陽爲日 太陰爲月 少陽爲星 少陰爲辰 日月星辰交而天體盡 太柔爲水 太剛爲火 少柔爲土 少剛爲石 水火土石交而地體盡 又曰 物之大者 莫若天地 天之大 陰陽盡之 地之大 剛柔盡之 陰陽盡而四時成 剛柔盡而四維成 四象旣分 五行以出 而爲水火木金土 五行之中 復有五行 陰根於陽 陽根於陰 陰陽相合 萬象乃生 本乎陽者親上 本乎陰者親下 在天爲風雲雷雨 在地爲河海山川 在方隅爲東南西北 在氣候爲春夏秋冬 東有應木之蒼龍 西有屬金之白虎 南方赤鳥 得火氣而飛升 北陸玄龜 得水性而潛地 人稟三才之中氣 爲萬物之最靈 目能收萬物之色 耳能收萬物之聲 鼻能收萬物之氣 口能收萬物之味 故二五之氣 無乎不具 萬有之技 無乎不能 天之四象 人有耳目 口鼻以應之 地之四象 人有氣血骨肉以應之 三百六十骨節 以應周天之度數 一萬三千五百息 以通晝夜之潮汐 故邵子曰 頭圓象天 足方履地 面南背北 左東右西 直立兩間之中 正居子午之位 又曰 天有四時 地有四方 人有四肢 指節可以觀天 掌文可以察地 得氣之清而正者 爲聖爲賢 得氣之偏而濁者 爲愚爲不肖 近東南者多柔而仁 近西 北者多剛而義 夷狄亦人而暴悍無禮 以地有偏正 氣有純駁 稟賦所使 不期而然 故左氏以民之善惡 本乎六氣 謂陽稟多者剛而烈 陰稟多者懦而柔 躁戾者陽中之惡 狡險者陰中之乖 是以水性主動而偏則流 火性主急而偏則烈 木性多和而偏則柔 金性多剛而偏則狠 土性多靜而偏則愚 至若禽獸草木 動植飛潛 無情有性 莫不皆然 禽獸橫生 草木倒生 橫生者首東尾西 倒生者枝天根地 亦皆有五氣之殊 四方之異 以動者而言得 木氣則角而仁柔 得金氣則齒而剛利 火性者飛而親上 水性者潛而就下 土性者靜而喜藏 西北之蟲 鱗甲而多蟄 東南之蟲 羽毛而常騰 以植者而言 得東氣者多長而秀 得南氣者多茂而鬱 斯二者春夏榮而秋冬落 得西氣者多强而勁 得北氣者多堅而曲 斯二者 春夏落而秋冬榮 凡萬物化生 總由二氣 得乾道者 於人爲男 於物爲牡 得坤道者 於人爲女 於物爲牝 乾類屬陽者多動 坤類屬陰者多靜 方隅歲月 氣有不同 萬物適値其氣 隨所受而成其性 氣得中和 則天爲至粹 地爲至精 人爲至德 飛爲鸞鳳 走爲麒麟 介爲龜龍 草爲芝蘭 木爲松柏 石爲金玉 氣得偏駁 則天有至眚 地有至幽 人有至戾 飛有鴟梟 走有野狼虎 介有虺蜴 草有毒吻 木有枳棘 石有礓礫 孰匪陰陽之體象 再自其形跡之有無而言 則晝夜旦暮 朔晦望弦 陰晴寒熱 大小方圓 高下升降 左右後先 夫婦男女 言動語默 呼吸表裏 浮沉出入 俛仰向背 血氣臟腑 輕重粗細 前後頭尾 皆體象之有形者也 又如動靜幽顯 盈虛消息 聲音律呂 志意善惡 曰鬼曰神 曰魂曰魄 曰變曰化 曰微曰極 皆體象之無形者也 然有此必有彼 有對必有待 物各有父母 分牝牡於蜉蝣 物各一太極 包兩儀於子粒 如蚊喙至微 能通血氣 虱睛最眇 亦辨西東 用是而推 則至廣至極 至微至精 隨氣而聚 觸幾而生 大不可量 小不可測 何莫非陰陽之至德 化工之精妙 亦豈可以造作而形容者歟 至若奇偶相銜 互藏其宅 一二同根 神化莫測 天爲陽矣 而半體居於地下 地爲陰矣 而五嶽插於天中 高者爲陽 而至高之地 冬氣常在 下者爲陰 而汚下之地 春氣常存 水本陰也 而溫谷之泉能熱 火本陽也 而蕭丘之焰則寒 陰者宜暗 水則外暗而內明 陽體宜明 火則外明而內暗 聲於東而應於西 形乎此而影乎彼 浴天光於水府 涵地影於月宮 陽居盛暑 而五月靡草死 陰極嚴寒 而仲冬薺麥生 此其變化之道 寧有紀極哉 第陰無陽不生 陽無陰不成 而陰陽之氣 本同一體 易曰 大哉乾元 萬物資始 至哉坤元 萬物資生 夫始者天地之立心 生者天地之作用 惟其以無心之心 而成不用之用 此所以根出於一而化則無窮 故有是象則有是理 有是理則有是用 孰非吾道格致之學 所當默識心通者哉 余嘗聞之滑伯仁云 至微者理也 至著者象也 體用一原 顯微無間 得其理則象可得而推矣 使能啓原而達流 因此而識彼 則萬化之幾 旣在心而左右逢原 頭頭是道矣 孰謂陰陽體象之理爲迂遠 而可置之無論哉 |
體象의 道는 無에서부터 有하는 것이니라. 無는 先天의 氣이고 有는 後天의 形이니라.
