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와 바이칼 호수
내 기억 속의 명화인 닥터 지바고를 보면 눈덮힌 시베리아 벌판을 기차가 눈을 헤치며 달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너무나 감동적인 장면으로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닥터 지바고는 1970년 경 개봉 때 보고 나서 너무나 충격적인 영화라서 그 이후로도 몇 번 본 기억이 난다.
시베리아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바이칼 호수이다. 10 여 년 전 친구 4명이 부부 동반으로 바이칼 호수로 가기로 했는데, 한 친구가 펑크를 내서 결국 가지 못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나에게 바이칼 호수는 10대 때부터 내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10대 후반 이광수의 유정을 읽고 난 후부터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 김진규, 남정임 주연의 ‘유정’을 보고 나서 더욱 뇌리에 박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감수성 많던 시절 눈 덮힌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에서 유정의 주인공 최석이 최후를 맞는 것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난 그 때부터 왜 이광수는 최석으로 하여금 가기도 힘든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에서 죽음을 맞는 장소로 택했는지 의문이었다. 1933년 이광수가 유정을 쓸 때는 일제 강점기하에 있었고 가기도 몹시 어렵던 시기였다. 어떤 이유로 바이칼 호수를 택했을까? 물론 그 때는 남북이 하나여서 기차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보통 결심으론 가기가 힘들었으리라.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바이칼이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선 ‘유정’의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여덟 살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정임은 아빠의 친구 최석의 집에서 살게 된다. 최석은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요 교회 집사였다. 마침 같은 또래의 딸, 순임이도 있어서 둘이는 잘 지낼 수 있었다. 정임은 공부도 잘 하고 마음씨도 착하다. 순임과 순임 어머니의 질투가 시작되었다. 미움은 자신을 먼저 태우고 또 상대를 태우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최석은 정임이 더욱 불쌍하기만 하다.
정임은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세상에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 데도 없던 정임에게 최석은 아버지요, 스승이요 그리고 사모하는 대상이 되었다. 자신의 가슴에서 싹트는 사랑의 감정을 일기장에 그려오던 정임이 폐결핵으로 입원하게 되고 최석이 일본으로 날아가 수혈을 해주고 돌아온다.
질투심에 불타던 최석의 아내와 딸 순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정임의 일기장을 훔쳐 읽는다. 정신질환으로까지 악화된 아내가 세상에 그 사실을 불륜으로 폭로하게 되자 최석은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떠난다. 고국을 떠나고 세상을 떠날 결심으로 모든 것을 다 정리해 둔 후였다. 일본의 병원에 누워있던 정임을 찾아가 만난다. 한마디 한 마디의 말을 절절하게 듣던 정임이 최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눈치채게 된다. 두 사람은 마침내 부둥켜안고 흐느낀다.
“어디라도 저를 데려가 주세요” 매달리는 정임을 차갑게 밀어낸다. 아버지요 스승인 자신이 딸 같은 애를 데리고 가다니, “아니 될 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정임이 간절하게 애원한다.
“아버지, 제발 죽지만 말아 주세요.”
높은 도덕률과 이성으로 자신의 욕구를 자제하며 살아 왔고, 또 사회의 존경을 받아 온 최석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주체할 수 없이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에 정신을 가눌 수가 없으니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나의 어디에 이렇게 불같은 열정이 숨어 있다가 한 순간에 폭발하여 타오른단 말인가.
이것은 반란이야. 나에 대하여 또 다른 내가 혁명을 일으킨 거야. 가자, 가다가 진이 다하여 쓰러질 때 그곳에서 땅을 파고 영원히 잠들자. 정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스러지기는커녕 더욱 간절해지기만 해갔다. 최석의 여로는 시베리아를 거쳐 바이칼에 다다른다. 그곳에 머물며 친구 N에게 편지를 쓴다. 아무래도 진실을 밝히고 떠나야 할 것 같아서였다. 모든 내용을 읽은 친구는 마침내 최석의 진실을 알게 되고 가족을 찾아가 설명한다. 딸 순임이 정임과 함께 바이칼로 떠난다. 그러나 최석을 쉽게 찾지 못한다.