邵子가 이르기를 "天은 形에 依하고 地는 氣에 附한다." 하였느니라. 氣는 形을 造하고 形은 氣에 寓하느니라. 그러므로 物을 開하는 것은 先天이고 物을 成하는 것은 後天이니라. 無極에서 太極은 先天이고 太極에서 陰陽은 後天이니라. 數에서 生하는 것은 先天이고 數에서 成하는 것은 後天이니라. 無聲 無臭한 것은 先天이고 有體 有象한 것은 後天이니라. 先天은 太極의 一氣이고 後天은 兩儀의 陰陽이니라. 陰陽으로 分하면서 天地가 立하느니라. 이것이 體象의 祖이니, 物에서 가장 큰 것이니라.
兩儀로부터 四象이 되고, 四象으로부터 五行이 되느니라.
程子가 이르기를 "四象은 陰陽과 剛柔이다. 陰陽은 天에서 生하고 剛柔는 地에서 生한다." 하였느니라.
朱子는 이르기를 "天의 四象은 日月星辰이 그것이고, 地의 四象은 水火土石이 그것이다." 하였느니라.
邵子가 이르기를 "天은 動을 生하고 地는 靜을 生한다. 動이 始하면 陽이 生하고 動이 極하면 陰이 生하며, 靜이 始하면 柔가 生하고 靜이 極하면 剛이 生한다. 陰陽의 가운데에 또 陰陽이 있는 故로 太陰 太陽 少陰 少陽이 있다. 剛柔의 가운데에 또 剛柔가 있는 故로 太剛 太柔 少剛 少柔가 있다. 太陽은 日이고 太陰은 月이며 少陽은 星이고 少陰은 辰이다. 日月과 星辰이 交하여 天體를 이룬다. 太柔는 水이고 太剛는 火이며 少柔는 土이고 少剛는 石이다. 水火土石이 交하여 地體가 다한다." 하느니라.
또 이르기를 "아무리 物이 大하여도 天地와 같지는 않다. 天의 大는 陰陽이 다하고, 地의 大는 剛柔가 다한다. 陰陽이 다하면 四時가 成하고 剛柔가 다하면 四維가 成한다." 하였느니라.
四象이 分하면 五行이 出하여 水火木金土가 되느니라. 五行의 가운데 다시 五行이 있느니라. 陰은 陽에 根하고 陽은 陰에 根하니, 陰陽이 서로 合하여 萬象이 生하느니라. 陽에 本한 것은 上과 親하고 陰에 本한 것은 下와 親하느니라. 天에 있어서는 風雲雷雨이고 地에 있어서는 河海山川이며, 方隅에 있어서는 東南西北이고 氣候에 있어서는 春夏秋冬이니라. 東에는 木에 應하는 蒼龍이 있고 西에는 金에 屬하는 白虎가 있으며, 南方에는 赤鳥가 火氣를 얻어 飛升하고 北陸에는 玄龜가 水性을 얻어 潛地하느니라.
人은 三才의 中氣를 稟하니 萬物에서 가장 靈하느니라. 그 目는 萬物의 色을 收할 수 있고, 그 耳는 萬物의 聲을 收할 수 있으며, 그 鼻는 萬物의 氣를 收할 수 있고, 그 口는 萬物의 味를 收할 수 있느니라. 故로 二五의 氣에 갖춰지지 않음이 없으니 萬有의 技에 能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天의 四象은 人에 耳目口鼻가 있어 이에 應하고, 地의 四象은 人에 氣血骨肉이 있어 이에 應하느니라. 360骨節은 周天의 度數에 應하고, 13500息은 晝夜의 潮汐에 通하느니라.
故로 邵子가 이르기를 "頭는 圓하여 天을 象하고, 足은 方하여 地를 履한다. 面을 南으로 背를 北으로 하면, 左는 東이고 右는 西이다. 兩間의 가운데 바로 서면 바로 子午의 位에 居한다." 하였느니라.
또 이르기를 "天에는 四時가 있고 地에는 四方이 있으니, 人에는 四肢가 있다. 指의 節로 天을 觀할 수 있고 掌의 文으로 地를 察할 수 있다." 하였느니라.
氣의 清을 얻어 正한 자는 聖이고 賢이니라. 氣의 偏을 얻어 濁한 자는 愚이고 不肖이니라. 東南에 가까우면 대부분 柔하면서 仁하고, 西北에 가까우면 대부분 剛하면서 義하느니라. 夷狄도 사람이지만 暴悍하고 無禮하니 이는 地에 偏正이 있고 氣에 純駁이 있기 때문이니라. 이는 稟賦가 그렇게 한 것으로, (좋아지기를) 期하지 않아도 그러하느니라.
故로 左氏에 이르기를 "民의 善惡은 六氣에 本한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陽의 稟이 많으면 剛하면서 烈하고 陰의 稟이 많으면 懦하면서 柔하다. 躁戾하면 陽 중의 惡이고 狡險하면 陰 중의 乖이다. 그러므로 水의 性은 動을 主하니 偏하면 流한다. 火의 性은 急을 主하니 偏하면 烈(:강하고 곧다)한다. 木의 性은 대부분 和하니 偏하면 柔한다. 金의 性은 대부분 剛하니 偏하면 狠(:싸우다)한다. 土의 性은 대부분 靜하니 偏하면 愚(:어리석다)한다." 하였느니라.
禽獸 草木의 動植(동식물)이나 飛潛(새와 물고기)의 無情 有性에 있어서도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禽獸는 橫으로 生하고, 草木은 倒(:거꾸로)하여 生하느니라. 橫으로 生하면 首가 東이고 尾는 西이며, 倒하여 生하면 枝는 天이고 根은 地이니라.
또한 모두 五氣의 殊와 四方의 異가 있느니라.
動으로 말하자면, 木氣를 얻으면 角이 있고 仁하고 柔하며, 金氣를 얻으면 齒가 있고 剛하고 利하며, 火의 性은 飛하면서 上으로 親하고, 水의 性은 潛하면서 下로 就하며, 土의 性은 靜하면서 藏을 喜하느니라.
西北의 蟲은 鱗甲이니 대부분 蟄하고, 東南의 蟲은 羽毛이니 常으로 騰하느니라.
植으로 말하자면, 東의 氣를 얻은 것은 대부분 長하면서 秀하고, 南의 氣를 얻은 것은 대부분 茂하면서 鬱하니, 이 두 가지는 春夏에 榮하고 秋冬에 落하느니라. 西의 氣를 얻은 것은 대부분 强하면서 勁하고, 北의 氣를 얻은 것은 대부분 堅하면서 曲하니, 이 두 가지는 春夏에 落하고 秋冬에 榮하느니라.
萬物의 化生은 총체적으로 두 가지 氣로 말미암으니, 乾道를 얻으면 人에서는 男이 되고 物에서는 牡(모)가 되며, 坤道를 얻으면 人에서는 女가 되고 物에서는 牝(빈)이 되느니라. 乾類로 陽에 속하는 것은 대부분 動하고, 坤類로 陰에 속하는 것은 대부분 靜하느니라.
方隅와 歲月에는 그 氣가 不同함이 있으니 萬物이 그 氣를 値하게 되면 그 受하는 바를 따라 그 性이 되느니라. 氣가 中和를 얻으면 天은 至粹이 되고 地는 至精이 되며 人은 至德이 되고 飛는 鸞鳳이 되며 走는 麒麟이 되고 介는 龜龍이 되며 草는 芝蘭이 되고 木은 松柏이 되며 石은 金玉이 되느니라. 氣가 偏駁를 얻으면 天에는 至眚이 있고 地에는 至幽가 있으며 人에는 至戾가 있고, 飛에는 鴟梟가 있으며 走에는 野狼虎가 있고 介에는 虺蜴이 있으며 草에는 毒吻이 있고 木에는 枳棘이 있으며 石에는 礓礫이 있느니라. 따라서 무엇이 陰陽의 體象이 아니겠는가?