정임은 폐결핵이 재발하여 여행을 할 처지가 되지 못하였으므로 바이칼 호수 근처의 민가에 머물고 순임만이 눈 덮인 숲을 헤매며 아버지를 찾는다. 숲속에 집 한 채를 얻어 홀로 살아가던 최석은 이미 병들어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연락을 받은 정임도 마침내 최석의 집에 도착한다. 그러나 최석은 이미 눈을 감은 후였다. 친구 N과 딸 순임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정임은 홀로 그곳에 머문 채 떠나지 않는다. 이후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정비석이 유려하다고 판단하여 뽑은 <유정>의 시베리아 배경 묘사 중 횡단 열차 부분은 이렇다.
“가도 가도 벌판. 서리 맞은 마른 풀 바다. 실개천 하나 없는 메마른 사막. 어디를 보아도 산 하나 없으니 하늘과 땅이 착 달라붙은 듯한 천지. 구름 한 점 없건만 그 태양까지도 마치 이루 다 비추지 못하여---지평선, 호를 그린 듯한 지평선 위에는 항상 황혼이 떠도는 듯한 세계. 이 속으로 내가 몸을 담은 열차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해가 가는 걸음을 따라 달리고 있소. 열차가 달리는 바퀴 소리도 반향할 곳이 없어 힘없는 한숨같이 스러지고 마오.”
왜 최석은 처녀림, 시베리아를 거쳐 바이칼로 갔을까. 그리고 정임은 사랑하는 님과 함께 이곳 바이칼에 묻히고자 하였을까. 그들을 질시하고 버린 고국의 땅은 싫다고 하더라도, 하필 바이칼이었을까.
당시 시베리아는 소련 땅이었고, 1917년 사회주의혁명 후 소련은 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서 일종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바이칼의 인접도시 이르쿠츠크에는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의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르쿠츠크 공산당 창당 건물이 남아 있다. 이르쿠츠크 거리는 아직도 칼 마르크스가와 레닌가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당시는 일제의 억압 속에서 조선민족이 신음하고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지식인층에서는 공산주의가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소련 땅은 일종의 로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 공산당의 원조격인 박헌영은 3.1운동 후 1921년 독립운동을 하던 중 시베리아 이르츠쿠크 고려공산당파에 가입하여 열성적인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훗날 그는 1929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했다. 결국 소련은 공산당의 성지로 여겨졌고 이르츠쿠크 인근에 바이칼 호수가 있어서 이광수는 최석을 바이칼 호수에서 죽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 우선 어머니에게 가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낳아 기르신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의 눈물로써 상처 받은 영혼을 정화하였을지 모르겠다.
정임도 그렇지만 아마도 최석에게도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더 큰 태반(胎盤)을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먼 태고적 시원을 찾아 떠나가는 연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바이칼 호수는 한민족의 진원지이기 때문에 어머니와 같은 땅이다. 바이칼 원주민은 알혼섬의 코리 부리야트족이다. 알혼섬에서는 고구려의 조상인 북부여족과 동일한 화석과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고, 지금도 바이칼 원주민과 한국인은 신체, 용모, 풍습이 유사하여 구분하기 어렵다. 바이칼호 토착 원주민의 샤머니즘과 우리나라 무속신앙이 유사하고, 전통 생활, 풍속이 동일하며, 심청전, 선녀와 나무꾼, 성황당, 서낭목의 돌무무더기 등의 설화가 우리 문화의 뿌리와 밀접하다.
그래서 최석을 어머니의 품인 비이칼 호수에서 최후를 맞게 하려고 아마도 이광수는 그곳을 선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젊은 시절 꿈을 부풀게 했던 영화 유정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소설 유정도 다시 보며 그 때의 감흥에 젖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첫댓글 사랑의 형식과 내용이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문명 새로운 가치관과 마주하게되고 무대와 역정이 급속도로 흔들려 사랑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이 사라져가는 것 같다
멋지고 수려한 장편 한 권을 잘 읽은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제 설익은 생각을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