또 그 形跡의 有無로 말하자면 晝夜와 旦暮, 朔晦와 望弦, 陰晴와 寒熱, 大小와 方圓, 高下와 升降, 左右와 後先, 夫婦와 男女, 言動과 語默, 呼吸과 表裏, 浮沉과 出入, 俛仰와 向背, 血氣와 臟腑, 輕重과 粗細, 前後와 頭尾는 모두 體象의 有形인 것들이니라. 또 動靜과 幽顯, 盈虛와 消息, 聲音과 律呂, 志意와 善惡, 鬼와 神, 魂과 魄, 變과 化, 微와 極은 모두 體象의 無形인 것들이니라.
그런데 이것이 있으면 반드시 저것이 있고, 對가 있으면 반드시 待가 있느니라. 物에는 각 父母가 있어서 蜉蝣조차도 牝牡로 나누어지느니라. 物은 각각 하나의 太極이니 子粒에도 兩儀를 包하느니라. 예로 蚊의 喙가 至微하여도 능히 血氣를 通하게 하고 虱의 睛이 最眇하여도 西東를 辨하느니라. 이를 이용하여 推하자면 至廣 至極하고 至微 至精하여 氣를 따라 聚하고 幾를 觸하여 生하느니라. 그 大도 量할 수 없고 그 小도 測할 수 없느니라. 무엇이 陰陽의 至德이 아니겠는가?
그 化工함이 精妙하니, 이를 무엇으로 造作하여 形容할 수 있겠는가?
奇偶에 있어서는 서로 銜하여 서로 그 宅에 藏하느니라. 一과 二는 同根이니 그 神化가 莫測하느니라. 天은 陽이지만 半體는 地下에 居하고, 地는 陰이지만 五嶽을 天中에 插(:삽 꽂다)하느니라. 高한 것은 陽이지만 至高한 地에는 冬氣가 항상 在하고, 下한 것은 陰이지만 汚下한 地에는 春氣가 항상 存하느니라. 水는 본래 陰이지만 溫谷의 泉은 熱하게 할 수 있고, 火는 본래 陽이지만 蕭丘의 焰은 寒하게 될 수 있느니라. 陰은 마땅히 暗하지만 水는 外暗 內明하고, 陽體는 마땅히 明하지만 火는 外明 內暗하느니라. 東에서 聲하면 西에 應하고, 여기에 形하면 저기에 影하느니라. 水府에서는 天光에 浴하고, 月宮에서는 地影을 涵하느니라. 陽이 盛暑에 居할 때 5月의 靡草가 死하고, 陰이 嚴寒에 極할 때 仲冬의 薺麥이 生하느니라. 이러한 變化의 道에 어떻게 紀極(:마지막)이 있겠는가?
다만 陰은 陽이 없으면 生하지 못하고, 陽은 陰이 없으면 成하지 못하느니라. 陰陽의 氣는 본래 同一한 體이니라.
[易]에 이르기를 "大하도다! 乾元이여! 萬物의 始를 資하는도다!
至하도다! 坤元이여! 萬物의 生을 資하는도다!" 하였느니라.
始란 天地가 心을 立하는 것이고, 生이란 天地가 用을 作하는 것이니라. 오직 無心의 心만이 不用의 用을 이루느니라. 따라서 一에서 根이 出하여 化가 無窮하게 되느니라. 故로 이 象이 있으면 이 理가 있고, 이 理가 있으면 이 用이 있느니라. 어찌 내가 말하는 格致의 學을 당연히 묵상(默識)하고 心으로 通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내가 일찍이 듣건대, 滑伯仁이 이르기를 "至微는 理이고 至著는 象이다. 體와 用은 一原이니, 顯과 微의 間이 없이 그 理를 얻으면 象을 얻어 推할 수 있다." 하였느니라. 啓原하여 達流할 수 있으면 이것으로 인하여 저것을 인식(識)하니, 萬化의 조짐(:幾)가 心에 있느니라. 左右에서 原(:원천)에 達하고 頭頭가 道가 되느니라. 어찌 陰陽 體象의 理가 멀다면서(:迂遠) 論하지 않고 置하여 두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